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들
"현만아... 표정이 왜 그렇게 안좋아?"
인혜가 그의 안좋은 안색을 보면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야. 괜찮아. 잠깐 속이 안좋은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나봐
현만은 그녀를 안심시키고는 같이 호텔 2층에 마련된 레스토 랑으로 들어갔다.
그는 모처럼 인혜와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이 이상하게 느껴지던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무렇지 도 않았다.
꾸르륵 꾸르륵
그러나 이것 저것 음식물을 먹기 시작하면서 현만의 몸은 급 속도로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이 불편했는데 어느순간 온몸에 식은땀이 나면서 편두통이 심하게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만은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서 억지 웃음을 지으면서 인혜와 식사를 계속했다.
"자, 현만과 나의 첫 여행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한잔 하자!"
인혜가 발그스레한 얼굴로 와인잔을 내밀었다.
현만도 사랑스러운 그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옆에 놓여있는 자신의 와인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쨍그랑!
잔을 들어 건배를 하려는 순간 현만이 머리가 빙그레 도는 것 을 느끼면서 그의 손에 들려있던 와인잔이 미끄러져서 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어졌다.
"괜찮아?"
약간 비를거리는 현만을 바라보며 인혜가 다시 걱정스럽게 물 었다.
"괜찮아. 그냥 잠시 어지러웠던 것 뿐이야."
"현만아... 너 안색이 너무 안좋아."
인혜가 자신의 손을 뻗어서 현만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
"뭐야. 완전 펄펄 끓는데? 열이 너무 나잖아."
인혜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래? 나는 아직 괜찮은데..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거야. 걱 정하지마."
현만은 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열이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는 수저를 들고 앞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했는데,
손아귀에 힘이 빠져서는 수저가 테이블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안되겠다. 현만아. 프런트에 가서 해열제 있는지 물어보고 올 라가서 좀 쉬자.'’
두 사람은 결국 음식을 채 먹지도 못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인혜가 비틀거리는 현만을 부축하고 간신히 숙소로 돌아왔을 때에는 현만의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 열이 펄펄나면서 온 몸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서 거질게 숨을 내쉬는 현만을 보면서 인혜는 냉동실에서 각얼음을 꺼내어서는 비닐에 넣고 현만의 이마에 올려주었다.
"병원이라도 가야되지 않을까?"
인혜가 현만의 손을 잡고는 물었다.
“으음 "
현만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안되겠다. 내가 프런트에 내려가서 구급약이나 가까운 병원이 있는지 물어보고 을게."
“〇응 "
현만은 모처럼만의 여행에서 인혜에게 폐만 끼치는 자신이 싫 었지만 몸이 너무도 안좋아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인혜가 밖으로 나가고 나서도 현만은 호텔 방의 천장만 바라 보면서 온몸이 나른하면서도 기분나쁘게 머리를 쑤시는 통증을 견디고 있었다.
인혜에게 미안한 마음도 어느샌가 사라지고 빨리 돌아오지 않 는 그녀에게 원망이 생겨나고 있었다.
딸각...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혜가 드디어 돌아왔다는 생각에 현만이 기쁜 마음으로 힘겹 게 고개를 돌렸다.
역시 인혜는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뒤에는 현만에게 익숙한 세명의 남자가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현만,몸이 많이 안좋다면서? 어때? 병원에 데리고 가야 될 것 같다고 인혜씨가 말해서 말이야."
기분나쁜 녀석들이 세명이나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글세,프런트에 내려갔는데 병원이 있기는 한데 걸어서는 무 리고 지금은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말이야. 그래서 아까 서울에서 출발할 때 정호씨가 준 연락처가 생각나서 연 락을 했어."
현만의 표정이 안좋은 것을 보고는 인혜가 옆에서 먼저 자초 지종을 설명했다.
"으응.. 그래.."
현만은 크게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안되겠다. 얼른 업고 내려가야겠어. 한영아 업고 내려가자."
정호녀석이 호들갑을 떨더니 남은 녀석들중에 덩치가 큰 친구 에게 눈짓을 했다.
