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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56화 (5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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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내 생각대로였다. 내 차는 지하 주차장에 잘 주차 되어 있었다.

빌딩의 지하주차장이 만차가 되더라도 꼭 비어 있어야 한다는 주차 공간. 바로 빌딩주 전용 주차장 되시겠다.

내가 운전석 문을 막 열려 할 때였다.

“오오. 드디어 여기 빌딩주와 관련 된 사람을 만나는군.”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하기에 돌아보니, 중년의 금테 안경을 써 더 샤프하게 보이는 정장남이 날보고 웃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얼굴이다.

내가 그 중년 신사가 누군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그가 내게 다가오더니 대뜸 자기 명함을 건넸다.

“이 차 운전기사지? 이 명함 여기 빌딩 주한테 전해 줘.”

그 말을 하면서 지갑을 꺼낸 중년 신사가, 지갑 속에서 5만 원짜리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며 슬쩍 윙크를 했다.

그리곤 곧장 엘리베이터 실이 있는 쪽으로 쭉 걸어갔다.

나는 그가 준 5만원과 명함을 번갈아 쳐다봤다.

“라이크 펀드 대표 이명운?”

회사와 이름 모두 분명 어디서 들어 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 김 비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김 비서가 바로 용건부터 말했다.

=임수지 작가 집 주소 문자로 보내드렸습니다. 집 근처 ‘멜로디’라는 카페가 있는데. 작가님이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실 거라니까, 대표님은 거기로 바로 가시면 될 거 같아요.

“알았어. 아아. 그리고 호주 사람인데. 맥도널 페럿이라고 변호사거든.”

김 비서에게 전화가 온 김에 그녀에게 시키려 했던 일 하나가 생각났다. 그래서 꺼내 본 말인데 김 비서의 반응이 너무 빠르게 나왔다.

=맥도널 페럿이요? 그분 호주에서 인권 변호사로 유명하신 분인데....

“김 비서가 맥도널 페럿을 알아?”

=잘은 모르죠. 하지만 호주 10대 재벌 사위인데, 장인과 대척점에 서서 법정 싸움을 벌인 걸로 유명해요. 뭐 그 뒤에 소송 문제가 잘 해결 돼 망정이지, 아님 이혼 했을 거라고 말들 많았거든요.

“그럼 맥도널 페럿에게 딸이 있다는 것도 알겠네?”

=에이미 페럿이요? 알죠. 맥도널 페럿의 하나 뿐인 자식인데.

나는 에이미가 호주 사람 맥도널 페럿에 대해 뭘 이리 많이 아나 싶었다. 궁금하면 못 참는 내가 그래서 바로 물었다.

“김 비서. 맥도널 페럿에 대해 잘 모른다며?”

=아아. 제가 원래 호주 유학 갈 생각이었거든요. 집이 망하는 바람에 못 갔지만.

그 말 이후 김 비서의 목소리가 갑자기 많이 가라앉았다.

=그때 호주 시드니대 법학과를 지원 했고, 실제로 합격도 했었죠. 제가 법학과를 지원한 게 바로 맥도널 페럿 때문이었거든요. 그처럼 멋진 인권 변호사가 되고 싶어서요. 치기 어린 시절이었죠.

한마디로 학창시절 김 비서에게 자신의 롤 모델이 맥도럴 페럿이었다는 거다.

그를 닮고 싶어 한 만큼, 김 비서가 그에 대해 틈틈이 알아보고 있었던 것.

김 비서와 통화하다 보니 맥도널 페럿에 대해 조사하고 자실 것도 없었다.

에이미는 맥도널 페럿의 딸이 맞았으니까.

그래도 김 비서에게는 계속 맥도널 페럿에 대해 조사를 해 보라고 지시를 했다.

아마도 그 일을 통해 자신의 우상의 발자취를 조사해 보는 것도, 그녀에게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 말이다.

