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72화 (17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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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서울 관악구에서 상가 건물 두 채와 술 집 몇 곳을 운영 중인 최덕구.

그는 원래 서울 최대 조폭 조직인, 양은이파의 중간 간부였었다.

그러다 양은이파가 해체되고, 그 역시 은퇴 수순을 밟으면서 관악구에 정착을 하게 됐다.

현재 관악구는 태천파가 관리 중이었지만, 최덕구는 선배 예우를 받으며 여전히 잘 먹고 잘 살았다.

올해 54살인 최덕구는 누가 봐도 40대 초 중반으로 보일 정도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잘해오고 있었다. 실제 신체 나이도 40대 초반으로 나왔고, 매달 미용에만 수백만 원씩을 들였다.

그러니 얼굴도 관리한 만큼, 40대 초반의 중년 남성으로 보였다.

그런 그에게 최근 애인이 생겼다.

룸빵 호스티스들 말고, 드디어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여자가 말이다.

그것도 그보다 14살이나 어린 여자로 말이다.

근데 예쁘고 몸매도 죽여줬다. 그럴 것이 그녀는 배우였거든.

그것도 제법 잘 알려진 유명 배우 말이다.

그녀가 탑 스타로 주연 급 배우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최덕구에게 그녀를 만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테지.

올해 30살인 그녀의 이름은 이주희로, 최근 종영한 KVS주말 드라마의 여주인공의 여자 친구로 나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 드라마가 저번 주에 종영을 했고, 그걸 축하하는 의미로 최덕구는 오늘 이주희를 데리고, 그녀가 사는 곳의 한 백화점을 찾았다.

“아잉. 안 사줘도 되는 데....”

명품백과 명품 시계야 틈만 나면 사줬지만 유행이란 게 있지 않은가?

새로 들어 온 명품백이 갖고 싶었던 이주희는, 최덕구의 팔짱을 끼고 현동백화점 명품관을 찾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주희는 기분이 좋았다. 비록 옆에 남자가 그녀의 기대치에 한창 못 미치는 아저씨였지만, 그래도 이만한 호구도 없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몸을 대주면, 그녀가 원하는 건 그의 대부분 사주는 통 큰 남자였다.

자신에게 흠뻑 빠져서 물불 안 가리는 게 순진하달 까?

전직 조폭두목이라며 허세가 대단하신 분이신데, 그때 살짝 비위만 좀 맞춰주면 만사 오케이. 성격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고.

오히려 방송계에 일하는 사람들이 개 쓰레기들이지, 이런 동네 조폭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순수했다.

최덕구라는 이 아저씨도 마찬가지였고. 비록 나이는 50대지만 몸 관리를 워낙 잘하고, 남성의 상징물도 준수하게 큰 편이라, 섹스 할 때 아직까지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아직 달고 다니는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차도 찼을 남자였다.

이주희는 남녀 속궁합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였다.

제 아무리 매력적인 외모의 남자라도, 섹스를 해보고 별로라면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그 만큼 이주희에게 섹스는 중요한 퍼포먼스였고 사랑의 필수요소였다.

최근 드라마에 집중하느라 많이 굶주린 이주희.

그녀는 오늘 최덕구에게 최신 명품백을 선물 받고, 근사한 저녁 식사를 즐긴 후 곧장 호텔로 갈 예정이었다.

최덕구도 그걸 눈치 차린 듯 평소와 달리 조급해하고 흥분한 게 역력해 보였다.

“나는 그것도 좋은데....”

그래선지 이주희가 집어 드는 핸드백은 다 좋다는 최덕구.

실제로 이주희가 사 달라면 명품백을 10개라도 사줄 기세였다.

그렇게라도 빨리 명품백을 사주고, 이주희를 데리고 호텔 방에 들어가고 싶은 게, 지금 최덕구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우 이주희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오히려 시간을 끌며 최덕구를 더 달아오르게 만들었는데, 그때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이주희의 얼굴이 급격히 굳었다.

“왜 그래?”

그런 그녀를 보고 걱정스런 얼굴로 최덕구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응?”

“떨어져 있으라고요.”

이주희가 정색을 하며 말했고, 최덕구는 뻘쭘해 하며 그녀와 대여섯 걸음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그때 최덕구의 눈에도 보였다. 웬 늘씬한 미녀가 하늘색 쉬폰 롱 원피스 주름치마를 하늘거리며, 그들이 있는 곳을 스쳐 지나가는 걸 말이다.

최덕구는 자기도 모르게 그 미녀의 매력에 이끌려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어딜 봐욧!”

그때 이주희가 발끈해서 표독스럽게 외쳤다.

그 소리에 걸어가던 늘씬한 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주희 쪽을 쳐다봤다.

“주희 선배?”

그리고 황송하게도 먼저 아는 척을 해왔다.

“어어. 진아씨.”

이주희는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억지로 웃으며 그 미녀의 아는 척에, 자신도 아는 척을 했다.

“쇼핑하러 오셨나 봐요?”

“어. 그, 그래.”

그때 손진아의 시선이 이주희에게서 최덕구로 옮겨갔다.

