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88화 (18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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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손진아는 점점 더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결국 잠에서 깼다.

“어머....”

그리곤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확인하고는 놀라서, 옆에 이불로 황급히 자신의 몸을 가렸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방 안을 살펴보니 그녀 말고 아무도 없었으니까.

손진아는 그제야 가리고 있던 이불을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곧장 자신의 핸드폰을 챙겨서 욕실로 들어갔다.

일단 욕실 안에서 손진아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의 상태를 살피고, 또 뭘 해야 할지를 말이다.

“백준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워낙 바쁜 사람이고 또 자기가 간다고, 그녀를 깨울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중요한 건 그의 말자지였다. 그리고 그에 더해 절륜해진 그의 정력....

“아아....”

간밤에 그와의 섹스를 생각하니 금세 아랫도리가 쩌릿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으며 온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일었다. 그 만큼 그와의 섹스가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던 것.

“어머머....”

그리고 그는 자기가 한 약속을 지켰다. 핼쑥해진 얼굴. 누가 보면 며칠 굶은 얼굴이다.

아니면 밤을 샜던지. 얼굴뿐 아니었다. 쏙 들어간 아랫배와 옆구리 살들.

이건 스케줄 없을 때 아침, 저녁으로, 더블 헬스클럽에 다녔을 때나 볼 수 있는 자신의 몸 상태였다.

밸레레레레~

그때 그녀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매니저.

“어어. 언니.”

손진아는 1인 기획사에 있었고, 지금 매니저 일을 봐주고 있는 홍주연은, 그녀의 외사촌 언니였다.

실제 친 언니가 없는 손진아에게, 홍주연은 친 언니나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손진아가 믿고 자신의 매니저 일을 그녀에게 맡겼는데, 실제로 이쪽 계통에서 종사했던 홍주연은, 마당발로 손진아의 매니저 역할을 제대로 해 내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현동 백화점에서 그 일 후, 홍주연은 즉시 사태 파악에 나섰고, 손진아를 노렸던 그 조폭 두목의 여자가, 조연배우 이주희란 걸 바로 알아냈다.

손진아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확실한 건 아니라서 굳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홍주연의 얘기를 듣고 나니 그 조폭 두목이 그런 이유를 알 거 같았다.

“평소에도 이주희가 너 안 좋게 얘기하고 다녀서,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뭉개 버려야지.”

탑 스타 여배우가 주연 배우 하나 짓밟아버리는 건, 연예계에서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 갑질을 싫어하던 손진아였기에, 그런 일은 최대한 자제해 오고 있었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도 참으면 그건 호구 소리 듣기 딱 좋았다.

연예계는 평판이 중요한데, 그런 소문이 퍼진다면 손진아에게 결코 좋을 게 없었다. 그걸 알기에 손진아도 매니저인 홍주연이, 조연배우인 이주희를 뭉개버리겠다는 말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은연 중 그렇게 해도 된다고 묵인을 한 것이다.

* * *

손진아의 매니저 홍주연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손진아의 집 앞에 차를 몰고 왔다.

그리곤 곧장 손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금요일 아침 마다 이렇게 부지런을 떠는 것은, 손진아의 스케줄 때문이 아니었다.

“개새끼 백준열....”

그를 거론하며 홍주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홍주연은 지금도 이해가 안 됐다.

손진아가 왜 그 개새끼 백준열을 스폰서로 삼고 있는지 말이다.

그놈 말고 인격적으로나, 매너가 좋은 스폰서는 얼마든지 있는데도.

홍주연이 이렇게 매주 금요일 아침 마다, 일찍 손진아의 집을 찾는 이유는 그래야 한시라도 빨리, 손진아를 개새끼 백준열이 있는 집에서 빼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뭐? 없어?”

그런데 오늘아침은, 이럴 필요가 없었던 거 같았다.

손진아의 말에 따르면, 백준열은 새벽 같이 일이 생겨 집을 나갔다니 말이다.

=신기한 게 백 대표가 나한테 메모를 남겼어.

“뭐? 메모? 개새끼 백준열이?”

여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1도 없는 인간이 백준열이었다.

그러니 그가 메모를 남겼다는 손진아의 말이, 당최 믿기지 않는 홍주연이었다.

=언니! 백 대표님께 개새끼가 뭐야?

“뭐?”

그런데 정작 홍주연을 당혹케 만든 건 손진아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가 개새끼 백준열이라고 해도 아무 말도 없었던 손진아가, 밤사이 뭔 일이 있었던지 싹 돌변했다.

사촌 동생이지만 손진아의 성격이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 없이 변할 동생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 앞에서 백 대표님을, 개새끼라 부르지 말아 줬으면 해.

“그, 그래. 조심할게.”

그 이유야 곧 알 수 있었다. 손진아는 비밀 같은 걸 가슴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내려올래? 아님 내가 올라갈까?”

=내가 내려갈게.

그렇게 30분 쯤 기다렸을까? 손진아가 홍주연이 타고 있는 차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홍주연은 바로 차에서 내려서, 차문을 열고는 손진아가 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뭐야?’

