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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최현일과 김훈은 같은 특전사 동료였다.
나이는 김훈이 2살 위였지만, 고아나 마찬가지인 김훈과 달리, 최현일은 대전에서 알부자로 소문난 가족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군 전역 후, 두 사람의 시작점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최현일은 부자인 가족의 지원을 받아서, 바로 처리자들 에이전시를 차렸지만 김훈은 아니었다.
그는 제대로 직장도 구하지 못해서, 경호원으로 알바를 전전하다가, 결국 러시아로 넘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킬러 생활을 시작하고, 동유럽에 넘어가서 돈을 벌어서 국내로 다시 돌아와,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 지금의 처리자들 에이전시를 차렸다.
아무래도 최현일의 에이전시와 김훈의 에이전시는 같은 동종 처리자들로 자주 부딪쳤다.
하지만 경륜이나 규모에서, 김훈의 에이전시는 최현일의 에이전시에 훨씬 못 미쳤다.
그렇다보니 그 동안 자의 반 타의 반, 일거리를 꽤나 많이 뺏겼던 김훈의 에이전시.
하지만 이쪽도 이제 꿇릴 게 전혀 없어졌다. 든든한 뒷배를 두게 되었으니 말이다.
에이전시의 외형이야 결국 돈만 있으면 금방 불릴 수 있었고, 김훈은 이미 그 일을 진행 중에 있었다.
바로 같은 체급의 처리자들 에이전시를 통합하는 걸로 말이다.
쉽게 말해서 처리자 에이전시끼리의 M&A를 추진 중에 있었던 것이다.
“일단 좀 지켜보자고. 이거 일이 점점 더 재미있어 지는 걸?”
그 후 김훈은 인천공항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기존 일정도 다 취소 시켰다.
대신 김포공항으로 가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날아갔다.
사천공항에 가는 국내선 비행기가 바로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김해공항으로 가서 거기서 바로 남해로 갈 생각이었다.
김훈이 그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바로 최현일 에이전시가 하동훈에게 농락당하는 걸,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그들은 하동훈을 별 거 아닌 일반인으로 보고 있을 거야. 하지만 놈은 변장술에 능하지. 그걸 모르는 한, 최현일의 에이전트에서 놈을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해. 근데 문제는 그 의뢰자가 삼명그룹이란 거지. 보통 그런 대기업의 경우 빠른 처리를 원하고, 또 기한 내 처리를 원하는 게 대부분이란 말이지. 고로 최현일의 에이전트는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어. 그때 우리가 내미는 정보를, 그들은 얼마가 들든 살 수밖에 없을 거란 말이지.”
김훈은 이번에 남해에 가서 최현일의 처리자들 에이전시를 상대로 제대로 목돈을 뜯어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돈 보다 더 김훈이 노리는 건, 바로 국내 최대 처리자들 에이전시라는, 최현일 에이전시의 명망에 똥칠을 하는 것이었다.
이번 일이 다른 처리자들 에이전시에 알려지게 되면, 김훈 에이전시의 위상은 급부상할 것이고, 반대로 최현일 에이전시는 명성이 급 추락할 테니, 이때가 김훈이 노리는 반전의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올해 안에 대한민국 최고의 처리자들 에이전시로 거듭난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그의 처리자들 에이전시는 반드시 국내 최고의 위치에 있어야 했다.
거기에 최고의 조력자가 돕는다면, 김훈은 자신의 복수가 단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훈 대표는, 자신의 바뀐 일정을 핸드폰을 꺼내서 간단히 문자로 작성해서, 백준열 대표에게 문자 메시지로 보냈다.
그러고 나서 김해공항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탑승했다.
지이잉!
그리고 비행기 이륙 전에 스튜어디스가 핸드폰을 비행기모드나 꺼달라는 말을 듣고, 막 핸드폰을 꺼려 할 때 백준열 대표로부터 답 메시지가 날아왔다.
[대어 잡거든 서울로 가져와서 같이 회 떠먹읍시다]
백준열 대표가 회를 못 먹어서 이런 메시지를 보냈겠는가?
여기서 ‘같이’란 글자가 유독 김훈의 눈에 띠었다.
* * *
경남 남해에서 한 모텔에 달방을 얻은 하동훈.
그는 변장을 지우고 원래 모습으로 남해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가 여기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나? 그런 그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할 때까지, 하동훈은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남해의 한 횟집에서 혼자 싱싱한 회와, 보글보글 끓는 매운탕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이잉!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그가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서지현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러니까 하동훈은 서지현에게만은, 자신의 대포폰 번호를 알려 준 것이다.
“어어. 나야. 어떻게 됐어?”
하동훈은 서지현이 부디 그가 시킨 대로, 이번 일을 잘 해결해 주었기를 속으로 기도하며 물었다.
=잘 됐어. 자기 쫓는 자들 다 철수 시켰고.
