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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8화 (6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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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백승렬 회장은 몸 만 탐하던 자신의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경영 쪽으로도 얘기가 통하는 염미연을, 늘 가까이 두고 아꼈다고 한다.

하지만 몸이 약한 염미연은, 백준열이 5살 때 급사하고 말았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든 게 비밀로 붙여졌고, 유일한 혈육이었던 여동생에게도 조차, 백승렬 회장은 알려주지 않았다.

한데 대외적으로 그녀 죽음은, 약물과다복용으로 알려졌다.

우울증이 심했는데 간병이가 실수로 약통을 흘렸고, 그걸 주운 염미연이 그 약물을 과다 복용해서, 결국 쇼크사 했단 거다.

언니의 죽음을 두고 이모는 말했다.

언니가 외조부를 죽인 배후의 세력에 대해, 뭔가 알아 낸 게 분명하다고.

그 때문에 그들이 언니를 제거 한 것이고, 너의 부친은 그걸 알면서도 수수방관한 게 분명하다고.

이모에게 그 말을 들은 백준열의 충격은 이루어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엇나간 삶을 살게 된 건지 모르겠다.

물론 그것이 티 나지 않게, 자신의 본심을 철저히 숨기면서 말이다.

“복수를 하려면 백승렬 회장이 가진 그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백승 회장에게 잘 보이려고, 그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했고. 유학가란 말에 미국에 가서 MBA과정까지 밟고 귀국하고 말이야.”

백준열이 백승렬 회장의 지시에 그렇게 맹목적으로 따랐던 이유를 이제야 알 거 같았다.

지금으로도 백준열은 충분히 부자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CEO인데, 왜 굳이 삼명그룹으로 들어가지 못해, 그 난리를 쳤는지도 말이다.

=뭔 자기 얘기를 남 얘기 하듯 해?

“뭐?”

=너 복수에 미친 건, 오직 나만 알고 있는 일인 걸. 아아. 그리고 너한테 꼭 알려 줘야 할 게 있어

“그게 뭔데?”

=일단 생각나는 건 세 가지야. 몇 가지가 더 있는 데, 나이가 많다보니 기억이 오락가락 하네. 생각나면 나머지도 알려 줄게. 우선 첫 번째는 내 어미가 그랬는데....너희 본가 지하실에 격벽이 있데. 그 안 바닥에 흙을 파내면, 거기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다고 했어.

“뭐? 다이아몬드?”

무슨 삼명家의 본가가 보물섬도 아니고, 그런 게 지하실에 숨겨져 있다는 게 영 신빙성 없이 들렸던 것이다.

내가 기가 찬다는 듯 엘베를 쳐다보자, 녀석이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어미가 확실하게 그랬어. 자기 주인이 어미를 데리고, 지하실에 들어가서 손으로 직접 흙을 파내고, 그 안에 다가 그 다이아몬드를 직접 묻는 걸 봤다고.

“근데 엘베 너는 그게 왜 지금까지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야 그때 어미의 주인은 치매 환자였거든.

“뭐?”

=내 어미의 주인은....바로 네 할머니셨단 말이다.

그러니까 엘베의 어미 개가, 내 할머니의 애완견이었단 거다.

그러고 보니 엘베의 어미 개도 그렇고, 엘베도 역시 내가 본가에서 데려 나오기 전까지 ‘쭈욱’ 본가에서 살아 온 애완견들이었다.

고로 본가에 아무나 모르는 비밀 같은 걸, 엘베가 알고 있을 가능성은 확실히 높긴 했다.

“대에박!”

그렇다면 진짜 본가 지하실에, 다이아몬드가 묻혀 있을 가능성 역시 충분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라고, 다 같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다.

금도 불순물이 얼마냐, 포함되었느냐, 중량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듯이, 다이아몬드도 중량, 즉 캐럿에 따라 가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내 그 생각을 읽은 듯 엘베가 말했다.