한영이라고 불린 근육질의 체격이 커다란 녀석이 현만을 등에 업고는 밑으로 내려와서 차에 태웠다.
키가 크고 날씬한 녀석이 옆에서 거들었는데 그 녀석은 여민 한이라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다섯명은 렌터카에 몸을 싣고 병원으로 향했다.
"정말 고마워요. 모처럼만의 친구들끼리의 여행일텐데 도와주 셔서 감사합니다."
인혜는 렌터카 안에서 정호녀석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니에요. 친구라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그럼요. 어차피 저희도 오늘은 첫날이라서 뭘해야할지 서로 싸우고 있었을 뿐이에요."
녀석들은 별거 아니라는 듯 인혜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혜는 제법 감동한 듯 다시한번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데 현만씨는 원래 몸이 안좋아요? 아니면 뭐를 잘못 먹 기라도 하신건가요?"
여민한이라는 녀석이 렌터카를 운전하며 인혜에게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랫동안 만났지만 이렇게 몸이 아팠던 적은 없었거든요. 그리고 저랑 똑같이 먹었는데 현만이만 이 러는건지 통 이유를 모르겠어요."
인혜가 난감하다는 얼굴로 말을 하면서 걱정스럽게 현만을 살 폈다.
"그래도 제법 큰 병원이니까 가면 금방 나을거에요."
"네.. 원래 병이 있던건 아니니 그러길 바라고 있어요."
현만은 녀석들과 인혜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신에게 한심한 기 분이 들기 시작했다.
모처럼 인혜와 이렇게 여행을 왔는데 몸이 아프다 못해 기분 나쁜녀석들에게 도움까지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인혜도 걸으로 내색은 안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여행까지 와서 남자친구의 병간호를 하고 싶을까...
"아이고, 원가 아주 상한 걸 드셨나봅니다. 요즘에 종종 있는 일이에요. 식중독이에요. 약 드시고 며칠동안 푹 쉬시면 금방 나을 겁니다."
뿔테안경을 낀 나이든 의사가 친절하게 병명을 말해주었지만 현만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3일간의 일정으로 도착한 여행 첫날,식중독으로 며칠을 쉬어 야 한다니...
모처럼만에 인혜와 함께한 여행에서 내내 침대에 누워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병명을 확인하고 나니 기분은 괜찮아졌다.
원지도 모를 끈적한 액체약을 먹고 나니 몸 상태도 한결 좋아 졌다.
몸이 좋아지니 자신을 병원에 대려다준 녀석들에게 조금은 감 사한 마음이 생겼다.
"그만하길 정말 다행이야."
인혜가 안심한 표정으로 현만에게 말했다.
이후 다섯명은 다시 렌터카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러나, 차안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인혜는 가끔씩 한숨을 내쉬었다.
현만은 알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약간 실망한 기분인 것이다.
인혜는 현만에게 따뜻하고 그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천 성적으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편이었다.
그녀는 지금 현만의 몸을 걱정하면서도 여행일정을 망친 것에 대해서는 실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끔 한숨을 쉬면서도 현만에게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현만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현만은 미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을 뿐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현만은 바로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아직 가벼운 두통은 있었지만 몸은 많이 좋아졌다.
정호 녀석들은 현만을 위한다며 음료수와 먹기 좋은 죽 같은 음식들을 잔뜩 사가지고 왔다.
"고마워.."
녀석들에게 정말로 고마움을 느낀 현만이 말했다.
"친구끼리 뭘 그래. 이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녀석들은 제법 착한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냉장고에 음식을 채운 뒤에도 녀석들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속으로 내심 불쾌했지만 현만이 자신을 도와준 녀석들에게 바 로 가버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그들은 자신을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현만이 호텔 객실 침대에서 누워있었는데 녀석들과 인혜는 거 실에서 녀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만아.. 잠시 좀 쉬고 있어.. 나는 거실에 있을께.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 말이야."
인혜는 현만에게 가볍게 키스를 해주고는 거실로 갔다.
현만은 솔직히 그녀가 녀석들과 있는 것이 싫었지만 어찔 도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