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하운드-77화 (77/79)

〈 77화 〉 4 / 모난 악마가 망치 맞는다 (1)

* * *

(1)

한편 그 시각.

스파타스의 영주성, 귀빈용 객실에서는…

“심심해.”

서큐버스가 몹시 무료해하고 있었다.

소녀의 머리를 빗겨주던 여기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무료함에 몸부림치는 그 서큐버스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뭔가요?”

여기사의 이름은 레오레 유스티카.

이 나라, 트란 드라쿨루의 명문 무가인 유스티카 가문 출신인 그녀는

올곧은 성품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눈을

심심해 죽겠다는 듯이 안절부절 못하는 서큐버스에게로 돌렸다.

“심심하다구. 하이엔은 우리 내버려 두고 어디론가 나가서는

그 뒤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지,

경기 구경을 가보려고 했더니 경기는 중단되었다고 그러고!

하릴없이 이런 곳에서 계속 줄곧 멍청하게 시간만 죽이고 있잖아?”

“레오, 나 목말라.”

“네, 스텔라. 여기…”

“…저기, 누가 말을 하면 그걸 들어주는 게…

아니, 듣는 척 정도는 해 주는 게 귀족다운 품위인지 뭔지 아니었어?”

물을 건네는 레오레도, 그것을 받아마시는 스텔라도

조금도 제 말을 들어주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서큐버스는 주먹을 부들거리면서 이마에 실핏줄을 뿌짓 띄웠다.

이 몹시 심심한 나머지 분개하는 서큐버스의 이름은 나르콜렙시.

마계의 대부족 가운데 하나인 몽마족으로,

그중에서도 메이트리악(Matriarch) 계급에 위치한 고위 마족이다.

“…나르크, 심심해?”

“왜인지 몰라도 스텔라 님이 그렇게 말하니 기분이 더 비참해지는데요.”

“착해, 나르크. 착해.”

조그마한 손을 들어 몽마의 머리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스텔라의 순진무구한 행동은

오히려 나르콜렙시의 기분을 한층 더 미묘한 우울함으로 몰아넣을 뿐이었다.

소녀의 이름은 스텔라.

쏟아내리는 것처럼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는

‘별’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에 무척 어울렸다.

소녀 또한 그 이름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지만,

그 이름은 소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그 진짜 이름은 안드라스.

그 이름은 89위의 마왕 중 한 명의 것이지만, 이 천진무구해 보이는 소녀는 아직 마왕이 아니다.

안드라스의 알에서 깨어났을 뿐인 마왕의 파편에 불과했고,

따라서 나르콜렙시는 그녀를 나름대로 깍듯하게 대했다.

하지만 마왕에게 ‘착하다’고 칭찬받는 상황을 기뻐해야할지, 어떨지.

아무리 마왕의 극히 일부분의 힘만을 가진 파편이라고 해도,

스텔라는 언젠가 마왕으로서 깨어나 마족,

그들의 언어로는 ‘마라’의 지배권을 행사하게 될 존재인 것이다.

“처음에는 영주성에서 머무를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이렇게 따분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오며가며 하는 데에도 허가가 필요하고…

쿠오 글라디우스인가 하는 검투 대회는 나도 이래저래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중단되었다고 그러고. 대체 뭐냐고오.

레오, 너 여기 영주랑 친구라면서. 뭔가 들은 건 없어?”

“글쎄요.”

스텔라의 뒷머리를 한데 모아 단정하게 땋아내리면서

레오레는 덤덤하게, 그다지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답했다.

“로니는… 아주 예전에 이카루스 펜시온에서 공부할 때에 만난 동기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절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박정하네, 레오는.”

“박정해?”

스텔라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정작 박정하다고 폄하당한 레오레는 가타부타 반응이 없다.

여기서 발끈해봤자 나르콜렙시의 심심함만 달래주는 꼴이라는 것을 레오레는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레오레를 놀리는 데에도

그다지 재미를 얻지 못한나르콜렙시가 하릴없이 일어섰다.

“나르크, 어디 가?”

“잠깐 마을 구경. 스텔라 님은 어떻게 할래? 나갈 거야?”

“나갈래.”

스텔라도 어지간히 심심했던 모양인지, 양손을 번쩍 들고 호응했다.

두 마족의 시선이 찬동도 반대도 하지 않는 여기사에게 향했지만,

그 단정한 얼굴에 떠오른 것은 곤혹스러운 표정 정도였다.

“…하이엔 님도 안 계신 마당에 굳이 밖에 나갈 필요가 있을까요?

안 그래도 경기가 정지되서 분위기가 말이 아니던데.”

“그렇다고 몇날 며칠이고 이런 방에서

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지낼 수는 없다구. 그래서, 안 갈 거야? 레오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고민하던 레오레는

결국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 또한 꽤나 좀이 쑤시는 모양이었지만,

나가지 못할 사정 한 자락쯤은 있었으니까.

“…저는 어렵습니다. 로니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친구 집에 붙어있는 것도 참 못할 짓이네. 집주인 비위 살살 맞춰줘야 해서.”

“그런 거 아니거든요. 이죽거릴 정도로 한가하면 얼른 나가기나 하세요.”

“네에, 네에.”

성의없는 대답을 적당히 남긴 나르콜렙시가 스텔라의 손을 붙잡아서는 성을 빠져나왔다.

성에서 중심가로 나가는 짐마차를 운 좋게 얻어탈 수 있었다…

질 낮은 술과 양똥냄새가 풀풀 풍기는 건 다소 고역이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대체 하이엔은 어디를 간 걸까?