홍주연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럴 게 어제 집에 들어갈 때 손진아와, 오늘 아침의 손진아가 완전 달라보였기 때문에.

거기다 손진아가 평소에는 잘 안 입던 배꼽티를 입고 있었다.

뱃살 나온 거 보이기 싫다던 그녀가 아니던가? 한데 배꼽티가 너무 잘 어울렸다.

그야말로 한줌 허리, 어제 뱃살이 다 어디로 증발해 버렸단 말인가?

그런 그녀를 보고 홍주연은, 도저히 한 마디 안할 수가 없었다.

“진아야. 어디 아프니? 얼굴이 핼쑥해.”

“호호호호.”

그 말이 뭐가 그리 재미있다고 손진아가 홍주연 앞에서 대 놓고 웃더니, 그녀 어깨를 툭툭 친 후 차에 오르며 말했다.

“백 대표님이 말한 그대로네.”

“뭐?”

“어제 백 대표님이 그러셨거든. 언니가 ‘진아씨. 어디 아파? 얼굴이 핼쑥하네?’라고 말 할 거라고 말이야.”

“....”

홍주연은 손진아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손진아가 아침부터 밝게 웃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았다.

손진아의 매니저인 홍주연으로서는, 그날 손진아의 컨디션이 제일 중요했다.

한데 오늘 손진아는 너무 기분 좋아 보였다.

‘뭐 어째든 진아가 기분 좋아 보이니 됐네.’

홍주연은 차 문을 닫고 곧장 운전석으로 가서 차에 탔다. 그런 그녀에게 손진아가 말했다.

“언니. 나 좀 잘 테니까 샵에 도착하면 깨워 줘.”

“뭐? 지금 잔다고?”

“어어. 좀 피곤하네.”

“그, 그래.”

평소 손진아는 아침부터 시작해서, 촬영이 끝날 때까지 날이 서 있었다.

그 만큼 예민한 성격이었던 것. 그랬던 손진아가 샵까지 가는 30분 동안 잘 거라고 했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라 홍주연은 당황스러웠지만, 백미러를 통해 본 손진아의 얼굴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홍주연은 혼돈에 빠진 얼굴로 차에 시동을 걸고, 손진아의 단골 샵으로 출발했다.

* * *

“으윽....머리야.”

이주희는 매니저의 전화를 받고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제 홧김에 과하게 술을 마셨더니 이 모양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두통약까지 먹고 난 뒤,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0시.

20분 뒤 매니저가 온다니, 그 전에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웬만한 드라마와 영화 촬영은 다 끝내고, 사실상 휴식기에 있었던 이주희.

하지만 배우란 게 휴식기라고 해서, 마냥 놀고먹고 지내는 건 아니었다.

자기 충전의 시간을 가지면서 또 다음 차기작을 준비해야 했다.

오늘은 바로 그 차기작 중 하나인 드라마에 꽤 비중 있는 조연 자리를 두고, 감독과 작가와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미팅 시간은 오후 2시였지만,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게 워낙 많은 게 또 여배우 아니겠는가?

급하게 씻고 간편하게 옷을 챙겨 입고 나자,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어. 알았어. 내려갈게.”

그녀는 오늘 입을 옷을 챙겨 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렇게 매니저와 함께 회사에서 잡아 준, 샵에서 한껏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진 뒤, 방송국으로 향했다.

“시간은?”

“될 거 같아요.”

그나마 오늘은 김밥이나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지 않아도 됐다.

방송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이주희는 KVS 드라마 작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평소 안면이 있던 작가 언니와 만난 뒤, 이번에 들어갈 KVS 미니시리즈 감독과 작가와 만날 예정이었다.

왜냐하면 그 작가 언니가 이번 들어갈, KVS 미니시리즈 감독의 입봉작을 함께 한 작가였던 것.

그 언니가 감독에게 한 마디 해 주는 것과 아닌 것이, 장차 그 감독이 그녀를 대하는 것에서부터, 크게 차이가 난다는 걸 잘 아는 이주희였다.

“언니!”

“주희 네가 여긴 어떻게?”

평소라면 이주희의 등장을 반가워 할 작가였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마치 이주희를 보는 걸 껄끄러워 한 달까?

“너희들 다 나가.”

역시 이주희의 생각대로, 작가가 같이 있던 보조 작가들을 다들 자기 방에서 내 보냈다.

그리곤 주희와 마주보고 앉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주희 너. 손진아와 무슨 문제 있니?”

“네?”

“지금 손진아 매니저가 난리가 났다. 온 방송국 PD들에게 전화 다 돌려서, 이주희 쓰면 앞으로 손진아와 일할 생각 말라고.”

“네에?”

이주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손진아와 그녀 사이가 대면 대면한 건 사실이었다.

또 그녀가 손진아 뒷담화를 하고 다닌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태 그걸 알면서도 가만있었던 손진아였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자기에게 왜 이러는지 이주희는 이해가 안 갔다.

