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 / 하이에나와 늑대의 시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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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일은 터져있었다.
심상치 않은 냄새를 쫓아 길을 더듬어가는 바유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일그러지고 있다 싶었는데, 자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어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젠장, 다시 맡고 싶은 냄새는 별로 아니었다.
익숙한 냄새다. 익숙한 냄새이니만큼, 그 이후로 다시 맡는 일은 없길 바랐던, 그런 냄새.
“…이게 대체 무슨 냄새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맹독을 불에 태운 듯한 그런 냄새였다.
조금 눈물을 일으킬 정도로 매캐하면서도, 아주 살짝 단맛이 녹아있는 냄새. 레오레에게는 아주 생소한 냄새였던 듯 눈을 조금 크게 떴다가 황급히 코를 막았다.
대답하지 않고, 문고리를 쥐었다.
제 손이 살짝 떨고 있는 것은 의외라면 의외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적어도 그러려고 했다.
조금 조바심내면서 문을 열였다.
펼쳐지는 광경에 레오레가 자기도 모르게 옆에서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 재빠르게 바유의 눈을 가렸다.
“욱…!”
푸른색. 그리고 피바다.
사방에 청보랏빛이 진득하게 튀어있는 객실의 광경이 눈이 비쳤다.
가쁜 숨소리도 함께 들려와, 우려가 현실이 되었음을 겨우 직감했다.
농밀하게 흘러넘치는 마족의 피 냄새.
정신이 어질해질 정도의 약한 독을 품은 공기가, 따끔따끔하게 피부에 스며들었다.
“…나르콜렙시!”
평소 으르릉대는 사이였지만, 레오레의 목소리에는 이 방의 사방에 튀긴 ‘피’만큼이나 당혹이 넘쳐흘렀다.
깔끔하게 정리되었던 객실은 청보랏빛 도료로 새롭게 칠해졌다.
그 색이 지금도 나르콜렙시의 찢겨나간 배에서 한없이 넘쳐흘렀고.
파리한 안색의 몽마는 벽에 몸을 기댄 채 후우, 후우… 가쁘게 숨을 이어갔다.
“검, 성 군… 하아, 하아… 그리고… 레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르콜렙시는 겨우겨우 입가를 바들거렸다. 웃어 보이려는 것처럼.
“미안, 검성 군… 나, 여왕…을 지키지 못, 했어…. 빼앗겼어, 그 성검…”
“말하지 마, 네가 지키려고 나설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여튼, 멍청한 몽마 같으니.”
“…네가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 더라… 에헤헷.”
웃음소리의 끄트머리에 힘겹게 토해내는 기침에, 푸른 핏빛이 서리는 것을 보았다.
턱으로 흘러내리는 핏덩어리가, 지나치게 하얗게 질린 피부를 미끄러졌다.
젠장.
지금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높이면 분노로 타들어 가는 심지가 될 것 같아서, 일부러 가능한 목소리를 낮추면서 나르콜렙시에게 가까이 다가붙었다.
예리한 흉기로 길게 찢긴 상처. 마족 특유의 짙은 청색 피가 넘쳐나는 가운데 내장이 쏟아질 듯이 맥동치고 있었다. 상처의 겉면은 베인 것뿐만 아니라 새까맣게 타서, 수복을 더디게 했다.
나르콜렙시는 몽마족 가운데에서도 지위가 높은 고위 마족이다.
이 녀석을 이렇게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자가, 대체 누구란 말이지?
아니,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건… 내가 이 녀석에게 여왕의 꿈을 살펴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중상을 입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려 억지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을 필요가 없었지.
멍청한… 녀석.
“나르콜렙시, 대체 이걸 어떻게 하면… 아, 아….”
울음을 터뜨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레오레가 치유주문을 써야 할지 고민했다가, 어차피 마족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둬들였다. 대신 한편에 벗어둔 로브를 가져왔다… 그마저도 사방에 튄 피 탓에 번들거리긴 매한가지였다.
“검성 군, 레오… 난… 괜찮, 아. 이 정도는… 마라니까, 조금 쉬면… 나을 거야.”
“그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잖습니까. 아무리 마라라고, 해도… 당신, 너무 피가….”
상처를 로브로 동여매자, 나르콜렙시가 괴로운 듯 비명을 얕게 지르며 몸을 꿈틀거렸다.
파리했던 안색이 한층 더 파리해졌고, 로브는 더욱 더 푸른 피로 축축해졌다.
숨소리에 꺼질 듯이 겨우겨우 말하는 주제에 허세 부리지 마라.
물론 마족의 생명력은 인간에 비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질기고, 그녀의 말처럼 약간의 시간이 있으면 저 상처는 흔적도 없이 아물 것이다. 하지만 그게 거저 낫지도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알았다. 쉬고 있어. 유스티카, 이 녀석을 부탁한다.”
“잠깐, 잠깐… 검성 군, 해야 할 말이… 있어.”
바들거리는 손이 뻗어온다.
피에 젖은 손끝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 손을 붙잡고 고개를 끄덕이니 안심한 듯 나르콜렙시의 입가에 웃음이 어렸다. 바들거리며 가누고 있던 힘도 풀리면서, 분홍색 눈동자가 졸리운 듯 깜빡였다.