스텔라 님, 스텔라 님은 알 수 있지?”

“응.”

스텔라가 귀엽다며 내준 작은 빵 한 덩어리를

다람쥐처럼 갉작거리던 스텔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조금 얼굴을 들고는, 눈을 감은 채 숨을 몇 번 깊게,

그리고 천천히 내쉬면서 호박색 눈동자를 덮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그렇게 몇 초쯤, 그 행동을 반복하다가 천천히, 눈을 뜨는 것이었다.

“…아래. 아래 있어. 조금 깊은 아래. 그것 말고는 잘 모르겠어.”

“아래?”

이 도시의 땅 아래에 뭔가 있나? 있다고 쳐도, 그런 데에는 뭣하러 갔지?

뭐, 그 인간이니까…

“사설 투기장이나 도박장 근처에라도 어정거리고 있겠지…

틀림없어. 분명 그런 것이나 돌아다니면서 한탕 할 궁리나 하고 있던가

아니면 싸움질이나 벌였던가 그것도 아니면 여자 사서 잤을 거야.”

놀랍게도 그 셋 모두 정답이었다는 것을 나르콜렙시는 알았을까.

중심가에 멈춰선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스텔라는 무표정한 얼굴인 가운데 눈만 명랑하게 반짝였다.

자그마한 소녀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나르콜렙시에게는, 뭐… 남자들의 음심이라든지 그런 게 슬슬 전해져오는 기분이었지만.

“나르크, 나 저거 먹고 싶어.”

“응? 어떤 거? 아, 맛있겠다.”

노점에서 판매하는 메추라기 꼬치구이를 보고 스텔라와 나르콜렙시, 둘 다 눈을 빛냈다.

나르콜렙시는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다행히 영주가 선심써서 레오레에게 내준 여행 자금 중 얼마쯤은

짠순이 레오레의 눈을 속여 슬쩍할 수 있었던 참이다.

탱글탱글한 껍질이 카라멜 색을 띠도록 구워져서는 육즙이 툭, 툭 새어나오는 메추라기에서

식욕을 당기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나르콜렙시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통통한 살집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들이마셨다.

두 사람의 배에서 사이좋게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거… 그거 주세요.”

“어라, 예쁜 아가씨들이네.”

은화 한 닢을 내밀자 수더분하게 보이는 노점상이 메추라기 꼬치와 거스름 동전을 내주었다.

인간의 화폐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 없는 나르콜렙시는

적당히 주머니에 그 동전을 받고는 다른 손에 메추라기 꼬치를 받았다.

“…맛있겠다….”

사이좋게 꼬치를 하나씩 쥐고는 눈을 빛낸 주종은 동시에 그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깨물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깃조각을 물자 새어나오는 육즙과 탱글하면서도 바삭하게 익은 껍질,

그리고 표면에 흩어진 향신료의 맛이 입 안 가득히 퍼져서, 스텔라는 조그마한 입을 열심히도 오물거렸다.

스텔라가 다음 한 입을 더 깨물기 위해 입을 벌렸을 때…

“…?!”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혀 휘청거렸다.

순간 기우뚱하며 기울어진 손에서 메추라기 꼬치가 바닥에 떨어졌다.

앗 하는 사이에 바닥에 떨어진 메추라기 꼬치에 흙이 묻고야 말았다…

스텔라의 표정이 조금 우울하게 찌푸려졌지만 나르콜렙시는 그저 키득였다.

“운이 나빴네, 스텔라 님.”

물론 못 먹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얼마쯤 묻은 흙 탓에 맛을 해쳤을지 어땠을지는 모를 일.

나르콜렙시가 대신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꼬치를 줍고는 어찌어찌 묻은 모래와 흙을 털어냈다.

“사람 많으니 조심해야지… 스텔라 님?”

“저기, 저 사람.”

“응?”

스텔라가 손을 들어서 인파로 부리나케 사라지는 자그마한 그림자를 가리켰다.

나르콜렙시는 무심코 얼굴을 들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허리께가 허전해졌음을 깨달았다.

“나르크의 주머니를 가져갔어.”

“그 얘기를 좀 빨리 해 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스텔라 님?!”

거리로 나들이를 나오자마자 빨리도 트러블과 마주치고 말았다.

쯔읏, 하고 혀를 찬 나르콜렙시는 그대로 스텔라를 안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얼굴 봐뒀어. 직업상(?) 남자의 얼굴은 한번 보면 어지간해서는 잊지 않는다고!

“야! 이 개자식, 거기 서지 못해!”

쫓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소매치기가

호리호리한 몸으로 인파 사이를 타고 달리다가 골목으로 비껴들어갔다.

사방에는 다소 흥분한 군중들이 가득 차 있는 탓에 만족스러운 속도로 달릴 수가 없다.

으득, 이를 깨물고는 나르콜렙시가 잠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스텔라 님, 꽉 잡아!”

그리고 뛰쳐올랐다.

짧은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반투명한 박쥐날개가 희미하게 희미하게 드러나 허공을 퍼덕였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보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봤다 하더라도 헛것을 본 것이라고 생각하길!

“거, 기, 서라고, 이 개 같은 소매치기 자식, 아!”

뒷골목을 달려가던 소매치기가 부르는 목소리에

뒤돌아보고는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나르콜렙시의 통렬한 발차기가,

소매치기의 얼굴팍에 정통으로 꽂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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