=내 어미 말에 따르면, 자기 이빨만한 다이아몬드가 10개쯤 되고, 나머지는 자잘 한데 그 개수가 200개는 됨직한 다고 했어.

“뭐? 200개? 그리고 내 어미 이빨이면....”

=지금의 내 이빨 정도 되겠지.

그 말 후 엘베가 내게 보란 듯, 자신의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어휴. 10캐럿은 됨직한데?”

더불어 엘베 어미가 말한 자잘한 다이아몬드는, 2캐럿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본가 지하실에 10캐럿 다이아몬드가, 10개에 2캐럿 다이아몬드가 200개가 숨겨져 있단 거다.

“그게 다 얼마치야?”

나는 다이아몬드 시세가 궁금해서, 김 비서에게 문자를 보냈다. 늦어도 30분 안에 답 문자가 올 거다.

내가 아는 한 다이아몬드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는 크게 4가지다.

중량을 나타내는 캐럿, 투명도를 나타내는 클라리티, 다이아몬드의 색상 즉 칼라, 그리고 가공을 나타내는 컷.

이 네 가지가 모두 영어 알파벳 C로 시작해서 4C라고 부른다.

“1캐럿이 10부 다이아몬드지 아마. 0.2g정도 나가고 직경으로 65mm 정도 된다던가?”

미국에 있을 때 백준열이 여자 하나 꼬시겠다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알기로 중상급 2캐럿 다이아몬드가, 한화로 3천 5백 정도 했다.

하지만 상급은 무려 6천만 원.

만약 나의 치매 걸린 할머니가 숨긴 2캐럿 다이아몬드가, 상급이라면 120억은 된다는 얘기.

거기다 10캐럿 다이아몬드 역시 상급이면, 대략 100만 달러 정도 된다고 봤을 때 이것 역시 120억.

“합이 240억이네.”

이전의 나였다면 놀라 턱이 빠질 금액이지만, 백준열에게는 마포에 있는 그의 소유 빌딩 한 채 가격에 불과했다.

다이아몬드는 비록 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충분히 환금성은 뛰어난 녀석이다.

현금 240억은 결코 우습게 볼 돈은 아닌 거다.

엘베가 알려 준 정보 하나에 240억을 챙길 수 있게 된 나로서는, 녀석이 내게 할 나머지 두 가지 얘기도 자연스럽게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 * *

나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삼명그룹 초대 회장이신 백선엽은, 사업 뿐 아니라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 중에 특히 그림 쪽으로. 그래서 한국에서 최초의 현대식 갤러리도 만드셨다.

그런데 그 부인이자 내 할머니가 되시는, 유지선 여사님도 보석 쪽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 중에서 환금성이 뛰어난 다이아몬드를, 그렇게 많이 모아두었다니 말이다.

그것 말고 또 돈 될 만한 게 있으면, 엘베가 말해 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할아버지이신 백선엽 회장님은 백준열이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백준열이 8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가 기억하기로 치매에 걸린 채 5년 정도 사셨으니까, 그의 머릿속에 남은 할머니에 대한 유년시절 기억은, 제정신이 아닌 할머니뿐이었다.

=두 번째로 내가 너에게 알려 줄 것은....바로....지연이는 백 회장 딸이 아니야. 그러니 네 누나도 아닌 거지.

“뭐라고?”

이건 좀 충격적이다. 삼명호텔 백지연 CEO가 백승렬 회장의 친자가 아니라니 말이다.

“이, 이걸 아버지는 몰라?”

=당연히 알지.

“아아....”

그제야 왜 백승렬 회장이, 그 일 잘하고 똑똑한 백지연을 그룹 후계자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지 알 거 같았다.

아무리 유능해도 그룹의 계열사 사장까지는 몰라도, 그룹을 맡고 이끌어 갈 회장자리에, 자기 씨가 아닌 자식을 올릴 수는 없었던 거다.

나야 백승렬 회장과 현 사모님인 서지현 사이에 무슨 밀약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건 순전히 두 사람, 즉 부부의 일이니까.

