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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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들

현만은 그들 무리가 내심 거슬렸지만, 모처럼 인혜와 여행을 나온 탓에 얼굴을 붉히기 싫었다.

그냥 속으로 녀석들이 어디로든지 꺼져주길 바랄 뿐이었다.

"참, 현만! 어디로 가는 거야?''

기분 나쁜 녀석에게 행선지까지 가르쳐주기는 싫었지만 대충 대답 해주고 보내고 싶었던 현만은 짧게 대답해주었다.

"제주도"

"어, 제주도로 가? 우리도 거기로 가는데, 정말 대단한 우연 이네. 혹시 이번에 내리는 비행기를 타는 거야?"

현만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따위 기분나쁜 녀석들이랑 같은 제주도로 가는 것도 짜증나 는데 비행기까지 같이 타야한다니...

현만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호는 연신 반갑다는 표정 을 지으면서 힐끔힐끔 인혜를 위아래로 훌었다.

그런 정호를 보면서 현만의 머릿속에 녀석의 예전 모습이 떠 몰랐다.

녀석은 학창시절부터 수 없이 많은 여자들과 잠자리를 하고, 또 온갖 음담패설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제는 옆반의 누구를..

오늘은 우리반의 누구와...

그리고 내일은 다른 반의 어떤 여학생을 만나고.. 반드시 따먹 을것이라고 자랑삼아 떠들었다.

그렇게 여학생들과 잠자리를 하고 나면 반드시 몸매는 어떻고, 신음소리를 어떤지.. 그리고 또 어떤 여학생의 보지가 쪼이지 헐렁한지 등등을 소문내고 다니던 놈이었다.

학년이 을라갈때면 다른 친구들과 신입 여학생들중 아다를 누 가 더 많이 따먹는지 내기를 하기도 하였다.

기분나쁘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이 현만과는 맞지 않아서 그냥 가까이 지내지 않았었다.

저런 불편한 놈인데도 불구하고 녀석은 학교에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키도 크고,얼굴도 잘생긴데다 기분나쁜 녀석의 말빨이 여자들 에게는 픽이나 잘 먹히는 듯 했다.

"현만아, 비행이 탈 시간인데?’'

녀석들과 다소 거리를 두고 생각에 잠겨있는 현만에게 인혜가 말했다.

티켓확인을 하고 비행기에 올라 좌석에 앉으니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다행이 녀석들과는 조금 떨어진 자리였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구름위로 올라가자 맑은 햇살이 하늘위의 비행기를 비추었고, 현만과 인혜는 서로에게 몸을 기댄채로 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우와… 너무 이쁘다..."

창가에 앉은 인혜가 얼굴을 붉히면서 현만에게 말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하늘위에서만 볼수 있 는 절경이 펼쳐져 있었다.

현만은 애써 미안한 마음을 감추고 그녀의 손울 꼭 잡았다.

여자들에 휩싸여서 온갖 짓을 다하고 다니는 자신에게 처녀를 바치고 또 이렇게 지극히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그녀가 더욱 다름다워보였다.

이 순간 만큼은 은지누나에게서는 절대로 느일수 없는 애뜻한 사랑이 샘솟고 있었다.

높은 하늘 속의 흰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비행기는 온전히 그 들 두 사람만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숙소는 어디야?"

비행기가 도착하고 공항에서 짐울 찾고 있을 때 정호가 다가 와서는 음료수를 건네면서 말했다.

"응, 주문단지쪽에 A호텔을 잡았어."

현만이 음료수를 받고는 성의없이 통명거렸다.

"그래? 정말 기막한 우연이네? 우리도 그쪽이야. 아쉽게도 같 은 호텔은 아니지만 제법 가까운데? 저녁에 시간봐서 같이 놀 아도 되겠다."

정호는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오늘은 우리 둘의 기념여행이라서 사양할게."

현만이 정색을 하면서 인사를 하곤 짐을 챙겨서 인혜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따 생각나면 연락해."

멀어져가는 현만과 인혜의 뒤에서 정호와 그 무리들은 알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예약해놓은 호텔로 향했다.

"퉤, 무슨 주스 맛이 이렇지?"

택시에서 현만은 정호가 건네준 주스를 조금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상했나보다. 먹지말고 이따가 내려서 버리도록 해"

옆에서 바라보던 인혜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암튼 그 녀석은 마음에 안든단 말이야."

현만은 조금 마셔버린 주스병의 두껑을 닫고는 인혜를 손을 잡고 택시 유리창 밖의 경치를 구경했다.

인터넷에서 보았을때보다는 다소 낡은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발코니에서 보이는 바다의 풍경이 모든 서운함을 달래주었다.

"현만과 이렇게 여행을 오는 것은 처음이네."

짐을 대충 풀고는 침대에 몸을 던지면서 장난을 치는 인혜였 다.

그런 인혜를 보면서 현만은 다시금 새로운 감정이 치밀어 오 르는 것을 느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질 것 같은데 잠시라도 바다를 걷고 올까 ?"

현만이 누워있는 인혜를 껴안으며 그녀의 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젖가슴을 만지면서 말했다.

"좋아! 얼른 나가자!"

두사람은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햇살을 한껏 받은 해수욕장의 모래는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웠다

두 사람은 마치 유치원 아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즐거 워했다.

새파란 하늘과 일렁이는 바다.. 그리고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두사람을 아름답게 감싸고 있었다.

한참을 놀았을까?

어느새 석양이 지며 아름다운 노을이 바닷가로 내려오고 있었 다.

"호텔에 석식이 괜찮다던데..?"

"그래? 그럼 얼른 가보자. 이왕이면 와인도 한잔씩 하자고 하 하."

들뜬 여행지의 첫날을 그냥 보낼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마치 새롭게 사랑을 시작한 연인처럼 들뜬 마음으 로 호텔로 걸어들어갔다.

꾸르륵....

그때 현만의 배속에서 무엇인가 잠시 요동을 쳤다.

'뭐지…?'

현만이 순간 배를 움켜잡았는데 마치 거짓말처럼 아무일 없이 말짱하게 돌아왔다.

그리고는 등쪽에서 잠시 식은땀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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