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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레스토랑 직원의 말에 정민지가 다소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 이번 달 들어 카드 처음 쓰는데....”
“혹시 카드 한도가 얼마신지요?”
“잘은 모르지만....처음 카드 만들 때 3-4천은 쓸 수 있다고 했는데....”
“저....오늘 식사비만 4천 7백만 원 나왔습니다.”
“네에?”
정민지는 사실 식사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 챙겨서, 내일 회사가면 처리 될 돈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녀 카드에 한도가 걸려 있었다.
원래 예금과 적금이 많은 그녀는 신용등급이 높았다.
그래서 카드 한도를 1억까지 늘릴 수 있었지만, 그녀는 은행에서 전화가 와도 바쁘다고 바로 끊어 버리고, 한도 늘리라고 해도 됐다고 했다.
크게 돈 쓸 일 없는 그녀다 보니, 카드 한도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거 어쩌지?”
정민지가 곤란해 할 때 에이미가 말했다.
“걱정 마. 언니. 우리에게는 그가 있잖아. 내가 마초맨, 아니 준열 대표님에게 전화 할게.”
그렇게 에이미가 식사비 문제로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TVM의 대표인 백준기는, 누가 자신과 비슷한 나이 대의 젊은 전문 경영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바로 백준열 때문이었다.
삼명家의 본가의 세 아들 중, 위로 둘은 백준기에 비해 그리 뛰어날 거 없는 녀석들로, 오히려 자신이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게, 대부분 가문 어르신들의 견해였다.
하지만 막내인 백준열 만큼은, 삼명家의 3세들 중에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미국에 유학 갈 때도 오로지 자기 실력으로 들어갔고, MBA(경영학석사)과정은 물론 박사까지 따 온 놈이었다.
거기다가 국내로 돌아와서는 하는 투자마다 성공을 거두며, 자기 스스로 일궈 낸 JYB엔터는 시가 총액이 2조를 넘기고 있었다.
그런 난 놈이다 보니, 그의 집에서 백준열과 백준기는 매번 비교의 대상이었고, 그로 인한 그가 받게 된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해서 백준기는 백준열이 무조건 싫었다. 그런 가운데 TVM을 맡게 된 백준기. 그는 바로 백준열과 그의 회사인 JYB엔터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에 백준열은, 백준기가 뭐라고 하든 말든 그냥 내버려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해야 하나?
실제 백준열은 백준기 따윈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TVM의 대표가 되고, 시시콜콜 그의 행보에 태클을 걸어대자, 이제는 신경 쓰이는 정도가 아니라,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지금의 백준열은 예전의 그 백준열이 아니었다.
그걸 전혀 모르는 백준기.
그는 오전에 그의 꼬붕으로 불리는, TVM 편성국장 편일수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뭐? 백준열이 그 새끼가 편 국장과의 미팅을 일방적으로 취소 해? 이거 봐라.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왔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방송국을 건드리면 어떻게 된다는 걸 깨닫게 해 줘야지.”
=그럼....
“우리 쪽 프로듀서들에게 다들 얘기해서, JYB엔터와 그쪽과 연관 있는 업체들의 연예인들 까지, 전부 다 보이콧 하라고 해.”
=연관 업체들의 연예인들까지 다요? 그러면 방송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이봐. 편 국장. 나도 그 정도는 알아. 하지만 놈이 싹싹 빌고 들어오게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걱정 마. 백준열이 내일 오전에 바로 당신 찾아 갈 테니까. 그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알지?”
=네. 최대한 면박주고 수모를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크하하하. 맞아. 그렇게만 해. 나머지는 내가 다 책임 질 테니까.”
대표가 다 책임진다니, TVM의 편성국장 편일수도 딱히 더 할 말이 없었는지, 몇 마디 더 얘기하다가 이내 통화를 끝냈다.
“백준열. 아직 어리구나. 그걸 못 참아서 방송국 편성 국장과의 약속을 펑크 내다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명분은 TVM에 있었고, 잘못한 JYB엔터 대표에 대해 얼마든지 갑질을 해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지상파니 공중파니 해도, 방송국은 방송국이었다.
끼리 논다고 방송국에 대드는 연예기획사를 반길, 방송국은 대한민국에 없었으니까.
이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방송사에서도, JYB엔터와 그 소속 연예인들을 좋게 봐주지는 않을 테니, 대표인 백준열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어째든 이 일을 수습하려 들 것이다.
그러니 내일 당장 자신이 실수 한 TVM의 편성국장 편일수를 찾을 것이고, 그때 제대로 된 수모를 겪게 될 것이었다.
“크하하하하. 내일은 일찍 출근해야겠군.”
평소 빨라도 10시 30분 쯤 출근하는 백준기였다.
하지만 내일은 편성국장 편일수 앞에서 쩔쩔매는, 백준열을 보기 위해서 10시 안에는 출근해야겠다고 백준기는 생각했다.
* * *
대표인 백준기와 통화 후 TVM 편성국장 편일수는 바로 혀를 찼다.
