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73화 (73/79)

〈 73화 〉 3 / 개의 인사는 싸움이다 (5)

* * *

(5)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영주성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스파타스의 뒷골목, 일전에 방문했던 매음굴을 찾았다.

매음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디아나라고 했던가. 한번 일을 치렀던 창부가 간단하게 아는 체를 했다. 이쪽도 말로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대략적인 이야기는 후원자님에게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후원자라는 건 역시 그 쥴리오인가 하는 뺀질이를 말하는 것일 테고.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싸움에 나서는데 이렇게 더러운 기분으로 나서는 건 별로 좋지가 않은데. 뭣보다 한번 같이 잤던 여자가 저기압인 걸 보고 있는 것도 썩 유쾌하진 않다고.

“그건 그렇고, 왜 그렇게 죽상이야?”

“네? 아뇨, 염려할만한 일도 없었거니와… 염려하실 입장도 아니신 게?”

“매정한 여자구만.”

칼처럼 자르기는.

여자, 디아나는 그저 예의상의 웃음을 보이고는 매음굴을 조금 돌아가 조금 더 으슥한 골목길로 앞서갔다. 그렇잖아도 칼밥 먹는 용병이나 검투사들이 횡행하는 도시인 스파타스의 뒷골목은 빈말로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고, 이 시기에는 더욱 그런데, 디아나가 앞서가는 골목길은 신기하리만치 조용했다.

물론 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디아나 또한 지하 투기장의 관계자이니 투기장에 방문하는 길에 모종의 조처를 해두었다고 하면 간단한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 걷다 보니, 떡대 둘이 지키고 있는 허름한 문 앞에 다다랐다.

두 떡대 중 한 명이 이쪽을 기분나쁘게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남자새끼가 그런 눈으로 보면 시비트는 거나 다름없는데.

“그쪽이 쥴리오 씨가 초대했다는 선수구만?”

“그 뺀질이 초대를 받은 적은 없는데. 이쪽 아가씨면 또 몰라도.”

뺀질이라는 말을 들은 떡대 둘이 큭큭거리고 웃었다. 별로 충성심이 깊어 보이는 타입은 아니다.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에 기름을 바른 듯이 구릿빛 피부가 번들거리고, 가슴에는 보기 흉할 정도의 털을 기른 떡대는 짚고 있는 워해머를 만지작거리면서 고갯짓을 했다. 별로 깊게 사귀고 싶은 타입은 또 아니다.

“들어가 보슈. 댁의 경기 시작은 15분 후일 테니까 들어가서 준비하면 바로 맞을 거요.”

떡대 둘이 비켜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은 이미 왁자하게 모여든 취객들과 술냄새로 가득차 있었다. 술에 거나하게 꼴아선 인사불성인 채 내지르는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 건 뭐, 마법사가 마법이라도 부려놓은 모양이지.

“젠장, 또 졌잖아! 뭐야, 저년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서!”

“이건 사기잖아, 내 돈 내놔, 씨발, 이 개새끼들아, 내 돈 내놓으라고, 늬들 다 짰지? 내가 누군지 알고 개수작이야!”

벌어진 건 술판만이 아니었다. 도박판도 이미 한창 무르익어있었던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손이 앞으로 나갔다. 디아나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술병을 잡아챘다. 디아나는 잠깐 눈을 크게 뜬 채 조금 멍하게 있다가, 겨우 숨을 내쉬었다.

“고… 고맙습니다.”

“이런 도시에서 창부짓 하려면 제 몸 정도는 지킬 줄 알아야 하지 않아?”

“…참고할게요.”

한 마디 이죽거려주자 샐쭉한 표정을 짓는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를 건 술병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나 칼을 차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니만큼, 언제 눈먼 비수가 날아올지 모른다. 탓할 생각은 없다. 도박판에서 돈을 잃은 사람처럼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은 없는 법이고, 그런 녀석들은 이미 수없이 봐 왔으니까.

하지만 주변의 분위기를 보면 이미 꽤 많은 돈을 꼴은 녀석들이 있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투기장에서 계속 굴러먹던 쪽은 아닌 것 같다. 갑자기 나타났다는 둥 운운하는 걸 보면 신참이 나타난 모양인데… 어쩌면 한판 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소란스러워서 죄송하네요. 이쪽으로.”

“뭘, 딱 이런 정도가 익숙해.”

쿠오 글라디우스도 물론 내기가 허용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기 수준이다. 여흥의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공식적인 내기판에서 오가는 돈 중 상당한 양이 영주성으로 흘러든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제 손에 들어올 돈을 누군가가 떼먹는 것이 달가울 도박꾼은 당연히 없다. 때문에 이런 뒷골목 도박판이 성립하는 것이고.

도박판을 지나 안쪽으로 지나는 쪽문을 넘어서자, 벽에 달린 횃불 몇 개로 겨우 눈앞만 밝아지는 긴 복도가 나왔다. 방향감각이나 거리감각을 마비시켜서, 검투장의 위치를 가려보자는 수작일까. 나름대로 보안에 신경을 쓰는 모양이었다.

몇 분쯤 그 애매한 어둠을 걷다보면 시간감각마저 해이해지게 마련인데, 다행히도 아직 감각은 무뎌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둠 속에 웅크린 짐승처럼 오감이 예민해지고 육감이 스멀거렸다. 구불구불하게, 뱀처럼 이어지는 긴 복도를 걸으면서도 디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쪽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기묘한 침묵은 그녀가 멈춰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도착했어요. 이 앞에 문이 있습니다. 나가면 바로 첫 싸움이 준비되어 있을 거예요. 무운이 있기를.”

