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191화 (19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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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이렇게 되자 삼명그룹을 되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CH그룹 역시 확실한 후계구도가 정해 진 게 아니다 보니 말이다.

그러니까 남 걱정할 게 아니라, 자기 걱정을 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백승호는 선친과 달리 자신의 장남인 백준모에게 그룹을 물려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에 밟히는 게 하나 있었다.

“그랬다간 우리 진희가 가만 안 있을 텐데....”

바로 자신의 하나 뿐인 딸인 백진희. 그 아이가 백준모가 회장이 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사실 자신의 딸인 백진희는 자신을 닮지 않았다. 자신을 닮은 건 장남인 백준모였다.

대신 백진희는 선친인 백선엽 초대 회장을 꼭 빼 닮았다.

외모도 그렇지만 그 타고난 승부욕과 욕심이 엄청났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한 번 자기 것인 이상 절대 뺏기지 않았다.

그걸 보고 백선엽 회장이 그랬다. 딸과 아빠가 그 성격이 바뀌었다고.

만약 백승호가 백진희의 성격 반만 닮았어도, 회장 자리는 장남인 백승호의 것이었다고 말이다.

물론 말이 그랬다는 거지, 그것 만 보고 백선엽 회장이, 셋째인 백승렬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 준 건 아니었다.

어째든 백선엽 회장이 인정할 정도로, 여장부 자질을 갖춘 백진희. 그녀는 지금 런던 지사에 나가 있었다.

아마도 백승호 회장이 CH그룹의 후계자로 장남인 백준모를 지목하면, 그녀는 득달같이 한국으로 날아와서 거칠게 항의를 할 게 분명했다.

백승호 회장도 은연 중 생각하고 있었다.

백진희가 더 자신의 후계자 감이란 걸 말이다.

하지만 선대 회장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그는 다짐했다.

자신만큼은 장남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말이다.

그 맹세를 꼭 지킬 생각인 백승호 회장. 그렇게 되면 백진희를 달랠 뭔가가 있어야 했다.

“적어도 계열사 세 개, 아니지 다섯 개는 내 놓으라고 할 텐데....”

백진희의 욕심은 누구보다 백승호 회장이 제일 잘 알았다.

하지만 현 CH그룹에서 계열사 5개를 떼어주면, CH그룹은 반 토막이 나 버릴 것이다.

“어째든 2-3개로 만족하게 만들어야 해.”

그것도 주력 외 계열사로 말이다. 하지만 백승호 회장은 당연히 백진희가 그걸 받아드리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생각을 좀 더 키웠다.

“승렬이 한데, 아쉬운 소릴 해야 하나?”

백승호 회장은 자신의 아우이자 삼명그룹 회장인 백승렬에게, 계열사 2개 정도 떼어 주면 그와 기꺼이 화해하고, 자신도 더는 삼명그룹 회장 자리를 노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걸로, 협상을 해 볼 생각이었다.

백승호 회장이 이게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예전에도 한 번 써 먹어 봤기 때문이었다.

백승렬 회장은 그런 백승호 회장에게 속아서, 실제 계열사 하나를 넘긴 적이 있었다.

바로 삼명 페인트가 그 계열사였고, 이제는 CH페인트가 된 그 회사는, 지금에 와서 CH그룹의 주력 계열사 중 하나가 됐다.

물론 백승렬 회장과 한 약속을 백승호 회장은 지키지 않았다.

그 뒤 두 사람 사이가 극도로 나빠진 건 두 말할 거 없었고.

그럼에도 막내의 여린 성격을 잘 아는 백승호 회장은, 자기가 손을 내밀면 동생이 무조건 그의 손을 잡아 주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승렬이가 계열사 2개만 준다면, 그걸로 진희를 설득해 볼 수 있어.”

썩어도 준치라고 삼명그룹의 계열사다. 그 계열사 두 개에다가 평소 진희가 가지고 싶어 했던 CH홈쇼핑을 끼워 준다면, 백진희도 어느 정도 만족할 거 같았다.

“좋아. 그렇게 하자.”

그렇게 백승호 회장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 데 혼자서 열심히, 자신의 후계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회장실에 전화가 울렸다.

“왜?”

=회장님. TVM의 백준기 사장님께서 통화를 원하시는데 어쩔까요?

“준기가?”

장남인 백준모를 제외하고 나머지 아들들은, 이미 계열사 하나씩 꿰차고 있었다. 백준기도 그 중 하나였고.

시간 상 방금 출근한 모양인데, 이렇게 바로 자신을 찾는다는 건, 그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

“바꿔.”

그게 뭔지 궁금해서 백승호 회장은, 백준기와 통화를 하겠다고 비서실장에게 얘기했다.

=아버지!

“야 이 녀석아. 사적인 전화도 아니고 아버지가 뭐냐? 회장님이라고 불러.”

=네. 회장님. 큰일 났어요.

“뭐가 큰일인데?”