“쯧쯧쯧. 사촌끼리 이게 뭐하는 짓인지....”
비록 잘 먹고 잘 살려고 백준기의 꼬붕 노릇을 하고 있지만, 방송국 밥만 30년째 먹고 있는 편 일수였다.
자기 큰 아들 뻘인 백준열 대표를 앞에 두고 갈구는 게, 사실 그로서도 힘들었다.
너무 젊어서도 문제지만 어째든 백준열 대표는 삼명家 본가 출신이었다.
막내라 삼명家의 주인이 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본가 핏줄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분가 출신인 백준기에 비해서, 백준열 대표가 장래에 더 잘나갈 건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당장 편일수에게 중요한 사람은, 백준열 대표가 아니라 백준기였다.
어차피 10년 안에 편일수는 은퇴를 해야 할 것이고, 그때까지 그가 모셔야 할 사람은 백준기였으니까.
그 뒤에야 누가 잘나가던 무슨 상관인가? 해서 편일수는 백준기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다.
“촬영 중인 PD들에게 연락해서, JYB엔터와 그와 연관 된 업체들 연예인 싹 다 보이콧하라고 해.”
당연히 그 일을 국장인 그가 직접 할 필요는 없었다.
그 밑에 그 일을 해 줄 직원들은 넘쳐 났으니까.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시간 돼서 점심을 먹으러 나간 편일수.
그런 그에게 현장 PD들의 전화가 하나 둘씩 걸려 오기 시작했다.
=국장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음악 프로에 JYB엔터 애들 다 빼면, 무대에 설 애들 몇 없어요.
TVM에서 그나마 고정적으로 1%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음악천국’의 메인 PD가 전화해서 그가 내린 지시에 토를 달았다.
“나도 알아. 하지만 대표님의 지신데 어쩌겠어? 내일 풀릴 거니까 오늘은 딴 소속사 애들 위주로 사전녹화하고, 내일 JYB엔터 애들 찍어.”
=일단 알겠습니다. 하지만 내일도 이러면 저 회사 때려 칩니다.
꼴에 TVM의 간판 프로를 맡고 있다고, 간이 배밖으로 나온 ‘음악천국’의 메인 PD.
사실 그가 여기 그만 두고 나가면 받아 줄 곳은 몇 군데 없었다. 당연히 지상파 쪽은 명함도 못 내밀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일수가 ‘음악천국’의 메인 PD의 투정을 받아 주는 건, 그 만큼 TVM의 PD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내가 다 책임질게.”
그렇게 ‘음악천국’의 메인 PD와 통화를 끝내고, 마저 식사를 하려는 데 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드라마 제작 중인 곳의 PD였다.
“어어. 박PD. 아니야. 내일 풀리니까 오늘만 참아. 그래. 뭐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그래. 미안.”
사실 편일수가 현장 PD들에게 미안해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표의 지시를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편일수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아....밥 좀 먹자.”
이번에는 TVM스튜디오의 PD가 전화를 해 왔다. 신경질적으로 들었던 숟가락을 도로 내려놓으며 편일수가 짜증을 냈지만, 결국 그는 그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어. 민PD. 촬영이 중단 돼? 하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쉬어. 걱정 마. 내일은 찍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 나도 알아. 내일 분위기 안 좋겠지. 나도 좋아서 이러겠어? 알아. 알아. 이따 저녁에 한잔 하자. 어. 수고.”
그 뒤로 두 세통의 전화를 더 받고 나서야, 편일수는 겨우 남은 식사를 마저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 편일수는 몰랐다. 그가 TVM을 통째 뒤흔들, 대폭발의 뇌관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오늘도 일찍 퇴근한 김 비서. 그녀는 어제와 달리 집에서 빈둥거리지 않고, 곧장 학원을 찾았다.
바로 몸매 관리에 좋다는 필라테스 학원을 말이다.
마침 집 근처에 필라테스 학원이 있어서 퇴근길에 들렀는데, 오늘 바로 첫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학원 내에 필요한 요가 복이며 소도구들을 판매해서, 바로 그걸 구입한 김 비서.
김 비서 같은 직장인도 있었지만, 학생부터 시작해서 임산부까지, 그녀와 같이 필라테스 수업에 참석 한 사람들은 다양했다.
수업을 들으며 김 비서는 필라테스가 호흡이 중요하고, 상당한 근력 운동임을 알게 됐다.
또 몸을 비틀고 코어에 힘을 주게 되니까, 트림이나 방구가 자꾸 나오려 해서 힘들었다.
“후아....”
몇 가지 소도구를 가지고 강사가 알려 준 동작을 따라하던 김 비서.
몇 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이 축 늘어졌다. 해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그때 그녀 핸드폰이 막 진동을 했다.
지이이이잉!
혹시 몰라 필라테스 수업 중에도 핸드폰을 몰래 챙겨 다녔는데 그러길 잘한 거 같았다.
확인하니 매니저 사업부의 홍 부장의 전화였다.
