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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정말 재미있는 얘기를, 진짜 지루하고 따분하게 말하는, 특별한 인간을 나는 지금 여기서 보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양태석이 그런 인간인 걸 알고 있으니, 내가 알아서 듣고 해석하면 됐다.
“그러니까 그 놈들은 모처로 옮겨놨고, 그 여자도 우리 회사 경호팀에서, 지금 보호하고 있다는 거군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후 조치는,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정하셔야 할 거 같아서, 이렇게 찾아오게 됐습니다.”
“전화로 해도 될 일을 굳이....”
“아아. 그렇군요.”
양태석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물론 이 일련의 사태를 전화로 얘기해도 되긴 했다.
하지만 안 그래도 답답한 양태석이, 행여 전화로 이 일을 잘도 설명했겠다.
결국 답답한 내가, 따로 알아보게 지시를 내렸겠지.
어차피 그 일을 본 사람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일단 강간마 전두철이든, 그 아비 서울 시의원 전경일이건, 놈들이 나에 대해서 알아도 별 상관은 없다.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현재 내 위치에서 얼마든지 커버가 가능하니까.
하지만 모기 두 마리가, 웽웽 거리는 데 그걸 그냥 내버려 두고 있기는 시끄럽기도 하고, 또 두 마리에게 물리기라도 해 봐라.
이 얼마나 간지럽고 짜증스럽겠나?
그러니 그런 일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게, 사전에 미리 에프킬라 좀 뿌리면 될 일이었다.
“그 아가씨가 지금 우리 회사에 있단 거죠?”
“네. 보시겠습니까?”
어째 그 여자 얘기가 나오자, 양태석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지금 그 여자를 안 보면 안 될 거처럼 말이다.
“네. 데려와 보세요. 그리고 김 비서는 대검 반부패부에 전화해서, 나재석 검사를 찾아 서울시의원 전경일에 대해, 내가 좀 궁금해 한다고 전하도록.”
“대검 감찰국장실이 아니라요?”
“닭 잡는데 무슨 소 잡는 칼을 써? 칼은 반부패부의 평검사 하나로 충분 해.”
저번 검찰과의 회식에서 특히 나에게 잘 보이려 노력한 나재석 검사다.
그라면 내가 넌지시 알아봐 달란 일을 악착같이 팔 거다.
어째든 이번 일의 에프킬라는 검찰이 될 것이다.
그것도 공직자들이 제일 성가셔 하는, 반부패부에서 나서면 전경일 같이 노회하고, 약삭빠른 정치꾼은 눈치 깔 거다.
곧 그를 향해 검찰이 에프킬라를 뿌려 될 거란 걸 말이다.
이제 그와 그의 아들이 죽고 사는 건, 오롯이 그의 결정에 달렸다.
지금이라도 에프킬라를 피해 창밖으로 달아날지.
아니면 에프킬라에 맞더라도, 끝까지 나를 성가시게 굴던지 말이다.
아마 후자를 선택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일단 에프킬라에 맞으면, 회복 불능 상태가 될 테니 말이다.
내 생각에 전경일 같이 약은 놈이라면, 에프킬라를 뿌리지 말아달라고 내게 애원할 거 같다.
문제는 전경일이 아니라 그 아들 녀석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 아들놈이, 덜컥 실수라도 저지르면 그때는 어쩌나?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 죽여 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다냐고.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뭐 따지고 보면,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모르는 여자 하나와, 건설사 실질적 오너에다가 서울시의원.
누가 봐도 후자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아마 예전 백준열이라면, 아무래도 써 먹을 데가 많은 건설사 실질적 오너에다가 서울시의원인 전경일을 선택했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그 여자에게도, 자신을 변호할 기회 정도는 줘야하지 않겠나?
해서 나는 이 바쁜 와중에도 잠깐, 그 여자를 만나 보기로 했다.
양태석은 곧바로 그 여자를 데리러 나갔고, 그 동안 나는 김 비서가 가져 온 백차를 마시면서, 이제 하나 남은 서류를 느긋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 * *
박혜지는 3개월 전인가?
JYB엔터 쪽 꽤 높은 분에게서,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분이 여태 박혜지의 기억에 남은 것은, 바로 그분이....여자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분이 남자였다면, 여느 연예 기획사처럼 그녀는, 그 명함을 휴지통에 던져 버렸을 거다.
하지만 그분 명함은, 특별히 박혜지가 따로 챙겨 뒀었다.
그녀가 그렇게 까지 한 것은, 당시 그분의 그녀에게 한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네. JYB엔터 경영기획지원팀장, 차은석!”
그녀 목소리가 살짝 컸을까?
JYB엔터 직원 휴게실에 있던 직원들도 그 소리를 들은 거 같았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박혜지 쪽으로 다가와서, 그녀에게 대 놓고 물었다.
“저희 차 팀장님 아세요?”
“네?”
“좀 전에 저희 팀장님 이름을 언급하셨잖아요?”
“아아. 전에 그분께서 저한테, 이 명함을 주셨거든요.”