그의 자식들은 무슨 문제만 생기면, 지금처럼 그에게 전화해서 큰일 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백승호 회장은 백준기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버지. 삼명그룹에서....

백준기의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하던 백승호 회장. 그가 이내 노기 띤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 삼명그룹이, 그룹 차원에서 TVM에 광고를 다 뺐다 이거냐?”

=그렇죠.

“승렬이 이 새끼가....”

대한민국에서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이름을 막 부르고, 욕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그게 아마 CH그룹 백승호 회장일 것이다.

백승렬 회장도 자기 큰형인 백승호 회장 앞에서는, 그래도 예의는 갖췄으니까.

“걱정 할 거 없다. 내가 승렬이에게 잘 얘기해서 광고 다시 원위치 시켜 놓을 테니까.”

삼명그룹에서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건 백승호 회장이 백승렬 회장에게 전화 한통만 하면 해결 될 문제였다. 적어도 백승호 회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 진짜 원위치 시켜 좋아 해요. 아니면 저 백수 된다고요.

그렇게 징징거리는 아들 녀석을 겨우 달래고, 통화를 끝낸 백승호 회장.

“승렬이 이놈이 뭘 잘못 먹었나?”

아무리 바쁜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이라도, 계열사 12곳의 광고를 빼는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백승렬 회장의 허락 하에 TVM에 광고 빼는 사안이 결정 되었다는 얘긴데....

백승호 회장의 뭔가 불길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동생인 백승렬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가 형인데 지 까짓게 이번에도 양보 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생각하면서.

* * *

백승호 회장은 자신이 전화를 걸면, 당연히 백승렬 회장이 바로 그의 전화를 받을 거라 생각했다.

1년 전에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백승렬 회장이 직접 그의 전화를 받았었다.

물론 그 뒤 1년의 시간이 훌쩍 흘렀지만, 그래도 큰형이 직접 거는 전환데 백승렬 회장이 받아야지 예의가 아니겠나?

=여보세요?

그런데 백승호 회장의 전화를, 백승렬 회장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받았다.

자기보다 젊은 남자 목소리라 백승호 회장은 바로 말을 놓고 물었다.

“백승렬 회장 전화 아닌가?”

=맞습니다만. 누구신지요?

“그러는 너는 누구냐?”

=네. 저는 백승렬 회장님의 비서실장 오규동이라고 합니다.

“비서실장? 하아. 나 CH그룹 백승호다. 승렬이 빨리 바꿔.”

이러면 즉각 백승렬 회장을 바꿔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백승호 회장의 예상을 비껴갔다.

=네. CH그룹 백승호 회장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회장님 형님 분과 통화는 처음이군요.

“뭐, 뭐? 너 이 새끼 지금 뭐하자는 거야?”

백승호 회장은 발끈했다. 그럴 것이 비서실장 나부랭이가, 감히 자신과 맞먹으려 들고 있으니 말이다.

당연히 백승호 회장은 몰랐다. 재계 10위 안의 회장들도, 삼명그룹 비서실장인 오규동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를 거쳐야만 백승렬 회장과 통화가 가능하단 걸 말이다.

=뭣 때문에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지만, 진정 되시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그럼....

뚜뚜뚜뚜뚜....“끊어? 이 새끼가....지금 내 전화를 끊었단 말이지?”

백승호 회장은 길길이 날뛰며, 다시 백승렬 회장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통화 중이 걸리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 뒤에야 전화가 연결 됐다. 그 과정에서 백승호 회장도 뒤늦게 알게 됐다.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과 다이렉트로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단 한명 대통령뿐이란 걸 말이다.

이때는 백승호 회장도 지쳐서, 그의 비서실장을 통해서 전화를 걸게 한 상태였다.

그렇게 비서실장들을 통해서, 겨우 백승렬 회장과 서로 통화가 연결 되었다.

=말씀하십시오. 형님.

백승렬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야 백승호 회장이 입을 열었다.

“너하고 통화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세상은 변하니까요.

그 말은 자신도 변했다는 얘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승호 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지금 통화 중인 백승렬은, 그가 아는 착한 막내 동생과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도 가족끼리 이러면 안 되지. 아버지께서도 가족끼리는 잘 지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더냐?”

이럴 때는 감성팔이가 최고였다. 마음 여린 막내 동생에게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얘기를 꺼내면 어지간한 그의 부탁은 다 들어 줬는데, 백승호 회장은 아직도 그걸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 가족일 때야 얘기지요. 형님은 더 이상 삼명家의 일원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삼명家 사람이 아니야. 엄연히 백씨 성을 쓰고 내 아버지는 삼명그룹 전 회장이신 백, 선자, 엽자 쓰시는 분이시거늘.”

=그 참 편하게 사시네. 필요 없을 때는 CH가의 사람이었다가, 필요하면 삼명家의 사람이 되니 말입니다.

“너 지금 날 비꼬는 거냐?”

