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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두 국개의원을 옭아 맬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동영상이 찍힌 핸드폰 2개.
그걸 손에 쥐고서 내가 느낀 건, 이딴 걸 내가 왜 챙겼을까 하는 후회와, 이걸 내가 계속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었다.
우선 나는 「개목걸이」아이템이 있다.
이걸 쓰면 어차피 두 국개의원의 약점 따위야, 얼마든지 캐낼 수 있었다. 개진상 동영상 말고도 말이다.
즉 좀 전과 같은 연기를, 내가 굳이 할 필요도 없었던 거다.
그리고 그 덕에 나는 이전 생에서 내가 썼었던 핸드폰 보다, 더럽게 무거운 핸드폰 두 개를, 직접 챙겨서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됐다.
이런 건 누구에게도 맡길 수가 없다.
그 사람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안 믿는다.
그게 개새끼 백준열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조심성을, 나는 존중하는 편이고.
“에이 씨....”
그래도 막상 핸드폰 두 개를 바지 호주머니 속에 넣으니, 바지가 축 쳐지는 게 영 핏이 안 산다.
‘이럴 때 인벤토리(Inventory)나 아공간 주머니라도 있으면....가만....그래! 인벤토리!’
상태창이 있는데 왜 인벤토리가 없겠나?
‘인벤토리’(Inventory)는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획득한 각종 아이템이나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를 말한다.
견신이나 견신 시스템은, 분명 나를 유저라고 했었다.
인벤토리가 곧 유저가 소유한 아이템을 비롯해,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를 뜻하는 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상태창에 인벤토리 항목도 있어야 맞는 거 아닐까?
내가 조심스럽게 그런 의문을 견신 시스템에게 제기하자, 견신 시스템이 바로 대답을 내놨다.
-상태창에 표시 되는 항목 자체에, 바로 인벤토리 항목이 포함 되어 있는 시스템입니다. 즉 능력 아이템은 상태창의 항목에, 그대로 표시 되면서 보관이 됩니다. 단지 물질 아이템의 경우는, 본 시스템에서 무료 제공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료 제공?’
-그렇습니다. 물질 아이템의 경우 ‘과금’하거나 ‘포인트’로 구입하셔야 합니다.
‘그, 그러니까 그 말은 지금 나보고 물질 아이템을 돈 주고 사거나, 개고생해서 힘들게 미션을 완수 해 모은, 그 포인트로 사라는 거냐?’
-Exactly!
뭐야! 이 시스템?
지금까지 견신이 선물한 시스템이라며, 내가 개처럼 살 수 있게 조력자로써, 다양한 꿀 팁들을 선사 해 줄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언텍트 코치 서비스 시스템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내 돈과 노력으로, 물질 아이템을 팔아먹겠다는 거잖아?
여태 견신을 고맙게 여겼는데 이거 순....
-디링! 견신이 오해라고 합니다.
‘오해는 무슨!’
-디링! 이는 시스템의 오류라고 합니다. 급하게 게임 시스템을 차용하다보니, 과금 정보 제공에서 오류가 생겨 난 것으로 보인 다네요. 문제는 이걸 고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소비 될 거라며....
‘잠깐!’
그때였다. 나의, 아니 백준열의 나쁜 쪽으로는, 기막히게 잘 돌아가는 천재적인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러니까 지금 돈으로, 아이템을 살 수 있다는 거잖아?’
근데 나는 돈이 무지하게 많다.
벌려면 또 엄청나게 더 벌수도 있고.
내게는 미래의 지식이 있으니까.
‘견신님. 지금의 시스템 오류는 이대로 묻고 가시죠.’
-디링! 견신이 의아해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당신에게 묻습니다.
‘그야 자본주의 불공평한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매순간 불의와 타협 하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 위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시스템의 과금 정보 제공이 그리 문제 될 것은 없다는....’
나는 한 동안 견신을 설득하기 위해, 별 그럴 듯한 개소리를 다 늘어놨다.
-디링! 견신이 일단 알겠다고 하십니다. 과금 정보 오류 문제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나서 결정하겠답니다.
‘오케이! 나이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재벌 3세다.
거기다 국내 최고 엔터테이먼트社의 대표이기도 하고, 블랙머니라는 투자 회사의 CEO에, 빌딩 재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울에 많은 건물에다 집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나에게 과금?
‘푸하하하....’
속으로 웃음이 났다.
Game Over다!
* * *
분위기 상 더 화유각에 머물 수가 없었다.
뭐 어째든 기분 좋게 화유각을 나서는 길이다.
내 바지 주머니에 핸드폰 두 개가 들어 있어, 움직일 때마다 출렁 댔지만 그래도 입가에 웃음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김훈 대표와 얘기가 잘 되어, 처리자 에이전시를 JYB엔터에서 인수합병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또 뜻하지 않은 행운이 두 개나 생겼다.
하나는 김 비서란 비슷한 성향의 정민지란 여자를 얻은 거고, 또 하나는 견신 시스템의 과금 정보 오류로 인한, 물질 아이템을 현금을 살 수 있게 된 점.