그렇게 김 비서와 통화를 끝낸 뒤, 나는 그녀가 보낸 문자 주소지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에이. 운전 하는 것도 귀찮네.”

멀쩡히 있는 운전기사와 수행 비서를 두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해서 그 두 사람에게, 김 비서에게서 받은 주소지를 문자로 보내며 거기서 보자고 했다.

그 사이 네비게이션에서 나온 딱딱한 여자 목소리가 길 안내를 시작했다.

나는 운전을 시작했고 30분 쯤 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기네.”

'막먹은 영자씨'의 담당 작가 임수지가 말한, 자신의 집 근처 카페 ‘멜로디’ 간판이 내 눈에 보였다.

* * *

카페 근처에 노상 주차를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오전이라 카페 안에 손님은....

‘저기 한 명뿐이네.’

굵은 뿔테 안경이 자꾸 내려오는지, 그걸 수시로 손으로 만지는 30대 중후반 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안녕하세요? 혹시 임수지 작가님?”

“아네. JYB엔터 대표님 맞으시죠?”

“네. 여기....”

나는 명함첩을 꺼내 그 안에서 내 명함을 한 장 빼내서 임 작가에게 건넸다.

그녀는 내가 준 명함을 한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다, 자신의 핸드폰에 찍힌 번호와 내 명함의 번호를 확인하는 꼼꼼함을 선보였다.

그런 그녀를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 그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요즘 연예계에 사기꾼들이 워낙 많아서....어머. 죄송해요.”

“아뇨. 뭐든 확실한 게 좋죠. 아아!”

나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내 핸드폰의 카메라 파일에서 저장 된 사진들 중, JYB엔터 단체 사진을 임 작가에게 보여줬다.

그 사진 속에서 JYB엔터 소속 연예인들에 파 묻혀 있는 대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저 맞죠?”

“네. 맞네요.”

임 작가는 내가 JYB엔터 대표란 걸 확실히 확인하고 나서, 한결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HQ엔터에서 아직 '막먹은 영자씨'의 제작을 확정 짓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맞아요.”

“그럼 작가님 혹시 저희 JYB엔터와 '막먹은 영자씨'. 한 번 만들어 보는 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만들어요? JYB엔터에서? 투자가 아니라?”

“저희 JYB엔터는 투자도 많이 하는 편이지만, 드라마 제작 역시 하고 있습니다.”

이미 작년부터 방송가에 유능한 PD와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JYB엔터였다.

든든한 재정을 바탕으로 괜찮은 대본만 있다면, 언제든 드라마 하나 뚝딱 만들어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직접 만들어도 되지만, 외주 제작사를 이용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했다.

“저....”

그때 임 작가가 내 눈치를 보며 말하기를 주저했다.

이미 임 작가를 만나는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나는 쇠 냄새를 맡았다.

곧 나의 개 특성 중에 후각 능력이, 그 냄새가 금전적인 문제를 의미함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녀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 줄 심산으로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혹시 대본료를 일시불로 지급 받으실 생각 있으십니까?”

“네?”

“그러니까 작가님이 지금 쓰셨고, 또 쓰게 계시는 '막먹은 영자씨'를 제가 사겠다는 얘깁니다. 2억 어떠십니까?”

“2, 2억이요?”

소위 말해 거물급 작가가 아니고서, 드라마 쪽 작가의 작가료는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다가 기존 작가료마져 100%다 지급하는 곳도 드물었고.

한데 내가 뭘 믿고 임 작가 쓴 '막먹은 영자씨'를 2억이나 주고 사겠다는 건지, 임 작가 본인도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다.

‘왜긴. '막먹은 영자씨'를 15년은 우려먹을 생각이니까 그렇지.’

실제 '막먹은 영자씨'는 무려 시즌 19에 걸쳐서 방영을 한 국내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다.

* * *

며칠 전 임수지 작가는 방송국 AD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작가가 왜 그런 일까지 하죠?”

“네?”

