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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함종도 의원은 정확히 누구 부탁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권력자가 자신에게 한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며, 그 일을 은근슬쩍 하종훈에게 떠넘겼다.
“의, 의원님. 하지만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런 일을....”
=어허. 지나친 겸손은 오만이며 독이 될 수 있네. 이번 일로 내가 자네에게 신세 한 번 진 걸로....치도록 하지.
함종도 의원이 신세 운운까지 하는 마당에 하종훈도 더는 뺄 수가 없었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분 연락처는....”
=하하하하. 고맙네. 전화 끊는 대로 그분 전화번호를 보낼 테니 잘 좀 부탁함세.
“네.”
하종훈은 딱히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짧게 대답했고, 더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것이 기껏 서재국 전 대통령을 뒷배로 두고 공천을 받는 마당인데, 이런 더러운 일까지 처리해야 한다니 짜증이 치민 것이다.
=크음. 그럼 끊겠네.
그걸 저쪽에서도 느꼈는지 그다지 기분 좋아 보이지 않게 통화를 끝냈다.
“쳇....”
그래놓고 나니 그제야 후회가 되는 하종훈. 이왕 해 줄 거 기분 좋게 해주고 저쪽에 좋은 이미지라도 심어주는 게 나았는데, 그놈에 삐딱한 성격이 또 함종도 의원을 상대로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남긴 것이다.
“에잇. 몰라....”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엎질러 진 물이고 지금은 함종도 의원이 자기에게 떠넘긴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그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권력자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함종도 의원에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어디보자. 01x....”
하종훈은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그 번호를 외워서 자기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음이 제법 울리고 나서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기....함종도 의원님께서 말씀하셔서 전화 드립니다.
=아아. 당신이 처리해 줘야 할 자는....지금 이 번호로 문자 메시지로 알려주도록 하겠소. 그럼 이만.
뚜뚜뚜뚜뚜뚜....
“뭐, 뭐야?”
그래도 사람이 전화를 했는데 인사 정도는 나눠야 하는 거 아닌가?
띠리링!
그때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고, 그 내용을 확인한 하종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씨발....”
뒤이어 하종훈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럴 것이 그가 서지현에게 그렇게 눈치를 보며, 안하려 했던 그 일이 돌고 돌아서, 또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JYB엔터 백준열 대표를 처리해 주시오. 가급적 빨리.]
하종훈이 함종도 의원이 말한 그,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 중 한명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해 받은, 문자 메시지 내용이었다.
* * *
하종훈은 결국 그들, 3명의 처리자들 중 리더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요?
“요즘 바쁘죠?”
=당신이 그것까지 알 거 없고.
하종훈은 3명의 처리자들과 사이가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음지에 있을 때, 그들을 양지를 꺼내 준 건 분명히 하종훈이었다.
그들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처음 일을 맡긴 게 하종훈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십 수회가 넘는 의뢰를 맡겼고, 그때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하종훈이 맡긴 일을 잘 처리해 주었다.
이때 하종훈이 의뢰한 일들은 다 서재국 대통령과, 그 가족들과 관련 해 안 좋은 쪽으로 연루된 자들의 처리였다.
그렇게 서재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날, 그들도 더는 하종훈에게 묶여 있지 않고 독립을 해서, 지금은 처리자 에이전시로 제법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하종훈이 알기로 단골들까지 있다니, 수익도 상당할 것이고 말이다.
“부탁하나 합시다.”
=부탁은 그때 한 게 끝인 줄 아는데?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나?
“맞아요. 끝났죠. 단, 서재국 대통령과 관련한 의뢰는 말이죠.”
=그게 무슨 소리지?
“당신도 기억 할 겁니다. 처음 저와 만났을 때와 저의 수중에서 벗어나기 전에, 당신이 내게 한 약속을 말입니다.”
=....
“그때 당신은 언제고 내 부탁 하나를 들어 주겠다고 했었죠?”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군. 그래서 지금 당신의 그 개인적인 부탁을 우리에게 하겠다는 건가?
“맞아요. 이번으로 당신들과 나의 인연도 진짜 끝나는 거죠.”
=그건 마음에 드는 소리군. 그래서 누구를 제거해 주면 되나?
“JYB엔터 백준열 대표요.”
=....누구라고? 설마 내가 아는 그 백준열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그 백준열이.”
=당신 미쳤군. 백준열이는 서재국 대통령의 외손자다.
“친 외손자는 아니죠.”
=그보다 더 골치 아픈 건 그 백준열이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막내아들이란 거고.
“그러니까 흔적도 없이 잘 처리해야겠지요. 그게 평소 당신들이 해 온 일이잖습니까?”
=언제까지?
“지금 당장이요.”
=미쳤군.
“바로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면 당신들이 당하게 될 테니까요.”
=그 말은....
“아시다시피 삼명그룹의 미전실은, 대한민국 국정원보다 더 정보 수집이 빠르죠. 이미 이 일은 위에서 오더가 떨어진 일입니다. 그쪽 보안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만약 샜다면....”