“진짜?”
=응. 근데 자기가 정말 우리 집 막내를 죽이려 한 거야?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지. 함의원이....”
하동훈은 술도 한 잔 했겠다, 자신의 여자인 서지현과 편안하게 통화를 했다.
그 결과 통화를 끝내고 보니, 서지현과 30분 넘게 해 전화 통화를 해 버렸다.
이럴 경우 누군가 서지현의 핸드폰에 해킹 프로그램을 깔아 놨다면, 현재 하동훈의 위치가 노출 될 수 있었다.
“헉!”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하동훈은 부랴부랴 자신의 대포폰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는, 곧장 모텔로 가서 짐을 챙겨서 나왔다.
하지만 남해시에도 CCTV카메라와 자동차 블랙박스가 넘쳐 났다. 그걸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한 순간 하동훈은 조급해 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그는 황급히 남해시의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런데 터미널 주위에 수상쩍은 자들이 벌써 깔려 있었다.
“C발....”
그때 제일 먼저 하동훈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처리자들 에이전시였다.
그들이라면 한 두 시간이면, 하동훈이 대한민국 어디에 있어도 그를 잡으러 사람들을 쓰거나, 아니면 직접 처리자를 보낼 수 있었다.
그나마 여기가 대한민국 남단에 위치한 바닷가의 항구 도시라서, 처리자들까지는 아직 못 오고, 대신 현지의 조폭들이나 양아치들을 동원한 모양이었다.
“흥! 이런 식으로 날 잡겠다고?”
코웃음을 친 하동훈. 그는 잠시 근처 PC방에 들렀다.
그리고 거기 개인 실에 들어가서 변장을 하고 나왔는데, 그가 계산을 하지 않고 나가도 카운터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동훈이 변신한 게 구부정하게 허리가 굽어진 노파였으니까.
지팡이까지 짚고 힘들게 움직이는 노파를, 관심 깊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터미널의 대기석에서는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표도 마찬가지였다.
하동훈을 보고 매표소 안의 여직원이 알아서 공짜 표를 끊어주었다.
남해시장이 선거 때 내 건 공약 중 하나가, 70세 이상 노인 분들이 시내버스 말고도 가까운 인근 시외버스도, 무료로 탈 수 있게 하겠다는 거였는데 그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었던 것.
하동훈은 남해에서 굳이 멀리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남해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갈 수 있는 사천시 창선으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창선 가는 버스를 탄 하동훈. 그는 자신의 용모파기를 들고 눈에 불을 켜고, 시외버스터미널 주위를 훑고 있는 이 바닥 조폭들과 양아치들을 비웃었다.
부우우웅!
잠시 후 버스는 출발했고, 하동훈은 남해에서 창선으로 넘어갔다.
그걸 모르는 최현일 에이전시의 처리자들이 헬기를 타고, 막 남해시청 옥상의 헬리포터에 안착했다.
그들은 남해에 오자마자 바로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왜냐하면 남해시의 교통통제 센터를 통해 하동훈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그가 시외버스터미널로 움직인 게 포착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서울의 최현일 에이전시에서는 남해에 있는 조직에 직접 연락했다.
상대가 일반인이기 때문에, 굳이 처리자들이 아니라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남해시내 조폭들을 동원해서 먼저 하동훈을 잡으려고 시도 한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가 않았다.
최현일 에이전시의 처리자들이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은 하동훈을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다.
* * *
갑자기 남해시내의 조폭과 양아치들이 다 쏟아져 나와서, 시외버스터미널 주위를 서성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대니 민원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이. 거기. 얼굴 좀 봅시다.”
“왜, 왜 이래요?”
“아니지?”
“어어. 아냐.”
“가보쇼.”
“하아....나참....”
사람들은 그런 조폭과 양아치들의 행태에 분개했고, 남해시 경찰서에 전화가 폭주했다.
그런데 그 전화가 경찰서에만 가는 건 아니었다. 남해시 국회의원 사무실에도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곧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는 터라, 여당의 텃밭인 남해지만 그곳에서 3선을 노리는 현 국회의원 박원석도, 그 얘기를 듣고 가만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남해시 경찰서의 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배 서장. 나야. 시외버스터미널에 조폭들 말이야. 빨리 정리 좀 해.”
박원석 의원은 자기 고교 후배인, 남해시 경찰서장에게 스스럼없이 말했다.
“뭐? 서울에서? 하루? 하아....이거 일이 복잡해지네. 그럼 거기 경찰차라도 몇 대 보내서 생색이라도 내고 있자고. 그래. 배 서장이 고생 많아. 어쩌겠어? 막말로 삼명그룹 건드렸다가 너나 나랑 옷 벗으면, 누가 우릴 책임져 줄 건데? 그렇지. 그냥 못 본 척 하는 게 최선이야.”
