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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다음 날 백승호 회장은 더 버텨 봐도, 동생 백승렬이 여기로 병문안 오지 않을 거라 싶었던지, 그냥 퇴원 하겠다고 했다. 그때 부인인 강경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뭐? 큰 사돈이 오늘 승렬이를 만나?”
=네. 큰 며늘아가가 아침에 사돈댁에 전화 했다가, 알게 됐다고 지금 저한테 얘기하네요.
“허허허허. 그거 잘 됐군. 그럼 사돈에게 부탁을 좀 해 봐.”
=안 그래도 지금 안 사돈에게 전화 걸려고요. 금감 원장 쪽에서 얘기가 들어가면, 그래도 먹히겠죠?
“당연하지. 그럼 나는 여기 좀 더 있어야겠군.”
=일단 안 사돈에게 전화하고 연락드릴게요.
“그래. 큰일 했어. 큰 애기한테도 내가 고마워한다고 전해 줘.”
=그럴게요.
그렇게 통화 후 백승호 회장은 퇴원하겠다는 말을 바로 번복했다.
“오늘하루 여기 더 있을 테니까, 본사에 연락해서 급한 서류는 이쪽으로 가져 와.”
“네. 회장님.”
백승호 회장은 그 길로 병실에서 CH그룹의 급한 업무를 처리했는데, 그 뒤로 부인 강경심으로부터 긍정적인 얘기를 전해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
금감 원장인 사돈이 백승렬 회장의 수행 비서를 통해, 확실히 백 회장에게 백승호 회장 얘기를 전했다는 것이다.
“허허허허. 여기 맛있네. 맛있어.”
그래서 기분 좋게, 백승호 회장이 거하게 한 상 잘 차려진 호텔식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였다.
“회, 회장님?”
“왜? 승렬이 온데?”
백승호 회장의 수행비서가 곤란한 얼굴로 그 앞에 나타났다.
“그, 그게 아니라....삼명그룹에서 좀 전에 공식적으로 연락을 해 왔는데....”
“뭔데 그래? 빨리 말해!”
“백 회장님께서....불쾌하시다고....”
“뭐, 뭐라고? 지, 지금 승렬이가 나보고 불쾌하다고 했단 거야?”
“....”
비서실장은 차마 그렇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분기탱천한 백승호 회장이 자기 눈앞에 밥상부터 엎어버리고 있었으니까.
“으아아아....”
와장창창! 쿠쾅! 쾅!쾅!
그 뒤 눈에 보이는 건 다 집어 던지면서, 난동을 피우던 백승호 회장.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기력이 떨어지자, 결국 더 날 뛰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백승호 회장이 버럭 소리쳤다.
“빨리 퇴원 수속 밟아. 아니. 나 먼저 본사 들어가니까, 자네가 여기 정리하고 와.”
백승호 회장은 입고 있던 환자복을 바로 벗어 집어 던져 버리고,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 병실을 나섰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삼명그룹과는 끝이다.”
원래는 진작 했어야 할 선언이었다. 지금까지 삼명그룹을 꿀을 빨아놓고, 이제 와서 이러는 그의 이중성에, 그의 주위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백승호 회장은 능청스럽게 대기 중인 자기 차에 탑승했다.
그를 태운 차는 곧장 CH그룹 본사로 향했고, 본사에 도착하자마자 자기 방으로 올라간 백승호 회장은, 당장 이번 달에 만기가 도래한 은행 대출금을 두고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 * *
주말 동안 강원도의 속초에 있는 본가를 다녀 온 차은석.
그녀는 본가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푹 쉬다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째 얼굴이 퀭했다.
“진짜 다시는 가나 봐라.”
집에 오면 절대 안하겠다고 했던 부모님의 말은 다 뻥이었다.
토요일에 본가로 갔더니, 그때부터 시작해서 일요일에 서울로 오기 전까지, 차은석은 무려 6명의 남자와 선을 봐야했다.
“내 나이가 뭐 많다고....”
여자 나이 30살이면 직장에서 한창 일할 나이였다. 그런데 부모님은 그 30살을 넘기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실제 그녀가 선 본 남자 중에 이혼남도 있었고, 애 딸린 남자도 있었다.
근데 기가 찬 건 그 남자들이, 그녀 앞에서 더 당당하게 굴더란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 나이가 30살이라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그 중 한 명은 이런 말까지 해서, 차은석을 열불 나게 만들었다.
-30살 먹을 동안 뭐했어요? 아직 결혼도 못하고.
부모님 얼굴 봐서 참았지만, 차은석에게 마음에도 없는 남자들을 여섯 명이나 만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차은석은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나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 그렇다는 데 어떻게 해.”
자신이 백준열 대표를 남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다른 남자들과 만나보니 그제야 알게 된 그녀의 진짜 속마음이랄까?
물론 차은석은 자신의 이 마음을 꽁꽁 숨길 생각이었다. 사실 그녀가 용기를 내서 자기 마음을 백 대표에게 고백한 들, 백 대표가 그녀를 받아주겠는가?
