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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혼잣말로 실실 웃으며 뱉은 그 말을, 제대로 들은 경찰은 다행히 없는 듯 했다.
“뭐 불편한 점 있으십니까?”
눈치 빠르게 내게 다가 온 견찰이 친절한 경찰인 것처럼 굴었다.
“여긴 단속 구간이라 차가 오래 정차 해 있으면 안 됩니다.”
나보고 빨리 차 빼란 얘기다. 그런 그에게 내가 계속 웃으며 말했다.
“지금 전화하는 거 안 보여?”
“뭐, 뭐라고?”
눈치 빠른 경찰은 나이가 있어 보였다. 계급도 무궁화 하나인 경위.
근데 새파란 내가 반말을 지껄여 놨으니 눈깔이 확 돌았다.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그랬어?”
턱!
아예 내 멱살까지 잡는다.
“뭐야?”
그때 같이 있던 경찰 무리가 우르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럴 때는 또 단합이 잘 되는 모양이다.
그걸 보고 차 안에 있던 무궁화 두 개, 경감이 내려서 이쪽을 힐긋 쳐다본다.
하지만 이내 모른 척 다시 차에 타 버린다.
나는 멱살잡이 당한 상태에도 계속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백 대표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로?
“검찰 국장님. 늦은 시간에 실례가 많습니다. 저도 그냥 넘어 갈까 했는데, 경찰의 부당행위가 도를 넘은 거 같아서 말입니다.”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주위 경찰들 모두 내가 통화 중인 사람이 검찰 국장이란 소리를 들었다.
그들도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으로서, 검찰국장이 어떤 자리인지 정도는 아는 듯 했다.
“검, 검찰국장?”
“씨발. 저거 진짜야?”
“진짜면 좆 됐는데.”
그러면서 서로 눈치를 보다, 하나 둘씩 그 자리에서 내빼려 들었다.
하지만 그걸 내버려 둘 내가 아니다.
“스톱! 지금부터 움직이는 견찰부터 옷 벗긴다.”
나는 지금 농담하는 게 아니다.
실제 백준열이 옷 벗긴 경찰이 제법 됐다. 검사도 몇 있었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정답은 백준열이 개새끼니까 가능하다.
백준열은 밟아야 할 자는 철저히 짓밟았다.
그 어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백준열에게 진흙탕 싸움은 싸움 축에도 못 들었다.
그러니 아무리 경찰이나 검사라도, 백준열이 미쳐 날 뛰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다들 들어 봤을 텐데. 내 이름이 백준열인데.”
“헉! 개새끼 백준열!”
그때 경찰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그 말과 함께, 나를 잡은 경찰과 쓸데없이 눈치 빨랐던 경찰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
그리고 차 안에 있던 경감 나리가 차에서 내려 눈썹을 휘날리며 내게로 뛰어왔다.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정의로운 경찰과 검사가 결국 재벌을 때려잡는 내용이 나온다.
그냥 동화 같은 얘기다. 경찰도 검찰도 결국 조직이다.
조직이 똘똘 뭉치려면 그 만큼 윗선이 깨끗해야 하는 데, 재벌과 연루 되지 않은 고위직 경찰과 검찰 간부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깨끗한 고위직 경찰과 검찰 간부가 있을 수는 있으나, 결국 최고위직에는 오를 수 없다. 지금 내가 통화 중인 검찰 국장 역시, 우리 삼명그룹이 밀어줘서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사회비리 등 거악 척결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전국 2,000여명의 검사가, 모두 ‘검찰의 별’인 검사장(차관급)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택된 49명만이 영예를 안는데, 그 49자리의 검사장 직급 가운데서도, 법무부 검찰국장은 단연 ‘검찰의 꽃’이라고 할 만한 자리다.
검찰 인사와 예산, 수사, 정보를 모두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해서 수사 능력은 물론 정무 감각까지 갖춘 당대 최고의 엘리트 검사가 보임된다.
일단 검찰국장에 보임되면 서울지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까지 탄탄대로가 열린다고 보면 된다.
법무부 내 검사장 보직 가운데 검찰국장은 서울지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공안부장과 함께 ‘빅4’로 불린다.
서울지검이 고검장급 보직인 서울중앙지검으로 격상되고, 중수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금도, 여전히 검찰국장만은 법무·검찰 최고위층으로 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엘리트 코스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대단한 양반이,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내 전화를 받고 있다.
이게 뭘 의미하겠는가?
“살려주십시오!”
자신을 지구대장으로 소개한 경감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려 했다.
당연히 그러면 안 되지. 보는 사람이 몇 명인데.
“어어. 이거 왜 이러세요.”
나는 잽싸게 지구대장을 붙잡았다.
경찰 생활 오래 한 듯 지구대장은 벌써 눈치 까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경찰들을 다 잘라버리려 한다는 걸 말이다.
왜? 그게 불가능할 거 같지? 과연 그럴까?
“하곡 지구대!”