“작가가 취재하고 원고 쓰기도 바쁜데. 출연료, 주차증관리, 생방송 속기 같은 자잘한 일들 다하시잖아요?”

그 말에 크게 충격 받은 임수지 작가.

현장에서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게 어쩌다 보니 작가에게 떨어질 때가 많았다.

인터뷰 속기, 주차증 관리가 그 대표적 사례다.

출연료 정산 역시 원래 PD가 맡는 게 맞는데, 어느 순간 작가 담당이 됐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먹고는 살아야 하니 그냥 하는 수밖에. 그랬던 그녀에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

“뭐? 희철이가?”

대학생인 남동생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맥주 한 잔 마시러 주점에 간 모양이었다.

근데 거기서 잔뜩 술 취한 사람이 시비를 걸었고,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만, 술 취한 사람의 이빨 두 개가 부러지고 말았다.

한데 남동생은 아니라는 데, 술 취한 사람은 계속 남동생이 자기를 때려서 그렇게 됐다고 우겼고, 결국 합의하지 않으면 남동생이 폭행죄로 감옥에 들어가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를 달래? 뭐? 2천만 원!”

당장 2백만 원도 없는 데 어떻게 2천만 원을, 그것도 일주일 내 마련한단 말인가?

눈앞이 깜깜해진 임수지 작가.

그녀는 별 수 없이 이번에 HQ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기로 얘기가 끝난 '막먹은 영자씨'의 대본료를 먼저 당겨 받고자 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일찍 HQ엔터테인먼트를 찾았는데, 그곳 관계자의 말이 기가 찼다.

“아직 제작이 결정도 안 난 대본 가지고 대본료를 달라니? 진짜 얼굴 두껍네. 보니까 글도 순 거지같이 써 놨더니만. 내가 발로 써도 그거보다 잘 쓰겠다.”

그 말에 부들부들 떨면서 HQ엔터테인먼트 사옥을 나온 임수지 작가.

그녀의 두 눈에서 굵은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제작사가 될지 모를 HQ엔터테인먼트다.

갑중에 갑인 그들을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던 임수지 작가는 피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만약 자신이 히트 작가가 되면, 이 설움은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때 그녀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다. 근데 번호가 눈에 또 익었다.

“아! 맞다. JYB엔터!”

어제 일요일 날 뜬금없이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그녀는 황당했다.

자신을 JYB엔터의 대표 비서라 소개한 여자가, 자기 대표가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는 거다.

왜 만나자고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던 그녀는, 그 전화를 요즘 유행하는 신종 보이스 피싱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거기 대표를 만날 날짜와 시간까지, 다 정할 때까지도 돈 얘기는 일절 없었다.

‘어? 진짠가?’

그녀가 속으로 그 생각을 했을 때 이미 통화는 끝나 있었고, 어째든 그녀는 자신의 스케줄 표에 JYB엔터 대표와의 만남을 적어뒀다.

“여보세요?”

임수지 작가는 떨리는 심정으로 그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어제 전화 드렸던 JYB엔터 대표 비서실입니다.

“네.”

=내일 대표님과 약속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혹시 무슨 문제없으시죠?

문제가 왜 없겠나? 문제가 생겼다.

“혹시 그쪽 대표님이 절 만나려는 게 대본 때문인가요?”

=네.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그, 그럼 당장 만날 수 있나요?”

=네?

그렇게 임수지 작가가 우겨서, 그녀는 자기 집 근처 카페에서 JYB엔터 대표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표는 그녀의 가능성을 보고, 대본료로 무려 2억을 제안했다.

“흑흑흑흑....”

임수지 작가가 또 울었다. 바보처럼 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HQ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울음과 눈물과는 다른 차원의, 너무 기뻐 환희에 겨운 울음과 눈물이었다.

* * *

임수지 작가가 JYB엔터 대표인 백준열이 내 놓은 계약서에 시원하게 사인했다.

“자 그럼....”

백준열은 임수지가 사인하는 걸 보고 핸드폰을 꺼내서 계약서에 적힌 그녀의 계좌로 2억 원을 바로 송금했다.