“방송국 PD들 손진아 못 써서 난린데, 그런 애를 건드려 놓으면 어쩌자는 거니?”

“언, 언니.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아. 내가 그쪽과 연락해서 다 풀게.”

“그래? 그럼 빨리 풀어. 그쪽에서 더 퍼트리기 전에. 너도 알지? 소문이란 게 얼마나 빠르게 전파 되는 지?”

“그, 그럼. 잘 알지.”

이주희는 겉으로 웃고 있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안 그래도 어제 일로 손진아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그녀를 엿 먹이는 그녀가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이주희는 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손진아 연락처를 찾아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 그녀를 작가는 흥미 진지한 얼굴로 쳐다봤다.

여기서 해결이 되면, 작가는 기꺼이 그 사실을 방송국 안에 퍼트려 줄 생각이 있었다.

어째든 이주희는 그녀가 아끼는 조연 배우였으니까.

“여보세요? 손진아씨? 나 이주흰데....”

=그런데요?

이주희의 전화를 아주 싸가지 없게 받는 손진아.

이주희는 욱할 뻔 했지만 다행히 눈앞의 작가가 그걸 막아줬다.

이주희는 속으로 참을 인인을 세 번 되뇌고, 손진아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진아씨와 나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는 거 같아서. 그쪽 매니저가 나에 대해 안 좋은 쪽으로 방송국 PD들에게 말하고 다니나 봐.”

=그래요? 그럼 제 매니저와 얘기하세요.

뚜뚜뚜뚜뚜....

손진아는 이주희와 그다지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주희가 자기에게 전화건 용건을 대충 듣자마자, 매니저에게 그 문제를 떠넘기고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손진아씨!”

이미 끊긴 전화기에 대고 손진아의 이름을 제법 크게 부르는 이주희.

이래야 좀 더 극적인 효과도 살고, 자신의 체면도 살릴 수 있었다.

“하아. 제 얘기도 안 들어보고 끊어 버리네요.”

이주희가 제법 연기를 잘 했는지, 작가도 속아 넘어가는 듯 보였다.

“손진아. 너무하네. 지가 탑스타면 스타지. 그래도 주희씨가 이 바닥에 더 선배 아냐?”

“그렇죠. 데뷔 때는 저보고 언니, 언니하면 잘 따랐는데....스타가 되고 나더니 이런 식으로....”

이주희의 연기로 순식간에 손진아는, 개념 없는 탑 스타 이미지가 작가에게 깊게 각인 되고 있었다.

그때 이주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지만 혹시 손진아 매니저가 그녀에게 전화를 건 것일 수 있어 이주희는 그 전화를 받았다.

* * *

오후 촬영이 시작 되고 첫 씬을 연기한 후 잠깐 휴식 중이었던 손진아.

그런 그녀에게 이주희의 전화가 걸려왔다. 손진아는 일단 그 전화를 받았는데, 이주희가 사과는커녕 애먼 소리를 하기에 짜증이 나서, 자기 매니저와 얘기하라고 말하고는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뭔데 전화를 그렇게 매너 없이 받아?”

매니저 홍주연은 인성을 중시했다. 그래서 손진아가 버릇없게 구는 꼴을 못 봤다.

“이주흰데 나보고 오해가 있었다네?”

“뭐? 오해? 이런 육시랄 년을 봤나!”

어제 현동 백화점에서도 그랬지만 홍주연은 불의를 보면 못 참았다.

그래서 그녀를 두고 동료 매니저들은 미친개라고 불렀다.

한 번 꼭지가 돌면 미친개로 돌변한다고 해서 말이다.

그런 미친개의 성질을 이주희가 제대로 건드려 놓은 것이다.

“그년 전화 번호 줘 봐.”

손진아는 자기 핸드폰을 홍주연에게 넘겼고, 이주희의 번호로 그대로 번호를 누른 홍주연이, 자기 2G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통화 연결 음이 들려오고 곧 이주희가 그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저는 손진아 매니저 홍주연이라고 하는데요.”

=아아. 네.

“우리 진아와 오해 운운하셨다고요?”

=네. 그쪽이 저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방송국 PD들에게....

홍주연은 손진아가 말한 대로 이주희가 쓸데없는 소릴 늘어놓자, 바로 그녀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봐요. 이주희씨. 당신이 우리 진아 뒷담화 하는 거 다 알아. 알면서도 선배랍시고 내버려뒀어. 그런데 자기 남자한테 진아 얼굴에 칼질을 하게 시켜?”

=뭐, 뭐라고요?

“어제 백화점에서 너하고 같이 있었던, 그 조폭 두목이 우리 진아를 테러하려 했다고.”

=그, 그런....

홍주연은 이주희가 지금 그 사실을 알면서 연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몰랐던 건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하나였다.

“조연 배우 이주희씨. 당신 이제 아웃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그냥 이주희로 살아. 배우 짓 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

홍주연 자기 말에 가타부타 말이 없는 이주희의 반응에,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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