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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마크 로젠더.
인텔사 CEO인 러셀 로젠더의 아들인 그는, 현재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임원이었다.
즉 마크가 오케이 하면 인텔사로부터 반도체 기술이전도 가능하다는 얘기.
때문에 삼명전자에서는 어떡하든 그를 구워삶아서 기술을 이전 받아야 했고, 반대로 마크 로젠더는 최대한 삼명전자로부터 많은 기술 이전료를 받아 내야 했다.
마크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즉 MIT공대 출신으로 거기 박사 과정에 있었는데 백준열이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다닐 때 우연히 농구로 친해져서, 그 뒤 졸업 때까지 친분을 유지하다가 졸업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끊이지 않는 인연의 고리를 여태 유지해 온 건 순전히 마크였다.
백준열은 마크가 인텔사 CEO아들이라서 친하게 지내고 있었지, 아니었다면 벌써 그와의 인연을 정리했다.
그렇다면 마크는 왜 그리 백준열에 목을 맸을까?
“나 때문은 아니야.”
그렇다. 마크가 미국에서는 흑인만 못하다는, 아시아인에다가 수컷인 나를 좋아할 이유는 전혀 없다.
“김 비서!”
바로 백준열과 같이 한국에서 유학 온 신비한 동양계 미인.
김혜인이란 여인에게 푹 빠져 버린 마크.
그는 백준열과 김혜인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김혜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마크는 김혜인이 백준열의 노예나 마찬가지 신세인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혜인을 자기 여자로 만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백준열과 가깝게 지내왔고 드디어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새끼. 그러려고 한국 온 거 다 알거든.”
백준열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내 여자인 김 비서를 마크에게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백 회장의 지시는 반드시 따라야 했다.
“그래야 백 회장이 내게 삼명유통을 맡길 테니까 말이지.”
JYB엔터 대표였던 백준열이 올해 말 삼명유통 대표로 넘어간 데는 다 이런 숨겨진, 더러운 뒷거래와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건 김 비서고 말이다.
결벽증이 있는 백준열이 마크가 탐닉한 김 비서를 계속 자기 여자로 곁에 뒀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그녀를 자유롭게 살게 풀어줬을 리는 더더욱 없었고.
“아마....”
사람 목숨을 무슨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백준열이다.
그의 지시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많은 희생양들 중에, 김 비서도 포함 됐을 거란 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지만 나는 백준열이 아니고 내 여자를 절대 희생양으로 삼지 않을 거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
“일단 김 비서가 나서긴 해야 해.”
마크가 김 비서를 원하는 한, 그녀 없이 녀석과 제대로 된 협상은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김 비서는 오늘 마크와 무조건 만나야 했다.
대신 마크에게 성 상납을 하게 될 여자는, 김 비서가 아닌 그녀와 최대한 닮은 체형의 룸빵 호스티스가 맡게 될 거다.
그러려면 마크가 좀 많이 취해야 할 거고, 그 놈 술 먹이는 게 오늘 나의 지상 과제가 될 것이다.
“대표님!”
내 수행비서 황치국이 뭐가 그리 반갑다고 내게 뛰어오며 큰 소리로 날 불렀다.
그 덕분에 공항 터미널 주위 사람들이 죄다 나를 쳐다봤다.
‘쪽팔리게....’
모른 척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눈치 없는 황치국이 얼마나 끈질긴 놈인지 아는 나는 그런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다.
대신 황치국이 뭐라 더 떠들기 전에 업무적인 질문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리무진은?”
“7번 게이트 앞에 정차해 뒀습니다.”
그러면서 내게 칭찬 받길 원하는 표정의 황치국.
미국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이 짐을 챙겨서 가장 많이 나서는 게이트가 7번 게이트였다.
하지만 인텔사 최고임원인 마크는 퍼스트 클래스 고객으로 비행기에서 내릴 때 제일 빨리, 또 수화물도 최우선으로 나온다.
거기다가 체크인에서 게이트 이동까지 항공사 직원이 에스코트를 하기 때문에, 그가 나오는 곳은 VIP라운지가 있는 3번 게이트 쪽이다.
“당장 리무진을 3번 게이트로 옮겨 놔.”
그 지시 후 나는 곧장 VIP라운지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 * *
마크는 나보다 5살 위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박사과정이었던 그는, 그해 박사가 됐고 MIT공대에서 교직 생활을 2년 정도 했다.
원래라면 박사까지 따고 나서 인텔사에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굳이 2년을 더 MIT에 몸담았던 건 순전히 김 비서 때문이었다.
백준열도 그 사실을 안 것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환송식 술자리에서 술 취한 마크의 고백 때문이었다.
그날을 백준열은 너무도 확실하게 기억했다.
취했지만 마크는 자신의 의지를 명확히 백준열에게 얘기했다.
