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소녀들은 도시로 향하고(2)
* * *
조금 시끄러웠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다.
갈 길이 멀기에, 식사는 대충 노른에서 준비해온 육포로 때우고 바로 출발했다.
라이오넬로의 여정은 생각보다 좋았다. 핌베르트 왕국은 자연환경이 매우 아름다운 나라였고, 대부분의 땅이 비옥한 편이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꽃과 나무가 많았고, 그런 곳들을 걷다 보면 심신이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마왕군과의 전투가 몇 년 동안 지속되면서 인구도 줄고 관리되지 않는 지역이 늘어난다고 들었다. 이런 아름다운 나라가 황폐해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지.
이동속도 증가마법에다 신체 강화까지 중첩으로 한 덕에 움직이는 속도가 어제보다 빨랐다. 아침 일찍 출발했으니, 오늘 밤늦게까지 걷는다면 수도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속도를 올려 한참을 걷던 중 에린델이 말했다.
"강단백. 나 배고파."
"그래? 자 여기, 육포 먹어."
"어제 저녁부터 육포만 먹었더니 질리는데 다른건 없지?"
육포에 질렸다라. 잠시 고민한 뒤 모두에게 잠시 쉬었다 가자고 했다.
걷던 곳은 들판이었지만, 곧 숲이 시작되는 지역이었다. 뭔가 먹을걸 구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잠깐 기다려봐, 먹을 게 있나 보고 올게."
"다녀와~ 대장님~"
어제 지나왔던 숲보다 울창한 삼림. 올려다보기 목이 아플 정도로 큰 나무들이 많았다. 피톤치드라는 게 정말 나오는 건지 왠지 상쾌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삼림욕을 즐기면서 먹을 걸 찾고 있는데, 사과나무를 발견했다.
주변에는 사과나무가 없는데 한그루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어서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얼른 다가가서 사과를 땄다.
새빨갛게 잘 익은 사과. 상당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 입맛이 도는 기분. 가져다주면 모두들 좋아해 줄 것이다.
인원수대로 네 개만 따서 들어왔던 입구 쪽으로 향했다.
슈욱
"컥."
뒤통수에 단단한 것이 부딪히는 느낌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돌멩이였다.
눈앞에 별이 보이는듯한 착각. 어지러웠다. 신체가 강화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겨를은 없었다. 바로 다음 돌멩이가 날아왔기 때문에 정신없었지만 필사적으로 굴러서 피했다.
'대체 어디서 돌멩이가 날아오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날아온 돌멩이의 각도를 생각하면 위쪽.
'나무 위인가?'
그렇게 시야를 위쪽으로 올리니 아주 높은 나무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보였다.
원숭이였다. 하지만 원숭이라기에는 팔이 너무 길었다. 그렇지만 개코원숭이를 빼닮은듯한 저 얼굴을 다른 생물로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녀석은 화가나 보였고 그 기괴하게 긴 팔로 돌멩이를 던져대기 시작했다.
서둘러 몸을 숨길만 한 두꺼운 나무 뒤로 피했다. 그러자 그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다른 나무로 이동해서 재차 돌멩이를 던졌다.
나무 밑동을 잡고 빙빙 돌면서 돌멩이를 던질 각도를 없애면, 다시 그 녀석이 다른 나무로 이동해서 던지는 것의 반복.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았으나,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늦으면 배고픈 에린델에게 혼날지도 모른다.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고민하면서 땅에 떨어진 걸 확인하니 돌멩이가 아니었다. 마치 수세미를 뭉쳐논 듯한 털 뭉치. 엄청나게 묵직했다.
'털이 이렇게 묵직할 수가 있나?'
역시 동물이 아닌 몬스터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공격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모습을 변형시키는 태그를 쓰면 간단할 것이다. 하지만 변형 태그는 태그력의 소모가 상당하다.
골렘을 상대할 때 태그가 다 떨어져서 고생했던 이후 실험을 통해 태그에 따라 태그력이 다르게 소모된다는 걸 알아냈다.
변형 태그는 웬만하면 자제하는 것이 좋겠지. 그럼 마법으로 공격해야 하는데, 울창한 숲속이라 웬만한 마법은 명중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웬만하지 않은 마법을 쓰면 될 일.
"포커싱 윈드 커터 (Focusing Wind Cutter)"
3 서클 정도의 기본마법인 윈드 커터지만 거기에 추적기능을 더했다. 위력도 더 강화된 건 물론이다.
바람의 칼날이 춤을 추듯 휘어지며 날아가 정확히 대상에게 명중했다.
"꾸에엑"
엄청나게 높은 위치에서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진 몬스터. 죽었는지 확인한 후 사과를 주워들었다.
이번엔 응용을 통해서 본 적 없는 마법을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마법계의 아티스트라고 불려야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사과배달을 시작했다.
****
사과는 맛있었고, 날씨는 좋았고, 우리는 라이오넬에 도착했다.
우리가 여행에 익숙해져서 빨랐던 건지, 사과가 보통 사과가 아니었던 건지 늦은 밤이 아닌 저녁 즈음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빠른 도착이었다. 한두 시간은 달려오긴 했지만.
