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44화 (144/921)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서지현은 어제 갑자기 귀신 씌었는지 하동훈을 통해 백준열을 손보려 했던 게 무산 되자, 보다 더 직접적이고 빠른 방법으로 백준열에게 경고를 하러, 백씨 성을 쓰는 사람들이 매주 두 번 하는 아침 식사자리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를 백승렬 회장은 못 마땅하게 여기는 듯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그 백씨 성을 쓰는 사람들 중, 오직 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하아. 그래. 그 할 말이란 게 뭔데?”

백승렬 회장도 자기 자식들 말고 주위에 사용인들이 보고 있어선지, 자신의 법적인 와이프 서지현에게 더는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물었다.

그러자 서지현이 아주 대 놓고 말했다.

“너희들 잘 들어. 정치판에서 쓰는 가장 흔한 암살 방법이 바로 모략이야. 나는 너희들끼리 그런 중상모략을 써서, 서로를 비방하고 싸우는 걸 원치 않아. 그러니 다들 능력으로 증명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바란다.”

“뭐, 뭐?”

백승렬 회장은 서지현이 지금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차기 회장 자리를 두고, 이미 그룹 내에 물밑 경쟁이 시작 된, 백준경과 백준호는 서지현의 말에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서지현이 진짜 대 놓고 경고하고 싶어 한 그 주 대상, 즉 백준열은 그녀의 말이 가소로워서 코웃음을 쳤다. 물론 속으로.

당연히 그걸 티내게 할 리 없었다. 어째든 이 저택에 들어오기 전부터 마음가짐과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염두에 두고 있었던 백준열이었다.

서지현이 끼어들었다고, 그 자리에서 실수 같은 걸 할리 없었다.

“별 시답잖은 소리 다하고 있군. 할 말이 그게 다라면 나가!”

버럭 소리치지는 않았지만 백승렬 회장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여기서 그를 더 자극하면 서지현도 감당이 되지 않았기에,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녀를 백지연이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봤다.

아무래도 아침댓바람부터, 서지현이 백승렬 회장을 제대로 자극한 거 같아서 말이다.

“내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이만 가 볼게요. 백씨 집안사람들끼리 아침 맛있게 먹어요.”

누가 들어도 비꼬는 게 확실한 서지현은, 그 말 후 정말 뒤돌아서 주방을 나갔다.

그런 그녀를 잠시 어처구니없어 하며 쳐다보던 백승렬 회장이, 다시 자세를 고쳐 앉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이거야 원. 아침 밥상머리에서 여편네가 별 이상한 소리나 지껄이고. 집안 꼴 잘 돌아간다. 에이....”

백승렬 회장은 든 숟가락으로 국그릇의 국물을 몇 번 휘젓다가, 다시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숭늉 가져 와.”

밥맛 다 떨어졌다는 듯 숭늉부터 찾는 백승렬 회장.

하지만 백준열은 그가 그러던지 말든지 숟가락으로 제대로 밥을 퍼서, 갓 무친 얼가리겉저리를 그 위에 올린 뒤, 야무지게 입을 벌리고 입 안으로 그 숟가락을 쑤셔 넣었다.

“쩝쩝쩝....후루룩!”

그리곤 약간 슴슴하지만 깊은 맛이 나는 배추된장국을 떠먹었다.

그걸 보고 둘째 백준호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야! 넌 이 판국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 가냐?”

그 말에 꿀꺽 입안에 든 걸 삼킨 백준열이 말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럼 먹어야지. 그리고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어. 밥 먹기 싫으면 아버지처럼 그냥 숟가락 놔.”

“뭐, 뭐?”

“백준열!”

삼명가의 본가 저택에서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성역속의 인물이 바로 백승렬 회장이었다.

그리고 그 백 회장에게 어떡하든 잘 보여서, 후계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바로 백준경과 백준호였고.

물론 어제까지만 해도 거기에 백지연도 끼어 있었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이 뻐꾸기란 걸 알게 되고 나서는, 백씨 집안 남자들의 대화에 일체 끼어들지 않고 얌전히 앉아만 있었다.

좀 전에 백준열이 한 말은 명백한 실언이었다.

감히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 있는, 이 자리에서 숟가락 놔라는 소릴 한단 말인가?

당연히 장남인 백준경과 차남 백준호가 나서서 막내인 백준열을 꾸짖어서....

“됐다. 틀린 말도 아닌데 뭐.”

“....”

숭늉을 먹기 위해서 새로운 숟가락을 챙겨 든 백승렬 회장.

그가 툭하니 던진 그 말에 백준경도, 백준호도 백준열을 향해 하려던 모진 말을, 다들 자기 입안으로 도로 삼켜야만 했다.

* * *

백승렬 회장의 백준열에 대한 비호!