박혜지는 멋모르고 차은석에게 받았던 명함을, 그 직원 앞에 내 보였다.
그 직원은 차은석이란 이름이 적힌, 확실한 JYB엔터 경영기획지원팀장의 명함을 보고, 박혜지에게 또 물었다.
“그래서 지금 저희 팀장님 보러 온 거예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박혜지는 그 직원의 물음에, 지금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다.
그 강간마 녀석이 사람까지 풀어서, 기어코 자신을 잡으려 한 것을 말이다.
만약 호텔에서 자신을 구해 줬던 그 아저씨가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니면 뭔데요?”
근데 그 직원이 끈질긴 데가 있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진달 까?
“네?”
당황한 빛이 역력한 박혜지의 얼굴.
하지만 그 직원은, 절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지금 뭐하는 거죠?”
근처 박혜지를 지키고 있던 경호팀원이 나섰다.
그러자 그 직원은 힐끗 그 경호팀원을 보고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자기 목에 걸고 있던 사원증을 내보이며 말했다.
“저 경영기획지원팀 조하나 대리에요.”
하지만 그 사원증을 본 경호팀원이, 뚱한 얼굴로 조하나 대리를 보고 말했다.
“그래서요?”
“아니. 지, 지금 이 태도는 뭐죠? 당신 경호팀 누구야?”
조하나 대리가 자신의 직급으로, 그 경호팀원을 누르려 하자, 같이 있던 경호팀원 중 하나가 그녀에게 말했다.
“우린 지금 대표님 지시를 따르고 있습니다. 조하나 대리님. 지금 이러시는 거 대표님께 직보해도 될까요?”
“뭐요? 대, 대표님?”
대표님이란 말에, 조하나의 동공이 확장되더니 빠르게 눈알을 굴렸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중요한 손님과 미팅 시간이 다 됐네.”
자신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시늉을 하던 조하나 대리.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직원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그걸 보고 피식 웃으며, 좀 전 대표님 운운했던 경호팀원이 박혜지에게 말했다.
“어디를 가나 저런 기회주의자는 꼭 있는 법이죠.”
“아네....”
그 말이 그래도 박혜지에게는, 위로가 된 모양이었다.
좀 전에 당황했던 박혜지의 얼굴은,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때 그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직원 하나가 조용히 직원 휴게실을 나섰고, 휴게실 밖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팀장님은? 그래? 바로 갈게.”
그 직원은 통화를 끝내자마자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고, 마침 위로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있어, 그걸 잡아타고 자신이 일하는 경영기획지원팀이 있는 5층으로 향했다.
“팀장님!”
그 직원은 경영기획지원팀 사무실 안쪽, 팀장의 부스가 있는 쪽으로 쪼르르 걸어가며, 부스 안에 있던 경영기획지원팀장 차은석을 찾았다.
“왜?”
그때 차은석은 자신의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원래 그녀는 JYB엔터가 아닌 ‘나인포스’라는 연예 기획사에 다녔었다.
그곳이 JYB엔터에 인수합병 되면서, 그녀도 JYB엔터에서 일하게 되었고, 원래부터 능력이 있었던 그녀는 승승장구, 불과 1년 만에 팀장의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너무 잘 난 탓일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결국 여기저기서 그녀를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하면서, 어쩌다가 재수 없게 백준열 대표 눈 밖에 나 버렸다.
이미 사직서는 그녀의 직속 상사인 배운철 상무에게 제출 한 상태.
사표 수리까지는 이제 대표의 결정만이 남았는데, 그녀를 자르겠다고 직접 얘기까지 한 백준열 대표였다.
당연히 오늘 결재를 할 것이고, 그녀는 내일부터 백수 신세가 확정 된 거나 진배없었다.
“뭐하세요?”
그녀 부스 가까이 다가 온 직원이, 짐을 싸고 있는 그녀를 보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
“뭐하긴. 보면 몰라?”
“하아. 기어이 일 내셨군요? 그래. 배 상무가 팀장님 사표를 수리하던가요?”
“어어. 아주 좋아하던데?”
“개새끼!”
“야아. 말조심해.”
그 직원이 걱정 된 듯, 차은석이 사무실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다행히 다들 바빠선지, 아니면 들어도 못들은 척 해 주는 건지, 그 직원에 말에 반응을 보이는 직원은, 적어도 사무실 안에는 없었다.
“근데 왜 온 거야?”
“그게 좀 전 휴게실에서....”
직원의 설명을 유심히 듣던 차은석.
“그러니까 딱 봐도 여배우 포스를 팍팍 풍기는 젊은 여자가, 내 명함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그때였다. 직원 휴게실에서 애꿎은 박혜지를 몰아붙였던, 그 조하나 대리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를 보고 차은석과 얘기 중이었던 직원이, 벌레라도 씹은 얼굴로 말했다.
“저 여우같은 조대리가, 그녀를 어찌나 닦달하던지....”
그때 누가 자기 말을 하는 지 눈치라도 챈 듯,차은석과 그 직원이 있는 쪽을 쳐다보는 조하나 대리.
