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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상무님. 엘리베이터 왔습니다.”
그때 그의 딸랑이인 총무부장이, 엘리베이터 쪽에서 그를 향해 소릴 질렀다.
“어어. 잠깐만 기다려 가니까.”
핸드폰을 한 손에 쥔 채, 배운철은 안 그래도 투실한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그 사이 주위 눈치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배운철의 일행들은 계속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었다.
상사의 뻔뻔함을 그 일행들이 답습이라도 한 것일까?
“크음.”
배운철은 당연하다는 듯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섰고, 전혀 미안한 얼굴이 아니었다.
대신 엘리베이터 안을 휙 둘러보며, 누가 감히 자신에게 불만을 표출하나 살폈다.
그런 그의 눈길을 엘리베이터 안의 다른 직원들은 피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다들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배운철은 직원들의 그 침묵하는 분노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것들은 겁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불만을 공론화 하는 것도 못하는 천치 새끼들이었으니까.
이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대부분 5층에서 내렸는데, 배운철 상무와 그 일행 몇 명만 6층과 7층에서 내렸다.
배운철 상무는 7층에서 총무부장과 같이 내렸는데, 상무실 앞에 감사부장과 함께 경영전략총괄본부장이 같이 있었다.
감사부장이야 배운철 보다 직위가 밑이지만, 경영전략총괄본부장은 JYB엔터에서 직위가 전무급으로, 배운철의 상사였다.
“아이고. 우리 회사에서 제일 바쁘신 감사부장과 본부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능청스럽게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가는 배운철.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배운철의 반응에, 한 사람은 다소 어이없다는 얼굴 표정을 지어보였고, 다른 한 사람은 대 놓고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경영전략총괄본부장은 싸늘한 얼굴에다가 살벌한 어조로 배운철을 질타하며 말했다.
“배 상무. 당신 대체 얼마를 해 처먹은 거야?”
아주 대놓고 배운철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경영전략총괄본부장의 말에 사람 좋게 웃고 있던, 배운철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면서 그의 본색이 여실히 드러났다.
“장 본부장님. 그 말이 좀 심하시네.”
“뭐, 뭐?”
“해 처먹다니? 증거 있어? 있냐고?”
당연히 배운철의 횡령, 배임, 직권남용에 대한 증거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건 그가 직접 관리하고 있었으니까.
그걸 누가 알았다면 그 즉시 배운철에게 보고가 들어와야 했다.
그러려고 배운철이 자기를 따르는 일파를 만든 것이고.
그 일파에서 배신을 하는 건 또한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다단계처럼 누구하나 배신하지 못하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잘 엮어 놨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감사부장이 나섰다.
“배 상무님. 안 그래도 상무님의 횡령 및 배임 행위에 대한 제보가 들어 왔습니다. 감사실로 가셔서 그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합니다만.”
“뭐, 뭐라고?”
배운철로서는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횡령과 배임이라니? 누가 그걸 제보한단 말인가?
“이거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모함해? 가자. 가.”
하지만 배운철은 끝까지 당당했다.
왜냐하면 그가 횡령과 배임했다는 증거가, 저들에게 있을 리 없었으니까.
제보도 결국 추측에 불과할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앞장서서 감사실로 향한 배운철. 그런 그 앞에 감사팀에서 제시한 증거를 보고 배운철은 기가 찼다.
“이, 이게 뭐야? 남평조명 사장과 일식집에서 같이 저녁 먹은 게 뭐가 문제란 건데?”
“보십시오. 식비가 100만원이나 넘게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상무님이 접대와 향응을 받았다는 증거 아닙니까?”
“뭐, 뭐라고?”
배운철은 기가 찼다. 배운철 앞에 막상 감사팀이 제시한 증거들은 다들 잔잔바리들이었다.
많게는 수백, 적게는 20-30만원 상당의 술자리나 식사자리.
이 정도는 배운철이 아니라, 다른 임원들도 하도급 업체에 공공연히 받고 있는 대접이었다.
하지만 그 대접의 글의 앞뒤만 바뀌면, 그게 접대가 된다는 사실을 배운철은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배운철은 밑에 사람들에게서 뭔가를 뜯어내는 걸, 너무도 당연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배운철은 자신이 왜, 지금 감사팀에 이딴 걸로 추궁을 받는지 그걸 도통 이해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습성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여기 앨범제작사인 대운기업에서, 향응과 접대를 받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때 감사팀에서 비장의 카드로 내 놓은 것은, 바로 저번 주에 있었던 새로 데뷔 할 걸 그룹의 앨범제작사와의 미팅 때, 배운철이 접대를 받은 증거들이었다.
바로 오늘 배운철이 받아서 없애기로 한, 그 증거들이 왜 감사팀의 손에 가 있단 말인가?
