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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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들

현만은 침대에 누운채로 거실에서 들리는 그들의 대화소리를 들었다.

"인혜씨는 현만이랑 같은 학교인가봐요?"

"네, 과는 다르지만 학교는 같아요."

"아하... 현만이랑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원래 초등학교때 같은 반이었는데, 제가 재수를 했는데 교양 과목을 같이 듣게 되어서 만나게 되었죠. 하하"

"정말요? 현만이 녀석 복도 많네요. 인혜씨같이 귀엽고 아름 다운 분이랑 초등학교랑 대학교를 같이 다니다니요. 그것도 모 잘라서 사귀기까지 하구요."

현만은 몸이 좋지 않고 약까지 먹어서 일찍 자야했지만 인혜 가 녀석들과 무슨 대화를 하는지 궁금해서 잠이 들수가 없었 다.

녀석들과 인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끔씩 크게 웃 기도 했다.

아픈 몸으로 침대에 혼자 누워있던 현만은 거실에서 들리는 떠들썩한 소리에 더욱더 외로워져 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백정호, 박한영, 여민한....

이 녀석들은 분명 여자들을 헌팅하는 녀석들이니 쉽게 친해지 는 법을 알 터였다.

현만도 여자가 끊이지 않기에 여자를 잘 다룰줄 알았지만 그 들처럼 처음 만나서 쉽게 친해지는 법과는 전혀 달랐다.

아무리 정숙하고 쑥스러운 여자들이라도 저 녀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분명히 친해지고 쉽게 마음을 열 것이다.

인혜의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벌써 한시간이나 지났다.

갑자기 인혜가 현만이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현만, 몸은 좀 어때?"

"아직 완전하지는 않은데 아까보다는 확실히 많이 나아졌어/'

"밖에서 너무 떠들어서 쉬지 못한건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약을 먹어서인지 훨씬 좋아졌어."

인혜가 손을 뻗어서 현만의 이마를 한번 만져보고는 부드럽게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인혜의 표정에서 무엇인가 할 말이 더 있는 듯한 기분 을 느꼈다.

"왜? 무슨 할말이라도 있어?"

"아.. 별건 아니고 정호씨랑 친구들이 근처에 야경이 좋은 곳 으로 드라이브를 갈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해서..."

"야경? 어디에?"

"그건 잘 모르겠고 여기 자주왔는데 올때마다 꼭 들러서 무조 건 보고 간다나봐... 엄청 좋은 곳이라는데?"

인혜는 말을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온 얼굴에 가고싶어하는 표 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처럼만에 멀리까지 왔는데 아무리 남자친구라도 병 간호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린 여자에게는 무리일 것이다.

"다녀와.. 나도 몸이 많이 나아졌으니 괜찮을 거야."

"정말 괜찮겠어?"

"당연하지. 나는 좀 자고 있을테니까 갔다오도록 해."

정말 갔다와도 될까기

"신경쓰지말고 갔다와. 괜히 나 때문에 너가 고생이다."

인혜는 거듭해서 현만에게 물었는데 야경을 보러가고 싶기는 했지만 역시 아픈 남자친구가 맘에 걸린 것이었다.

"대신에 너무 늦게 오진 말고./'

현만이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짓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고마워. 사진을 많이 찍어 을게"

인혜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는 밖으로 나갔 다.

혼자 남은 현만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두 사람이 함께한 여행인데 이렇게 자신은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여행을 망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다가 남자들과 야밤에 밖으로 나가버리니 더욱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현만이 생각하기에 인혜는 바람을 피울 여자가 아니었다.

그런 것을 걱정한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인혜의 처녀를 가진 날부터...

은지누나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지금까지도 현만은 인혜를 믿고 있었다.

자신은 여러여자를 만나면서 인혜는 자신에게 집중할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힘들고 나니 조금은 흔 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묘하게 은지에게 쏠리고 있던 감정이 인혜에게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띠리 리링....

현만이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고 있을 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인혜였다.

'여기 야경이 정말 굉장하다. 내일 너 몸이 괜찮아지면 꼭 다 시오고 싶어...사랑해..'

그녀는 예쁜 야경사진과 함께 애정어린 문자를 보내왔다.

메시지를 읽는 현만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는 그녀를 괜히 걱정한 자신을 나무랐다.

조금전까지의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놀러가서도 여전히 현만을 생각해주고 있었다.

'그래,물론 나랑도 같이 가야지. 야경보다 인혜가 더 예쁜데 ? 조심해서 놀다와. 나도 사랑해..'

현만은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고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잠깐 잠이 들었던 현만이 눈을 떳을때는 아직도 밤이었다.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보니 새벽 3시였다.

그가 주변을 돌아보아도 인혜는 없었다.

'무슨일이 생긴건가? 왜 아직도 둘아오지 않았지..?'

현만이 다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창문 밖 주차장으로 자동차 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차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인혜와 녀석들의 말소리가 들렸 다.

왠지 모두들 들떠있는 목소리였다.

"정말 즐거웠어. 그런 야경을 보여줘서 정말 고마워."

"아니야. 우리가 더 즐거웠어. 그런데 너 보기에는 양전한데 완전 색다른 모습이야."

"정말? 내가 너무 들떠있었나봐. 실수한건 없었어?"

어느새 그들은 서로 말을 놓고 친구처럼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차장 안에서 인혜와 녀석들은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녀석들이 먼저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인혜도 웃으면서 받아치 고 있었다.

"지금 몇시야?"

"아.. 벌써 한참 지났네..? 현만이가 기다리겠다. 미안,이만

들어가볼게."

"그래, 얼른 들어가. 참... 너 내일 해수욕장 간다고 했지? 우 리도 같이가자/'

"뭐? 너희들도?"

"그래. 네가 수영복 입은 멋진 몸매를 놓칠수야 없잖아 하하"

"뭐야... 멋지긴 뭐가 멋져..."

녀석들의 짓궂은 농담에 인혜는 약간 부끄러운 듯 말했다.

"인혜 몸매가 아주 좋다는 것은 딱봐도 알수 있지 하하"

"그래? 사실은 나 완전 자신 없는데... 그러는 너희들이야 말 로 완전 모델같잖아... 키도 크고 말이야."

"무슨 소리야. 한영이 이 자식은 근육덩어리밖에 없는 헬창남 일 뿐이라고. 다른 놈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원 소리래. 근육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남자는 저기가서 찌그 러져 있으라고"

한영이 여기 저기 팔다리를 움직이면서 요상한 포즈를 취하는 듯 했다.

"한영이 몸매가 좋다고? 그렇게 대단해?"

"왜? 궁금해? 너도 근육질을 좋아하나보지?"

"아니야.. 그런건 아니고 너희들이 말하는 걸 들으니 그냥 궁 금해서 말이야.’'

"그냥 농담이야.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보니 정말 관심 이 있나보네?"

"무..무슨 소리야."

"알았어, 정색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 그럼 우리는 내일 또 놀아야되니 이만 가보도록 할게."

"그래 인혜야 어서 들어가서 좀 쉬어.."

"운전 조심하고, 오늘 고마웠어."

주차장에서 한참을 떠들던 녀석들은 다시 차를 몰고 떠났다.

인혜가 방으로 들어오자 현만은 자는 척 했다.

인혜는 침대로 와서는 현만의 얼굴에 다시한번 입을 맞추고는 옆에 조용히 누웠다.

"아직도 자나보네. 사랑해../'

눈을 감은 현만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인혜가 가볍게 속삭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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