일이 잘 풀리니 행복 회로가 마구 돌아간다.
“룰루루루....”
입에서 절로 흥겨운 멜로디가 흥얼거려지고.
그때 내 눈에 양태석이 보였다.
“양 기사님. 아직 퇴근 안 했어요?”
기분 좋아 양태석에게 존대를 한다.
“네. 뭐 좀....”
어쩐 일로 양태석이 날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양태석 옆에 이곳 화유각의 사장이 서 있었다.
‘아아....’
나는 양태석이 날 보고 어색하게 웃음 지은 이유를 알아챘다.
아마도 내가 자기 형수를 구해 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든 걸 거다.
‘뭘 그 정도가지고....’
양태석이 날 위해 해 주는 거에 비하면 약소한 일이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고마운 마음 정도를 가져 주는 건, 앞으로 우리 관계에 있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럼 내일 봐요.”
“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양태석과 바이바이를 하고, 화유각 건물 밖으로 나오니, 경호팀원 중 한 명이 내 차를 입구 앞에 대 놓고 있었다.
“타시죠.”
문대식이 차 문을 열어 줄 때였다.
“대표님!”
누가 날 불러서 돌아보니 정민지다.
그녀가 내게로 다가오자, 경호팀원들이 나서 그녀를 제지하려 했다.
“놔 둬.”
내 그 말에 경호팀원들이 즉시 물러나고 정민지가, 나와 두어 걸음 거리까지 다가오자, 이번에는 문대식이 그 앞을 막아섰다.
“거기서 얘기 해.”
문대식은 이미 내게서 들어서, 내일부터 정민지가 내 근접 경호원으로 일하게 된 걸 알고 있었다.
문대식은 내 경호 책임자이니 당연히 알아야 할 일이고, 또 정민지도 따지고 보면 문대식 밑에 배치되는 셈이다.
물론 그 소속은 처리자 에이전시지만, 아마도 파견 형식으로 내 경호팀에 들어오는 형식이 취해지지 않을까 싶다.
한동안 문대식과 정민지의 기 싸움이 있었다.
나는 굳이 저 둘의 대치 국면을 풀어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람은 결국 부딪쳐봐야 알 수 있다.
특히 문대식과 정민지 같이 몸을 써야 하는 경호직의 경우는, 서로 안 부딪쳐보고는 제대로 된 합을 맞출 수는 없는 법이다.
그걸 두 사람 다 아는 모양이었다.
“내일 퇴근하면, 회사 체력 단련 실에서 잠깐 보도록 하지.”
“좋아요.”
먼저 얘기를 꺼낸 건 문대식이었고, 그에 대해 정민지는 바로 긍정적인 대답을 내 놓았다.
그러자 내 앞을 가리고 섰던, 문대식이 옆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마치 자신의 볼 일은 다 봤다는 듯.
그러면서 나와 정민지가 서로 마주보게 되었는데, 그때 정민지가 날 보고 말했다.
“물어 볼 게 많았는데....”
정민지가 말을 하다가 말고, 내 옆의 문대식을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어했다.
“실무적인 건 옆에 분에게 물어 보면 될 거 같고....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하며 꾸벅 머리를 숙이는 정민지.
그런 쿨한 그녀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하세요.”
그렇게 나 역시도 쿨하게 말 한 후 바로 차에 탔다.
그런 나를 정민지가 잠시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마치 이게 끝이냐? 뭐 더 없냐? 뭐 그런 의미의 눈빛이랄까?
개새끼 백준열이었다면, 아마 지금 정민지의 반응에 좋다며, 차에서 내려 그녀에게 치근덕댔겠지.
하지만 나는 인내심이 뭔지 아는 사람이다.
또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줄 알았고.
지금 나서는 건 정민지에게 내 이미지만 깎이는, 멍청한 짓이다.
나를 태운 차가 출발하고, 정민지는 한참을 그 자리에 넋 놓고 서 있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녀가 서 있는 자리에, 계속 그녀의 냄새가 진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이럴 때 냄새 잘 맡는 특기를 써먹어야지, 또 언제 써 먹나?
지이이이이이잉!
하지만 문대식이 차창을 올려 버리면서, 정민지의 냄새도 싹 사라졌다.
‘눈치 없는 새끼.’
나는 힐끗 문대식을 째려봤다.
하지만 곰탱이 같은 문대식은, 그런 내 눈총에도 끄덕도 않고 앞만 보고 있었다.
* * *
업무 압박에 시달리다 결국 목숨을 끊은 검사가 있을 정도로, 검사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물론 검사도 다 같은 급의 검사는 아니다.
서울중앙지검.
서울고등검찰청 산하 지방검찰청으로, 검찰의 중심이자 칼날로 불리는 전국에서 가장 큰 지방검찰청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의 관할 사건이 되는 경우가 흔한 이곳에서도, 반부패수사 제1부, 검사 나재석.
그는 오늘도 부장 검사에게 그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업무가 과중해도, 밤새서 일하라고 검사를 임명하고, 비싼 월급을 주는 거란 그 말말이다.
