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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민혜주도 국내 탑 쓰리에 든다는, 대형 연예기획사인 JYB엔터 본사에 와 보고 놀랐다.
그 규모도 규모지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죄 선남선녀들이다.
거기다 나이 많은 꼰대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들 젊고 패기 넘치는 게, 왜 JYB엔터가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지 알 거 같았다.
한데 대표실의 여비서를 보고, 민혜주는 백준열 대표가 직원 뽑을 때, 외모를 보고 뽑는 게 확실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건 앉아 있었을 때 여비서의 모습이었고, 그녀가 일어서서 움직이자 바비 인형이 돌아다니는 거 같았다.
그녀가 다가오는데,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필드의 뭇 여자골퍼들을 기죽여 왔던, 그 골프여신 민혜주가 움찔거리며,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만큼 저 여비서가 다가오는 순간, 저 압도적인 미모에 그녀도 쭈꾸미가 될 거란 걸, 직감하고 있었던 거다.
민혜주도 어디 가서 외모로는 안 뒤지는 데, 저 여비서는 그냥 오리지널 여신이었다.
골프 여신 같은 건, 감히 갖다 댈 게 못되는....그래서 더 예민하게 굴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그 여비서는 익숙하다는 듯, 별로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다.
“들어가세요.”
그 여비서가 열어주는 대표실문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민혜주의 표정은 여전히 별로였다.
하지만 그 안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젊고 잘 생긴, 거기다 이미 그녀와 배꼽까지 맞춰 본, 떡정을 쌓기 시작한 그녀의 새로운 애인 백준열이 있었다.
“오빠!”
그녀는 일부러 자기 뒤에 여비서가 듣게끔, 백준열을 향해 대 놓고 오빠라고 친한 척 불렀다.
“어어. 어서 와.”
그런 그녀를 백준열이 환하게 웃으며 맞아 주면서, 민혜주의 체면을 확실히 세워 주었다.
‘어때?’
민혜주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자신의 뒤를 따라 들어오고 있던 여비서를 돌아보며 웃자, 여비서가 무표정하게 그런 그녀를 보고 말했다.
“들어가시죠.”
마치 자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시크하게 반응하는 여비서가, 영 못 마땅한 듯 민혜주가 고개를 홱 원래대로 되돌렸다.
“쳇!”
그리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백준열에게로 쭉 걸어갔다.
이때 백준열은 책상이 아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응접 소파의 상석에서 민혜주가 거의 세 걸음 거리까지 다가오자 몸을 일으킨 백준열.
그가 먼저 민혜주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오는 데 힘들진 않았어?”
“아니. 운전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뭐.”
“전속 계약하면 바로 매니저부터 붙여 줄게.”
“그래 주면이야 고맙지.”
민혜주의 얼굴이 좀 전에 비해 훨씬 밝아졌다.
그럴 것이 백준열이 그냥 민혜주와 악수만 했다면, 그녀는 실망을 했을 거다.
하지만 백준열은 자신이 내민 손을 민혜주가 잡자, 다른 손으로 악수 중인 그녀 손을 포개 잡았다.
그게 뭘 의미하겠나?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님을 대 놓고 표현 한 거다.
“앉아. 김 비서. 여기 마실 거 좀. 뭐 마실래?”
“난 좀 시원하고 청량감 있는 걸로. 콜라 있어요?”
“네. 있습니다.”
“그럼 얼음 넣어서 한 잔 갖다 주세요.”
“나도 얼음 넣은 아메리카노.”
두 사람의 주문을 들은 김 비서가 몸을 돌려 대표실을 나가자마자, 백준열 오른 쪽 소파에 앉아 있던 민혜주가 벌떡 일어나서, 그의 입술에 대뜸 키스를 해왔다.
“우웁....우움....”
백준열은 거부하지 않고 그런 그녀와 달콤한 키스 타임을 가졌다.
