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훈련은 전투다
* * *
에린델과 느긋하게 점심을 즐겼다.
생선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에린델이었지만 이곳 노른마을은 내륙지방이다 보니 해산물이 비교적 비쌌다.
그래서 무난하게 쇠고기 수프와 빵을 먹었다.
아직 갖춰진 장비도 없고 돈이 많이 필요할 것이기에 아끼는 게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고블린과의 전투 후에 상태 창을 확인하지 않았다.
얼마나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볼까.
[강단백]
[나이 : 25]
[키 : 177 체중 : 67 성기 : 21cm ]
[성별 : 남]
[능력치 : 힘 : C+ 민첩 : B 체력 : D 지능 : A+ 카리스마 : SS ]
[능력 : 히토미 마스터
히토미에 존재하는 태그를 외치면 그것이 현실에 적용되어 나타난다.]
[변경점 : 힘 경험치 +50 민첩 경험치 +30 체력 경험치 +20 카리스마+30
힘의 랭크가 C에서 C+로 상승하였습니다.]
검을 사용한 전투다 보니 아무래도 힘 경험치가 많이 오른 모습이다.
랭크까지 상승했다니 기분이 좋군.
카리스마는 왜 오른지 의문이다.
내 주니어를 노출한 게 매력적으로 어필된 건가? 웃기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나는 이세계에서 어떤 쪽으로 성장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히토미 마스터에 능숙해지는 게 우선이겠지만, 성장 방향은 정하고 싶다.
현실에서는 게임에서 전사나 도적류의 근접 전투 캐릭터를 선호했던 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가 검술만을 갈고 닦기엔 지능 능력치가 높은 게 너무 아까웠다.
'어떻게 지능을 활용하는 게 좋을까."
고민을 해봐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에린델에게 물어본다.
"에린델, 어제는 내가 검을 쓰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난 지능이 높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을까?"
"그럼 마법을 배워보는 건 어때?"
"마법사가 되라고?"
"그건 싫은 거야?"
"싫은 건 아니지만 난 근접전투에 로망이 있거든."
순간 번뜩이는 생각.
마법을 쓰면서 근접 전투까지 한다?
그래 바로 마검사다.
"마검사! 그래 난 마검사가 될 거야!"
신난 나머지 현실에서 즐겨보던 고무인간 만화의 말투처럼 외쳐버렸다.
"마검사? 멋있어 보이지만 상당히 어려울 거야. 마법적 재능을 타고나는 엘프 중에서도 마검사는 드물었거든."
"마법적인 재능이 있다면 검술 훈련만 좀 하면 쉬울 거 같은데, 왜 그런 거지?"
"아무래도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뛰어난 마나 활용이 필요한데, 전투에 집중하면서 마나의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니까."
그래서 본인도 궁술에 가벼운 마나를 싣는 정도로밖에 활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궁술 한쪽만을 훈련해서 강해지는 게 양쪽 모두를 가져가려고 하는 거보다 훨씬 쉬웠다고 하는 에린델.
실제로 경험해보고 하는 말이니 새겨들어야겠지만 그렇게 쉽게 포기할 나 강단백이 아니다.
하기 어려운 일이라면 더욱 불타오르는 법이지.
게다가 내 필살기인 히토미 마스터는 어떤 계산도 마나의 이해도 필요 없었기 때문에 여차하면 태그로 전투를 보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에린델!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줘."
"기초적인 마법 정도는 가르쳐줄 수 있긴 한데."
"있긴 한데?"
"쉽진 않을 거야. 재능이 필요한 부분이거든."
높은 지능이 아까웠던 나는 이렇게 에린델에게 마법을 배우기로 했다.
****
에린델과 마을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맑고 햇살은 따사로워서 산책을 즐기고 싶었지만 배워야 하기에 인적이 드문 공터를 찾았다.
"우선은 마나의 흐름을 느껴야 해. 눈을 감고 주변에 흩어져있는 마나를 느껴봐.
마나는 체내에도 있지만 그걸 끌어내서 활용하는 건 일정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의 마나부터 느끼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에린델.
눈을 감고 주변에 있을 터인 마나를 느끼려고 해본다.
"미약하게라도 어떤 흐름이나 힘이 느껴져야 해. 이게 아예 안되는 사람은 마법을 쓸 수가 없어."
눈을 감고 기운을 느끼려고 집중한다.
눈을 감고 있는데 주변에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뭐지? 이 느낌은 이게 마나? 이리와 나한테로 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고 최대한 그걸 내 손에 모으려고 했다.
일렁이던 아지랑이 같은 것이 내 손으로 모여들었다.
이게 마나인가? 지금이라면 마법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판타지 소설에서 가장 많이 보던 마법을 외쳐본다.
"파이어 볼(Fire Ball)"
순간 손아귀에서 농구공만 한 불덩이가 튀어 나간다.
콰아앙!
주변에 있던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서 화려하게 폭발했다.
"야, 너 뭐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에린델.
"이세계에서 온 모험가인 뎁쇼."
"이게 말이 돼? 마나도 다룰 줄 모른다면서 어떻게 바로 파이어볼을 쓰는 거지? 나도 3년은 걸렸는데."
좌절하는 표정을 짓는 에린델이 귀엽다.
"난 천재니까."
