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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하운드-11화 (11/79)

〈 11화 〉 2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5)

* * *

(5)

싸움의 규칙. 당당하라. 그리고 대등하라.

적이 많다고 쫄 필요도 없고, 적이 강하다고 얼 필요도 없다. 적은 내가 동요를 보일수록 강해진다. 적이 동요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싸움을 이길 수 있다.

흉검 가름을 어깨에 짊어진 채 천천히, 느긋하게 집 밖으로 걸어 나왔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조급할 필요는 더더욱 없지. 밤마실 나온 것처럼, 하룻밤 같이 보내고 싶은 상대를 만난 것처럼 당당하라.

난 제법 밤눈이 밝은 편이다. 이 집 주위를 둘러친 적의 기척으로 헤아려보건대, 대략 50명 남짓한 적이 있었다. 흥, 하고 코웃음이 났다.

“이거야 원. 나… 아니, 우리를 너무 얕잡아본 게 아닌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흉검을 바닥에 칼끝이 닿도록 내려놓은 채 손을 까딱거렸다.

할 테면 해 보라는 도발이다. 셋 상대로 야습을 걸어온 놈들이 새삼스럽게 정정당당하게 싸움에 임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발사!”

잠시 침묵. 그리고 그 뒤에 높은 톤의 목소리가 명령을 내렸다.

꺼림칙해하는 듯한, 내키지 않는 듯한. 그러나 명령이기에 따라야 하는 가엾은 중간관리직의 설움과 애환이 찌든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쨌든 저 쪽의 지휘관은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제 전쟁 시작인 게지.

퓨퓨퓨퓨퓨퓨퓻.

열 발? 스무 발? 서른 발? 아무튼, 불덩어리들이 꼬리를 끌며 이쪽으로 쏘아져왔다. 물론 마법사들은 아니었다. 이런 한밤중에 여왕이라고 해도 그만큼의 마법사를 갑자기 소집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뵈는 게 없는 여왕이니 이 숲을 깡그리 태워도 상관없다 이거구만.”

아닌 밤중에 불의 비처럼 쓸어 닥치는 불화살이 날아오는 모습은 장관이었지만, 별로 겁낼 것은 없었다. 이쪽에는…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아저씨가 있었으니까.

팅, 팅, 팅, 팅, 팅, 팅…

그것을 응사(??)라고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실례일지도 모르겠군.

서른 발쯤 되는 화살, 불화살이어서 잘 보이는 것이라고 해도 한밤중에 그 불화살들을 단 한 발도 빗맞추지 않고 모조리 활로 쏘아 떨굴 수 있는 궁사. 그가 바로 아질이었다. 무시무시한 정확도를 갖춘 속사야말로 아질의 주특기이다. 한 시위에 여섯 발의 화살을 메겨 다섯 번. 한 호흡 만에 화살통 하나를 다 비울 수 있는 그런 궁사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하이엔. 조심하십시오.”

“너나 조심해. 알겠냐. 화살 말곤 아무것도 맞추지 마. 이제 아빠가 될 몸이잖아? 그 손에 인간 피는 묻히지 말라고.”

끄덕, 올려다보는 나를 향해 무겁게 아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녀석의 꿈에 조금 농락당하는 동안 이미 멀리에서부터 다가오는 침입자의 존재를 감지한 아질은 화살을 준비해놓고 지붕 위에서 요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아질이 지키는 한 50명 정도로는 이 집에 발을 들이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가 몇 번 손을 움직이기만 해도 잠에서 일어날 필요도 없이 정리가 끝난 채 내일 아침 눈구멍에 화살이 박힌 시체 50명분과 마주했을 테지만…

이제 곧 아기를 안아야 할 손을 더럽히게 두겠냐고. 아니, 정확히는…

간만에 내 검으로 날뛸 수 있는 기회를 뺏길 것 같냐.

“어이, 손님 여러분. 봤지? 화살 500발쯤 쏴대봤자 너희는 저 집의 닭 한 마리도 못 잡는다. 손 아프게 헛활질 말고 창칼 들었고 알아들었으면 썩 들어오셔라.”

돌아가, 가 아니다. 들어와다.

히죽 웃으면서 양손으로 가름의 자루를 움켜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상대가 순순히 들어오게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말했잖아? 상대를 동요하게 만들라고. 땅을 박차고, 자세를 낮추어 돌진해 들어갔다.

“으아아아…!!”