* * *
살짝 입 꼬리 성형을 한 민혜주의 입술은 예뻤다.
그런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과 기습적으로 와 닿았을 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맞물린 그녀의 입술을 살짝 벌리고, 그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내 혀가 그녀 입안으로 미끄러지듯 빨려 들어가자, 그녀의 말랑한 혀가 바로 마중을 나왔다. 하지만 바로 뒤엉키지 않고, 혀끝으로 내 혀를 톡톡 건드리며 간을 보는 듯하다, 이내 내 혀를 감싸며 달달한 사탕 빨 듯 쪽쪽 빨아 당겼다.
그렇게 서로의 입술이 맞물린 채, 설왕설래까지 이뤄지며 진한 키스 씬을 계속 찍고 있을 때, 대표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민혜주가 내 입에서 자기 입을 떼고는,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여기다 사인하면 돼?”
“어? 어어. 그래. 거기 사인하든, 도장 가져와서면 찍든 하면 돼.”
“요즘 누가 도장 가지고 다녀. 펜 좀.”
“어어. 여기.”
나는 내가 좀 전까지 결재할 때 썼던 몽블랑 만년필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그 만년필을 익숙하게 펜대를 돌려서, 빼낸 펜촉 부분으로 부드럽게 필기를 했다.
“오오. 만년필 좀 쓸 줄 아네.”
그걸 보고 내가 감탄하자, 그녀가 일필휘지로 계약서에 자기 사인을 한 후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작가셨거든. 그래서 어릴 때부터 펜글씨를 배웠지.”
그러고 보니 민혜주의 글씨체가 어른스럽달 까? 하지만 보기 좋은 글씨였다.
그 뒤 민혜주와는 10분 정도 여담을 가졌다.
“미안. 오늘은 좀 바쁘네.”
“바쁘면 좋지. 나도 5시까지 연습장 가야 돼. 레슨 잡혀 있거든.”
“알바?”
“뭐 그런 셈이지. 돈은 안 받지만.”
보아하니 민혜주는 인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봐 줘야 하는 사람들, 골프 가르치러 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주말까진 바쁠 거 같아. 주말에 시간 되면 가까운 서울CC라도 가도록 하자.”
“나야 좋지. 그럼 연락 줘.”
민혜주는 내 스케줄에 맞춰서 대표실을 나갔고, 잠시 뒤 김 비서가 또 다시 서류 더미를 들고 나타났다.
그 서류를 40분 만에 다 해치우고 나자, 그제야 오늘의 하이라이트.
세 명의 배우들이 쭈뼛거리며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와요. 명석이형.”
나는 일부러 김명석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둘 사이의 친근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어. 그래. 준열아.”
대표실에 들어 올 때 잔뜩 굳어 있었던 김명석. 그는 내 반응에 비로소 환하게 웃으며 본래 쾌활한 김명석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앉으세요.”
나의 왼쪽과 오른 쪽에 각기 김명석과 최수현이 앉고, 최수현의 옆 자리에 하종미가 내 눈치를 보며,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그런 그녀에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정영석 촬영 감독과 저희 쪽 촬영부 직원 사이에 사소한 오해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도 영석씨 한데 들었어요.”
“그래서 그 오해는 풀렸나요?”
“네. 풀린 것으로 알아요.”
“그렇다면 하종미 배우님께서 저희 JYB엔터의 가족이 되어 주실 수 있으시겠네요?”
“그, 그건 좀....”
내 말에 영 곤란해 하며 슬쩍 김명석에게 눈치를 주는 하종미.
그러자 김명석이 그녀 대신 내게 말했다.
“준열아. 그 외 그날 밤에 네가 약속했던, 영석이 너희 회사에 넣어주기로 한 거 말이야....”
“아아. 정 감독님도 오셨어요?”
“그이는 오늘 촬영이 있어서....”
“그럼 오늘 사인하시고, 우리 식구 되신 다음에 남편 분 손잡고 언제든 오세요. 그때 정 감독 저희 촬영부에서 일할 수 있게 해드릴 테니까요.”