“반드시 킴을 네 놈에게서 구해 내....기필코 여자로 만들고 말겠다.”
그런 그에게 백준열이 웃으며 한국말로 말했다.
“지랄하네.”
“뭐? 지루랄하네?”
“한국말로 굿럭(Good Luck)이란 소리다.”
그 말에 감동한 마크는 백준열을 다시 봤다며, 다음 날 공항에 직접 배웅까지 나왔었다.
물론 그 뒤 진짜 ‘지랄하네.’의 의미를 알게 된 뒤 백준열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쳐 든 사진을 메일로 보냈지만.
“저기 나오네.”
인텔사 최고임원답게 수행원을 대동하고 한국에 온 마크.
그의 짐은 그 수행원이 끌고 있었다. 때문에 그 짐을 우리 쪽에서 챙길 필요는 없었다.
황치국을 7번 게이트로 보낸 터라, 그 짐을 챙길 사람도 당장 없기도 했고.
나는 내 예상대로 VIP라운지에서 나오는 마크를 직접 맞았다.
“어서 와. 마크.”
“오오. 내 친구 백!”
마크는 내가 반가운 모양이다. 날 격하게 끌어안으며 들어 올리려했다.
하지만 이대로 마크에게 들려졌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기에 나는 힘을 주며 버텼다.
그러자 자기 힘으로는 날 들기 어렵다 싶었던지, 드는 걸 포기하고 대신 내 등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는 마크.
퍽! 퍽! 퍽! 퍽!
새끼가 감정이 잔뜩 실려서 등짝에 불이 났다. 주위 보는 눈이 있다 보니 나는 처음 만든 웃음 띤 얼굴을 그대로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나도 마냥 당하지만 않았다.
녀석이 일방적으로 날 끌어안았기에, 내 두 손은 자유로웠고 그 중 한 손으로 녀석의 배를 꼬집었다.
“....으윽....”
만약 내가 녀석의 옆구리를 꼬집었다면 그쪽 편 주위 사람들이 그걸 봤을 거다. 하지만 서로 포옹하고 있는, 그 틈 사이에 있는 놈의 배를 꼬집었기에 그걸 본 사람은 없었다.
내게 배를 꼬집힌 마크는 살짝 일그러진 얼굴로 나와의 포옹을 풀었다.
내가 제법 세게 꼬집어서 아마 멍이 들었을 거다.
포옹이 풀리자 나도 잽싸게 꼬집고 있던 녀석의 배에서 손을 뺐다.
“으윽! 성질머리는 여전하군.”
“사람이 바뀌면 죽을 때가 다 됐다는 건데. 나는 아직 죽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거든.”
내 기억에 따르면 마크와 백준열은 농구를 할 때마다 싸웠다.
그만큼 둘의 승부욕은 대단했고 그건 몇 년 세월에 바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오늘은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갑질 좀 하시게? 숙이고 들어가 줄까?”
“뭐? 크하하하하. 역시 백이야. 친구끼리 무슨. 피곤한데 호텔부터 가지.”
마크는 사람 좋은 얼굴로 호방하게 웃었지만 끝에 가서 호텔 가자는 말을 할 때 표정이 싸해졌다.
* * *
양태석은 공항 터미널 출입구 앞에서 백준열을 내려주고, 자신은 공항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공항 터미널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지금 바로 가세요.”
“네?”
하지만 양태석이 모시는 백준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백준열을 쳐다보는 양태석. 그런 그에게 백준열이 빠르게 말했다.
“자세한 건 서울 가는 사이 나와 통화로 얘기하면 되니 지금 차 돌려요.”
“알겠습니다.”
백준열이 그렇게 하라니 양태석은 그가 시킨 대로 바로 차를 돌려서, 왔던 길을 돌아서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30분 뒤, 양태석이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열심히 질주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백준열이었다.
양태석은 그가 운전 중인 벤츠의 핸즈프리 기능으로 백준열의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서울 가는 중이죠?
“네. 5분 뒤에 내부순환도로 탑니다.”
=서울 가면 룸빵 뒤져서 김 비서 닮은 호스티스 좀 찾아봐요. 얼굴은 달라도 김 비서와 체형은 비슷한 여자여야 합니다. 오늘밤 10시까지. 가능합니까?
“....”
백준열의 황당한 지시에 양태석은 얼떨떨했지만, 그의 능력으로 못할 일은 아니었기에 뒤늦게 대답을 했다.
“네. 찾겠습니다.”
태천파는 서울을 장악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대 조폭 조직이다.
흔히들 전국구 조직이라고 하는데 그들 조직 중에서도 태천파는 단연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서 서울에서 태천파가 못할 일은 없었다.
그 태천파의 2인자인 양태석이 한낱 룸빵 호스티스 하나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 조건이 김 비서와 똑같은 호스티스를 찾으란 거였다면, 양태석도 힘들다고 바로 백준열에게 말했을 거다.