뭐야, 이 자식 전혀 단련도 안 된 상판대기 하고 있잖아?

가장 먼저 내 앞에 내몰린 것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병사였다.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고, 손에 든 활이면 내가 여기까지 오지 못하게 할 거라고 안심했을 게 틀림없다.

아, 그건가. 고향에 병든 어머니나 여동생이 있거나 돌아가면 혼례를 올릴 약혼녀가 있다거나. 뭐 그런 눈물 짜는 사연이라도 있으신 얼굴인가? 난 못 죽어,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구만!

그게 뭐 중요한가?

가로로 눕혀 휘두른 가름의 칼날에 억울한 그대로, 징집병의 머리가 베이는 게 아니라 묵직한 질량에 우그러지며, 뼈와 피부가 뜯겨져 날아갔다.

“어?”

공중에서 징집병의 표정이 변했다. 왜 자신의 몸뚱이가 저기 있나, 하고 한순간 의아하게 여긴 듯한 표정. 하지만 이내 눈깔이 뒤집히고 잘려나간 부위에서 성대하게 피를 뿜었다.

간헐천처럼 뿜어지는 피가 사방으로 튀자 더 그럴듯한 모습이 되어서는, 다음 상대를 찾았다. 이번엔 이 멍청이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음을 맞지는 않았다. 얼씨구, 창을 든 건 좋았지만 방패를 떨어뜨리면 죽도 밥도 안 되지.

슈앗, 배를 노린 어설픈 창질은 몸을 조금 옆으로 비껴뜨려 피하고는 겨드랑이 사이로 창대를 꽉 붙들어 잡았다. 그 사이에 팔이 아주 잠깐 묶였지만 대신 불쌍한 녀석의 고간을 아래에서부터 올려차줬다.

“끄, 끄아, 악…!”

뿌직뿌직. 녀석의 얼굴이 극한의 고통으로 일그러지면서 발등에 뭔가 뭉개지고 터지는 감촉이 싱싱하게 들러붙었다. 아, 미안한 짓을 했구만. 괜찮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 줄게!

빠각…. 가름의 폼멜로 가엾은 놈의 이마를 내리찍어 두개골째로 뭉개버리자, 놈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이미 죽었지만, 주위의 녀석들을 좀 더 동요시킬 필요가 있었다. 내리찍었던 손잡이를 다시 들어 올리고 이번에는 그대로 시체를 정수리에서부터 칼날을 찍어 내쳤다.

드드드득… 뼈가 긁히는 느낌이 칼날을 타고 걸리는 것을 아랑곳하지 말고 밀어붙여 그대로, 두토막내자 주변의 다른 병사들에게 동요가 옮겨갔다. 뒷걸음질 치고, 창끝이 바들거렸다.

“동요하지 마라! 전열을 이탈하지 마라! 방패수를 믿어라!”

응, 너희는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몰랐구나?

창병들이 뒤로 물러서고, 대신 방패수들이 앞으로 나서서 방진을 치자 오히려 몸이 한층 더 불끈 달아올랐다. 입가에 짭짤하게 흘러내리는 핏물을 혀를 내밀어 핥으면서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핫! 일부러 목청을 돋워 한층 날카롭게 울부짖은 웃음소리가 밤하늘과 숲에 메아리쳤다. 웃음을 일그러뜨린 얼굴 그대로, 방패의 면면을 흉검의 칼끝으로 긁어 후려쳤다.

“말도 안 돼…!”

방패의 표면들이 칼날이 휩쓸고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쩌적, 갈라져서 피와 함께 튀어오르는 광경을 보곤 누군가가 외쳤다. 말도 안 된다고? 말이 됩니다.

이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서는 용사의 동료라는 이름값을 내세울 수 없다고! 불운하게 제 바로 앞의 방패병의 배에 흉검의 칼끝을 찍어 꼬챙이처럼 꿰어버렸다.

튀어나올 듯이 불거진 눈인 그대로, 높이 칼날을 들었다가 던져버린 그대로, 갈라진 배에서 내장이 덜렁거리며 비어져 나온 그대로, 방패병의 몸뚱이가 하늘을 날아 어딘가에 떨어졌다.

“고작 이 정도로 오줌을 지릴 거면 여긴 뭐하러 온 거냐!”