그녀가 피식거리며 인사도 않고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래도 자기가 속한 경영기획지원팀의 팀장이 짐을 싸는 데, 최소한의 예의라는 게 있지 말이다.
“조 대리?”
이때 같은 사무실, 팀장의 부스와 반대 부스에서 누가 조하나 대리를 불렀다.
“네에. 과장님. 가요.”
조하나 대리가 벌떡 일어나서 화사하게 웃으며, 눈썹이 휘날리도록 그쪽 부스로, 빠르게 걸어갔다.
차은석 팀장이 그만 두면, 여기 팀장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한 경영기획지원팀의 박영수 과장.
차 팀장과 달리 유들유들한 성격에, 위에 아부 잘하기로 유명한 그는, 오늘 앓던 이가 빠진 거 같아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좀 전에 그 얘기는 뭐야?”
조하나 대리가 자기 부스로 다가오자, 박 과장이 바로 물었다.
“그게 좀 전 휴게실에서....”
조하나 대리도 차은석 팀장에게 직원 휴게실에서, 그녀가 만난 박혜지 얘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차 팀장과 연관이 있단 거네?”
“그렇다니까요. 근데 왜 경호팀에서 그 여자를 감싸고도는지 모르겠단 말이죠.”
“경호팀원이 그랬다며? 대표님 지시에 따르고 있다고.”
“그랬죠. 그런데....”
“아아. 됐어. 대표님과 관여 된 일은 가급적 끼지 말라고 하신, 배 상무님 말씀 벌써 잊었어?”
“그, 그렇기는 한데....”
뭔가 불길한 느낌이 계속 들어선지, 조하나 대리가 께름칙해하고 있을 때였다.
“퇴근하고 한 잔 어때?”
아직 인사 발령도 나지 않았는데, 설레발을 떨고 있는 박 과장.
그런 그를 보고 조하나 대리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저야 좋죠.”
“저번에 갔었던 일식집 있지? 거기 분위기 좋더라.”
그 말은 그 일식집 예약을 하란 소리다. 그것도 퇴근시간 다 되어가서.
조하나 대리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내일이면 팀장이 될 것이 유력한 박 과장 앞에서, 차마 그걸 티내지는 못했다.
“네. 예약 해 둘게요.”
웃으며 대답한 조하나 대리는 ,뒤돌아서 곧장 자기 자리로 향했다.
하지만 좀 전 박 과장 앞에서 지어 보였던 그 웃음 대신, 그녀 얼굴에는 경멸의 빛이 역력히 서려 있었다.
* * *
차은석은 직원의 말을 곱씹으며 그 직원이 휴게실에서 봤다는, 가만있어도 여배우 포스가 팍팍 풍겼다는 그 여자가 누군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아! 석 달 전에 봤었던, 알고 보니 서울에 있는 연예 기획사들이 다들, 노리고 있다던 그 여대 퀸카 말이네. 이름이....그래. 박혜지! 그녀야. 그녀가 왔어!”
드디어 박혜지를 알아 낸 차은석. 하지만 신나 했던 그녀의 얼굴은 이내 씁쓸함만이 맴돌 뿐이었다.
이제 여기서 나가는데, 박혜지가 온들 무슨 소용이겠나?
“하아....”
차은석은 괜히 오늘 사표 냈나 싶었다.
박혜지가 만약 자신을 보러 여기 온 거라면, 그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하고 나서, 이 회사를 나가도 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차은석은 지금이라도 배 상무에게 가서, 사표 수리를 며칠만이라도 뒤로 미뤄 달라고 부탁을 해 볼까 하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줄 위인도 아니었고, 그러기에는 차은석도 자존심이 너무 강했다.
‘그래. 어차피 옮길 회사. 옮긴 뒤에 박혜지를 그 회사로 부르자.’
그렇게 결심을 굳힌 차은석이, 여전히 자기 옆에 있는 직원을 보고 물었다.
“그 여자분 아직 휴게실에 있어?”
“네. 제가 거기 나오기 전까지 있었으니까. 지금도 거기 있을 가능성이 높죠.”
“알았어.”
차은석은 짐을 싸다가 말고, 경영기획지원팀을 나와서 곧바로 1층에 있는, 직원 휴게실로 향했다.
“응?”
그런데 휴게실 안에는 좀 전 그 직원이 말한, 경호팀원들도, 박혜지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차은석은 휴게실 매점 직원에게 박혜지에 대해 물었다.
마침 그 직원이 남자였기에, 박혜지를 바로 알아봤다.
“아아. 그 미인분요. 그 아가씨는 양 기사님이 오셔서 데려 갔는데.”
여기서 양 기사란 백준열 대표의 운전기사를 말했다.
하지만 JYB엔터 직원들은, 그 양 기사가 서울 최대 조폭조직의 넘버 2로, 얼마나 무서운 인간인지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건 차은석도 마찬가지고.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죠?”
“아뇨. 대표실 데려 가신댔어요.”
“대표실이요?”
차은석은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하필이면 대표실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