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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자자. 다들 저녁들 먹고 가볍게 한잔씩들 해. 물론 이 근방에서 말이야. 그리고 내가 말한 거 잊지 말고.”
박칠석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이곳 정보 말고 좀 더 자세한, 여기 업소들의 정보를 원했다.
그래서 부하들도 2-3명씩 소단위로 짝을 지어서, 아까 점심때부터 각자 다른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게했다. 그리고 그 음식점 주인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오게 했고.
실제로 그렇게 이곳 업소들에서 주워들어 온 부하들의 정보가 박칠석에게, 이곳을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래서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부하들에게 그럴 것을 지시했는데, 단지 태천파의 붕괴로 흔들리고 있는 부하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기 위해서, 저녁 식사 후 한잔해도 된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술 마신다는 생각에 부하들의 굳었던 얼굴이 다시 밝아지는 걸 보고, 박칠석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저기 회 센터에서 장어나 구워 먹자.”
“네. 보스.”
박칠석은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부하 다섯을 데리고, 이태원 역 주변에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박 사장이 직접 운영하는 회 센터로 향했다.
거기서 박칠석은 박 사장과 단번에 친해졌다. 왜냐하면 둘은 같은 ‘박씨’ 인데다가 박 사장이 알고 보니 고향이 강원도 정선이라고 하지 않은가?
“동생. 한잔 받아.”
“네. 형님.”
항렬이 밑이고 나이도 박 사장 보다 더 어린 박칠석이 당연히 동생을 자처했다.
“형님도 한잔 받으십시오.”
“좋지.”
그렇게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박 사장과 십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해진 박칠석은, 여기 터줏대감인 그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물었고 술이 들어가자 흥이 도진 박 사장은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했다.
“여봇!”
“헉!”
그러다가 마나님에게 귀를 잡힌 채 끌려갔다.
“아니. 여보. 동생도 보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겠소?”
“동생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렇게 따지면 당신 동생은 백 명도 더 넘어.”
보아하니 원래부터 박 사장이 좀 팔랑 귀인 모양이었다. 박 사장과 달리 까다로워 보이는 횟집센터 사모님은, 조폭스러워 보이는 박칠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거 같았다.
원래 사람의 선입견이 무서운 게, 그것을 극복하려면 많은 숨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박칠석에게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
이곳 회센터에서 정보를 더 얻기 틀렸다 싶자, 박칠석은 부하들을 데리고 그 곳을 나왔다.
당연히 계산은 칼 같이 잘하고 말이다. 그나마 군소리 없이 계산을 잘하는 걸 보고 회 센터 사모님도 더는 도끼눈으로 박칠석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회 센터를 나온 박칠석이, 제대로 부하들과 술 한 잔 하려고 술집을 찾고 있을 때였다.
“형님. 진현이 전환데 지금 호프집에서 다른 조직원과 시비가 붙었다는 데 어쩌죠?”
“시비?”
“네.”
“어디 판데?”
“그게 모르겠답니다. 겉은 조폭 같은 데 하는 행동은 양아치 같다 네요. 어쩔까요?”
“몇 놈인데?”
“7명이요.”
“거기로 가자.”
“네. 저기 보이네요. 앤 크라운!”
박칠석은 부하들과 발걸음을 빨리 해서, 10분쯤 뒤 호프집 앤 크라운에 들어갔다.
* * *
김민식이 화장실 간다고 나가고 남은 그의 수하들은, 3천CC 호프 2개를 금방 먹어치우고 다시 두 개를 더 시켰다.
“근데 술이 좀 밍밍하지 않아?”
“그러네. 물 탔나?”
“소주 시켜서 타서 마시자.”
“어? 형님도 없는데 그래도 될까?”
“뭐 어때? 우리가 소주 몇 병도 못 시킬 짬밥은 아니잖아?”
“그건 또 그러네. 여기 소주 7병 가져 다 줘.”
7명이니까 두 당 한 병씩 맥주에 소주 섞어 먹겠다는 소리였다. 근데 화장실 간 김민식은 똥통에 빠졌는지 오지 않고 그의 수하들은 시킨 호프에 소주를 타서 쭉쭉 들이켰다.
그렇게 소주 한 병씩 다 마신 수하들이 다시 호프와 소주를 시키고 다들 술기운이 올라서 실실 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곳 호프집에 알바생으로 보이는 아직 앳되어 보이는 여자가, 나간 손님들의 테이블을 치우고 접시와 맥주잔을 들고 움직이다가 그만 다리가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와장창창!
“뭐, 뭐야?”
“에이 씨. 옷 다 버렸잖아?”
하필 자빠져도 조폭들이 있는 쪽으로 넘어지면서 들고 있던 접시와 맥주잔이 조폭들을 향해 날아갔고 그게 살짝 취기가 오른 조폭을 자극시켰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 알바생이 즉시 사과를 했지만 조폭들에게 이건 그녀 사과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어이. 넌 꺼져. 너한테 더 볼 일 없으니까. 여기 사장 나오라고 해.”