그때 또 경찰 중 하나가 떠들었다.
순간 그 말을 들은 주위 모든 경찰들이 얼음이 됐다.
왜냐하면 작년 이맘때였던가? 하곡 지구대 경찰들이 전부 옷을 벗는 일이 벌어졌다.
그 이유를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떠벌리는 경찰은 없었다.
하지만 알만한 경찰들은 다 알았다.
웬 미친 개새끼 한 마리 때문에 하곡 지구대 경찰 25명이 전부 옷을 벗었다는 걸 말이다.
‘그 개새끼가 나다.’
스피커폰을 통해 들을 건 대충 들은 검찰 국장. 그가 말했다.
=백 대표. 그래서 어디 소속 경찰들인가?
그 소리에 주위 경찰들 모두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검찰 국장이 나서면 여기 있는 경찰들 중, 계속 경찰 노릇할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원래 백준열이었다면 여기서 경찰들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희롱하다가, 결국에는 그들 소속을 검찰 국장에게 말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 백준열이 아니다.
“국장님.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야 그렇지.
“해서 이번은 그냥 넘어갈까 합니다.”
=크음. 뭐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검찰 국장도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을 거다.
안 그래도 요즘 공소권을 두고 검경 갈등이 첨예한 마당에 말이다.
“언제 시간 내서 필드 한 번 나가시죠.”
=그야 백 대표가 불러 주면 나야 언제든 오케이지.
그렇게 막판 가서 내가 검찰 국장과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끝내고 통화를 마치자, 주위 경찰들이 일제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지옥을 몇 번은 갔다 온 듯, 얼굴이 초췌해진 나를 잡은 경찰에게로 가서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은 그 경찰 뿐 아니라 주위 모든 경찰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경찰 여러분 수고 많으신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앞으로 내기 같은 건 업무 끝나고 하세요. 다들 자식들 두고 있을 텐데 견찰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말입니다.”
그 말 후 나는 내 차에 탔고, 경찰들이 길을 터 주자, 곧장 차를 몰아서 차선을 타고 목적지의 쉐라톤 팔래스 호텔로 향했다.
* * *
엔터 대표면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해서 호텔로 가는 도중 라디오를 틀었다.
할렐루야~
“이건 좀....”
공단 로타리 사거리에서 우측 방면으로 사고~
“이것도 아니고....”
많은 라디오 채널 중에 최신곡이 나오는 채널을 드디어 찾았다. 귀에 익은 멜로디!
“이 노래는 해피걸스의 ‘시그널’이잖아?”
해피걸스는 QH엔터테인먼트 소속의 5인조 아이돌 걸그룹으로, JYB엔터 연습생 출신 유나를 중심으로, 나머지 멤버들을 끌어 모아 급하게 꾸려졌다.
그렇다보니 유나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역량 부족으로 인해, 나중에 아이돌 그룹 내 멤버 밸런스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대표적으로 꼽히는 팀이 되어버린다.
거기다가 1집 앨범이 나오고 활발히 활동 중, 멤버 한 명이 크게 다쳐, 부득의하게 탈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긴급히 투입 된 것이 외국인 출신 멤버 하이디였다.
하이디의 컨셉트는 알프스 소녀에서 가져 온 건데, 알고 보니 그녀의 국적이 호주인 것이 밝혀지면서, 아이돌의 진정성에 타격을 입게 되고, 결국 1집 앨범 활동이 끝난 뒤 호주로 돌아간 그녀, 본명 에이미는 1년 뒤,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가정불화까지 겹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백준열로 빙의하고 난 뒤, 예전 내가 한 번 본 연예 소식지의 지면이, 그대로 머릿속에 떠올라 그걸 머릿속에서 쭉 읽어 봤다.
“잠깐....호주....하이디....에이미....아아!”
나는 아까 신림 원룸 건물의 내 집 소파에 잠든, 에이미의 옆얼굴에서 누구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누가 바로 해피걸스의 하이디였다니.
그 말은 에이미가 QH엔터테인먼트와 어떤 식으로든 엮이게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에이미가 QH엔터테인먼트와 접점이 없었다.
QH엔터테인먼트는 조폭 조직이 끼어 있는 질 나쁜 소속사로, 조만간 악명을 떨칠 곳이었다.
“아아....”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죽은 경비 김봉천의 다이어리에 오늘자 메모였다.
“오늘 백마 타기 실패. 내일과 모레로 연기. 그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그럼 그게 다음 범행 타깃이 바로 에이미였단 얘기였네.”
그러고 보니 오늘 내가 신림 원룸 빌딩에 가지 않았다면, 에이미가 놈들에게 당했을 거란 소리지 않은가?
“허얼....”
어떻게 보면 내가 에이미를 구한 셈이었다.
그럼 원래대로 에이미가 놈들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가정해 보면....
“그 충격이 상당히 컸을 테고....그럼 방황을 했겠군. 먹는 게 마시는 걸로 바뀌었을 테고. 그때 어느 유흥주점에서 QH엔터테인먼트 관계자와 에이미가 만나게 되었다면....”