그렇게 차은석이 JYB엔터에 출근하자마자 1층 휴게실 자판기 앞에서, 갓 뽑은 커피를 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였다.
“부문장님! 여기서 계셨네요. 동생 일은 고마웠어요.”
박혜지가 쪼르르 차은석에게 다가와서 머리를 숙였다.
“뭘요. 동생 분은 집에 잘 들어왔죠?”
“네. 덕분에요.”
차은석은 소속 연예인인 박혜지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자, 바로 아는 경찰 인맥을 동원했다.
그 결과 이태원 클럽 주위를 경찰들이 다시 한 번 훑어보게 됐고, 그 과정에서 박혜수가 발견 된 것이다.
어째든 박혜수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니, 잘 된 일이긴 한데 문제는 본인이었다.
‘대표님께서 이번 주말에 정재욱 문제를 해결 보시겠다고 하셨는데....그 일이 잘 됐나 모르겠네.’
차은석은 옆에서 뭐라 재잘거리며 떠드는 박혜지와 같이, 그녀의 일터인 특수 1부문 사무실로 향했다.
그때 그녀는 박혜지가 양태석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걸 모르는 게 더 이상 한 거지.’
왜냐하면 박혜지의 얘기의 90%이상이 양태석에 대한 얘기였으니까.
그래서 사무실에서 주간 회의들어가기 전, 차은석이 슬쩍 박혜지에게 물었다.
“대표님에게 얘기해서, 양 상무님 한 번 본사로 들어오라고 할까요?”
그랬더니 얼굴에 홍조를 띤 박혜지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차은석에게 말했다.
“그, 그래 주실래요? 아니. 꼭 좀 그래 주세요.”
자신과 달리 이성에 대해 너무도 적극적인 박혜지를 보고, 차은석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님 뵙게 되면 말씀 드려 볼게요.”
“고마워요. 부문장님.”
박혜지는 곧장 연기 수업을 받으러 갔고, 그런 그녀를 보고 차은석은 속으로 생각했다.
‘진짜 부럽다. 나도 혜지씨처럼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면 혹시....’
하지만 이내 머리를 내저은 차은석은 수첩을 챙겨서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 안에는 특수 1부문의 직원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그럼 시간 없으니 바로 회의 들어갈게요.”
이번 주에도 바쁠 예정인 특수 1부문이었다.
그 수장인 차은석은 자기 밑에 직원들이 혼선 없이 추진 중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그 가이드라인을 잘 짜 주었는데, 바로 그 일을 매주 월요일 아침 회의에서 했다.
오늘도 차은석은 직원들의 발표를 들으며, 수첩에다 뭔가를 열심히 적었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이 발표가 끝나자, 직원들에게 적절한 피드백과 함께, 그들이 이번 주에 무슨 일에 집중해야 할지, 그 가이드라인은 잡아주었다.
* * *
회의를 끝내고 회의실을 나온 차은석은, 대표실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집에 잘 다녀왔어요?
백준열 대표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차은석은 숨이 턱 막혔다.
=여보세요?
자기 말에 차은석이 별 대꾸가 없자, 전화 상태를 확인하는 백준열 대표.
그 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차은석이 바로 말했다.
“네. 잘 다녀왔습니다. 대표님은요?”
=나야 늘 그렇듯 바빴죠. 차 부문장도 알겠지만, 서재국 전 대통령께서도 서거하셨고요.
“아아. 맞다. 서 전 대통령께서 대표님 외조부님 되시죠? 삼가 심심한 조의를....”
=됐어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무슨....그 보다 정재욱 문제는 잘 해결 될 거 같아요.
“어, 어떻게요?”
=이번에 경찰청장 될 분하고 저번 토요일에 골프 쳤는데, 그 자리에 정재욱도 있었거든요. 거기서....
백준열은 정재욱이 차기 경찰청장 될 사람의 눈에 제대로 찍혔으며, 거기다가 본인이 나서면 정재욱을 지방으로 좌천 시켜 버릴 수 있을 거 같다는, 긍정적인 얘기를 듣고는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굿 뉴스네요. 고맙습니다. 대표님. 대표님처럼 직원을 이렇게 잘 챙겨 주시는 분도 없을 거예요.”
=차 부문장이 어디 보통 직원입니까? 앞으로 우리 JYB엔터를 이끌어 나갈 동량을, 대표인 내가 당연히 챙겨야죠.
“그,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부담 느끼시라고 한 말 아닌데. 아무튼 정재욱은 걱정 마시고 열심히 일해 주십시오.
“그럴게요.”
백준열 대표와 그렇게 통화를 끝낸 뒤, 차은석은 왠지 모를 시원섭섭한 감정이 들었다.
골치 아팠던 정재욱의 문제는 잘 해결 됐지만, 그로 인해 그 동안 백 대표와 허울 없이 가깝게 지냈던 시간을, 계속 이어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백 대표가 매번 그녀만 신경 써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니야. 까짓 내가 더 열심히 일해서, 매일 대표님을 뵈러 가면 되지. 아니면 대표님이 날 보러 오게 만들거나.”