사실상 대표가 자리를 약속하고 있었다.
100% 채용 된 거나 마찬가지니, 김명석과 최수현 모두 기뻐하며 축하의 말을 하종미에게 건넸다.
“종미야. 축하해.”
“축하해요. 누나.”
“고마워. 고맙습니다. 대표님.”
그녀는 일부러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남편을 채용해 주기로 약속한 나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자아. 그럼 이제 진짜 계약만 남았네요.”
나는 이미 준비 되어 있던 3부의 계약서를 그 세 배우들에게 건넸다.
* * *
민혜주 프로골퍼와는 달리 3명의 배우들은, 비교적 꼼꼼하게 내가 내 민 계약서를 살폈다.
특히 최수현은 김명석과 하종미가 한 번 확인한 계약서에 만족해 할 때, 한 번 더 계약서를 살펴보는 꼼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떻습니까?”
계약서는 표준 계약서에서 배우들에게 좀 더 유리하게 내가 손을 보게 한 것으로, 요즘 이런 식으로 계약해 주는 매니지먼트나 연애기획사는 드물었다.
그걸 김명석과 하종미 같은 노련한 배우들이 모를 리 없었다.
“저는 좋아요.”
그때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대답을 김명석이나 하종미가 아닌 다른 최수현이 꺼냈다.
그러면서 고백, 아니 자백을 했다.
“죄송한데 여기 오기 전 카이스트로에 들렀습니다.”
“뭐?”
김명석이 깜짝 놀라며 흘깃 내 눈치를 보았다.
이곳 대표로 어쩌면 경쟁사 일 수 있는 카이로스트에 최수현이 먼저 들렀다는 건, 그의 기분을 충분히 상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최수현의 얘기를 듣고 싶어 침묵했고, 그는 내가 바라는 대로마저 하던 얘기를 이어나갔다.
“오늘 아침 일찍 그쪽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래서 사실대로 얘기했죠. 그랬더니 그럼 자기들부터 좀 보자고, 어째든 자기들이 먼저 저를 찜하지 않았냐며....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최수현은 최대한 좋게 말하는 거지, 카이스트로 놈들이 협박 비슷한 걸 그에게 했을 거란 건, 여기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았다.
“그래서요?”
나는 그의 말이 흥미 진지하다는 듯 양손 깍지를 끼며, 그에게 계속 얘기 할 것을 종용했다.
“오늘 오전에 카이스트로에 갔죠. 거기 관계자가 그러더라고요. 배우들에게는 자기들처럼 전문 매니지먼트사가 필요하다고요. 또 대우 역시 자기들이 나을 거라고. 그러면서 제시한 조건들이....여기 있는 조건들과 비슷했어요. 단....계약 기간과 정산비율에서 차이가 좀 나네요. 그쪽은 7년, 35%였는데 여긴 4년, 40%네요. 그쪽에서 분명 그랬거든요. 업계에 이렇게 후 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그런데 그런 경우가 있네요. 여기에.”
오늘 김 비서가 내게 가져온 계약서에는 원래 계약기간이 7년, 30%였다.
그 외 자잘한 조건들 중에, 합리적이지 못한 것들도 꽤 있었고.
나는 그 세 명의 배우들이 반드시 대박 칠 것을 알기에, 그들과 좀 더 끈끈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길 원했다.
그러려면 이쪽에서 먼저 마음의 문을 여는 게 맞았다.
비록 초반에는 소속사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말이다.
해서 과감히 그들 계약 기간을 3년 줄여서 4년으로 했고, 업계 중견스타들에게 제시한다는 40%의 정산비율을 적용한 거다.
그렇게 계약서를 확 뜯어 고친 나를 보고, 황당해 하던 김 비서의 얼굴이 불쑥 생각났다.
“나도 사실 놀랐어. 네가 이런 계약서를 제시할 거라고는 말이야.”