‘아뿔사....’
순간 배운철의 뇌리에 떠 오른 인물이 있었다. 바로 오늘 점심 때, 그의 심기를 건드린 김 대리.
그 김대리가 하필 앨범제작사와의 미팅 때, 증거 자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김 대리를 내친 건 바로 자신이었고.
‘하필....’
이건 빼박이었다.
앨범 제작 시 안무와 노래 레슨비, 곡비, 녹음(편곡·세션 포함)실비, CD프레싱비, 재킷 촬영비, 뮤직비디오 촬영비, 코디 등 인건비는 당연히 후불제로 처리한다.
그게 연예계 관행이다.
하지만 JYB엔터에서는 이걸 선불 처리해 왔는데, 이걸 배운철이 중간에서 악용한 것이다.
선불로 앨범 제작비를 주는 대신, 제박비의 10%를 자신이 챙기는....
그야말로 명백한 횡령이었다.
“하아....좋아. 대표님을 만나게 해 줘.”
이렇게 된 이상 백준열 대표와 얘기를 해야 할 거 같았다.
만약 JYB엔터에서 자신에게 횡령죄를 묻겠다면, 배운철도 그냥 순순히 그 죄를 인정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폭탄 몇 개는 JYB엔터에 투척해 줄 생각이었다.
아마 그 폭발이면 JYB엔터가 뿌리째 흔들릴 것이다.
“안 그래도 대표님께서 올라오시랍니다.”
감사부장이 그 말 후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걸 보고 배운철도 따라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대표실로 향했다.
* * *
백준열은 한 직원이 회사에 대해 너무 많은 걸아는 늘 경계해 왔다.
그래서 주요 보직의 경우, 1년 이상 앉혀 놓지 않았다.
그런 백준열이 너무 방심한 걸까?
배운철이란 쓰레기를 너무 오래, 한 자리에 앉혀 놓았다.
그 자리가 별로 중요한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인간의 신체에서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듯이,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중요하지 않은 곳이라도 그곳이 썩어 들어가면, 그 여파는 결국 주요 부서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걸 놓친 탓에 막상 배운철과 그 일파를 쳐 내는 일이, 아무래도 내 기대만큼 깔끔하게 처리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쯧쯧쯧....”
배운철을 쳐 낼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그를 응징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다는 얘기다.
그랬다가는 JYB엔터까지 위험해 질 수 있었다.
배운철의 비리와 JYB엔터가, 제법 많이 얽히고설켜 있었던 것.
한마디로 배운철을 내 상식선에서 잘라 내는 건, 어렵게 됐다는 말이다.
그 말은 배운철과 서로 합의 하에, 관계 청산을 해야 한다는 거다.
“배운철 상무 불러.”
점심 먹고 대표실에 와서, 바로 그런 불합리한 일 처리부터 해야 한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쩌랴.
이런 게 대표가 해야 할 일인 것을 말이다.
그걸 또 한 눈에 간파한 박인호 부 대표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나마 그런 기생충 같은 놈을 회사에서 내 보내는 게 어딥니까?”
“후후. 그러네요.”
물론 이대로 순순히 내 보내고 만다면, 그건 개새끼 백준열이 아니겠지.
백준열은 적어도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들을, 그냥 잘 먹고 잘 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랬기에 악명을 꾸준히 쌓아 온 것이고.
내게 있어 백준열의 악명은 늘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는데, 이럴 때는 또 그 악명이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뭔 지랄을 해도 그 악명을 넘어서진 못할 테니까. 뭐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달 까?
잠시 후 감사실에서 배운철 상무를 데리고 대표실을 찾아왔다.
나는 딱히 그를 대표실에서 마주하기 싫었다.
그래서 대표실 옆 회의실에서 그와 마주했다.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횡령과 배임, 직권남용 등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더불어 퇴직금까지 정상적으로 지불하도록 조치해 두었습니다.”
“으음. 그렇군요.”
배운철은 딱 봐도 JYB엔터에 더 남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려고 나를 만나려 한 걸 테고. 하지만 나는 저런 놈을 다시 내 회사에서 보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길게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고.
역시 눈치 빠른 배운철도 그걸 알았는지, 구질구질하게 나오진 않았다.
회사에서 법적으로 그를 처벌하지 않을 뿐 아니라, 퇴직금까지 지불하겠다는 건, 사실 많이 양보를 한 거다.
그걸 알기에 배운철도 그대로 두 손 털고 일어섰다.
“사직서 내고 자리 비우겠습니다. 오래 모시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습니다.”
‘나는 하나도 안 아쉽거든. 누구 회사 말아 먹을 일 있나?’
그 말이 훅 튀어 나올 뻔했다. 박인호 부대표의 말처럼 진짜 기생충 같은 놈이었다.