하종훈의 말 대로였다. 삼명그룹에서 그들 3인의 처리자 에이전시가 백준열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웬만한 처리자 에이전시들이 다 움직일 것이다. 그들 3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말이다.
따라서 그 전에 3인의 처리자 에이전시가 먼저 백준열을 제거하고, 그의 시신을 없애 버려 실종 상태로 만들어 버려야 했다.
일단 백준열이 죽고 나면, 하종훈이 말한 위에서 삼명그룹에 압력을 가해서, 백준열의 일을 실종 처리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 것이다.
이미 죽은 아들 때문에 삼명그룹이 위험해 지는 걸 지켜 볼 백승렬 회장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재벌 회장이 괴물들이란 건 하동훈도 알고, 지금 그의 전화를 받고 있는 3인 처리 에이전시의 리더도 잘 알았다.
=하필....오늘....하아....일단 알겠소.
“그럼 빠른 처리 부탁하겠소.”
하동훈의 입장에서도 이건 시간 끌 일이 아니었다. 백준열을 제거하기로 작정했으면 24시간, 아니 12시간 안에는 그를 처리해야 했다.
아니면 그 전에 누군가 백준열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이, 삼명그룹 미전실의 귀에 들어 갈 게 거의 99%였다.
왜냐하면 정보가 곧 돈인데 삼명그룹과 관련 된 뉴스는 단연 돈이 됐다.
특히 삼명家의 오너 일가에 대한 정보는 미전실에다 부르는 게 값이었고.
그러니 그런 정보를 알게 된 자가 가만있으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인 거다. 그 정보, 즉 인생 로또로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는 데 말이다.
* * *
또 의뢰 하나를 해결하고 오늘 밤, 자신의 동료들과 같이 미국으로 갈 예정이었던 유지태.
그는 가족들이 다 떠나고 휑한 집에서 간단한 짐 가방 하나를 챙기고 있었다.
처음 아이들과 아내를 미국으로 보내고 나서, 미국에 갈 때는 적어도 캐리어 두 개에 짐 가방 두 개는 기본이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미국에서도 한인 마트가 있고, 또 필요한 건 얼마든지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유지태는 자기 짐만 간단히 챙겨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대신 가족들이 미국에서 풍요롭게 쓸 수 있을 정도의 달러는, 매달 송금해 주면서 말이다.
알뜰한 그의 아내는 그 돈을 모아서 미국에 집을 샀고, 자식들은 다들 좋은 대학을 다니거나, 이제 졸업을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해, 독립을 하려하고 있었다.
그 독립 자금이 만만찮았는데, 유지태는 이번에 들어 올 의뢰 금을 전부, 큰 아들의 집구하는 데 쓸 생각이었다.
“다 쌌다.”
이제 좀 쉬었다가 저녁을 시켜 먹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하면 됐다. 유지태는 냉장고로 가서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생수와 캔 맥주 중, 캔 맥주 하나를 꺼내서 거실 소파에 앉았다.
치익!
캔 맥주를 따서 바로 입으로 가져간 유지태가 벌컥벌컥, 캔 맥주의 거의 절반을 한 번에 마시고는 입가를 손으로 닦을 때였다.
벨레레레.....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을 한 순간 유지태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그럴 게 유지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자의 전화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었다. 결국 캔 맥주를 내려놓고 그 전화를 받는 유지태.
그런 그가 통화를 하면 할수록, 표정은 더 살벌해지고 말은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유지태는 상대가 원하는 걸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는 유지태를 비롯한 나머지 처리자들, 즉 이성욱과 전규호를 뼛속까지 잘 아는 자였다.
그렇기에 자신들을 다루려면 어떡해야 하는 지 잘 알았고, 그렇게 유지태가 거절할 수 없게끔 궁지로 내몰았다.
만약 그의 의뢰를 거절한다면 3명의 처리자들의 운명도, 하루아침에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자와 통화 후 분노한 유지태가 ,마저 남은 캔 맥주를 단숨에 비워 버리고, 빈 캔을 찌그러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우지직!
“개새끼....”
말이 좋아서 자신들을 발굴해 냈다고 자랑 질이지만 유지태와 이성군, 전규호 모두 국방부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었다.
셋은 모두 돼지부대, 즉 북파 공작 부대 출신들이었다. 한데 모종의 일로 그들 존재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셋 다 그걸 알면서도 북파 공작 부대의 일원으로 일해 왔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기가 찼다.
그렇게 강제 전역조치를 당하고 민간인이 되어 버린 세 사람.
하지만 이 사회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었고, 그 일마저도 서툴러서 곧 잘려 버렸다.
그 뒤 궁핍한 생활을 영위하던 그들 앞에 나타 난 것이, 바로 청와대에서 나왔다며 등장한 하동훈이었다.
그 하동훈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세 사람은 처리자 에이전시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은 서재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올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도 알았다. 청와대를 나온 서재국과 하종훈은 이제 더 이상 별것도 아니란 걸 말이다.