하지만 백지연CEO가 내 누나가 아니란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특히 내 몸이 그걸 받아드리는데, 상당한 거부 반응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엘베도, 측은한 얼굴로 날 보며 말했다.

=그래도 본가에서 널 유일하게 인간 취급 해 준 지연이었으니. 충격이 크겠지만 받아 드릴 건 받아드려야 한다.

“알, 알았어.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내게 해 줄 말이 뭔데?”

=너희 본가 집사있지?“최 집사님?”

=어. 그 인간 금도그룹 사람이다.

“뭐?”

삼명그룹과 함께 21세기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는 쌍두마차 중 한 곳이 바로 금도그룹이었다.

재계 서열은 5위지만 삼명그룹과 겹치는 계열사가 워낙 많다보니, 삼명에 치여 늘 2인자 취급 받고 있는 금도그룹.

하지만 전자에서 시작해서 화학, 유통에서 금도그룹은, 항시 삼명그룹을 위협하는 선의의 경쟁사였다.

근데 여기서 선의를 붙이는 건, 금도그룹과 선명그룹이 알고 보면, 은근 결혼으로 이어진 혼맥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가문 모두, 회장 직계 혈족끼리는 아직 이어지진 않았다.

다들 방계에서 이뤄진 혼맥이지만, 그 혼맥 덕분에 두 그룹 간 트러블이 생겨도, 대화와 타협으로 잘 무마시키며, 두 그룹 모두 명실 공히 대한민국 최고 그룹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한데 알고 보니 금도그룹에서 삼명家의 내부에, 그것도 가장 핵심 인사를 첩자로 심어 뒀다니.

아마 이 사실은 백승렬 회장이 안다면 기함, 아니 뒷목을 잡고 쓰러질 수도 있었다.

그 만큼 백승렬 회장에게 있어, 본가의 최 집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대단했으니까.

실제로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백승렬 회장은 세 아들이 있는 자리에서 조차, 최 집사가 아들 셋 보다 낫다고 한 적도 있었다.

놀라운 건 이런 짓까지 저지르며, 어떡하든 삼명그룹을 잡아보려는 금도그룹이건만, 미래에도 결국 금도그룹은 삼명그룹과의 스마트 폰 경쟁에서 패하고, 그쪽 사업을 아예 접고 만다.

뭐 여전히 가전 쪽으로야, 탄탄한 입지를 자랑하지만 진짜 돈 되는 스마트폰 경쟁에서 밀려 난 것으로, 금도그룹은 순식간에 재계 서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어째든 백승렬 회장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패가 두 개나 생겼다.

왜 숨기고 있는지 모르지만, 백 회장이 뻐꾸기 알을 언제까지 자기 둥지에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인지 그것 역시도 궁금했다.

뻐꾸기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다른 새의 둥지를 유심히 보아 두었다가, 그 새가 알을 낳으면 그 중 하나를 자기 알과 바꾸어 놓는다고 한다.

그 새는 둥지에 뻐꾸기의 알이 있는지도 모르고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 뻐꾸기는 다리가 튼튼하고 활동적이어서, 둥지 안의 아직 부화되지 않은 알들을 뒷발질하거나, 그것들을 등에 업어 하나씩 둥지 밖으로 밀쳐내어, 땅에 떨어뜨려 버린다.

결국 새끼 뻐꾸기 혼자 둥지에서 양육을 받게 되는데, 그것도 모르고 어미 새는 그 뻐꾸기 새끼가 자기 새끼인 줄 알고, 언제나 먹이 주기 바쁘다.

식욕이 좋아서 뻐꾸기 새끼는 잘 처먹고, 빠르게 성장해서 힘도 세지고 깃털도 풍성해지면, 훌쩍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물론 백승렬 회장은 그 어리석은 어미 새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세 아들 역시 뻐꾸기 새끼에게 밀쳐져, 땅에 떨어지는 부화 되지 않은 알들도 아니고.