“빨리 가서 너네 사장 데려 오라고!”
쿠쾅쾅! 와장창창창!
꼭지 돌자 조폭들이 술자리부터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빈 술병 집어 던지고.
그러니까 지금 김민식의 수하들은 그들이 예전에 자주 했었던, 그 양아치 짓을 술이 들어가자 지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녀석들의 행태에 즉시 호프집 주인이 나타났다.
이럴 줄 알고 조폭들을 가게에 들이지 않으려 한 건데 말이다. 호프집 주인은 김민식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 없고 그 수하들이 생 지랄을 떨어대고 있었다.
술집만 십여 년 넘게 해 온 호프집 주인은 지금 그가 나서 봐야 저들을 어쩔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해서 막 태석파에 연락을 하려 할 때였다.
“너희들 뭐야?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조폭들에게 대 놓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그러니까 또 다른 조폭들이 등장했다. 원래는 두 명이었다.
껄렁해 보여도 조폭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받았는데 하나 둘씩 일행이 늘어나더니 어느 새 5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렇게 5명이 되고 나니 그들이 조폭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미 술잔은 늘어났고 안주도 많이 시킨 터라 어쩔 수 없이 계속 술을 내주었다.
그랬던 그 5명이 갱판 치는 조폭들에게 발끈해서 나선 것이다.
“하아....”
태석파에 전화를 걸려던 호프집 주인은 그걸 보고 걸려던 전화를 내려놨다. 이거 잘못하면 조폭들끼리 패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태석파가 아니라 경찰에 전화를 해야 할 판이었다.
* * *
김민식이 없는 그의 수하들은 더 이상 조폭이라 볼 수 없었다. 양아치와 조폭은 일반 사람이 보기에 구분이 어렵다. 하지만 조폭들은 딱 보면 저놈이 조폭인지 양아치인지 바로 구분이 갔다.
그런 면에서 박칠석의 부하들은 양아치 새끼들이 겁도 없이 술집에 갱판 치는 게 영 못 마땅했다.
두목인 박칠석이 가급적 소란은 피우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어디서 굴러먹던 양아치 새끼들이 그들이 오랜만에 마시는 술자리를 방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좋게 말로 경고를 했다. 그런데 이것들이 겁도 없이 엉겼다.
“뭐어? 시끄러워? 어떤 새끼들이야?”
술 한 잔 들어간 양아치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었다. 7명의 양아치들이 겁을 상실한 채 박칠석의 부하들이 있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그 사이에 거치적거리는 건 다 때려 부수면서, 양아치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는 말이다.
“나다. 내가 그렇다. 어쩔래?”
그러자 경고를 날린 박칠석의 수하부터 시작해서 그 자리에 있었던 5명의 강원도산 조폭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며 나섰다.
“뭐, 뭐야?”
“저, 저것들 조직원 같은데?”
“C발. 그래서 뭐?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놈 밖에 안 되네.”
“형님도 없는데 어쩌려고?”
“야! 우리가 쪽수가 더 많아. 쫄 거 없어.”
양아치들답게 상대를 앞에 두고, 정작 저들끼리 티격태격 거리는 김민식의 수하들.
그런 놈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박칠석의 부하들 중 하나가 말했다.
“보스가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네.”
“그래? 뭐 그러면 보스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고작 양아치들 상대하는 데 긴장하고 자실 박칠석의 강원도산 조폭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전도 겪은 진짜배기 조폭들이었다. 눈앞의 말만으로 싸우는 양아치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렇게 몇 분 되지 않아서 박칠석이 5명의 조폭들을 더 데리고 나타났고, 김민식의 양아치들은 쪽수에서 밀리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박칠석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것들 뭐야?”
“애들 말대로라면, 김민식이라고 형님이란 놈이 있는 거 같은데, 화장실가서 아직 안 오고 있답니다.”
“화장실이 푸세식도 아니고 똥통에 빠졌을 리는 없잖아?”
“그게....아무래도 애들 버리고 튄 거 같습니다.”
“허어....”
기가 차 하던 박칠석. 하지만 가만 보니 서울 놈들이고 돈 좀 쥐어주면 집 지키는 거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말했다.
“니들 내 밑에서 일해 볼래? 한 달에 2백씩 줄게.”
“2백이요?”
박칠석의 2백이란 말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서울 양아치들. 하긴 홍대복에게 매달 백만 원씩 받고 일해 왔던 그들 입장에서, 월급이 당장 2배로 오르는데 그런 절호의 기회를 걷어 찰 정도로, 홍대복 사장에게 충성을 다할 녀석은 없었다. 애초 그런 녀석이었다면 양아치 노릇도 안하고 있었겠지.
* * *
중앙지검 반부패부의 나재석 검사. 그는 QH엔터 홍대복 대표를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놈을 잡으려면 수사팀을 보내야 하는데 믿을 만한 수사 인력이 없었다.
나 검사가 신뢰하는 형사 팀은 지금 마약수사에 매달리고 있었고, 새로운 수사팀을 쓰려고 해도 신뢰가 가지 않았다.
