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32화 (32/79)

〈 32화 〉 2 / 인면수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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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잉스펀 지구 3번가 마담 카틀레야의 저택은 톡 까놓고 말해 고급 주택을 빙자한 매음굴이 되어 있었다.

오늘 밤, 이 앞을 지나는 이들 중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이 저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감 정도는 느낄지도 모르겠다.

쉬이 보기 어려운 각양각색의 마차가 부지런히 손님을 실어나르고, 그 손님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덮는 가면을 쓴 채 마차에서 내렸으니까.

하나같이, 마치 가장무도회에 나서는 초청객 같은 풍모였다.

투실투실한 살집을 가진 키가 작은 남자 하나가 내렸다. 얼굴은 물론 머리를 완전히 덮는 가면, 아니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는 아샨티에서 수입해온 고급 비단으로 지은 치렁치렁한 옷으로 전신을 철저하게 가렸다. 어지간히도 제 맨살을 드러내기 싫었나보다.

장갑을 낀 두툼한 손가락으로 양옆에 낀 여자 둘의 살결을 주물럭거리면서 천천히 뒤뚱뒤뚱 걸음을 옮기는 그 뒤로, 목과 손발목에 족쇄가 매인 이들이 처지는 걸음을 옮겼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지만 하나같이 귀가 길게 자라나 끄트머리가 뾰족한 이들뿐이었다. 그들은 엘프였다. 아마 고향인 바람숲을 나와 각국에 퍼져 살고 있던 이들 중 불운하게 납치당한 듯한.

“…일단 제대로 찾아온 것 같긴 하군.”

오우거 가면을 쓴 채로 일단 담벼락에 붙어 동태를 살폈다.

솔직히 이 가면, 별로 믿음직스럽지는 않다. 좀 헐렁헐렁한 것 같기도 하고.

“나르콜렙시, 이거 정말로 안 벗겨지는 거겠지?”

“당연하지. 지금 검성… 아니지, 이엔 님은 멋들어진 정장을 입은 오우거처럼 보일 거야. 그런 주문을 새겨놓은 가면이란 말씀.”

…호칭에는 좀 더 유의해줬으면 좋겠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나르콜렙시의 입에서 그 호칭이 나오면 모든 일이 허탕이라고.

남들에게 오우거처럼 보이는 것은 뭐 둘째 문제라고 쳐도.

“뭐 좋아. 그럼 들어가자고. 너희 둘, 입 잘못 놀리거나 하지 마. 그냥 아예 입을 열지 말라고.”

입을 꾹 닫고 있는 레오레야 그렇다 치고 나르콜렙시는 어떻게 입을 놀려서 일을 망칠지 걱정스러웠으니까.

“그럼 들어간다.”

“자, 잠깐만요, 잠깐만… 마음의 준비가….”

“그 말 한 지 10분째다. 그놈의 마음의 준비는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끝나는 거냐?”

레오레가 최후의 저항인 것처럼 로브 자락을 꽉 붙잡고 입술을 깨무는 것을 나르콜렙시와 함께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처음에는 잠자코 ‘마음의 준비’를 마치길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이대로 그냥 둬서는 일이 끝날 때까지 그러고 있을 게 뻔했기에 강행했다.

“꺄흐우으앗?!”

레오레의 로브를 강제로 벗기자, 절박한 비명을 지르려고 한다. 나르콜렙시가 뒤에서 입을 텁 막아 저지하고는 점시 그대로 비명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결국, 울먹이는 그 눈에 체념이 충분히 차오르길 기다린 뒤 나르콜렙시에게 손짓해 풀게 하곤 입구로 다가갔다.

“어서 오십쇼. 초대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말끔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경비원이 정중하지만 단호한 태도로 응대해왔다. 역시 양옆에 여자를 둘 끼고 있는 데다 가면까지 쓰고 있으니 의심할 여지 없이 초청받은 손님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일단 어중이떠중이로 보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합격이다.

E에게서 받았던 초대장을 내밀자, 그 초대장을 받아 확인한 뒤 도장을 꺼내 아래쪽의 빈칸에 누르곤 명부에 뭐라고 이름을 적었다. 아마 이 초대장의 ‘원래’ 주인의 이름인 모양인데…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길.”

이걸로 끝인가? 생각 외로 절차는 굉장히 싱거웠다.

조금 긴가민가하면서 들어가자마자, 다시 한번 제대로 찾아왔다는 확신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안은 매음굴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한, 만마궁(???)이었다.

보자마자 눈이 찌푸려지면서도, 그 찌푸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예를 들자면…

말쑥하게 콧수염을 기르고 몸에 검소한 정장을 갖춘 남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손에는 사나운 사냥개라도 묶어두려는지 사슬을 쥐고 있었으나, 그 사슬에 매인 것은 사냥개가 아니었다. 소녀였다.

아슬아슬하게 유방과 국부만을 가린 의상이 혹여라도 벗겨져버리는 건 아닐지 노심초사하고, 사슬에 매인 목줄이 이끄는 대로 주저주저 따라가면서 오늘 이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두려워하는 소녀의 모습에 레오레는 입술을 깨물고 분기를 겨우 억누르는 모양이었다.

“하나하나 반응하지 마.”

하나하나 반응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방이 온통 그런 풍경들 투성이였으니까.