박원석 의원은 괜히 전화했다 싶었다. 배 서장의 말대로라면 하루만 참았으면 끝났을 일을, 그가 남해 경찰서에 전화를 함으로 해서, 잘하면 그도 배 서장과 같이 덤터기 쓰게 생겼으니 말이다.
“에이씨....”
그 뒤 박원석 의원은 남해 지역구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그에게 얘기 할 거 없다고 보좌관에게 말해 아예 원천차단 시켜 버리고, 이번 선거 공천권에 대한 확답을 받기 위해서 당 최고위원과의 미팅에 집중했다.
그 사이 남해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최현일 에이전시의 처리자들은, 남해 경찰서의 교통통제센터의 도움을 받아서, 좀 더 디테일 하게 하동훈의 행적을 추적 중에 있었다.
“저 PC방이다.”
하동훈이 이곳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와서 들어간 유일한 장소. 그 뒤 하동훈의 행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시외버스터미널을 기준으로 반경 200미터 내외에서는 말이다.
처리자들은 우르르 그 PC방으로 들어갔고, 놈이 사용한 1인실 방을 샅샅이 살폈지만, 별 다른 게 없었다. 그 컴퓨터까지 살폈지만 실제 컴퓨터를 쓰지도 않았다.
“그 놈 꼭 좀 잡아 주십시오. PC방비 얼마나 한다고 그걸 떼먹고 튀어?”
PC방 주인이 분개해서 말했다. 그런데 골 때리는 건, 하필 이 PC방이 오늘 CCTV가 고장 나서, 수리를 요청해 놓은 상태란 것이다.
그러니까 하동훈은 이곳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최현일 에이전시에서 나온 처리자들의 우두머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울에서 내려 올 때까지만 해도, 별거 아닌 손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아니었다.
하동훈이란 그 놈은 뭔가 있었다.
그걸 캐내야 하는데, 문제는 그들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곧장 서울 최현일 에이전시 상황실로 전화를 걸었다.
* * *
최현일 처리자들 에이전시의 대표 최현일. 그는 평소라면 퇴근 했을 시간이지만 아직 회사에 남아 있었다.
“삼명그룹에서, 그것도 백승렬 회장이 특별히 지시한 일이다. 반드시 오늘 내로 해결해야 해.”
그래서 서울에서 헬기까지 동원해서, 경남 남해까지 처리자들을 보낸 최현일.
거기다가 운 좋게 미리 정보를 얻어서, 하동훈이라는 타깃이 나타날 거라는 남해 시외버스터미널로, 그 동네 토착 조폭들까지 보내 놨다.
하동훈을 잡으면 5억을 주겠다고, 거기 조폭 두목에게 얘기해 놨으니, 아마도 눈에 불을 켜고 놈을 찾아 낼 것이었다.
“아마 남해 조폭들이 먼저 놈을 잡을 겁니다.”
최현일 처리자들 에이전시의 2인자인 허재훈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면 좋지.”
“제 말은 괜히 헬기까지 동원해서 이 난리를 칠 필요가 없었단 거죠.”
요즘 들어 자꾸 대표인 최현일의 심기를 거스르는 허재훈이었다.
그가 이러는 이유야 뻔했다.
최현일의 대전 집이 요즘 어려웠다. 그의 큰형이 한 투자가 실패하면서, 자금난에 시달렸는데 그 빛 일부를 변제하기 위해서, 최현일은 자신의 에이전시 지분을 30%나 팔았고, 그 지분을 인수한 게 바로 허재훈이었다.
즉 에이전시 내 허재훈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져 버린 것이다. 대표인 최현일을 위협할 정도로 말이다.
“헬기 한 대 쓰는데 드는 돈이 얼만데....하여튼 아낄 줄 몰라요.”
마치 여기 에이전시가 자기 꺼 라도 된 듯 말하는 허재훈을 보고, 최현일이 어이없어 할 때였다.
최현일이 특별히 이번 일을 맡긴, 자신의 에이전시에서 가장 베테랑이고, 일처리가 확실한 처리자 박태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최현일은 허재훈을 피해 상황실 밖으로 나와서, 박태식의 전화를 받았다.
“어어. 어떻게 됐어? 어. 뭐? 그러니까 지금 하동훈이 사라졌다는 거야?”
전화를 받고 있는 최현일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다른 처리자도 아니고 박태식이 오늘 중 처리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태식아. 너도 알잖아. 이거 삼명그룹의 의뢰야. 그것도 백승렬 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는. 오늘 중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우리가 삼명그룹에 찍히게 된다고. 하아. 알아. 아는데....그래. 일단 내가 그쪽에 연락해 보고 다시 전화할게.”
별거 아닌 일 같아서 삼명그룹에 큰소리 빵빵 쳐 놓은 최현일이었다.
그런데 하루만 더 시간을 달라고, 전화를 해야 하는 최현일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