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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석명호는 태권도 국가 대표지만 싸움도 곧 잘 하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때, 다니던 학교를 휘어잡았던 짱 출신답게 말이다.
퍽!
석명호는 정민지가 피하기 쉬운 얼굴이 아닌 그녀의 몸통, 즉 옆구리를 주먹으로 감아 쳤다. 세게 치는 것보다 맞추는 데 집중한 석명호.
“큭!”
그의 주먹이 운좋게 정민지의 옆구리에 꽂히며, 충격을 받은 그녀의 미간이 구겨지고 입에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동시에 정민지의 가드가 내려갔고, 석명호는 그걸 놓치지 않고 준비 중인 반대 주먹을 내 뻗었다.
휙!
하지만 정민지는 그 주먹을 정확히 보고 피했다.
‘이거 봐라?’
석명호는 100% 먹힐 거라고 본 자신의 주먹이 비껴 나자 속으로 놀랐다.
호신술 좀 배운 여자려니 했는데, 이건 숫제 싸움꾼이 아닌가?
하지만 자신의 발차기의 데미지가 여전히 남은 듯 비틀거리는 여자를 향해,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석명호가 재차 자신의 오른발로 발차기를 가했다. 그런데....
파팟!
비틀거리던 여자가 석명호의 발차기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뭣?’
석명호는 여자가 비틀거린 게 페이크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여자가 석명호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그의 발차기는 허공을 갈랐다.
퍽! 퍽!
그때 여자의 주먹이 석명호의 복부를 강타한 뒤, 연타로 턱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석명호의 배의 탄탄한 복근이 여자의 주먹에 실린 파워의 절반을 잡아먹어 버렸고, 나머지로는 그에게 그다지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여자의 연타 주먹도, 석명호가 손바닥으로 가린 턱을 가격하면서,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쳇!”
그걸 느낀 듯 여자가 재차 발차기를 가했지만, 이번에는 석명호가 여자 쪽으로 밀고 들어오면서, 팔로 여자의 발을 막아 밀어버렸다.
휘익!
여자가 거의 1미터는 날아 옆 테이블 위로 나자빠졌다.
콰르르! 우당탕탕!
테이블 위에 술과 안주가 그녀에 의해 쓸려 나갔지만 그녀는 용케, 몸을 잘 굴려서 테이블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발로 짚고 서면서 싸움은 계속 이어졌다.
* * *
“차앗!”
석명호는 여자가 악착같이 달려들며, 자신을 향해 위력적인 발차기를 가하자 그걸 피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솔직히 여자라고 경시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임동식에 이어서 자신도 저 여자의 먹잇감이 될 수 없었다.
석명호는 철저히 힘으로 여자를 밀어 붙였다.
여자가 두 대를 때리면 자기는 한 대는 꼭 때렸다.
“크윽!”
그러자 여자가 크게 휘청거렸다. 바로 그때 석명호가 자신의 장기인 뒤돌아 차기를 시도했다.
뻐억!
그게 정확히 여자의 가슴을 가격했다. 평소에도 샌드백을 날려버리는 위력의 발차기였다.
여자가 가드로 가슴을 보호했다지만, 그걸로 그 파워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아아악!”
이번에는 여자가 비명과 함께 거의 2미터는 뒤로 날아갔다.
콰르르! 와장창창! 철퍼덕!
그리곤 이번에는 여자도 저번처럼 발을 짚고 서지 못하고, 테이블 밑으로 볼썽사납게 나동그라졌다.
“으으윽!”
“언니!”
그런 그녀에게 금발 미인이 달려가서 그녀를 붙잡아 일으켰다. 이걸로 사실상 싸움은 끝나거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여자가 좀 전 가드로 쓴 왼팔을 출 늘어트리고 있었으니까.
딱 봐도 팔이 부러진 것이다. 그때였다.
“민지야!”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 그리곤 덩치 좋은 중년의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너냐?”
“....”
그 남자는 석명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앞에 와 있었다.
석명호는 놀라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 남자가 바로 따라 붙으며 주먹을 날려 왔다.
석명호는 그 주먹을 보고 피하려 했다.
‘어?’
그런데 그 생각을 할 때, 이미 주먹이 그의 복부를 친 다음, 다른 주먹이 그의 턱을 강타하고 있었다.
퍽! 퍼억!
그만큼 주먹이 날아오는 속도가 어마무시 했던 것.
깔끔하게 들어간 연타에 석명호가 뒤로 물러나던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이라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의 뒤에 사람이 있어 넘어지지는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느 새 다시 석명호 앞에 나타난 중년의 남자.
그가 재차 석명호에게 달려들어서 몸통에 주먹 두 방을 먹이고 나서, 본능적으로 석명호가 뻗은 주먹을 슬쩍 고개 숙여 피한 뒤, 바로 폭풍 주먹세례를 퍼부었다.
퍽! 퍽! 퍼퍼퍽! 퍽! 퍼억!
중년 남자의 소나기 펀치는 너무 빨라서, 그가 대체 몇 방의 주먹을 석명호에게 날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를 악 다문 중년 남자가 휘두르는 주먹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아마도 제대로 화가 난 모습.