주인이 여자인 경우에는 건장한 남자나, 예쁘장한 소년이 비슷한 꼴로 따르고 있었고, 그런 이들 중 일부는 한켠에 마련된 방에서 ‘여흥’을 즐기기도 했다. 나르콜렙시는 히죽, 입가에 웃음을 띤 채로 걸음을 옮기며 서큐버스의 본성 그대로, 이 상황을 만끽하는 모양이었다.

“하여튼, 인간들도 우리 마라만큼이나 응큼한 구석이 있다니까.”

지나가는 급사에게서 포도주 한 잔을 받아든 나르콜렙시가 주위의 퇴폐적인 풍경을 안주삼아 그 술을 입에 머금은 채 즐기면서 술기운 탓은 아닐 듯하게 볼을 상기시켰다.

뭣보다, 서큐버스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여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 모처럼 나르콜렙시가 각별하게 해방감을 만끽하는 원인이기도 한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당당한 거 아니냐, 너.”

“걱정 말라구. 여기서 이 모습 그대로 만약 이엔 님이랑… 요런 거 조런 거 해도, 아무도 의심 안 할걸?”

눈을 사납게 치뜨자 입가를 살짝 끌어올리고 혀를 샥 내밀었다가 감춰서 얼버무린다.

“이 정도 도발에도 그렇게 반응해서야 주위의 이목을 끌기 딱 좋지. 조금 침착하지 그래? 뭐, 침착하라고 했다고….”

놀리듯한 얼굴이었던 나르콜렙시가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리곤, 뜨악한 얼굴을 했다.

“…얘처럼 완전 얼어붙으란 소리는 아니고.”

“그 점만은 동감이다. 어이, 유스티카.”

레오레에게, 지금의 광경은 그녀의 머리가 받아들일 한도를 넘어선 모양이었다. 민구스러운 복장을 한 ‘여기사’는 뻣뻣한 걸음걸이로 겨우겨우 내 등을 따라붙으며 차마 못 보겠다는 듯 눈을 꽉 감기도 하고, 학학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기도 하는 등 영 불안정한 기색이다.

“…오래 머무를 수도 없겠는데, 이거.”

슬슬 위태롭다 못해 걱정이 될 정도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조금 안정을 찾을 만한 장소에서 쉬게 해야겠다 싶어서, 조금 으슥한 곳으로 걸음을 향했다.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 발코니가 있을 만한…

“아앗, 아… 하아, 아앙, 주인… 니임. 학, 아앙, 아…! 제바알, 용, 서어…”

…잘못 걸렸구만. 한창… ‘즐거운 시간’을 즐기는 남녀의 모습이 적나라했다.

남자가 허리를 게걸지게 흔들어대는 것과 벽에 손을 짚은 채 욕정을 받아내는 여자의 모습. 레오레는 이제 그야말로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인 것처럼 보였다.

“…젠장, 어딜 가야….”

“이쪽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옆쪽이었다. 순간 몸이 흠칫 하고 떨리며 반응했다.

나도, 나르콜렙시도, 레오레도… 그 누구도 그 목소리가 다가올 때까지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목소리,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르콜렙시도 흠칫하며 반응하는 게 ‘누구’인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로브를 입고, 지팡이를 짚은 채 후드를 깊게 눌러쓴 그는 한구석의 방으로 발을 들여 들어갔다. 조금 방 앞에서 기다리다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따라 들어갔다.

“…어째 다들 아는 얼굴이구만?”

로브의 인물은 혼자가 아니라 일행을 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행은 그의 노예는 아닐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그런 것을 병적으로 혐오하는 녀석이었으니까.

우연히도, 그 동행인들 또한 낯이 익었다.

한쪽 허리에 찬 두 자루 칼에 손을 얹고, 등에는 긴 칼을 멘 남자. 늑대원숭이.

그리고 그 옆의 여자, 나에게 초대장을 건넸던 수도녀인 E.

“오랜만이다. 하이엔.”

창가를 바라보며 등을 돌리고 있던 로브의 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 여전히 후드를 내려쓴 채였지만 얼굴을 들자,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르콜렙시는 그럼 그렇지, 하고 옅게 뇌까리면서 조금 거리를 두었다. 아마 이 세상에서 그녀가 가장 거북해하는 인물은 다름아닌 이 남자일 것이다. 앳된 소년같은 용모, 그러나 심연처럼 깊은 짙은 남색의 눈동자가 너울거렸다.

“마왕 아가레스를 토벌한 이래인가. 벌써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르겠군.”

“…네가 이런 데를 다 오고 말야. 하나도 안 변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가 없겠어.”

“나도 마찬가지로. 내가 설마 이런 곳에 오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여신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가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짓궂은 시험을 내려주시곤 하시지.”

로브의 남자의 입가에 쓴웃음이 어렸다.

나르콜렙시는 뚱한 얼굴인 채로 팔짱을 끼고는 잔뜩 경계하면서 로브의 남자, 늑대원숭이, 그리고 E를 유심히 노려보면서 손가락으로 팔을 톡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레오레는 조금 전 보았던 일의 충격에서부터 겨우 헤어나와서는 숨을 깊게 내쉬다가, 내 옆에 다가와서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몹시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소개하마. 이 녀석은 마왕을 퇴치한 용사 파티의 일원인….”

휴우, 하고 어쩐지 한숨이 나왔다.

이런 식의 소개를 별로 좋아하는 녀석이 아니라, 그도 겸연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물론 나도 이런 식의 소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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