비호라는 건 말 그대로 편들어서 감싸 주고 보호하는 걸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적어도 백승렬 회장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여태 자기 아들 중, 아니 자식들 중 누구도 비호란 걸 해 준 적이 없는 사람이 바로 백승렬 회장이었으니까.

근데 저번 화요일 이후 고작 이틀 지났을 뿐인데, 백승렬 회장이 백준열을 감싸 돌고 있었다.

“밥 잘 먹는 준열이 건드리지 말고, 너희들도 어서 식사나 해.”

갑작스런 백승렬 회장의 백준열에 대한 비호. 이것이 시사 하는 바는 컸다.

두 유력했던 삼명그룹 후계자 후보 둘이 그대로 길바닥에 패대기쳐졌고, 가장 가망 없었던 후보가 강력한 후계자로 급부상했다.

그 과정을 백지연은 실시간으로 직접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왜냐하면....

“지연아. 다음 주부터, 이 자리에 나올 필요 없다.”

“네?”

“그 이유는 네가 더 잘 알거라고 본다.”

묵직한 백승렬 회장의 그 말에 내포하고 있는 말을, 그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백지연은 알 거 같았다.

뻐꾸기가 이제 둥지를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백준열의 말대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게 백준열의 의도대로 진행 되고 있었다.

백지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백준열을 향했다.

하지만 백준열은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아침 식사인 듯 게걸스럽게 먹는 데 집착하고 있었다.

그 사이 숭늉이 나왔고, 백승렬 회장도 백준열처럼 다른 데는 일고의 관심 없다는 듯, 숭늉 먹는 데만 집중했다.

반면 백준경과 백준호는 지금의 사태를 전혀 예상치 못한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백지연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가 앉은 이 자리가, 그녀 자리가 아닌 거 같아서 말이다.

“회장님. 먼저 일어나도 될 까요?”

“그래라.”

서운하게 백승렬 회장의 입에서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이 나왔다.

백지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백준열을 쳐다봤다. 백준열은 그런 그녀와 끝까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마치 뻐꾸기 따위에게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듯 말이다.

백지연도 더는 백준열을 보지 않았다. 왠지 이러는 자신이 구차해 보여서.

그녀는 곧장 주방을 빠져 나와, 자기 방으로 올라가서 출근을 준비했다.

다행히 삼명家의 식사 자리에서는 배제 당했지만, 그녀의 직장까지 잘린 건 아니었다.

탁!

숭늉을 다 먹은 백승렬 회장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식탁에 남은 백씨 성을 쓰는 세 아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백 회장이 진짜 할 말이 있으면 이 순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그의 버릇처럼 되었다.

“서초동 땅에 대한 소유권이, 오늘 중 너에게 넘어 갈 거다.”

백승렬 회장이 백준열을 보며 말했다.

“네. 뭐....”

한데 백준열은 그게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어째 반응이 떨떠름했다.

평소의 백 회장이라면 백준열의 그런 반응에 일갈하며 혼꾸멍을 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백 회장은 전혀 괘의치 않고 하던 말을 계속 했다.

“나는 거기 우리 삼명의 새로운 본사 사옥을 짓고 싶었다. 그걸 막내인 네가 해라.”

백승렬 회장의 그 말에 백준경과 백준호가 동시에 눈을 부릅뜨고 바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 백승렬 회장은 백준열에게 삼명 건설을 넘기려 하고 있었다.

본사 사옥을 짓는 다는 핑계로 말이다.

“아, 아버지!”

“아버지. 이건 아니죠.”

그러니 백준경과 백준호가 이렇게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 * *

삼명家 본가 저택에 들어가기 전에, 저 안에서 무슨 일이 터져도 절대 놀라거나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던 백준열.

나 역시 그런 그처럼 각오를 다지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는 핵폭탄 급 사태에 영 정신이 없다.

‘그래도 정신 차리자.’

막 아침 식사가 시작 되려 할 때 나타난 서지현 사모님. 그녀가 1차 핵폭탄을 터트렸다.

그 대상을 일단 자식들 전부인 것처럼 규정지었지만, 그녀는 나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자기 딸 백지연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서지현 사모님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백지연의 뻐꾸기 문제는 이미 백 회장도 알고 있었다.

백 회장은 백지연을 아침 식사자리에서 배제 시켜 버리면서, 그 문제를 간단히 해결 해 버렸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근데 진짜 핵폭탄을 백 회장이 터트렸다.

내게 주겠다고 한 그 서초동 땅에, 나보고 삼명그룹 본사 신사옥을 지으란 거다.

이건 맨 손으로 집을 지으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그게 다 무슨 소리겠는가? 나보고 삼명건설을 받으란 것이다.

삼명전자가 싫다니까 삼명건설을 떠넘기고 있었다.

‘영감탱이가 진짜 왜 이래?’