“형님!”
그때 중년 남자 뒤에서 누가 뛰어들어서,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곤 뒤로 끌어 당겼고, 그로 인해 중년 남자의 주먹이 석명호를 비껴 나갔다.
“이거 놔!”
“형님. 죽습니다.”
털썩!
지금 중년 남자를 끌어안은 남자의 말처럼, 석명호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썩은 고목나무 쓰러지듯, 앞으로 픽 꼬꾸라졌다.
다행히 그쪽으로 의자가 있어서 자빠졌을 때, 바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꼴을 당한 석명호이건만 중년 남자는 그 걸로는 성이 차지 않는지 다시 그에게 가려 했고, 그런 그를 끌어안은 남자가 악착같이 그를 붙잡고 늘어지며 말했다.
“형님. 진정하십시오. 애들 봅니다.”
그 말에 중년 남자가 주위를 살폈고, 어느 새 그의 주위를 빙 둘러 감싸고 있는 조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니까 좀 전 쓰러질 뻔한 석명호를 받쳐 준 것도, 중년 남자 휘하에 있던 조직원 중 한 명이었던 것.
“아아! 민지....”
그때 뭔가 잊고 있던 중요한 게 생각이 난 듯, 중년남자가 돌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의 눈에 자신의 조직원들 뒤에 서 있는 미인 두 명이 보였다.
중년남자는 수하들을 물리고, 곧장 그녀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 * *
삼명그룹의 초대 회장인 백선엽과 그 아내 유지선은 슬하에 3남 3녀를 뒀다.
그들을 적자라고 했을 때, 백선엽 회장이 외도로 낳은 자식들도, 유지선 여사는 자기 자식으로 받아드렸다. 그들을 다 합치면 5남 4녀였고.
그래서 백선엽 회장에게는 모두 15명의 자녀가 있었다.
그 중 지금까지 살아 있는 자식들은 모두 9명이었고, 적자 중에는 2남 2녀가, 서자는 2남 3녀가 여태 생존해 있었다.
하지만 이들 적자들 중에서, 진정한 적통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현 삼명그룹 회장인 백승렬 회장의 一家였다.
그 외에는 다들 방계로 규정지어졌는데, 원래 적자들이었던 백선엽 회장의 세 아들 중 두 아들, 장남인 백승호 현 CH그룹 회장이나 차남인 고故 백승기 백두그룹 회장은, 아예 삼명家에서 독립해서, CH일家와 백두일家로, 그들만은 재벌가를 구성했다.
따라서 작금에 와서 삼명家는 남은 적자 중 3명의 여자들, 즉 백선엽 회장의 세 딸들인 백모란과 백화란, 백영지의 자식들과, 그 밑 서자들의 자식들을 다 아울러서 일족으로 취급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백지훈은 백선엽 전 회장 첩의 자식인 백동구의 둘째 아들이었다.
나이는 올해 28살로 병역은 면제 받고, 대학원까지 졸업한 후 석사와 박사까지 딴 뒤, 현재는 삼명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인 삼명종합화학에서 일하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그의 직급은 기획조정실장.
삼명家의 일원답게 비록 삼명그룹 본사의 실장은 아니지만, 계열사의 실장도 무시 할 위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백지훈이 방계라고는 해도, 능력이 되지 않으면 그 자리에 앉힐 백승렬 회장이 아니었다.
실제 백지훈은 화공학 박사로, 석유화학제품 제조 및 도매로, 원재료의 제조·구매, 석유화학제품과 관련제품의 제조·외주가공·판매·수출 등을 업종으로 삼고 있는, 삼명종합화학에는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삼명家의 일원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백지훈의 입지는 삼명종합화학 안에서는 그야말로 탄탄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잘난 놈 주위로 벌레들이 꼬일 수밖에 없었는데, 백지훈도 마찬가지였다.
백지훈의 대학 동창인 도지석이란 녀석이, 알고 보니 삼명종합화학의 주 협력업체인, 대화산업 도국철 사장의 아들이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도지석과 어울리게 된 백지훈.
그는 삼명가의 일원이란 이유로, 도지석이 평소 어울리던 소위 말해 있는 집 자식들의 모임에 끼게 되었다.
당연히 그 자리에서 최고 상석은 백지훈의 차지였다.
왜냐하면 그 만이 그들 중 유일한 진퉁 재벌가의 일원이었으니까. 그것도 재벌가에서 최고로 쳐 주는 삼명가의 일원이니 말해 뭐하겠는가?
=지훈아. 오늘 모임 있는 거 알지?
“그랬나?”
퇴근 시간 30분 전에 도지석이, 정확히 백지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저번처럼 빼 먹으면 곤란해. 애들이 다들 너 보려고 모이는 건데 말이야.
“하아. 알았어. 근데 오늘도 전에 갔던 데 가는 거냐? 줄리아나라고 했던가?”
=클럽?
“어.”
=아니. 거긴 요즘 물이 안 좋아져서 옮겼어. 플로렉스라고. 거기가 요즘 죽여주거든.
“그래?”
백지훈은 부친의 성화에 죽어라 공부만 하느라 좋은 시절 제대로 놀지 못했다.