“여왕의… 꿈, 에서… 본, 이름.”
“듣고 있다. 짧게 해.”
녀석의 입술이 움직였다. 혹시라도 내가 못 듣고 놓치지 않을까,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있는 힘을 짜내어 한 음절 한 음절 말하는 것이 안쓰러울 정도다.
피에 젖은 입술로 자아낸 이름 하나. 귀에 또렷하게 못박혔다.
“크로…니클.”
짐작하고 있었다.
짐작하고 있었는데, 예상하였는데. 이가 강하게 맞물렸다. 그리고 바스라질 것처럼 갈렸다.
“크로니클, 크로니클… 아이온 크로니클. 그 이름 들어본 적이…”
말을 이어가려던 레오레가 숨을 삼키고, 침통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두 단어가 맞물려 하나가 된 순간 나와 그녀는 같은 사건을 떠올리고 있었다.
“…네에, 있었죠. 10년 정도 전의 일이었나요. 율령교회의 학술 기관, 케루빔에서 수학 중이던 신학생이… 다른 학생들을 모아 악마 소환의 제물로 바치려 했다가 실패하고 붙잡힌 사건. 100명의 희생자를 내고, 이단 혐의로 확정되어 처형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하지만 레오레는 도통 불가해한 모양이었다.
왜 그 이름이 다시 여기에서 거론되는지. 이미 10년 전에 죽었어야 할 그 이름의 주인, 이후에 ‘아이온’이라는 이름이 금기시되게 만든 이름이 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는지.
“뭔가 알고 계신 겁니까? 하이엔 님….”
“…유스티카, 여기는 맡긴다.”
레오레의 질문은 일단 묵살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 일화에는 레오레가 모르는 후일담이 존재했다. 레오레뿐이랴, 아마 자신을 포함한 극소수의 인간밖에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 뒤에 어떻게… 세상에 알려진 ‘크로니클 사건’이 잊혔는지.
“…하이, 엔….”
돌리는 등에 스며들어오는 갸냘픈 목소리. 머릿속의 심지가 끓어올랐다.
어째서인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아니, 넌 그 녀석이 아니야.
입술을 꽉 깨물었다. 혀끝에 식은 피맛이 번졌다.
녀석은 죽었고, 나도 이미 죽었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분기는 뭐냔 말이다.
“뒈지지 말고, 괜히 허튼 짓 할 생각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곧 돌아온다.”
입안에 차오른 피맛을 씹어뱉듯이 말하고는 방을 나섰다.
젠장. 분기는 빠르게 가라앉았다. 가라앉았으되, 결코 무뎌진 것은 아니다.
다만, 머릿속에서 생각이 들끓었다.
인간과 마족의 혼을 합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자.
그리고 그 지식을 실행할 수단 또한 가진 자.
묵직하게 어깨와 등을 짓누르는 흉검의 무게를 되새기면서, 등 뒤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끌고 연회장으로 향하는 복도를 나아갔다.
있었다.
그것은 의혹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긴 검을 멘 검사가 등을 돌리고 복도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허리춤에는 그보다 짧은 칼이 한 자루, 또 그 칼보다 짧은 칼이 또 한 자루.
총 세 자루의 검을 가진 검사는 내 기척을 읽고도 움직임이 없다가, 뒤돌아섰다.
이 이상은 이미 의심의 여지라곤 없다. 결국 가장 싫은 결말이 지척까지 다가왔음을 인정해야 했다.
“…귀공. 참 묘한 국면에서 만나게 되는군.”
“용병, ‘늑대원숭이’.”
어깨 너머로 튀어나온 칼자루를 붙잡고, 그는 길게 펼쳐진 칼날을 소리도 없이 뽑아내었다.
푸르스름하게 벼린 칼날은 초승달처럼 예기를 품었고, 마치 사냥을 앞둔 곰처럼 웅크린 채 다리를 넓게 벌렸다. 저게 녀석의 전투 자세인가.
문답은 불용. 의사만이 다만 확실하게 전해져 왔다.
이 너머로는 결코 보내지 않겠노라, 그런 의사가.
하지만 나도 그렇다면 돌아간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 그저 원점으로 돌아왔다.
저 자식과도 승부를 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지.
조금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제야 가라앉혔던 분기가 되살아 이글거리며 피를 따라 돌았다.
“…좋아, 오히려 잘됐지. 바라던 바다. 이 빌어먹을 자식.”
일부러 찾아갈 필요가 줄었다고.
한마디 내뱉고, 이쪽도 등에 짊어진 흉검을 꺼내어 바닥에 늘어뜨렸다.
둔탁하고 묵직한, 그리고 흉흉한 날의 옆면에 샹들리에의 마법 조명의 빛이 일렁였다. 칼날은 그 빛을 남김없이 살라 먹겠다는 듯이 검었다.
발이 먼저 움직이고,
발이 마주 움직였다.
누가 먼저였을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두 갈래의 칼날이 얽히고, 뒤엉킨다.
위에서 아래로, 파워와 속도를 담아 휘둘러치는 칼의 낙뢰.
아래에서 위로, 절제와 기예를 품고 솟아오르는 검의 질풍.
하이에나와 늑대의 시간이 맞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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