누군가가 패닉에 빠진 얼굴인 채 손에 든 부실한 소검을 앞세워 달려들어왔다. 흉검을 휘두르기엔 거리가 부족했기에 한 손으로는 흉검을 움켜쥐고 대신 빈 손을 뻗어 그 패닉에 빠진 얼굴을 붙잡았다. 고문용 쇠집게처럼 우악스럽게 파고드는 악력에, 패닉이 아닌 고통으로 머리가 일그러졌다.

빠직. 주먹을 쥐었다.

손을 펴자, 후두둑… 어느 부위의 것인지 모를 뼛조각과 살조각, 그리고 찌부러진 안구가 흩어졌다.

“아, 아… 이건 말도 안 돼….”

“이 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쇼맨쉽의 힘이라고 해야겠지.

페이스 배분을 잠시 미뤄두고 조금 날뛰어주노라면 ‘저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다’는 공포를 갖게 된다. 몇 놈쯤 ‘그런 식으로’ 죽여놓으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수순이지.

하지만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

수는 저쪽이 훨씬 많으니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조금 더 강한 모양이다. 징집병치고는 꽤 기특한 각오이지 않나.

사실 각오든 끌려나온 것이든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으랴아아아!”

쐐기를 박아줄 생각으로, 방패수들이 물러선 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직 멀쩡한 방패를 갖고 있는 방패병들의 얼굴이 겁에 질리며 그냥 그 쪽으로 달려들었을 뿐인데도 저절로 전열이 무너졌다. 뭐, 그 정도면 굳이 죽음의 본보기를 보일 필요는 없겠지. 대신, 그들이 세운 방패를 딛고, 도약했다.

“무…!”

아, 저 녀석이 지휘관인가.

이런 습격조에 어울리지 않게 전신에 판금 갑옷을 걸치고 말에 올라탄 바보가 있었다.

야습을 할 때에는 가급적 소리가 나지 않는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는 기본 상식도 모르는 멍청이란 말인가. 그런 멍청이가 지휘하는 부대는…

이렇게 된다!

땅에 착지하는 기세 그대로, 아무렇게나 허공에 창질하는 불운한 병사에게로 달려들어 흉검을 내리베었다.

어? 하는 얼굴. 이번엔 방금 전처럼 자비롭게 단박에 죽여주지 않았다. 대신, 팔만을 베었다. 창을 쥔 팔이 팔꿈치에서부터 그대로 후려쳐져서 베어져, 땅에 툭 떨어지고, 베인 부위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는 얼굴. 그 표정이 절망과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걸 보면…

아드레날린이 들끓는 것 같았다.

“내, 내, 내팔 내파…아아알! 끄아아악!”

팔을 잃은 병사의 울부짖음이 찢어지게 울려퍼졌다.

앗차. 조금 실수했나. 이런 야만적인 날것 그대로의 절규, 사라스바티에게 듣게 하면 별로 좋지 않을 텐데. 뭐, 대마법사이니 이 상황에서 방음 주문 정도는 걸었을 거라고 기대했다.

“퇴, 퇴…”

끅, 하고 그 말을 내뱉는 데는 지휘관으로서 상당한 굴욕과 저항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내뱉어야만 할 테지. 이미 이 야습은 실패했다.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겁쟁이 지휘관이 될 것이냐, 부하를 전부 다 죽이는 무능한 지휘관이 될 것이냐. 선택은 자유다.

“퇴각… 하라! 모두 숲을 빠져나가 퇴각하라!”

마치 그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방패며 검이며 창이며 활이며, 심지어 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겠다고 갑옷과 헬멧까지 모조리 버리며 도망친다.

물론 살려보내줄 생각 같은 건 없다. 이 숲에 들어온 놈들 전부 하나하나 성실하게 맛보려면 아침까지 술래잡기를 지겹게 해야 할 것 같은데…

“헤에….”

그리고 상대 지휘관은 의외의, 그리고 무모한 선택을 했다.

마상창을 쥔 채, 다른 손에는 방패를 든 그대로… 이쪽으로 말을 달리는 선택이다.

“부하들을 위해 나를 혼자 상대하겠다… 이거 참, 눈물 짜게 하네.”

입가에 히죽 웃음을 띤 그대로, 흉검을 앞으로 세워 닥쳐오는 말발굽을 노려보았다.

이것도 메인 디시라면 즐겨줘야겠지. 아주 조금 즐거워졌다. 마치 그 녀석을 만나기 전 검투사 시절이 생각났다. 호기롭게 전투 함성(War Cry)을 외치면서 칼날을 겨눴다.

자, 와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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