싫다는데 자꾸 삼명그룹으로 나를 끌어 들이려는 백승렬 회장. 하지만 지금 그의 말을 무작정 거스를 수는 없었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에서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게 설사 그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러니까 백승렬 회장이 서초동 땅에 삼명그룹 본사 신사옥을, 나보고 지으라고 했으면 지어야 한다는 소리다.

‘가만....’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맨 손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어제 인수한 경일 건설이 있지 않은가?

‘그래. 그러면 되겠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내 머릿속에 방금 떠올랐다.

나는 그 생각을 재빨리 정리한 후 그걸 말할 기회를 엿 봤다.

당연한 얘기지만 백승렬 회장이 내게 삼명건설을 우회적으로 넘기려 하자, 다른 두 아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전자에 이어서 이제 건설까지 준열이에게 주신다고요?”

“이러면 저희는 뭐가 됩니까?”

백승렬 회장은 팔짱을 낀 체, 묵묵히 두 아들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때 기회를 봐서 내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아버지!”

내가 말을 하자 백 회장이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막내 너의 생각을 말해 보거라.”

백 회장은 아직 끝나지 않은 두 아들의 말 따윈 생 까 버리고, 내게 또 우선적으로 말 할 기회를 주었다.

* * *

백승렬 회장은 나름 세 아들들이 공정한 경쟁을 벌이길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아들들의 이런 적극적인 견제에 대해 가타부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즉 그들에게는 이렇게 따질 권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백승렬 회장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백준열보다 훨씬 빨리 태어난 그들은 이미 많을 것을 가졌다. 그런데도 막내에게 뭘 좀 챙겨 준다고 이 난리다.

‘속 좁은 새끼들....’

그때였다. 백준열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백승렬 회장은 옳다구나 하며 백준열이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게 기회를 주었다.

“알겠습니다. 본사 신사옥 짓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백준열이 승낙하자, 백승렬 회장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그래. 하하하하.”

“백준열!”

“준열이 너 이 새끼....”

삼명건설을 막내 백준열이 혼자 다 먹겠다는데, 가만있을 백준경과 백준호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에게 막말을 막 퍼부으려는 데....

“하지만 삼명건설은 필요 없습니다.”

“뭐?”

백준열의 승낙에 만족해하며 미미한 미소를 짓고 있던 백승렬 회장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저한테 건설회사가 있으니 그 회사로 짓도록 하겠습니다.”

“너, 너한테 무슨 건설회사가 있어?”

“아직 미전실에서 보고 받지 못하신 모양이시네요. 경일건설이라고 어제 인수했습니다.”

“....”

경일건설이라면 백승렬 회장뿐만 아니라 백준경과 백준호도 알았다.

서울에서 관급 공사 쪽으로 수주를 많이 하기로 유명한 제법 건실한 건설사였다.

건설 도급 순위도 50위 안에는 들어가고 말이다.

“경일이라면 괜찮겠구나.”

비록 삼명건설만 못해도, 경일건설이 짓는다면 삼명그룹 본사 신사옥을 못 지을 것도 없었다.

“그러니 저한테 삼명건설 주실 필요 없습니다.”

단호하게 선을 긋는 백준열. 그런 그의 말에 두 아들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있었다.

‘저런 미욱한 놈들....’

하지만 그게 실제로는 그들에게 얼마나 마이너스가 되고 있는 지, 그들은 몰랐다.

원래 백승렬 회장의 심보가 이랬다. 주겠다는 데 안 받으면 열 받아서 더 챙겨 주는 스타일 말이다.

“그래. 니 뜻대로 해라. 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든 삼명건설에 얘기해라. 그래도 우리 그룹 본사 신사옥을 짓는데,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삼명그룹에서 그룹차원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데, 그것까지 백준열이 거절하지는 못할 거란 게 백승렬 회장의 생각이었다.

“네. 그럴게요.”

역시나 백준열은 그런 백승렬 회장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그 돕는다는 게 그냥 단순히 돕는 게 아닐 거란 거 까지 백준열은 알지 못했다.

‘후후후후. 급할 건 없지. 신사옥 짓는 동안, 내 건설 지분을 준열이에게 다 넘긴다.’

백승렬 회장은 아무리 봐도 막내 밖에 없었다. 저 욕심만 많은 두 머저리들에게 삼명그룹을 넘기는 게 영 가당찮게 느껴졌다.

‘일단 건설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 중공업의 지분을 넘겨야겠군.’

백승렬 회장은 사실 상 결정을 내렸다. 백준열을 후계자로 삼기로 말이다.

그러려면 이제부터 백준열이 후계자의 자격을 갖춰 주어야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동안 자기가, 다른 두 아들에게 준 지분이 너무 많았다.

그 지분만큼이나 그룹 내에서, 그 두 아들의 입지나 영향력도 너무 컸고.

그 두 아들 만큼 막내를 키워 주려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자기 지분을 백준열에게 넘겨야 했다.

정작 그 막내아들은, 그가 주려는 지분에 별 관심도 없는 데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