“데리고 나갈 직원 있으면 챙겨도 좋습니다.”
그 말은 너희 일파 챙겨서 나가란 소린데, 배운철이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배운철도 자기를 따르던 직원들이, 별 볼일 없는 자들이란 걸 알고 있었단 소리다.
배운철이 데리고 나간다고 했으면, 그 직원들도 그처럼 법적 처벌을 면제 받고, 퇴직금까지 챙길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배운철이 거절하면서, 그들의 운명 또한 바로 시궁창에 쳐 박힐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배운철에게 제대로 토사구팽 당한 것이다.
“왜요? 아까 보니까, 그들과 꽤 친하게 지내던 것처럼 보이던데?”
“친해요? 후후후후. 대표님도 다 아시면서, 순진한 척 하시긴. 도구는 도구일 뿐이죠. 뭐 그들도 그 동안 날 잘 이용해 먹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배 상무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전부 다 회사에서 법적 처리를 해도, 상관없는 걸로 알겠습니다.”
“뭐 대표님이 알아서 하십시오.”
배운철은 너무 쉽게 자신의 밑에 사람들을 버렸다.
하지만 그의 이런 결정이, 이후 그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칠지 그는 알지 못했다.
* * *
총무부장을 비롯해서 아까 배운철 상무와 같이 점심을 먹었던, 소위 배운철 일파가 대표의 부름을 받고, 대표실 옆에 회의실에 모였다.
대표실이 있는 8층에는 대표실 말고 회의실이 총 3개가 있었는데, 그 중 제 3회의실에 모인 그들 앞에, 오늘부로 JYB엔터의 부대표가 된 박인호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이 그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자, 배운철 상무 일파 직원들은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누군지 밝히자, 그들의 표정이며 자세가 싹 바뀌었다.
그럴 것이 그들 눈앞에 있는 사람이, JYB엔터의 2인자인 부대표라고 하니 말이다.
“다들 대표님이 왜 여기로 여러분을 불렀는지 의아할 겁니다. 그 궁금증을 바로 풀어 드리도록 하죠. 켜세요.”
박인호가 지시하자, 그와 같이 회의실에 들어 온 그의 비서로 보이는, 여직원이 회의실 안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TV를 켰다.
그러자 그 화면에 바로 옆 회의실에 있는, 백준열 대표와 배운철 상무의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회의실 스피커를 통해 배운철 상무 일파 직원들에게 똑똑히 들리기 시작했다.
“하아....”
“이런 씨....”
하지만 배운철 상무의 입이 열릴 때마다, 그의 일파 직원들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특히 그들을 회사에서 법적 처리해도 좋냐는 물음에, 배운철 상무가 알아서 하란 대답을 했을 때는, 다들 격분해서 당장이라도 옆 회의실로 쳐들어 갈 기세였다.
하지만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회의실 안에는 백준열 대표의 경호팀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에 의해 바로 제지당한 그들에게 박인호가 나서서 말했다.
“다들 진정하고 앉아보세요.”
부대표의 말이었다. 그들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참으며, 다들 회의실 자리에 앉자 박인호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대표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굳이 법적 책임을 물으실 생각이 없으십니다. 더불어 퇴직금도 일괄 지급하라고 하셨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러시는 건, 여러분들이 배운철이란 인간에 대해 알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묻고 싶군요. 여러분은 배운철이 앞으로도 저런 식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걸 그냥 보고만 계실 겁니까?”
박인호의 그 말에 회의실 안에, 강렬한 적의가 들끓어 올랐다.
그때 박인호가 툭하니 던진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배 상무가 회사 외적으로도, 꽤나 해 먹은 걸로 아는데....”
“네. 작년에 하나로 기획과 반올림 스튜디오를 연결시켜 주면서, 중개비 명목으로 천만 원을 챙긴 것으로....”
“예건 하우징과 한솔 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녹음실 장비 구입 때, 장비 운송 업체 선정에 개입해서 중간에....”
“XXX작곡가에게 저희 JYB에서 부탁한 거처럼 해서, 다른 중소 기획사로 넘겨 챙긴 레슨비와 곡비가 꽤 많은 걸로....”
JYB엔터와 무관하게, 그 동안 배운철 상무가 저질러 온 비리들이, 그의 일파 직원들의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박인호는 차분히 그 정보들을 잘 취합해서, 파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파일은 보다 객관적인 증거를 찾아내기 위한 과정을 거쳐서, 조용히 검, 경으로 보내 질 예정이었다.
이후 배운철 상무가 먼저 짐을 빼서 회사를 나가고, 그 뒤를 그의 일파 직원들이 뒤따랐다.
JYB엔터는 그들에게 얘기한 대로, 그들 퇴직금을 이날 바로 일괄 지불하면서, 그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