“돈 들어갔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백준열을 빤히 쳐다보는 임수지.

그러다 곧 그의 말을 이해한 듯 백준열처럼 핸드폰을 꺼내서 자신의 계좌 잔금을 확인했다.

“들어왔네요. 2천만 원.”

임수지는 백준열이 계약금으로 10%를 송금한 줄 알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백준열이 싱긋 웃더니,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다시 확인해 보세요.”

“네?”

임수지는 백준열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다는 얼굴로, 다시 쥐고 있던 핸드폰으로 자신의 계좌 잔금을 확인했다.

“일, 십, 백...천만, 억! 억?”

“2억 다 넣어 드렸으니 필요하신 대 요긴하게 쓰십시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돈 쓸데가 왜 없겠는가? 당장 그녀 집 전세 만기도 도래했고, 또 글 쓸 때 꼭 필요한 노트북도 못 쓰기 일보 직전이었다. 프린터기는 잉크 살 돈이 없어 매번 회사 걸 쓰고.

또 출퇴근 할 때 지금 그녀가 일하는 외주제작사로 가는 교통편이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돈만 있으면 중고, 똥차라도 하나 장만하는 게 올해 그녀의 목표였다.

거기다 엊그제 자신의 동생이 친 사고의 합의금까지.

그 모든 돈이 없어 풀지 못하고 있던 난제들이, 좀 전 JYB엔터 대표가 준 2억으로 몽땅 다 해결 가능하게 됐다.

그녀는 지금 자기 눈앞에 있는 백준열 대표가 고마워서, 그에게 열 번, 아니 백 번이라도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아.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임수지 작가님.”

백준열 대표는 계약서를 직접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임수지에게 악수를 청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임수지가 뒤늦게 수줍어 얼굴을 붉히며 백준열 대표가 내민 손을 잡았다.

‘와아. 진짜 잘생겼다. 키도 훤칠하게 크시고....’

급했던 돈 문제가 해결 되니 그제야 백준열 대표의 준수한 외모가 눈에 들어오는 임수지였다.

“대표님!”

그때 뺀 질하게 생긴 젊은 체구 좋은 남자가 그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곤 백준열 대표가 들고 있던 계약서와 서류 가방을 자신이 대신 챙겨 들었다.

그는 누가 봐도 딱 백준열 대표의 수행비서 같아 보였다.

“제작 일자가 잡히면 회사에서 임 작가님께 따로 연락이 갈 겁니다. 그럼....”

백준열은 임수지와 단 둘이 있었을 때와는 사뭇 달리, 다소 냉철한 얼굴로 임수지에게 작별을 고하고 카페를 빠져 나갔다.

임수지는 백준열이 나가기 전에 문을 열어 주는 그의 수행 비서를 보고, 그와 자신의 신분 격차를 세삼 깨달았다.

그때 그녀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현재 그녀가 임시로 적을 두고 있는 외주제작사의 강PD였다.

여기서 임시란 말은 계약직보다 더 못한 임시직이란 얘기다.

“네. 강PD님.”

=지금 어디야?

“잠깐 볼일이 있어서 나왔어요.”

=수지 너 혹시 아침 댓바람부터 HQ엔터에 갔었니?

“....”

=하아. 네가 거지야? 거기 왜 가서 돈 타령을 한 건데?

임수지는 강PD의 입에서 거지란 말이 나오는 순간, 머릿속 이성의 끈이 툭하니 끊겼다.

“지금 들어갈게요. 들어가서 얘기해요.”

하지만 진짜 화가 나니 그녀의 말투가 더 차분해졌다.

=빨리 들어와. 나 이대로 못 넘어가.

성질은 있는 대로 다 내고 먼저 탁 전화를 끊어 버리는 강PD.

임수지는 그나마 있었던 강PD에 대한 쥐꼬리만큼 남은 의리와 연민의 정마저, 싹 사라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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