“저도 그래요. 요즘 저희 같은 무명 배우들에게 이런 파격적인 조건은 사실 말도 안 되는 거거든요.”
하종미의 말에 동감하는 지 김명석과 최수현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아. 계약서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신 모양이신데. 그럼 이제 남은 거 마저 하실까요?”
내가 말한 남은 게 뭐겠나?
세 사람 모두 기분 좋게 자기들 계약서에 서명날인을 했다.
그걸 보고 흡족하게 웃던 내게, 김 비서가 다가와서 쪽지 하나를 건넸다.
확인하니 이들 말고, 내가 오늘 직접 계약한 임수지 작가가, 전화 좀 부탁한다는 메모였다.
나는 세 사람이 한 계약서를 수거해서 김 비서에게 넘긴 후,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실제로도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나는, 대표실 안에 프라이버시가 잘 보장 될 거 같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먼저 보고 손을 씻은 뒤, 핸드폰을 꺼내서 임수지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그럼 퇴근 후 거기서 뵙도록 하죠.”
임수지 작가와 통화를 끝낸 뒤, 나는 그녀가 지금 있다는 성동병원의 위치를 검색해 봤다.
다행히 남소라의 집이 있는 남영동 빌라로 가는 길에, 성동병원에 잠깐 들르면 될 거 같았다.
오늘은 서울의 내 애견 엘베를 만나는 날이다.
더불어 그 집에 같이 살고 있는 남소라도 보고 말이다.
엘베의 상태는 이미 남소라 집 가사도우미를 통해, 아까 오전에 전화로 보고를 받은 상황.
아무래도 엘베의 나이가 많다보니,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단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남소라가 그런 걸 알 리 없었고.
결국 엘베는 내가 데려다가 키워야 할 거 같았다.
사실 나이 많은 개의 경우 동물병원 데려가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이전 삶의 나도 한 번 경험 한 바니까 잘 안다.
그때 내가 키운 강아지는 포메라니안으로 17년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그러니까 녀석이 17살이었을 때, 그냥 앓으면서 누워만 있고 먹은 건 다 토했다.
동물병원 갔더니 딴 데 가라고 하고, 그렇게 뺑뺑이 돌다가 겨우 사정해서 영양제만 받아가지고 왔는데, 더 이상 나아지는 건 없었다.
사실 17년 동안 강아지 키운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보내는 것도 처음이라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안락사를 시키려니 너무 무책임 한 거 같고, 또 후회될 거 같고. 또 이대로 아픈 채로 보내려니 얘가 너무 아프게 가서 후회할 거 같고.
노견 하나 보낼 준비하기가 당시 많이 힘들었었다. 그때였다.
-디링! 견신이 당신의 애견심에 감격했습니다. 개지수 10포인트 지급합니다.
‘쩌업. 뭘 또....’
그때 나에게 큰 위안과 위로가 되어 주었던 내 애견 홍자야.
고마웠다는 말만 했지 이 말을 못했다. 사랑한다. 아니 사랑했다.
-디링! 견신이 당신의 애견심에 애잔해 하십니다. 개지수 10포인트 지급합니다.
우리 견신님 이제 보니 마음이 많이 여리시네. 혹시나 견신의 감성을 한 번 더 자극해 봤더니 역시나 였다.
‘주신 개지수는 감사히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견신님. 왈왈왈왈~’
견신 덕분에 화장실에서 나올 때, 내 입 꼬리가 아주 귀에 걸렸다.
더불어 누군가 나를 위해 이렇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헌신적으로 퍼 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 얼마나 마음 한편이 따듯해지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런 존재가 다들 있을 거다. 바로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존재가 없었던 백준열이, 좀 애잔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새끼 소리를 듣고 여태 살았나 싶었고.
뭐 지금은 내가 있고 또 견신이 날 잘 봐 주시니까.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립니다. 견신님.
-디링! 견신이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