하지만 김 비서와 몸매가 쏘옥 닮은 호스티스들은 양태석이 알기로도 몇 명됐다.
서울 유명 룸빵의 에이스들이라면 다들 김 비서처럼 쭉쭉 빵빵 몸매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단지 그녀들도 얼굴에서는 김 비서를 따라가지 못했다.
양태석이 백준열과 같이 일하며 놀란 게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로 백준열의 노예비서인 김 비서의 미모고, 또 하나는 백준열의 투자 능력이었다.
그 두 가지는 양태석도 노력한다고 해도 절대 가질 수 없었다.
김 비서는 그 영혼까지 백준열 소유의 여자였고, 투자하는 것마다 전부 성공하는 백준열은 그냥 ‘투자의 신’, 그 자체였다.
곧 차가 양태석이 말한 내부 순환 로에 접어들자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태석씨!
반가운 티가 확 나는 여자 목소리.
“민 마담. 오랜만이야.”
=대체 어디서 뭐하고 있어요? 얼굴 잊어 먹겠네.
“일이 좀 많아. 민 마담도 잘 살지?”
=그게 궁금하면 가게 한 번 들러요.
“그래. 언제 시간 내서 한 번 갈게. 은지는 잘 있지?”
=당연히 잘 있죠. 우리 가게 에이스인데.
“은지 오늘 밤에 내가 좀 데려가야겠는데.”
=안 돼요. 은지 없으면 난리 나요.
“그럼 오늘 하루 아예 문 닫던지.”
=네?
“거기 하루 매상의 10배, 바로 가게 사장 계좌로 꽂아 줄 수 있는데.”
=접대자리네? 맞지?
눈치하나는 9단인 민 마담이다.
=누군지 몰라도 은지 다치면 나 가만 안 있어.
“걱정 마. 변태 새끼는 아니니까.”
자기 한 말에 꼭 책임을 지는 양태석이었기에, 민 마담도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게 양태석은 서울 JYB엔터 본사 건물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백준열이 얘기한 김 비서를 대체 할 룸빵 호스티스를 구할 수 있었다.
* * *
마크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알기에 나는 녀석에게 하나도 꿇리지 않았다.
그가 한국에 온 것도 다 그 때문이니, 그걸 얻기 전까지 녀석은 절대 경거망동 하지 못했다.
“호오! 리무진이라....”
그래도 보는 눈은 있으니 형식적으로 마크가 대접 받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아마 삼명그룹 미래전략실에서 백 회장의 지시를 받고, 내가 마크를 잘 접대하고 있는지 살피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리무진까지 동원해서 마크를 극진히 모시고 있다는 걸 보여 줘야, 백 회장도 오늘 밤 두 다리 쭉 뻗고 잘 거 아닌가.
마크의 짐이 리무진 짐칸에 실리고 마크와 나는 같이 리무진 뒷자리에 탔다.
내 수행비서인 황치국과 마크의 수행원은 리무진 뒤로, 황치국이 따로 렌트한 승용차를 타고 우리를 따라오기로 했다.
“힐튼 호텔로 갑시다.”
내가 목적지를 말하자 리무진 운전기사가 바로 차를 출발 시켰다.
“....”
그렇게 마크가 한국에 있는 동안 묵게 될 서울의 힐튼 호텔로 가는 동안, 두 사람은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볼 때야 가식적으로 친구인 척 보이게 말하고 행동했지만, 단 둘이 있을 때야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 그 무거운 침묵을 마크가 먼저 깼다.
“킴은 왜 안 데리고 왔어?”
역시 녀석의 목적은 오로지 김 비서에 있었다.
“킴? 지금 김 비서 말하는 거야?”
“그래. 인혜 킴. 그녀가 있었으면 분위기 좋았을 텐데.”
“그녀는 바빠. 할 일이 많아.”
“뭐?”
김 비서 보러 한국에 왔는데 그녀가 바쁘다니.
그 말은 마크가 듣기에 내가 일부러 그에게 김 비서를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는 식으로 충분히 비쳐질 수 있었다.
“뭘 그리 인상을 써? 김 비서 못 보는 게 그리 화날 일인가? 가만. 너 혹시 아직 김 비서 잊지 못하고 있는 거야?”
“무, 무슨 헛소리를....”
내 말에 적잖게 놀라던 마크. 하지만 지금 차 안에는 나와 마크 둘뿐이다.
또한 지금 누가 뭐래도 갑은 그 자신이었다. 삼명전자가 반도체 기술을 이전 받고 싶으면, 나는 그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줘야 했다. 그리고 마크는 자신이 뭘 원하는 지 명확했다.
“하아. 그래. 니 말 대로야. 나 킴 때문에 한국 왔다.”
마크가 먼저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