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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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들

단 한번....

단 한번의 호흡 실패는 오기로 헤엄치고 있던 현만을 무너뜨 리기에 충분했다.

"어..."

"현만아!!"

인혜와 민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고 난뒤,아무것도 들리 지 않고 현만이 허우적 거리기 시작했다.

어디가 위쪽이고 어디가 바다 밑인지 방향도 잃어버린채 허우 적 거리던 현만은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만아...

현... 만아....

꿈인가..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현만의 머릿속에서 아련하게 들리고 있 었다.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인데 기억이 날 듯 말 듯 할뿐이었 다.

"괜찮아...?"

누군가 현만의 몸을 흔들면서 말하는게 느껴졌다.

그가 눈을 떠서 정신을 차려보니 숙소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제 좀 괜찮아?"

침대 바로 옆에서 인혜가 그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응... 괜찮아...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지..?"

현만이 몸을 일으키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냥 우리 바다에 나가지 말고 좀 더 쉴걸 그랬어. 너가 이 렇게 몸이 안좋은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인혜는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미안한 표정으로 현만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녀는 현만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 한영이가 재빨리 뛰어들어서는 그를 구해서 나왔다고 한다.

바위에 올려진 현만은 곧이어 정신을 차렸지만 계속해서 구토 를 하고는 다시금 기절을 해버렸다.

어찔수 없이 인혜와 정호무리는 현만을 튜브위에 싣고는 해변 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인혜도 수영을 하지 못해서 먼저 현만을 튜브에 싣고 해변으 로 왔다가, 다시 한영이가 튜브를 가지고 인혜를 데려왔다.

그리고는 현만을 들쳐업고는 숙소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정말 나뻤어. 현만이 아픈줄도 모르고 그저 놀고만 싶 어서는....훅...."

인혜가 미안했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그런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현만에게 더 큰 자책감을 심어 주었다.

"아니야. 내가 몸 관리를 못해서 그런건데,내가 미안하지."

두 사람은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했지만, 왠지 모르고 분 위기가 불편해지고 있었다.

인혜는 걱정스러우면서도 조금은 실망한 듯한 모습이었다.

애써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현만은 그걸 느밀 수 있었다.

"열이 또 나는 것 같아."

인혜가 현만의 이마에 손을 대어보고는 말했다.

차가운 바다에 빠졌더니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진 모양이었다.

"현만아. 이제 좀 괜찮아?"

숙소 문이 열리고 정호 녀석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들은 무엇인가 가득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바다에 나가기는 그렇고 해서, 먹을거를 좀 사왔어. 안에서 이것들이라도 먹자."

"고마워 정말.. 현만이 또 열이 나는 것 같아. 오늘도 밖에는 나가지 못할 것 같아."

인혜가 거실로 나가서 녀석들이 가져온 음식물들을 보면서 정 말 고마워하면서 말했다.

"뭘 이런걸로 고마워하고 그래.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만 하라고."

인혜는 진심으로 녀석들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 만,현만은 사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녀석들은 분명 그를 구해준게 맞지만 애초에 낮은 곳에서 놀 고 있던 자신들을 방해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놀러와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자 신을 아마 비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현만의 머릿속에서는 녀석들이 조금도 고맙지 않았다.

"그래,인혜야! 네가 현만이 잘 보살펴주고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정호녀석이 의리의 사나이라도 되는 것처럼 멋진척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인혜는 녀석들이 사가지고 온 음식물 따위를 냉장고에 정리하 고는 거실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휴우.......

인혜가 길게 내뱉은 한숨이 현만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번 여행에 실망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아무리 현만을 좋아하는 그녀라도 아직은 어렸다.

꿈꿔왔던 남자친구와의 행복한 여행이 완전 망쳐버린 지금,그 녀는 조금은 화가 나 있는게 분명했다.

인혜의 긴 한숨 소리를 들으면서 미안한 마음을 느끼던 현만 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하하하'

"정말이야? 거짓말이지? 말도 안돼!"

"정말이라니까. 내가 진짜 두 눈으로 똑바로 봤단 말이야."

거실에서 떠드는 소리에 현만이 눈을 떳다.

창 밖을 보니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으니 정호 녀석들과 인혜가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녀석들은 왜 자꾸 여기와서 노는거야.'