차은석은 오히려 자기 일에 투지를 불태우며, 머릿속에 구상 중이던 프로젝트 하나를 끄집어내서는, 더 구체적인 실시계획을 짜 본 뒤, 보고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보고서가 완성 되면, 차은석은 그걸 들고 곧장 대표실로 갈 생각이었다.
그녀에게 이런 식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있는 한, 그녀가 백준열 대표를 만나는 건 언제든 가능했다.
적어도 백준열 대표는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보고서를 들고 찾아오는 직원이 누가 됐던 만나는 주었다.
대신 보고서가 실망스러울 경우, 그 직원은 다음부터 김비서의 사전 점검을 받아야만, 백 대표에게 보고서를 내밀 수 있었다.
“부문장님. 점심 먹으러 가요.”
차은석은 보고서 작성에 하도 집중하고 있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차은석이 주위를 둘러보니 사무실 직원들이 다들 그녀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제일 직급이 높은 그녀가, 점심시간이 됐는데도 일하고 있으니, 다들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럴 때는 바로 일어나는 게 맞았다.
“네. 식사하러 갑시다.”
그녀가 지갑을 챙겨 일어서자, 그제야 우르르 일어나는 특수 1부문 직원들.
차은석은 이제는 가족 같아진 직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 * *
백준열이 정재욱에 대해서 차은석에게 걱정 할 거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바로 시각.
정재욱 서울경찰청 수사과장은 자기 방에서 초조하게 친구, 전 우주그룹 재벌 3세 태석규의 전화를 기다렸다.
녀석이 원하는 대로 돈을 붙여주고, 거기다 자기 차 까지 내 준 정재욱.
“석규가 잘 해야 할 텐데.”
정재욱은 오늘 출근해 보고 느꼈다. 서울경찰청의 분위기가 들 떠 있다는 걸 말이다.
그게 뭘 뜻하겠는가? 바로 서울경찰청장인 박대순이, 경찰청장으로 내정 될 것이 확실하다는 거다.
그런데 자신은 토요일 서울CC에서 박대순 청장에게 제대로 찍혔다.
청장이 자기 입으로 그랬다고 하지 않는가? 자기 눈앞에 띠지 말라고 말이다.
지금으로서 정재욱은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으면 지키는 게 최선이었다.
박대순 청장이야 경찰청으로 옮겨 갈 테니, 정재욱과 부딪칠 일도 사실 없었다.
그러니까 이럴 때 백준열이 박대순 청장에게 전화 한통해서, 정재욱이를 그냥 서울경찰청에 있게 내버려 두라고 말해 준다면, 박 청장이 그 말을 들어 줄 가능성은 상당히 높았다.
“박 청장 입장에서, 어째든 나만 안 보면 되잖아? 거기다가 괜히 백준열의 신경을 거스를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태석규가 백준열을 만나는 게 지금은 중요했다.
“석규가 딴 건 몰라도, 인간관계가 나쁘진 않았으니까.”
태석규의 말에 따르면 백준열이 뉴욕 유학시절에 그와 친분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 태석규가 백준열을 직접 찾아가면, 백준열이 그를 만나 주기는 할 것이다.
그때 태석규가 백준열에게 잘 얘기해서, 오늘 밤에 자리를 만든다면....
정재욱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준열의 마음을 얻어 낼 생각이었다. 필요하다면 머리를 숙이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정재욱이 초조하게 태석규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하니 태석규였다.
“어어. 석규야.”
=나 지금 JYB엔터 앞이야. 이제 차 대고 안으로 들어갈 거거든. 그런데 백준열이 만나면 이따 어디서 만나자고 하면 돼?
“그건....네가 그냥 정해. 나야 너와 백 대표가 만나기로 한, 그 장소에 우연히 들른 것으로 하면 될 테니까.”
=그래? 알았어. 그럼 준열이 만나면 같이 점심 먹을지 모르니까, 2시쯤 내가 연락 할게. 너도 일해야 할 테니까 그게 좋지?
“어어. 뭐. 그래주면 나야 좋지.”
그렇게 태석규와 통화 후 정재욱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휴우....”
이제 태석규가 하기 나름이었다. 녀석이 오늘 백준열을 만나게 해 준다면, 정재욱은 녀석에게 약속 한 대로 1억을 줄 생각이었다.
그 돈이 막노동이나 하는 태석규에게는 이제 큰돈이 되어버렸지만, 정재욱에게 있어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었으니까.
벨레레레! 벨레레레!
그때 그의 책상 위 전화벨이 울렸다. 정재욱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서, 책상 쪽으로 가서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서울경찰청 정재욱 수사과장님 되십니까?
“그런데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일보 명우창 기자라고 합니다.
“네. 뭐....”
기자가 왜 자신에게 전화를 했는지, 정재욱이 얼떨떨해 할 때였다.
=조금 전 대검 중수부에서, 아버님이신 정세현 청장님의 방을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