그러더니 피식 웃으며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려서, 자기 갈 길을 계속 갔다.

그런 손진아의 반응에 이주희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 * *

이주희는 손진아보다 3살이 많았다.

데뷔도 2년 정도 더 빨랐고. 그래서 처음 손진아가 데뷔했을 때, 이주희에게 꼬박꼬박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었다.

그랬던 손진아가 데뷔와 동시에 떠버리면서 주연 급 배우가 되었고, 그때부터 손진아는 이주희를 언니가 아닌 선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뒤로 손진아가 워낙 커버린 탓에, 이주희와 손진아가 마주칠 일도 거의 없어졌지만.

어째든 일 년에 몇 번 만나도, 손진아는 이주희를 아는 척도 않고 지나칠 때가 많았다.

손진아에게 이주희는 굳이 아는 척 할 필요도 없는, 그저 그런 조연급 선배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안 그래도 손진아에게 콤플렉스가 생긴 이주희였다.

그럴 것이 손진아가 데뷔했을 때, 이주희가 오지랖을 좀 많이 떨었던 것이다.

“넌 내가 키워 줄 테니까. 나만 믿어. 진아야.”

“네. 언니.”

그랬는데 손진아는 저 하늘 위에 탑 스타고, 자신은 여전히 그렇고 그런 2류 조연 배우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런 이주희에게 있어 껄끄러운 존재인 손진아를, 하필 이곳 백화점에서 만나다니.

이주희는 손진아를 딱 본 순간, 그녀가 평소대로 그녀를 아는 척 하지 않고 지나쳐 주길 바랐다.

그 바람대로 손진아는 그녀를 지나쳐 갔다. 그런데 그때 최덕구가 넋 나간 얼굴로, 손진아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다른 건 다 참아도, 내 남자가 딴 여자에 넋 나간 꼴은 죽어도 못 보는 이주희였다.

그래서 발끈해서 최덕구에게 소리를 쳐 버렸고, 그 소리를 듣고 손진아가 그녀를 쳐다봤다. 그리곤 먼저 아는 척을 해왔고 어쩔 수 없이 이주희도 대꾸를 해줬다.

그랬더니 손진아가 기분 나쁘게 최덕구를 쳐다보고 웃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이 마치 ‘너 따위가 그럼 그렇지.’ 라고 그녀 앞에서 대 놓고 말하는 거 같았다.

젊어 보인다지만, 누가 봐도 최덕구는 중년 남자였다. 최대한 가리고 있었지만 팔과 목 언저리로 드러나는 문신들.

보통 사람도 관심 깊게 본다면 최덕구는, 딱 조폭 두목의 모습이었다. 그런 남자와 같이 다니는 이주희.

누가 봐도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이주희도 그걸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남들 시선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나? 그녀가 탑 스타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딴 사람들 앞에서는 몰라도 손진아 앞에서, 최덕구와 같이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쪽팔렸다.

“당신하고 끝이야.”

이주희는 홧김에 최덕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그리곤 휑하니 명품관을 빠져 나갔다.

“주, 주희야!”

당연히 최덕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녀를 쫓아갔다.

“따라 오지 마.”

그러자 이주희가 버럭 화를 냈고, 최덕구는 기어코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붙잡았다.

“이거 놔.”

“주희야. 그 여자 쳐다본 거 때문에 그렇다면 내가 잘못했어.”

“왜? 그년한테 가서 명품백 안겨 주며 한 번 해 달라고 하지? 아니다. 급이 안 되네. 그년은 탑 스타고 당신은 늙어 은퇴한 조폭 두목이니까. 그년이 뭐가 아쉬워서 당신 따윌 상대 해? 2류 조연 배우인 나나 되니까 여태 만나 준거지.”

“주, 주희야!”

“이 손 놔. 그리고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연락도 하지 말고.”

제대로 삐친 이주희가 기어코 최덕구를 뿌리치고는, 그 자리를 떠나 버리고 달랑 혼자 남게 된 최덕구.

“이이....씨발....”

평소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던 최덕구.

조폭 시절에는 그 분노를 표출 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서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은퇴 이후 그걸 감추려고 정신병원에 가서 약까지 먹고, 사람도 가급적 많이 만나지 않았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최근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 게 다 이주희 때문이었다.

이주희의 사랑의 힘이 그 동안 최덕구의 분노조절장애를 억눌러 왔는데 그게 박살 나 버렸다. 순간 최덕구는 통제가 힘든 위험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 이게 다 그년 때문이야.”

최덕구의 분노의 화살이 명품관 안을 향했다.

* * *

전직 조폭두목 최덕구는 나쁜 짓을 참 많이 했다.

실제 사람도 몇 명 죽이고 여럿 병신으로 만들었고. 그랬던 그가 막상 조폭 계를 떠나게 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혼자서 여러 사람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는 없는 노릇. 거기다 그는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갈 것이고 기력이 빠질 테니까.

해서 최덕구는 자신이 사는 동네 양아치들을 몇 명 거둬서 밑에 뒀다.

