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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지금 그들이 있는 커피 전문점 주위 건물 중 절반 이상이 모텔이다.
그 모텔 중 또 절반이 무인모텔이고.
커피를 다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근처 약국으로 갔고, 거기서 박혜수가 파스를 달라고 했다.
“아니. 이 파스 말고 XX파스 주세요. 그게 멍 빼는 데 좋아요.”
“....”
박혜수가 옆에 세르게이를 보고 그렇게 말하자, 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세르게이는 주위를 경계하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박혜수의 요구에 약사가 XX파스를 건네자, 세르게이가 바로 지갑을 꺼냈다.
그러자 박혜수가 그런 그를 만류하며 말했다.
“이건 내가 살게요.”
그리곤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계산을 했다.
“고맙다.”
세르게이가 파스 하나에 고마워하자, 박혜수가 방긋 웃으며 자연스럽게 그의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가요. 내가 안 아프게 붙여 줄 테니까.”
그렇게 세르게이는 파스를 든 체 박혜수에게 이끌려서 약국을 나섰고, 바로 옆에 무인모텔로 직행했다.
당연히 모텔비는 세르게이가 냈다. 무인모텔 객실요금 정산기에 돈을 넣고, 무인판매기에 필요한 콘돔이며 치약, 칫솔, 면도기 등도 사서 지정 된 방으로 올라간 두 사람.
처음에는 어색하게 방으로 들어갔지만, 방문이 닫히고 나자 박혜수가 돌변했다.
누가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대담해진 박혜수가, 보다 적극적으로 세르게이에게 다가섰고, 둘은 마치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키스를 나눴다.
“츠르릅....쭙쭙....할짝....할짝....”
박혜수는 그 동안 십여 명도 넘는 남자들과 자봤다.
그녀도 언니인 박혜지처럼 성적자유주의자였다.
성적자유주의자란 프리섹스(free sex)를 즐기는 사람을 말했다.
하지만 박혜수도 결혼을 할 경우, 그 결혼한 배우자와만 성생활을 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낳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박혜수는 결혼 전에만, 한정적으로 성적자유주의자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여태 키스 해 본 남자 중에서, 지금 빅터는 손꼽을 정도로 키스를 잘했다.
특히 그의 혀 놀림은 거의 예술이었다.
“으윽....”
하지만 그들의 키스는 계속 지속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빅터가 어디가 아픈지 키스 도중에 신음소리를 내면서, 그녀 입술에서 먼저 자신의 입술을 떼어 낸 것이다.
“빅터. 왜 그래요?”
박혜수가 걱정스런 얼굴로 묻자, 빅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등이 아프다.”
빅터는 한국말을 잘 알아듣긴 했지만, 잘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길게 얘기를 하지 못해 답답한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요즘 부쩍 말이 많아진 한국 남자들에 비해, 과묵한 그가 박혜수는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셔츠 벗어 봐요. 내가 거기 파스 붙어 줄 테니까.”
그 말 후 박혜수가 파스 봉지를 열고 그 안에 파스를 꺼낼 때, 빅터가 그녀가 시킨 대로 상의셔츠를 벗었다. 그렇게 드러난 빅터의 상체는....
“아아....”
가슴에 털이 좀 있었지만 떡 벌어진 어깨에, 두꺼운 가슴, 굵은 팔의 빅터 상체는 탄탄한 근육질을 자랑했다.
거기다가 훈훈한 얼굴까지 갖춘 빅터를 보고 있자니, 입에 절로 침이 고이는 박혜수였다.
* * *
빅터, 그러니까 진짜는 세르게이가 등을 돌리고 앉자, 바로 뒤에서 박혜수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의 우람한 상체를 더 보지 못하는 게 아쉽기라도 한 듯 말이다.
하지만 세르게이의 등근육도 제법 볼만 했다. 단지 그가 움직이지 않으니, 근육들도 얌전히 있어서 그렇지.
“등 가운데....”
세르게이가 총에 맞은 위치를 말하자, 뒤에서 바로 박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네요. 진짜 멍이 들었어요. 시커멓게....아프겠다.”
박혜수는 준비 한 파스를 세르게이가 총 맞은 등에 붙였다. 그러자 시원한 느낌과 함께 통증도 빠르게 가라앉았다.
“고마워.”
세르게이는 그 말 후 벗어 놓은 상의를 다시 입으려 했다. 하지만 박혜수가 먼저 그의 상의 셔츠를 낚아챘다.
“곧 벗을 건데 뭐 하러 다시 입어요.”
그러면서 고혹적인 눈빛으로 세르게이를 쳐다봤다. 세르게이도 그 눈빛에 혹해서 박혜수를 안을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너와의 섹스는....좀 더 있다가....’
세르게이가 이렇게 참는 이유는, 그가 또 피를 더 봐야했기 때문이었다.
즉 지금 박혜수를 안으면 피를 보고 나서, 또 다른 여자를 찾아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쉽지 않았다.
해서 세르게이는 마저 피를 보고 나서, 여기로 돌아와서 박혜수를 안기로 한 것이다.
그러려면 박혜수가 그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줘야 하는데, 딱 봐도 그건 불가능해 보였다.