에이미 같은 외모라면, 걸그룹 멤버로도 충분히 어울렸다. 키도 큰 편은 아니고.
대신 비율이 좋다보니, 남자들에게 충분히 섹스어필 할 수 있는 멤버가 될 거라고 봤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의 에이미는....”
내가 기억하기에 해피걸스 멤버 하이디는 상당히 끼가 많았다.
특히 먹방 방송에서 최고 게스트이자, 먹방 유튜버 탑 10안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해기도 했었다.
물론 그 모든 인기가 스캔들 한방으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지만.
“아아. 맞다. 복면 가요왕!”
해피걸스 멤버 하이디가 스위스 출신이 아닌 호주 출신이란 게 밝혀지기, 그 전 주에 하이디는 복면 가요왕에 나가서, 5주 연속 가요왕에 도전하는 혁수를 이겨 버리는 파란을 나았다.
남성 보컬 그룹에서 리더로 가창 끝판왕 소릴 듣고 있던 혁수였다.
그런 혁수를 이길 수 있을 만큼, 당시 하이디는 음색깡패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 줬었다.
그걸 QH엔터테인먼트에서는 발굴해 내지도, 제대로 된 키워 내지도 못했다. 듣기로 보컬 트레이닝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나?
아무튼 에이미가 해피걸스의 하이디만 안 된다면, 얼마든지 다른 재능을 키워줘서 최고의 탑스타로 만들 수 있었다.
“이거 길 가다가 우연히 진주조개를 주운 거로군.”
그 진주조개 속에 진주를 꺼내고, 잘 가공해서 빛나는 진주로 거듭나게 만드는 게, 바로 엔터 업계 종사하는 사람들의 할 일 아니겠나?
물론 진주조개 속에 진주의 크기가 중요하겠지.
하지만 나는 에이미가 얼마나 큰 진주인지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런 그녀를 발굴해내서, 제대로 키워 내지 못한다면 그건 오로지 내가 무능해서 인거고.
하지만 회귀, 빙의에다가 시스템까지 장착한 내가, 과연 무능하게 살 수 있을까?
* * *
자정이 다 되어 가선지, 서울 도로도 제법 한산 해졌다.
네비게이션의 딱딱거리는 여자 목소리에 따르면, 내 목적지 호텔까지 이제 10분 정도 남았다.
차가 없다고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되지.
족족 걸리는 신호를 다 준수해 주시고 논현 사거리를 지나갈 때였다.
내 맞은 편 차선에서 여자의 빽빽 대는 소리가 들려서 그쪽을 쳐다보니, 웬 헐벗은 여자가 포르쉐를 향해 온갖 쌍욕을 퍼부어댔다.
“어어! 저 여자는....”
근데 내가 아는 여자다. 오늘 보경이가 달고 온 그 한영대 회계과 출신의 여공시생. 이름이 이지숙이라고 했던가?
감히 날 보고 성형한 얼굴이란 뉘앙스로 얘기를 해서 공분을 샀던, 그래서 내가 백준열 식으로 혼내 주려 마음까지 먹게 했던, 바로 그 여자였다.
마침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밝혀져서, 내가 차를 멈춰 세웠을 그때, 여자를 버리고 달아나던 포르쉐가 잠깐 멈추더니, 차창을 내리고 여자를 향해 중지를 세워 보였다.
그걸 보고 악에 받친 이지숙이 억울해 죽겠는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포르쉐는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 당연히 신호도 개무시 한 채, 내 옆을 휑하니 지나치며 달아났다.
한데 그 차안 운전석에 있는 놈이 내 눈에 익다.
보통 사람은 당연히 다른 차선을 지나치는, 그것도 검게 선탠 된 차 안의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개 특성인 *멀리 봅니다.*가 있고, 또 견족의 특성 상 밤눈이 밝았다.
그 두 특성 때문인지 나는 그 포르쉐 운전석에 있는, 이지숙을 따 먹고 길바닥에 버린 것으로 추정 되는, 인물의 얼굴을 정확히 봤다.
“황치국. 저놈이 왜....”
포르쉐 운전석에 이지숙의 욕을 쳐 먹은 놈의 정체는, 바로 내 수행비서 황치국이었다.
평소 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수행비서의 모습과 완전 다른 모습의 황치국.
“꼬롬한 냄새가 나더라니....”
대학 다닐 때 경상도 친구가 ‘뒤가 구리거나 치사하다’는 말의 의미로 꼬롬하다는 말을 자주 썼었다.
내가 맡은 황치국의 냄새는, 내 개 특성이 업그레이드되기도 전에 맡은 냄새였다.
「개코」아이템을 사용해서 맡은 것도 아니고.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뭔가 뒤끝이 좋지 않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일 만나면 바로 「개코」아이템을 써 봐야겠네.”
그럼 녀석의 꿍꿍이도 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