하지만 나재석은 출세하기 위해서 여기 들어왔지, 밤새 일하러 온 건 아니었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에, 또 반부패부에 들어오기 위해서, 여태 해 온 개고생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한데 정작 여기서 일에 치어, 진짜 죽을 지경에 처했다.
이게 다 자신의 상사인 반부패부장 때문이었다.
무슨 일을 못 시켜 환장한 사람이랄까?
그런데 자기 살 길은 또 귀신같이 잘 찾았다.
또 부하의 공을 가로채는, 그런 파렴치한 상사도 아니었고.
그래서 그 밑에 검사들은 갈려 나가면서, 그를 욕해도 원망은 하지 않았다.
“하아. 이거 또 11시 퇴근인가?”
그래도 저번 주까지는 10시 퇴근 했었다.
한데 일이 더 늘면서, 아무래도 한 시간 더 일할 시간을 늘려야 할 거 같았다.
“검사님. JYB엔터 대표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는데요?”
“어디라고요?”
“JYB엔터 대표 비서실요.”
“JYB엔터? 헉! JYB엔터라고! 빨, 빨리 바꿔요.”
좀 전까지 일에 치여 축 늘어져 있었던 나재석 검사.
그가 에너자이저라도 몸에 꽂았는지, 다시 생생해져서는 수사관이 돌려주는 전화를 급히 받았다.
“네. 나재석 검삽니다. 네. 네. 네? 누구요? 서울시의원 전경일. 네. 아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네. 조사해 보고 연락은 어디로? 아아. 대표님께 직접이요? 알겠습니다.”
저번에 자신과 친한 선배 부장 검사와 같이,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재벌 3세이자 현 JYB엔터 대표인 백준열.
그가 드디어 자신의 떡밥 낚시에 반응을 보여 왔다. 그렇다면....
“김 수사관님. 지금 수사자료 다 내일로 미뤄요.”
“네?”
“우린 지금부터 서울시의원 전경일. 그 자만 팝니다.”
이게 뭔 개소리냐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미적대는, 자기 방 수사관을 보고 나재석 검사가 말했다.
“김 수사관님도 떡고물 좀 챙기셔야죠?”
나재석 검사의 떡고물이란 말에 김 수사관의 눈빛이 싹 돌변했다.
“떡고물이요?”
나재석 검사는 자기 방 실무관이 관심을 보이자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JYB엔터는 아시죠?”
“네. 뭐 국내 탑 급 연예 기획사 아닙니까?”
“그럼 거기 대표가 재벌 3세, 그것도 삼명그룹 막내아들이라는 것도 아시겠네요?”
“아, 아뇨. 그것 까지는....”
“이거 잘 하면 저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타는 겁니다. 그 엘리베이터에 김 수사관님도 같이 타셔야죠?”
“뭐, 뭐하라고 하셨죠?”
그렇게 반부패수사 제1부 나재석 검사실에서, 서울 시의원 전경일에 대한 사찰이 시작 되었다.
* * *
당내 국회의원 지역구 공천 받는 일로, 온통 정신이 그쪽에 가 있는 현 서울시의원 전경일.
하지만 자신의 소유인 경일건설 일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어째든 그의 정치 자금은, 전부 경일건설에서 나오고 있었으니까.
한데 며칠 전 아들 녀석이, 린치를 당해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아들을 그렇게 개 패듯 팬 놈을 반드시 찾아내라고, 신구미파 보스에게 언성까지 높인 전경일.
하지만 그놈 찾는 일은 지지부진한 가운데, 경일 건설 주주총회가 열렸다.
전경일은 자기 대신 등기이사에 올라 있는, 자신의 아들 전두철을 주주총회에 보내서, 주요 의사결정에 거수를 하게 만들었다.
그런 일도 못한다면,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아들이었다.
근데 그 아들 녀석이, 자신이 맞을 때 호텔 방에 같이 있었던 여자를 찾았단다.
당연히 녀석은 그 여자를 잡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녀석을 경호하던 신구미파 조직원 셋이 실종 되는 일이 벌어졌다.
신구미파는 발칵 뒤집어졌고, 전경일도 이때는 따로 뭔 말을 해서, 괜히 신구미파 보스를 자극하는 짓을 피했다.
그런데 여당 공천심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어렵게 모신 자리.
“부위원장님. 요놈 한번 드셔 보십시오. 제주도에서 바로 공수해 온 다금바리 입니다.”
“오오. 이게 바로 돈 주고도 못 사먹는다는, 그 제주 다금바리로군. 어디....”
“맛이 어떠십니까? 입에서 살살 녹지 않습니까?”
“오오! 진짜야. 정말 입 안에서 살살 녹는구먼. 하하하하.”
“더 드십시오. 제가 양껏 준비해 뒀으니까요.”
“전 의원도 좀 들어요.”
“저야 부위원장님께서 맛있게 드시는 걸 보는 건만으로도, 벌써 배가 터질 지경입니다. 하하하하.”
모레 있을 공천 면접 때 덕을 좀 보려고, 전경일은 여당 공천심사위원회 부위원장 옆에 붙어 열심히 아부를 해댔다.
그 아부가 먹힌 듯 부위원장의 얼굴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