그래선지 지금 와서 클럽에서 노는 게 재미있었다.
거기다가 거기 갈 때마다 늘씬한 미인들과 놀고, 또 섹스까지 마음껏 할 수 있으니 그보다 더 화끈한 곳도 없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클럽에 눈을 뜬 백지훈은, 저번 주에 제사 때문에 클럽에 가지 못해서 더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걸 티내는 건 하수나 하는 짓.
짐짓 클럽에 별 관심 없다는 투로, 도지석과 통화를 하다 끊은 백지훈.
그는 퇴근 시간이 10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책상을 정리하고 겉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 * *
백지훈은 도지석이 새로 끌어 모은 녀석들과 안면을 트고, 같이 가볍게 한 잔 한 후 클럽으로 향했다.
다른 녀석들 중에는 룸빵으로 가자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백지훈은 룸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거기 여자들은 확실히 예쁘고 몸매도 죽여줬다. 하지만 너무 가식적이고 매력이 없었다.
하지만 클럽은 달랐다. 거기 여자들은 다들 통통 튀었고, 생기가 넘쳤다.
물론 자신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그 여자들도 가식적으로 변하기는 했는데, 그게 오히려 백지훈에게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요즘 클럽에서 꼬신 여자 따 먹는 데 취미, 아니 맛 들린 백지훈이었다.
그런 백지훈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오늘 모임에 참석한 남자들 대부분이, 요즘 강남에서 가장 핫 하다는 클럽 플로렉스를 찾았다.
“룸 있지?”
“네. 연락 받고 비워뒀습니다.”
도지석은 자신과 안면이 있는 클럽MD에게 수고비로 100만원 수표를 쥐어줬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 돈 앞에 클럽MD는 바로 허리를 굽실거렸다.
그렇게 오늘도 클럽 VIP룸으로 들어간 백지훈.
강남에 빌딩 5채나 가지고 있는 부친 덕에, 돈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아 온 백지훈이었다. 클럽 술값 정도는 그에게 있어 푼돈에 불과했다.
안 그래도 요즘 결혼 얘기가 나오고 있었기에, 부친은 백지훈이 좀 문란하게 노는 것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결혼 전에 할거 다 해보고 나면, 오히려 결혼 후에 가정에 충실해진다나?
뭐 순전히 부친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그 덕에 요즘 클럽에서 신나게 즐길 수 있게 되어 백지훈은 좋았다.
“여기 물 좋은 데 맞아?”
그런데 클럽MD가 데려 오는 여자들의 수준이, 저번 클럽에 비해 못했다.
그러던 차에 도지석이 클럽 한 가운데 앉아 있는 두 미인을 발견했다.
“우와. 저 정도면....”
도지석은 즉시 클럽MD를 불러서 손짓으로, 그 두 미인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년들 룸으로 데리고 와.”
“네?”
“왜? 못하겠어?”
“아, 아니요. 해보겠습니다.”
“그래야지. 자아.”
도지석은 클럽MD가 힘 좀 나게 수표 한 장을 더 그에게 쥐어주었다.
돈의 힘은 언제나 강력했고 실패를 몰랐다.
도지석은 당연히 클럽MD가 그 두 미인을 룸으로 데려 올 줄 알았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30분이 다 되어 갈 때까지, 클럽MD는 룸에 나타날 줄 몰랐다.
“지석아. 어떻게 된 거니?”
백지훈이 상석에서 자기 손목시계를 보며 도지석에게 물었다.
매번 알아서 미인들을 자기 옆에 대령하던 도지석이었다. 한데 오늘은 영 삐리 했다.
“잠, 잠깐만....”
도지석은 몸을 일으켜서 룸을 나섰고, 그런 그의 옆을 박명태가 뒤따랐다.
박명태는 도지석의 껌딱지로, 대학 때부터 도지석과 붙어 다니며 안 좋은 짓은 다 하고 다녔던 녀석이었다.
그게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는데, 실제 박명태는 도지석의 아버지 회사인 대화산업에 다니고 있었다.
직급은 부장으로, 사실상 상무인 도지석의 뒤를 닦아 주는 역할이었다.
도지석은 박명태와 같이 클럽MD를 찾아 나섰고, 곧 그와 마주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게....여자들이 싫다고 해서....”
“뭐? 너 이거 밖에 안 되는 놈이었어?”
클럽MD가 여자가 튕긴다고 그냥 물러나면, 그게 클럽MD라고 할 수 있나?
한심하게 클럽MD를 쳐다보던 도지석이, 시선을 슬쩍 옆으로 돌려 박명태를 보고 말했다.
“명태야. 이 정도는 네 선에서 해결 할 수 있지?”
“어? 어어. 그래. 물론이지.”
도지석의 버릇이 또 나왔다. 자기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걸 박명태에게 은근슬쩍 떠넘기기 말이다.
‘씨발....’
박명태는 속으로 도지석을 욕하면서, 겉으로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지석아.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그만 룸으로 들어가.”
“그래. 명태야. 네가 수고 좀 해.”
그렇게 휑하니 도지석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VIP룸 안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