사무적인 통보가 돌아왔다. 어둠 속으로 뭔가를 붙잡고 드르륵, 돌리는 소리가 났다. 돌로 된 왼쪽 벽이 움직이면서, 빛이 들이쳤다. 얼마간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의 빛이.

다짜고짜 싸움이라. 뭐, 내 방식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건 마음에 든다. 허리에 찬 드워프제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들고, 문 너머로 발을 딛었다. 발밑은 조금 푹 파고드는, 그다지 미덥지 않은 모래였다.

상대는 먼저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 전에 인사라도 나눌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그러한 의례가 덧없는 상대였다. 어필할 만한 관중도 보이지 않았던 터라, 이것이 관중들에게 보이는 정식 경기가 아닌… 그저 몸풀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몸풀기치곤 꽤 헤비한 상대를 갖다놨구만.”

기암괴석처럼 거대하고 울퉁불퉁한 사자의 몸뚱이의 끄트머리, 짐승 갈기 사이로 미묘하게 인간을 닮은 머리가 기묘하게 까딱거렸다. 톱니 모양의 이빨들은 서로 맞물렸다가 떨어지길 반복하며 귀까지 찢어진 입 안쪽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나름의 위협음이었던 모양인데.

“만티코어(Manticore)라. 어지간한 놈이라면 오줌을 지렸겠구만.”

모래먼지가 거대하게 흩날렸다. 모래폭풍이 불어닥친 게 아니다.

독가시가 돋아난 꼬리가 바닥을 훑고, 기형적으로 거대한 앞발이 바닥을 두들겼을 뿐이다. 마치 사냥감 앞에서 제힘을 과시하듯한 동작은, 쥐를 앞에 둔 고양이와 닮아있었다.

“뭐, 가볍게 기지개 좀 켜 볼까.”

특별히 긴장감이고 뭐고 들지 않았다.

비록 내 검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이 정도는 딱 좋은 핸디다. 잠을 깨기에는 괜찮은 상대란 말이지. 입가를 일그러뜨리곤 다리를 넓게 벌렸다. 바스타드 소드를 양손으로 쥐고, 천천히 세우자… 놈의 회색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캬오오!

크게 울부짖은 뒤, 뛰쳐오른다. 모래가 깔린 바닥이 커다랗게, 놈의 네 발 모양으로 패였다. 위로 향한 시선에 들어왔다. 등뼈에서부터 꼬리 끝까지 빽빽하게 돋아난 가시털을 흉악하게 부풀리고, 그대로 바닥을 향해 꽂으려 떨어져 오는 괴수의 모습이.

즉시 몸을 옆으로 날렸다. 놈의 거구가 바닥에 꽂힌 순간 폭풍이 휩쓴 듯이 모래먼지가 기둥처럼 튀어올랐다. 신경독을 품고 있는 가시에 찔리기라도 하면 온몸이 마비될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닿지만 않으면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것이고.

첫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마자, 놈이 앞발을 바삐 움직였다.

모래바닥이라는 이점을 살릴 정도의 지능은 갖춘 모양으로, 마치 거대한 삽처럼 앞발이 모래바닥을 헤치면서 거대한 몸뚱이를 밑바닥으로 숨기려 했다.

“얼마나 잘 드는지 볼까!”

하지만 그 거대한 몸뚱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숨어질 리가 있나.

아직 미처 파고들지 못한 꼬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만티코어의 가죽은 제법 질기고 튼튼해, 가죽 갑옷으로 만들면 어지간한 화살도 뚫지 못한다.

하지만, 호쾌한 파육음을 내면서 가시뭉치가 철퇴처럼 달린 꼬리가 매끈하게 잘려나갔다.

제법 괜찮은 검이다. 속으로 희희낙락하면서 잘려나간 꼬리를 내쳤다. 모래바닥 구석으로 잘라낸 꼬리가 떨어지자, 놈이 머리를 내밀고 분노와 고통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커다란 회색 눈동자로 이쪽을 쏘아보고, 기형적으로 크게 벌어진 입에서 포효를 내질렀다.

캬아아악!

불쑥, 하고 양옆에서 거대한 앞발이 솟아올랐다.

꼬리에 붙은 가시들과 똑같이 신경독이 번들거리는 발톱이 기분나쁘게 빛났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덮치려던 순간, 본능에 의지한 칼끝이 먼저 휘둘러졌다.

괴수가 울부짖었다. 팔목에서부터 뼈까지, 앞발이 간단하게 잘려 다리에서부터 비스듬히 미끄러져 떨어졌다. 절단부에서 꿈틀거리는 살점이 미친 듯이 검붉은 피를 뿜어냈다.

고통에 눈이 돌아간 괴수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발광한다. 뛰쳐나갔다. 그대로, 놈의 목을 손으로 붙들고 팔근육에 힘을 주었다. 버둥거리는 만티코어의 거대한 몸을, 천천히 모래바닥에서 힘으로 뽑아내었다. 한 손으로 들어올린 놈의 목을 움켜잡고, 다른 손은 바스타드 소드를 콱 움켜쥐었다.

드드득, 드드득, 드득…

찔러넣은 칼끝이 놈의 심장에 들이박아 꽂혀들었다. 붙들린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저항을 시도하던 만티코어는 그대로 절명하여, 축 늘어졌다. 손을 놓은 순간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괴수는, 더 이상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탁, 하고 모래바닥에 검붉은 피를 털어냈다. 다소 뻐기듯한 말투가 되어버린 건, 이 싸움이 별로 흡족하지 못한 탓이다.

“사람을 너무 얕보는데.”

땀도 나지 않는 시시한 싸움이었다.

이 정도 고양이로 애먹을 거였으면, 난 용사 일행에 끼지도 못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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