"."
솔직히 나도 바로 마법을 사용 가능할 줄 몰랐다.
아지랑이 같은 것이 모인 뒤에 머릿속에 불타는 화염구의 이미지를 상상했더니 되는 걸 어쩌라고.
아무튼 괜히 능지가 높았던 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여신님에게 감사한다.
그 후 에린델의 질투 어린 시선을 받으며 한시간 정도 마법을 더 연습했다.
뾰로통해져 있던 에린델이 다가와서 여러 가지 설명을 했다.
내가 쓴 파이어볼은 3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이고, 마나에 재능이 있어도 몇 년씩이나 마법을 훈련해야 사용 가능한 마법이라고 한다.
게다가 내가 사용한 파이어볼은 큰 바위를 흔적도 없이 파괴해버릴 정도의 강한 위력.
자신보다 훨씬 강한 파이어볼이었다고 한다.
듣다 보니 실전에 활용해보고 싶어졌다.
내 재능이 말도 안 된다고 날뛰는 에린델을 놀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달래서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
모험가 길드 헤르메스 노른지부에 도착했다.
어제 모아둔 고블린의 마석을 교환하는데 안내원 시롬의 눈빛이 신경 쓰인다.
아무래도 보기드문 엘프인 에린델 때문인듯하다.
"여기 4골드 입니다. 동료가 생기셨네요?"
"네. 어제 퀘스트를 하다가 서로 이해가 맞아서요."
"엘프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신기하네요."
당신의 말도 안 되는 가슴이 더 신기한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경비대에 끌려가긴 싫었다.
확실히 마왕군에게 거의 절멸 당하다시피 한 엘프는 보기 드문 존재인듯하다.
"아 그리고 퀘스트를 하나 수행하셨으니 E등급 배지를 받아가셔도 돼요."
F등급 모험가는 사실 견습같은 느낌이라 퀘스트를 하나만 수행해도 바로 E등급이 된다고 한다.
E등급 뱃지를 두개 건네는 시롬.
뱃지와 골드를 에린델에게 나눠준 뒤 적절한 토벌 퀘스트를 찾는다.
오크무리 퇴치, 오우거 토벌, 아울베어 퇴치등 여러 퀘스트가 보인다.
"에린델, 오크무리, 오우거, 아울베어중에 가장 쉬운 게 뭐지?"
"약하기로는 오크가 가장 약하지만 무리 지어 다니기 때문에 적은 수의 파티로는 쉽지 않아."
조금 고민한 뒤 이어 말하는 에린델
"결국 아울베어가 가장 쉽겠네. 오우거보다 민첩하지만 훨씬 약하거든."
"좋아. 아울베어! 너로 정했어."
주저없이 게시판에 붙어있던 퀘스트 용지를 뜯는다.
아울베어(OWLBEAR).
올빼미의 얼굴을 하고 곰의 몸을 한 흉포한 괴물.
쉽게 볼 수 없는 몬스터로 알고 있는데 이런 작은 마을에 왜 나타난 걸까.
퀘스트 용지를 읽어본다.
[필요 모험가 등급 : E등급 이상
최근 마을 근처에 아울베어가 자주 출몰해서 농작물과 마을 성벽에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사악한 마법사가 아울베어를 자꾸 만들어낸다는 소문도 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울베어를 처치하고 그 증거로 발톱을 가져오시면 5골드를 드리겠습니다.]
이번엔 마석이 아니라 발톱을 가져오라고 하는군.
마법사에 의해 만들어진 생명체라 마석이 떨어지지 않는 건가?
마법을 생각해볼 생각에 두근거리며 퀘스트 용지에 있는 위치로 이동했다.
****
마을과 꽤 거리가 있는 숲까지 걸어왔다.
"약도에 나온 위치는 여기 쯤인데?"
퀘스트 용지에 있는 약도를 보고 찾아온 위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를 보다가 에린델이 입을 열었다.
"엘프는 감각이 좋으니까, 내가 찾아볼게."
에린델이 한동안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갑자기 화살을 쐈다.
슈우욱 팍!
50M정도 떨어진 나무 근처에 화살이 박혔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화살이 박힌다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서서히 거대한 괴물의 모습이 나타났다.
쿠어어엉!
화살에 맞은 게 기분 나쁜 건지 아울베어가 울부짖었다.
"은신이라고? 아울베어가 저런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에린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내가 알기로도 아울베어는 그렇게 고위급 몬스터는 아니다.
현실에서 읽었던 수많은 판타지 소설에서도 아울베어가 은신을 쓰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당황하고 있는 중에 흥분한 아울베어가 달려든다.
놀라고 있을 시간은 없다.
의식을 집중한뒤 머릿속에 화염구의 이미지를 그린다.
"파이어 볼(Fire Ball)"
커다란 불구덩이가 아울베어에 가슴팍에 직격한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발.
이 정도 위력을 버티진 못하겠지?
라고 생각했던 나를 비웃듯이 아울베어는 조금 휘청이더니 멀쩡히 서있었다.
"단백, 저 녀석의 몸을 자세히 봐봐. 저건."
"뭐야? 저 온몸에 두르고있는 철갑은?"
아울베어의 몸에 철갑 같은 것이 둘려 있었다. 무슨 애국가 2절도 아니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