JYB엔터의 소속 연예인들 외부 활동을 총괄하고 있는 홍 부장이 이렇게 김 비서에게 전화를 하는 일은 드물었다.
대신 홍 부장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JYB엔터에 대형 악재가 터졌을 공산이 컸다.
“여보세요?”
=김 비서. 나야 홍 부장.
“네. 부장님. 하아. 부장님 전화는 별로 안 받고 싶은데....”
=나도 김 비서한테 가급적이면 전화 안 하고 싶지. 하지만 어쩔 수 없네.
“무슨 일인데요?”
=TVM에서 우리 애들 보이콧 해. 근데 우리 애들 말고 우리 협력사 애들까지 다 막았나 봐.
그 말에 김 비서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녀 예상대로 백준열 대표가 TVM 편성국장 편일수와의 약속을 펑크 내자, 바로 TVM에서 그 보복에 들어 간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던 터라, 김 비서는 별로 놀라지 않고 홍 부장에게 말했다.
“대표님께 말씀 드려서 내일까지 그 문제 해결하도록 할게요.”
대한민국 방송, 연예 판에서 백준열 대표가 나서서 해결 안 될 일은 없었다.
그걸 잘 아는 홍 부장. 김 비서가 백준열을 언급하자 바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그렇게 해준다면 문제 될 건 없지. 알았어.
그렇게 홍 부장과 통화 후 김 비서는,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 사달을 일으킨 원흉인 백준열 대표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백준열 대표는 통화 중이었다. 그래서 10분 쯤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도 백준열이 여전히 통화 중이었고, 그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혜인 회원님!”
그때 그녀의 담당 강사가 그녀를 불렀다. 잠깐 물 먹으러 나간 회원이 20분이 넘어도 안 돌아오니 직접 찾아 온 것.
“네. 가요.”
별 수 없이 수업을 받으러 간 김 비서는, 30분 뒤에 수업을 끝마치고 나서야 백준열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제야 백준열이 그 전화를 받았다.
* * *
그 상대가 손진아만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딴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어디 한 두 개도 아니고. 그 중에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만 해도 열 손가락을 다 꼽아야 될 지경이었다. 그러니 차 안에서 이동 중에도,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렇지만 손진아를 보러 가는 지금은 다르다. 그것도 그냥 보러 가는 게 아니라....손진아와 오늘 밤에 같이 자러 가는 거잖아.
‘세상에 내가 손진아와 빠꾸리를 할 수 있다니....’
이미 백준열의 기억에 손진아와 한 섹스들이 다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손진아도 어제 내가 만났던 아나운서 출신 임연수처럼 그렇게 나를 싫어하진 않았다.
뭐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딱 필요에 의해서 그녀는 내게 몸을 주고, 나는 그녀의 뒤를 봐주는....스폰서 관계의 전형적인 모습이랄까?
그래도 늙은 스폰서보다, 나 같이 젊은 스폰서가 더 낫다는 게 손진아의 본심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손진아는 엄청 솔직한 여자였다.
해서 그녀를 관리하던 전 기획사 대표도 많이 힘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계약기간이 만료 되자마자, 그 기획사가 먼저 손진아와 계약을 연장하는 걸 포기한다고 공표해 버렸으니까. 그래서 지금 손진아는 일인 기획사를 차려서 활동 중이었다.
그냥 JYB엔터에 들어오라는, 백준열의 말에도 끄덕도 하지 않고 말이다.
‘하여튼 사람 말을 지독스럽게 안 듣는 군.’
그러면서 백준열의 기억 속에 손진아의 단점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선 그녀는 담배를 많이 피웠다. 또 술도 많이 마셨고.
나보다 어렸지만 말도 막 놨으며, 특히 백준열을 실망시킨 건 섹스 후 반응이었다.
“으음....그건 좀 깨네.”
섹스 할 때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끝나고 나면 그녀는 싸늘한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켜서 먼저 욕실로 가버렸다.
그 때문일까? 백준열은 사실 손진아를 자신의 여자에서 배제 할 것을 고심 중이었다.
좋자고 하는 빠구린데 하고 나서 매번 기분이 나빠지니 말이다.
손진아에 대한 진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그녀에 대한 기대감도 순식간에 급다운 됐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다.
그 중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바로 견신 시스템에 내게 준 미션을 마저 수행해서 개지수를 획득하는 거였다.
‘김 비서에게 그 달러들을 내 계좌로 넣으라고 했으니까, 이제 그 돈을 이제동의 아들 정철희 앞으로 10억, 나미혜의 부모님한테 10억을 보내면 미션을 완수하는 거지?’
내가 속으로 견신 시스템에게 묻자, 견신 시스템이 바로 대답을 했다.
-가능합니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미리 알아 둔 이제동의 아들 정철희의 보호자인 모친 정소미의 계좌로 10억을 보내고, 나미혜의 아버지 나국철의 계좌로 10억을 보냈다. 그러자 견신 시스템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원혼 이제동과 원혼 나미혜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각각 개지수 10포인트 씩 지급합니다.
하지만 한 번이 다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