“아아. 맞다.”
그때 서부지검의 부부장검사인 도재욱을 잡은 형사가 생각났다.
“어디 경찰서에 형사더라?”
당시 보니 도재욱 부부장검사와 척을 진 사이인 걸 알 수 있었다.
도재욱은 서 검사가 좀 잘 알았다. 서부지검의 부패 종합 선물 세트로 불리는 그를 중앙지검 반부패 부에게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그래도 그가 일을 잘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빠지면 그만큼 힘들어지는 게 동료 검사들이 될 테니, 쉽사리 그를 쳐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그런 도재욱과 척을 진 형사라면, 괜찮은 형사라는 게 나 검사의 판단이었다.
“여기 있다. 강형욱 경사. 소속이....강동 경찰서였군. 좋아.”
나 검사는 곧장 강동 경찰서에 연락을 했고, 거기 있는 형사 중 강형욱 경사를 비롯해서 여유 있게, 5명의 형사를 오늘 밤 차출해 줄 것을 강동 경찰서장에게 요청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중앙지검 반부패부의 요청이었다. 강동 경찰서장이 거부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아니 오히려 기회라고 볼 수 있었다. 달랑 형사 5명을 지원해 주고 중앙지검에 생색을 낼 수 있는.
해서 강동 경찰서장은 바로 허락을 했고, 서 검사는 곧바로 강형욱 경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검사님.
“강 형사님. 지금 바로 해 줘야 할 일이 생겼어요. 동료 형사 5명 데리고....”
나 검사는 우선 강동서에 지원을 요청했고 그걸 서장이 받아드렸다는 점을 얘기하고, 강형욱 형사가 뭘 해줘야 하는 지 쭉 설명했다. 그러자 그 얘기를 다 듣고 난 강형욱 경사가 말했다.
=별거 아니네요. 하지만 그 성상납 장소를 직접 만들고, 운영한 그 악질 QH엔터 대표를 잡는 일이라면, 당연히 발 벗고 나서야죠. 맡겨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그 놈 잡겠습니다.
“잘 좀 부탁해요. 그럼 지금 즉시 이태원 역 근처에 있는 홀리데이 커피 전문점으로 가 주세요.”
=네. 동료들 데리고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강형욱 형사와 통화를 끝낸 뒤, 남은 업무를 마무리 짓고 나서 거의 자정 무렵 퇴근하던 나재석 검사.
그는 이제 자신의 스폰서나 마찬가지인 JYB엔터의 대표 백준열에게, 보고차 문자를 보낸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그 사이 나 검사의 제보와 지시를 받고, 강동 경찰서의 동료 형사를 무려 5명이나 데리고는, 이태원 역 근처 홀리데이 커피 전문점 주위로 잠복해 있던 강형욱 형사.
“저기 오네.”
그는 나재석 검사가 말한 김민식이라는 전 조폭 출신 녀석이 홀리데이 커피 전문점에 나타나는 걸 보고 정차 중이던 차에서 아예 내렸다. 그리곤 그가 커피 전문점 안에 들어가기 전에 그에게 접근해서 쪽지 하나를 건넸다.
그 뒤 다시 정차 중인 차로 돌아 온 강형욱 형사. 그 쪽지에는 홍대복 발견 시, 즉각 자기에게 전화를 걸라고, 강형욱 형사의 핸드폰 번호가 그 쪽지 맨 밑에 적혀 있었다.
그렇게 김민식이 커피 전문점에 들어가고 나서 30분쯤 지나자 나왔고, 그때는 혼자가 아닌 조폭 7명을 데리고였다.
김민식은 그들을 데리고 인근에 호프집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그곳에서 나와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혼자서 엔젤스 PC방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그걸 보고 강형욱 형사는 재빨리 동료 형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나는 이 형사와 같이 건물 안으로 들어 갈 테니까. 장 형사와 박 형사는 정문, 김 형사는 후문을 맡아 줘.”
그 후 엔젤스 PC방이 있는 건물에 차를 대고 동료 이 형사와 같이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간 강형욱 형사.
그가 막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랐을 때, 그의 핸드폰에 문자 한통이 들어왔다.
[12F 클러버 만화방]
“오케이!”
강형욱 형사가 환호하며 지하층에서 막 올라 온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리고 12층 버튼을 잽싸게 눌렀다.
같이 탑승한 사람들이 있어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빠른 시간에 12층에 도착한 강형욱 형사와 그 동료 형사.
“강 형사님. 저기....”
그때 동료 형사가 손짓으로 가리킨 곳에 클러버 만화방이란 입간판이 보였다.
강형욱 형사와 동료 형사는 곧장 그쪽으로 움직였고 만화방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강형욱 형사가 소지하고 있던 홍대복의 사진을 동료 형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홍대복은 전직 조폭 두목이야. 그러니까 혼자 잡으려고 하지 말고 발견하면 바로 지원을 요청하라고. 알았지?”
“네. 강 형사님.”
그렇게 강형욱 형사가 동료 형사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 후, 두 형사는 만화방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