짜증이 난 현만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서는 거실로 나가려고 했다.

"자, 이번판은 한영이가 졌으니까 얼른 벗어!’'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현만의 몸이 굳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현만은 문을 열려던 손을 멈추고는 가만히 귀를 갖다 대었다.

쳇, 어쩔 수 없겠는데?1

부스럭 거리면서 누군가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와, 역시.. 정말 몸이 좋잖아..?"

감탄한 듯한 민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혜야, 어때? 한영이 장난 아니지?"

"으응... 정말.. 정말 대단하다."

약간 술에 취한 듯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인혜의 목소리가 들 렸다.

지금 밖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현만은 궁금했지만 지금 타이밍에 문을 열고 나가는 싶지 않 았다.

밖에서는 또다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만이 방안에 서서 두리번 거리다가 창문으로 시선을 향했다.

예전에 하숙집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는 창문을 몰래 열고는 발코니 밖으로 나갔다.

객실과 거실에는 각각 발코니가 있었는데 1미터 정도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건너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거실쪽 발코니를 바라보았다.

거실 유리창에는 커텐이 쳐져 있어서 그쪽으로 몰래 건너가도 거실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현만이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서는 거실 발코니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커텐 사이로 안쪽을 살펴보았다.

'이..이런...'

역시 인혜와 정호,민한, 한영이가 소파에 앉아서는 술을 먹으 면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한영이가 상의를 모두 벗고 있었는데 인혜는 옆에서 조금 부 끄럽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소주와 맥주, 그리고 안주거리가 이리저리 놓여 있었는데 제법 많이 마신 것 같았다.

벌써 소주병 몇 개가 비어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현만이 기억하기에 인혜가 저렇게 술을 먹은적은 없었다.

아마도 여행와서 들뜬 것도 있고, 현만이 아파서 제대로 못놀 아서 속상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호 녀석들이 분명 술을 많이 마시게 했을 것이다.

"오卜, 인혜 정말 술 잘 마시네. 너 완전 술꾼아니야?"

"무슨 소리야. 나 술 잘 못마셔. 너희들이 자꾸 마시게 하니

까 안마실 수가 없잖아."

"하하하. 정말 좋은 마음자세야. 이렇게 같이 먹을 때 빼면 재미가 없지."

"자, 말 나왔으니 말인데 거국적으로 같이 한잔 더 하자!"

인혜 옆에 앉아있던 정호가 소주랑 맥주를 섞어서 인혜에게 주었다.

"너무 많잖아."

말과는 달리 인혜는 웃는 얼굴로 한번에 마셔버렸다.

이미 그녀는 어느정도 자제력을 잃고 있는 것 같았다.

"야, 너네들은 인혜처럼 마시지 마라. 저러다가 기절해버리면 책임 못진다 하하"

"무슨 걱정이야. 우리가 쓰러지면 아마 인혜가 돌봐줄텐데"

민한이와 한영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니네들이 쓰러지면 내가 쟁겨줄게 하하하/'

인혜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웃으면서 떠들었다.

지금 그녀는 완전히 취한 표정으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 었다.

술을 마셔서 그런 것이겠지만 저정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인혜는 현만으로서도 본적이 없었다.

"하아.. 여기 너무 덥다... 술을 마셔서 그런가..

몸이 너무 뜨거워.... 정말.. 나 정말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거 처음이야...

이제 그만 먹어야 될 것 같아...."

인혜가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서 말했다.

"더우면 옷을 좀 벗어도 도I. 나도 아까 더웠는데 이렇게 벗고 나니까 말짱하잖아."

한영이 자신의 벗은 상체를 만지면서 인혜에게 말했다.

'저 자식들이 미쳤나... 누굴보고 벗으라고 하는 소리야."

커튼 사이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현만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자신이 알고 있는 인혜는 전혀 그런 여자가 아니였기 에 별로 걱정물 하지 않았다.

"괜찮아... 아니.. 괜찮아.. 원피스.. 원피스가 제법 얇아서 조 금 있으면 괜찮을거야..."

인혜가 역시 몸을 이리 저리 흔들면서 취한 듯 말했다.

그때 현만은 분명히 보았다.

조금전까지 같이 취한 것 같았던 정호 녀석이 재빨리 민한과 한영이와 눈을 맞추고는 징그럽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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