어느 여자가 섹스 하려고 준비가 다 끝났는데, 기다리라고 하고 나가서 한두 시간 뒤에 돌아오는 걸 좋아하겠나? 그 사이 집에 가버리지.
해서 세르게이는 자신이 볼일을 보고 올 때까지, 박혜수를 여기에서 잠 재워 둘 생각이었다.
“자아. 마셔.”
박혜수를 잠재우는 건 쉬웠다. 세르게이가 평소 지니고 다니는 약물 중, 초강력 수면제 한 방울을 생수 통에 떨어트린 뒤 그녀에게 건네면 끝.
“고마워요.”
세르게이가 먼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낸 뒤 마시는 척 하면서, 그 생수에 수면제를 넣고 그걸 박혜수에게 주자, 그녀가 멋모르고 그걸 한 모금 마셨다.
“이리 와.”
그런 그녀를 세르게이가 침대에 앉은 채 불렀고, 신이 난 박혜수가 세르게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응? 기분이 좀 이상하다. 아아아아함....왜 이렇게 졸리지....”
박혜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잠들었고, 세르게이는 그런 그녀를 침대에 편히 눕혀 두고는, 벗어 둔 상의 셔츠를 도로 입었다. 그리곤 그 상의 셔츠 위에 방탄조끼를 다시 착용하고, 그 위에 정장 상의을 걸쳤다.
이어 정장 상의 속에 잘 숨겨져 있던 권총을 꺼냈다.
M17 자동권총. 여기가 한국이라고 미제 권총이 세르게이에게 지급됐다.
장인은 연장 탓하지 않는다고, 세르게이도 그가 쓰는 권총은 대충 총알만 잘 나가면 됐다.
“뭐 총알이 부족 할 수도 있겠지만....”
놈들은 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놈들 총을 이용하면 될 일이었다.
세르게이는 모텔 방을 나서며 핸드폰을 꺼내서 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르게이. 어디야?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철수가 바로 그의 전화를 받으며 물어왔다.
“철수. 뭐 좀 알아 봐 줄 게 있어.”
=뭐?
“이태원의 서남아시아 흑인 조직 중에, 이름이 프랭크 인 놈이 있는 곳이 어딘지, 그 분석실인가 뭔가 하는 데 연락해서 지금 당장 알아 봐. 급하다.”
박혜수와 있을 때와 달리 러시아 말로 시원하게 자기 할 말을, 정확히 철수에게 전하는 세르게이.
=알았어. 이름이 프랭크 맞지?
“그래. 진짜 빨리.”
그렇게 철수와 통화를 끝낸 세르게이는 곧장 무인 호텔을 빠져 나와서 큰길 쪽으로 움직였고, 그 큰길을 따라 쭉 걷다보니 택시 승강장이 보였다.
거기서 멈춰 선 세르게이는 철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기를 기다렸다.
* * *
철수는 세르게이가 그렇게 길거리에서 삐져서 사라져 버릴지 몰랐다.
어디 편의점에 가서 담배하고 녀석이 좋아하는 초코바를 사들고, 그가 있는 데로 돌아 올 줄 알았다.
하지만 30분을 기다리고 한 시간을 기다려도, 녀석이 오지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냥 길거리에서 세르게이를 기다릴 수 없었던 철수는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세르게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자정이 다 되어 갈 무렵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한데 불쑥 녀석이 하는 소리가, 서남아시아 흑인 조직에 프랭크란 놈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서 전화해 달란다.
철수는 일단 세르게이가 시킨 대로, 김훈 에이전시의 분석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은 24시간 일한다더니 진짠가 그의 전화를 받았다.
철수는 김훈이 말한 대로, 서남아시아 흑인 조직에 프랭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세르게이가 알고 싶어 한다고 분석실에 전했다.
=이태원 나이지리아 마약조직 두목 프랭크를 말하는 모양이군.
근데 분석실에서 그 프랭크에 대해 잘 알았다.
=녀석의 현 위치라....잠깐만....
그렇게 몇 분 뒤, 분석실에서 철수에게 현재 프랭크의 위치를 상세히 얘기해 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 프랭크란 놈은, 용산구청 근처 해동의원이란 데 있단 말이네요? 잘 알았습니다.”
철수는 분석실에서 알려 준 말을 잘 기억했다가, 세르게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대로 얘기를 했다.
=알았다.
철수의 말을 듣고 난 세르게이가 바로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철수가 재빨리 물었다.
“언제 올 건데?”
=글쎄. 아침은 되어야 거기 가지 싶다.
“알았어. 몸조심 해.”
철수는 아무래도 오늘 혼자 자야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평소하지 않던 숙소 문단속까지 하고, 불을 켜 둔 채 잠자리에 들었다.
철수도 원래는 이러지 않았다. 대한민국 남자로 군대도 다녀왔고 말이다.
한데 세르게이와 일하면서, 사람 죽어 나가는 걸 봐오다 보니,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현실로 더 다가왔고, 그게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로 발전해 버렸다.