이게 대도시라고 말하는듯한 크고 웅장한 성문. 중 갑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신분증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런 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도시에 들어가는데 그런 게 필요하다는 얘기는 못들었습니다만."
"최근 국가 전역에 이상한 사건들이 많아져서 통제가 강해졌습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대도시들은 신분증을 발급을 시작했다는 모양이었다. 무려 왕이 직접 내린 명령이라고 한다.
"혹시 이걸로는 증명이 안 될까요?"
헤르메스 길드의 B등급 모험가 배지를 내밀었다.
"이건 헤르메스 길드의 모험가 배지군요. 헤르메스 길드는 신뢰할 수 있습니다. 들어가시죠."
다행히 헤르메스 길드는 생각보다 영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무사히 통과하고 수도에 입성했다.
해가 진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라이오넬 안은 밝았다. 야시장이 한창 열려있었는데, 랜턴이나 마법을 통해 주변을 밝게 밝혀두고 있었다.
"우와~ 밤인데 이렇게 밝다니 대도시는 다르구나! 사람도 엄청 많아."
세키돌이 눈이 휘둥그레지며 감탄했다.
"나도 대도시는 처음인데, 분위기가 아주 다르네."
"비렌데도 의외로 촌사람이었구나."
어릴 때부터 수도원에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하는 비렌데.
"오랜만이네. 여긴 전보다 더 시끌벅적 해진 거 같아."
에린델은 오랜만에 이곳에 온 듯 추억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어떤 냄새에 이끌렸다.
훈제 소시지의 향기였다. 크기도 엄청 크고 육질도 탱탱해 보였다.
"오늘은 먹고 싶은 거 다 먹는 날이다. 맘껏 먹어. 내가 쏜다!"
비렌데를 제외한 모두들 환호했다.
****
신나게 길거리 음식으로 만찬을 즐긴 뒤, 숙소를 구하기 위해 이동했다. 걷다 보니 여관들이 모여있는 골목이 있었고 그쪽으로 걸었다.
그런데 골목 입구에 게시판이 있어서 자연스레 시선이 향했다.
[ 모병 공지
핌베르트 왕국에서 병사를 모집합니다. 최근 마왕군의 기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고, 우리 왕국이 그들을 막지 못한다면, 대륙 전체가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대륙 전체의 평화를 위해, 나라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용맹하게 몸을 바쳐 싸울 당신이 필요합니다. 문의 사항이 있다면 라이오넬 군사 지부에 문의해주세요. ]
모병 광고였다. 마왕군과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정규군의 숫자는 점점 줄고 병력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얼마나 지원할지 의문이다. 인간과의 전쟁도 어려운데, 하물며 그게 마족이라면 나서고 싶지 않을법하다.
평범한 인간이 마족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보통은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테니까.
같이 공지를 읽은 에린델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마왕군에 대한 증오는 진짜였다. 과거를 언급할 때마다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였으니까. 일족을 몰살시킨 상대가 있다면 얼마나 증오스러울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골드도 많이 있으니까, 고급스러운 곳으로 들어가 보자고."
일부러 밝게 말하며 겉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내부도 시설이 좋았고 침대가 무려 세 개나 있는 방도 있다고 한다.
일단 가장 큰방이라는 침대가 세 개 있는 방을 골랐고, 안내해주는 곳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장식과 멋진 테이블들. 노른에서 머물렀던 숙소와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숙박비도 차원이 달랐지만.
"그런데 침대가 세 개네? 한 침대는 두 명이 자야겠는데?"
에린델의 지적.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일단 가장 큰방을 고르려는 생각이었는데.
"나랑 세키돌이 같이 잘게. 비렌데와 강단백이 하나씩 써. 괜찮지 세키돌?"
"응. 좋아. 에린델 언니 안고 자는 거 좋아."
내 곤란한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먼저 제안했다.
"고마워. 침대가 네 개인 여관을 찾아볼걸."
그렇게 각자의 자리가 정해졌고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병사로 지원을 해야 할지. 아니면 스스로 마왕군에 대한 정보를 찾아서 싸워야 할지 고민이 됐다.
어떤 게 더 효율적인지는 사실 정해져 있었다. 왕국군에 들어간다면 현재 취약한 전선이 어딘지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하다. 군에 들어간다면 명령에 복종해야 할 것이고, 재량에 따라 자유롭게 전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혼자 생각해서는 답이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모두에게 의견을 묻기로 했다.
"핌베르트 왕국군에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아무래도 가장 쉽게 마왕군과 싸울 수 있는 길인 것 같아."
"글쎄, 군에 들어간다면 우리가 같이 움직일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하라는 대로 해야 할 거야."
비렌데의 생각도 내가 우려하는 부분과 일치했다.
"하지만 우리 넷이서 단독으로 마왕군과 싸우는 것도 말이 안 돼. 한계가 있을 거야.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에린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아무리 내가 강하다 한들 마나와 태그력의 한계는 있다.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마족들을 만난다면 쉽게 죽고 말 것이다.
"대장님. 그럼 가서 우리 같이 활동할 수 있게 해달라고하면 안돼?"
역시 세키돌은 천재다. 일종의 게릴라, 별동부대로 인정받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필요할 때는 군과 합류하면 될 일.
"여러분 우리 세키돌은 천재에요."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 물론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니 실패할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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