=형님은 철면피가 여전하시네요. 누구랑 달라서 저는 한가하게 싸울 시간도 없습니다. 이 통화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이제....2분 정도 남았네요. 2분 뒤에는 끊을 테니 할 말 있으시면, 그 얘기를 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할 말 있으면 빨리 하란 소리였다.

“철면피? 너 이 새끼 그게 형님한테....”

=1분 40초 남았습니다.

“이이....TVM에 광고 뺀 거 도로 원위치 시켜라.”

=그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뭐?”

=제 아들 준열이에게 얘기하십시오.

“준열이? 네 막내아들 말이냐?”

=네. 그녀석이 계속 TVM에 광고 맡기겠다면 그렇게 될 것이고, 아니면 삼명그룹의 계열사나 협력사 중에서, 더 이상 TVM에 광고 맡길 곳은 없을 겁니다. 아아. 오후에는 협력사들도 TVM에서 광고 뺄 겁니다. 그러니 서두르시는 게 좋겠군요.

말이 협력사지 그들은 삼명그룹 계열사를 빼고, TVM에 광고를 맡기고 있는 나머지 대부분의 회사들이었다. 즉 TVM의 광고 90%이상이 오늘 중에 다 광고를 뺄 거라는 얘기.

“이런 미친....”

=이제 40초 남았습니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거냐?”

=그것도 준열이 한데 물어보십시오. 녀석이 그래달라고 해서, 저는 들어 준 거뿐이니까.

“네, 네가 아들 말을 들어 줬다고?”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은 독불장군이었다. 누구 말을 들을 사람도, 대가 없이 누구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아버지도 말년에 내 부탁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때 제가 아버지께 부탁드려서 형님께 CH제당과 계열사 4개를 넘겨 준 거 말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의 CH그룹도 없었겠지요.

“크음....”

백승렬 회장의 그 말에 백승호 회장은 괜히 할 말이 없어 헛기침을 했다.

=시간 다 됐습니다. 그럼 이만....

뚜뚜뚜뚜뚜....

백승렬 회장은 진짜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자 전화를 끊었다.

* * *

백승렬 회장과 통화 후, 백승호 회장은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휴우우....”

아무래도 백승렬 회장이 많이 바뀐 거 같았다. 그 말은 이제 백승호 회장이 먼저 손을 내밀어도, 백승렬 회장이 그 손을 잡지 않을 공산이 커져 버렸다는 얘기가 된다.

즉 삼명그룹에서 계열사 2개를 더 뜯어내려던, 백승호 회장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 버린 것이다.

“쳇! 그보다 막내라니....”

좀 전 통화에서 백승렬 회장은, 상당히 의미 있는 말을 백승호 회장에게 했다.

그건 바로 막내아들의 부탁을 백승렬 회장이 들어 주었다는 것인데, 그 말은 곧 백승렬 회장이 자신의 후계자로, 막내 백준열을 낙점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백선엽 선대 회장처럼, 백승렬이도 자기 후계자인 백준열을 위해서, 그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당장 백준열이 연락처 알아 와.”

“네. 회장님.”

백승호 회장은 일단 비서실장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 뒤, 자신의 아들이자 TVM의 대표인 백준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버지. 벌써 얘기 끝내신 거예요?

“하아. 너는 아버지라고 하지 말라니까. 하아. 됐다.”

거듭 한숨을 내 쉬던 백승호 회장. 그가 백준기에게 바로 물었다.

“너 혹시 백준열이하고 뭔 문제 있냐?”=네?

“가만....너 진짜 백준열하고 뭐가 있는 건 아니지?”

=아, 아니 그게....

백준기는 뒤늦게 백승호 회장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백준열의 JYB엔터에서 방송국인 TVM을 띄엄띄엄 보기에 보이콧을 좀 했다고 말이다.

=뭐? 이런 미친 새끼가....할 짓이 없어서 삼명가의 적자를 건드려? 너 이 새끼....

“그게 뭐 어때서요? 저도 삼명가의 일원이라고요. 나이도 제가 백준열보다 더 위란 말입니다.”

백승호 회장은 아들 녀석의 철없는 말에, 좀 전 백승렬 회장이 그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필요 없을 때는 CH가의 사람이었다가, 필요하면 삼명家의 사람이 되는,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는, 아들 녀석을 보고 있자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아들을 만든 게, 바로 자신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허어....

탄식하던 백승호 회장이 백준기에게 말했다.

=오후에 삼명그룹 협력사들도 광고 뺄 거란다.

“네?”

그 말에 기겁하는 백준기. 이건 아버지한테 말해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더니, 오히려 일을 더 키워 놓은 꼴이지 않은가?

“아버지. 저 오늘 백수 만들기로 작정 하신 겁니까?”

세상 어느 아버지가 자식을 백수로 만들고 싶어 하겠는가?

=내가 준열이에게 전화해서 해결 해 볼 테니까 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그 사이 비서실장이 백준열의 연락처를 알아왔다. 백승호 회장은 백준기와 통화를 끝내고, 바로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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