그들이 바로 용식이와 현태로, 최덕구는 그들에게 매달 200만원을 용돈으로 주면서, 외출 시 그들을 늘 달고 다녔다.

만약의 경우 자기 대신 몸빵 해 줄 녀석들로 말이다.

당연히 오늘도 그들을 데려 왔지만, 이주희가 그들이 껄렁해 보인다며 싫어해서, 일단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대기 시켜 뒀었다.

“둘 다 백화점 2층으로 튀어 와.”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린 최덕구. 그가 용식이와 현태를 백화점 안으로 호출했다.

그때 명품관 안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백화점 보안 요원과 관계자가,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러던 말던 최덕구는 씩씩거리며 용식이와 현태가 오기를 기다렸다.

“주희가 그렇게 화난 건 그년이 예쁘기 때문이야. 나도 그년이 안 예뻤으면 그년을 안 쳐다봤겠지. 그래. 그년의 얼굴을 망쳐 놓는 거야. 그럼 주희도 기뻐하면서 내 곁으로 돌아오겠지.”

최덕구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이주희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설혹 살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막말로 그 동안 살인을 안 해 본 것도 아니잖은가? 양은이파에 몸담으면서 중간 간부까지 됐을 때는, 사람 여럿 죽였다는 소리였다. 그 중 그의 손으로 직접 죽인 사람도 몇 명 됐고.

그때의 그 생각이 들어선지 최덕구에게서 짙은 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거기다가 음흉한 웃음까지 흘려 대니....

“으흐흐흐흐....”

백화점 손님들이 최덕구를 보면 알아서들, 슬금슬금 그를 피해 움직였다.

“형님!”

그때 최덕구가 기다리던 용식이와 현태가 그 앞에 나타났다.

“따라 와.”

최덕구는 용식이와 현태를 데리고 명품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그년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그년을 찾는 건 쉬웠다.

한 명품관 앞에서 그년이 서 있었고, 다른 년 하나가 그년 앞에서 백화점 관계자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그때 최덕구는 그년을 보고 바득 이를 갈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저기로 달려가서. 저년의 얼굴을 칼로 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당장 그의 손에 칼이 없었고, 또 백화점 관계자 주위로 보안 요원들도 있었으니까.

“너희들 칼 있지?”

최덕구의 물음에 용식이가 즉시 대답했다.

“네. 여기....”

용식이가 바지 호주머니 속에서 작은 잭나이프 하나를 꺼냈다.

누가 봐도 장식 칼로 보이는 그 잭나이프를 챙겨 든 최덕구가, 시선을 다시 그년 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검정 양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 넷이 나타나서, 그년을 에워싸는 게 아닌가?

“젠장....”

이렇게 되면 저년을 조지기 더 어려워져 버렸다. 하지만 최덕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리 와.”

용식이와 태현이를 데리고 옆으로 돌아서 움직인 최덕구.

그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다.

그런데 와야 할 기회는 오지 않고, 검은 정장 남들이 더 나타났다.

“씨발. 안 되겠다.”

이대 로면 저년을 조지는 것도 물 건너 갈 거 같았다. 조급해진 최덕구가 용식이와 태현이에게 말했다.

“저기 두 놈 보이지?”

“검은 정장 입은 놈들 말이지요?”

“그래. 용식이 니가 왼쪽, 태현이 너는 오른쪽을 맡아.”

“네?”

동네 양아치들이 뭘 알겠는가? 해서 최덕구가 다시 설명했다.

“너희들은 저놈들을 끌어안고 있기만 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지?”

“네. 뭐....”

최덕구의 말에 얼떨떨해 하면서 용식이와 태현이는, 자신들에게 꼬박꼬박 매달 용돈을 챙겨주는 최덕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자.”

최덕구는 두 똘마니를 데리고 그년이 있는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다 그년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 하나가 그들이 다가 오는 걸 눈치챘다 .

“지금이다. 뛰어!”

최덕구는 외치며 두 똘마니의 등을 떠밀었다. 그리곤 자신은 그들 사이에서 뛰었고.

애들이 좀 멍청하기는 해도 말은 잘 알아듣는 놈들이었다.

그래서 최덕구가 시키는 대로, 둘 다 악을 쓰며 두 경호원을 끌어안고 버텼다.

그 사이 최덕구는 손쉽게 그년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곤 들고 있는 칼로 정확히 그년의 얼굴을 그었다.

‘됐다.’

이제 곧 저년의 얼굴이 칼에 베이며 피를 철철....

척!

그런데 어떤 놈이 칼을 쥔 최덕구의 팔을 제지했다.

그년 옆에 있던 곱상하게 생긴 놈인데 제법 움직임이 날랬다.

그러나 어설펐다. 최덕구에게는 팔이 두 개였고, 비록 칼을 쥔 팔은 막혔지만 다른 팔이 남아 있었다.

최덕구는 그 다른 팔로 눈앞에 거추장스런 놈을 치워버리기 위해 바로 그 팔을 휘둘렀다.

그런데 곱게 생긴 놈에게서, 도저히 날아올 수 없는 각도로 발차기가 날아왔다.

퍽!

그 발에 안면을 맞은 최덕구가 휘청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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