해서 평소 세르게이가 있을 때는, 마음 편하게 잤지만 그가 없을 때는, 방문 뿐 아니라 창문까지 다 걸어 잠그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거기다 불까지 켜져 있으면 더 안심하고 잘 수 있었고.
그래도 오늘 하루 피곤했던 탓에, 철수는 오래 뒤척이지 않고 잠이 들었다.
그 사이 철수의 전화를 받고 난 세르게이는, 눈앞에 대기 중인 택시에 탑승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용산구청 근처. 해동의원.”
“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이태원 쪽 택시 기사라 그런지, 외국인인 세르게이가 한국말로 정확히 목적지를 말해도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아무튼 지금 있는 곳에서 용산구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세르게이를 태운 택시는 불과 10분도 안 돼서 목적지인 해동의원이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12시가 넘어 할증은 붙었지만, 요금도 그리 많지 않았다.
세르게이는 바로 택시비를 지불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 * *
이태원 클럽을 나온 프랭크와 그 부하들. 그들은 주차장으로 가서 자신들이 타고 온 차를 타고, 용산 구청 근처에 있는 해동의원으로 향했다.
물론 이 시간에 의원급 병원이 영업을 할 리 없었다.
“닥터 박. 나야. 내 동생이 좀 다쳤어. 어어. 지금 해동의원 가는 중이야. 한 10분 걸릴 거 같아. 그래.”
프랭크는 한국에서 알게 된 의사와 친분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었다.
그 의사도 영업시간 말고, 번외로 버는 수입이 생각 외로 짭짤하자, 프랭크와 그 부하들의 주치의 노릇을 해주고 있었다.
잠시 후 프랭크를 태운 차가 해동의원 건물 앞에 도착하고, 그 차에서 프랭크와 함께 그의 동생인 루카스가 내렸다.
루카스는 오는 동안 고통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마약을 투약한 상황. 그래서 지금은 거시기 고통을 호소하기 보다는, 약에 취해 해롱거리기 바빴다.
그런 그를 프랭크의 부하들이 부축해서 건물 쪽으로 향했고, 그때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던 해동의원 원장이, 박태욱이 잠긴 건물 입구 문을 열었다.
“헤헤헤헤....”
“뭐야? 루카스 왜이래?”
루카스의 상태를 보고 박태욱이 눈살을 찌푸릴 때, 뒤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온 프랭크가 말했다.
“고환을 다쳤어. 그래서 마약을 좀 투여 했고.”
“마약? 하아. 환자에게 마약이라니....”
박태욱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지만, 그렇다고 루카스를 맡지 않겠다는 소리는 일절 하지 않았다.
“일단 처치실로 데리고 가자고.”
그럴 게 박태욱은, 프랭크파 조직원들 한 명을 치료해 주는데 무조건 3백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입원 시 하루 입원비가 백만 원이고.
그것이 프랭크와 박태욱 간에 맺은, 의료 서비스 계약의 핵심 요체였다.
“아이고야. 한쪽 고환이 완전히 깨졌네. 치료는 하겠지만 깨진 고환을 원상복구는 불가능 해. 일단 입원부터 하자고.”
루카스의 깨진 고환을 문진한 박태욱이 그렇게 말하며, 루카스의 팔에 링거 주사를 꽂았다. 그런 박태욱의 입 꼬리가 아까부터 계속 실룩거렸다.
안 그래도 돈이 필요했는데, 루카스를 입원시킴으로 해서 그 돈 문제가 해소 될 거 같아,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물론 그 기쁨을 프랭크나 그 부하들 눈에 들키게 드러내고 내색하진 않았다.
그도 의산데 환자의 아픔을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겠나?
지금은 루카스에게 마약이 투여 된 상태라, 박태욱은 섣불리 진통제를 투여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뭔가 치료하는 척은 해야 해서, 영양제를 투여하고 루카스를 병실로 옮겼다.
박태욱을 통해서 자신의 동생 루카스가, 고자가 됐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프랭크는 분노했다.
“그 양키 놈 반드시 찾아내서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말테다.”
그러기 위해서 프랭크는 동생인 루카스와 부하 둘을 여기 남겨 두고서, ‘나이지리아 골목’이라 불리는, 나이지리아 출신 마약조직의 근거지로 향했다.
거기 가야지 단골 흥신소에 그 양키 놈을 찾아 달라고 의뢰를 할 수 있었고, 또 서울에 거래처인 몇 군데 조폭 조직의 도움도 요청 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경찰 쪽에도 손도 써야 했다.
이태원 파출소와 이태원 관할인 용산 경찰서에, 사건 축소를 빌미로 돈을 찔러 넣어 줘야했던 것이다.
아니면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할 것이고, 프랭크파가 진짜 아작 날 수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경찰 쪽에 기름칠은 반드시 필요했다.
“개새끼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요구하려나....”
벌써부터 용산 경찰서에 그 인간들이 요구할 돈 때문에 골치 아픈 프랭크였다.
그렇게 프랭크가 떠나고 한 시간 쯤 뒤, 택시 한 대가 해동의원 건물 앞에 도착했고, 거기서 내린 백인 한 명이, 활짝 열려 있는 건물 입구 문을 통과해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