그래서 과감히 그들과 관계를 정리해 버리고, 그들이 잘하는 처리자 에이전시의 일을 계속 해나갔다.
근데 그 일을 하면 상당히 큰돈을 번다는 걸 알게 됐다. 실제로도 그들이 하동훈 밑에서 처리자 에이전시 일할 때에 비해 수십, 아니 수백 배의 돈을 벌었으니까.
그때부터 세 사람은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가족도 제대로 보살필 수 있었고, 특히 유지태의 경우 공부시키러 아이들과 부인을 미국으로 보내기까지 했었다.
이제 좀 사람답게 사는 가 했는데, 하동훈이 전화를 해 왔다.
그러면서 또 마지막 운운을 하며 누군가를 처리해 달라고 했는데, 그 누군가가 삼명家의 막내아들이다.
유지태는 일단 그 일을 할 거처럼 말했다. 그래야 하동훈이 방심을 할 테니 말이다.
그 뒤 그는 동료들과 상의를 할 생각이었다.
“하동훈을 죽이든, 아니면 진짜 백준열을 죽이든, 둘 중 하나는 죽여야 한다.”
지금 상태로 유지태는 하동훈을 죽이는 쪽으로 생각이 많이 기울었다. 그 뒤 삼명그룹 쪽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자수하는 것이다. 그럼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 그들 셋을 어쩌지는 않을 거란 게 유지태의 생각이었다.
* * *
유지태는 일단 자기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젠장....”
하지만 술에 취해 전규호가 집까지 데려다 준 이성욱은, 아직도 뻗어 자는 지, 그의 전화를 안 받았고, 전규호도 가족들과 짐 싸기 바쁜지 유지태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해서 유지태는 일단 술 취해 뻗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이성욱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거기서 이성욱을 깨운 다음 얘기를 나눠보고, 최종적으로 전규호를 찾아가는 걸로 말이다.
유지태는 평소 그가 이용하는 경차 차키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렇게 그가 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나선 유지태.
이성욱은 그가 사는 아파트에서 차로 20여분 쯤 가야 했다. 평소처럼 이성욱의 집으로 가는 동안 미행이 따라 붙는지 수시로 확인하며 운전 중인 유지태. 하지만 역시 아무도 그의 뒤를 따라 오는 차는 없었다.
그렇게 안심하고 이성욱이 사는 원룸 건물에 도착한 유지태는, 차를 주차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유지태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검은 색 SUV차량에서, 외국인 한 명이 차에서 내려서 유지태가 들어간 그 건물 쪽으로 걸어가며, 인이어 모니터 송신기에 대고 말했다.
“철수. 잘 들려?”
그러자 인이어 모니터 수신기에서 철수의 목소리가, 세르게이의 귀에 꽂고 있던 인이어 모니터 이어폰을 통해 들려왔다.
=어어. 잘 들려.
그때 철수 옆의 김훈 쪽 처리자 에이전시 직원의 말이 들렸고, 그 말을 철수가 바로 러시아말로 통역해서 말했다.
=이 인이어 모니터 시스템은 세르게이 너와 5미터 정도 떨어진 사람의 대화까지 내가 들을 수 있다네. 그러니까 세르게이 네가 좀 전에 들어 간 자를 잡아 심문할 때, 굳이 내가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야.
“그렇군. 철수가 편해졌어.”
=그러네. 확실히 여기가 장비 빨은 문식파에 있을 때보다 훨씬 나은 거 같아.
“철수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로군.”
세르게이는 그 말 후 유지태가 먼저 타고 올라 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손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자기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차 안에 오래 있다 보니 굳은 신체를, 싸우기 최상의 상태로 만들려면 최고의 킬러인 세르게이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딩동댕!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면서 문이 열렸고 세르게이는 그 엘리베이터 안에 탑승하며 15층을 눌렀다.
바로 그 층에 세르게이가 처리해야 할 3명의 처리자들 중 한 명인, 이성욱이 사는 집이 있었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했다.
만약 김훈의 처리자 에이전시에서 3명의 집 주소를 알지 못했다면, 유지태를 미행해야 했을 것이고, 눈치 빠른 유지태에게 뒤쫓는 게 100%로 들통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유지태가 가는 곳이 어딘지 알고 나자, 세르게이를 태운 차는 더 빠른 길로, 더 빨리 차를 몰아서, 설혹 단속 카메라에 찍히더라도 상관없이 이성욱의 집 근처로 먼저 와 버렸다. 그러니 애초 유지태를 미행할 필요가 없었고, 유지태에게 그 미행을 들키지도 않았다.
그건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성욱이 몇 층, 몇 호에 사는지 알고 있으니 이렇게 유지태를 먼저 올려 보내고 나서, 세르게이가 뒤에 천천히 따라 올라가도 되는 것이다.
혼자 엘리베이터에 탄 세르게이는 빠르게 15층으로 올라갔다.
딩동댕!
“15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세르게이는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성큼 발걸음을 내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