하지만 백지연 CEO는 확실한 뻐꾸기 알에서 부화한 뻐꾸기 새끼다. 둥지를 다 차지하려고 지금도 노력 중인.

단지 어미 새가 보통 어미 새가 아니라서,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오히려 작게 준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뻐꾸기 새끼는 적은 모이를 먹고,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왜 어미 새가 다른 새끼들보다 크고 힘도 좋은 자신에게 오히려 모이를 작게 주는 지,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아 하며 말이다.

=아아. 힘드네. 오늘 너무 말을 많이 했나 봐. 나 좀 쉬어야겠어.

우리 인간 나이로 치면 90살에 가까운 엘베였다.

오랜만에 보는 나 때문에, 오늘 확실히 무리를 한 거 같았다.

“간식 좀 줄까?”

=먹어봐야 다 토할 거야. 귀찮아.

“뭐?”

그 말은 아까 내가 준 불고기도....

소파 위에 힘없이 축 늘어진 채 눈을 감는 엘베.

그런 녀석을 내가 안쓰럽게 쳐다 볼 때였다.

갑자기 엘베가 몸을 일으키더니, 거실 창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왈왈왈왈~”

그래서 내가 거실 창 쪽을 쳐다봤더니....

“허억!”

웬 창백한 얼굴의 여자가 창밖에 거꾸로 매달려서는,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우씨. 저 여자는 뭐야?”

기겁한 내가 한 말에 엘베가 바로 대답해 주었다.

=아까 말했잖아? 윗집에 원귀가 산다고.

* * *

원귀라...

원귀는 생전에 요절, 객사, 횡사 등으로, 원한이 남아 저승에 들어가지 못한 영혼을 말하는데, 대개 인간을 괴롭히는 악령이다.

하긴 억울하게 죽은 마당에 인간에게 친절한 원귀란 게 더 우스운 소리겠지.

엘베가 짖어서 사라진 건지 모르지만, 거실 창밖에 그 원귀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이 집에도 나타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긴 했다.

내가 원래부터 귀신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고, 또 간이 작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귀신을 자주 보는 건 사양이다.

그런 내 심중을 읽은 것일까?

엘베가 말했다.

=지박령이라 집 밖으로는 못 나와.

지박령은 특정한 지역에 머물고 있으면서,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는 영혼을 일컫는 말이다.

“그럼 좀 전에 그건 뭔데?”

분명 아래 층 창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나?

=그야 그 집에 한 다리 걸치고 그런 거잖아.

“아아. 그래서 거꾸로 매달려 있었던 건가?”

근데 그게 더 무섭다.

뭐 아무튼 견신 시스템 때문에 귀신을 볼 수 있게는 되었지만, 나는 아직 귀신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지이잉!

그때 내 핸드폰에 살짝 진동이 왔다. 바로 확인에 들어가니 김 비서의 답 문자.

“어디 보자.”

나는 김 비서가 보내 준 문서파일을 바로 확인했다.

금도 불순물이 얼마나 포함 되었느냐, 중량이 얼마냐 되느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 되듯이, 다이아몬드도 마찬가지. 앞서 말한 4C에 따라 그 가격 격차가 진짜 컸다.

“그러니까 다이아몬드는 무색 등급에 E, F, G 칼라가 가장 환금성이 좋다는 거네?”

예상 가격은 내가 아까 백준열의 기억에 의존해서 추론 해 내 봤었던 그 가격에 근접했다.

그러니까 본가 지하실에 숨겨 진, 그 다이아몬드가 상급 다이아몬드라고 봤을 때, 현 시가는 대략 270억 정도 받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응?”

그때였다. 갑자기 위층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엘베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저 미친년 또 노래 부르네.

“노래?”

=어. 원귀 년이 죽기 전 뮤지컬 배우였잖아. 아아. 맞다. 너도 알겠네. 채설아라고.

“뭐? 채설아!”

당연히 알지.

대한민국 1세대 뮤지컬 배우 중 가장 높은 인지도와 티켓 파워를 갖고 있는, 뮤지컬계의 여왕. 채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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