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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차은석은 법무 팀 변호사가 이리저리 연락을 하더니, 송파경찰서에 도착하기 전 그녀에게 말했다.
“이거 일이 더 복잡해졌네요.”
“네?”
“김준오씨가 제대로 낚인 거 같아요. 그것도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동시에 말입니다.”
“그게 무슨....”
“그러니까 가해자가 알고 보니 서울동부지법의 부장 판사고, 피해자인 젊은 여자는 법무사 사무소 직원이더군요.”
“그, 그러니까 김준오씨가 구해 준 젊은 여자가, 자기를 성추행한 남자가 현직 부장 판사란 걸 알고 나서, 변심을 했단 거예요?”
“네. 정확히는 그녀 직장의 법무사가 그러라고 시켰겠죠. 현직 부장 판사에게 잘 보이려고 말입니다.”
“허얼....그럼 김준오씨는 어떻게 되는 거죠?”
“가해자가 그런 적이 없다며, 무고죄로 김준오씨를 고발한 상탭니다. 또 피해자도 자기가 성추행 당한 적이 없다고 이미 진술서를 쓴 상태라, 김준오씨는 꼼짝 없이 무고죄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죠.”
“진짜 어이없네요. 물에 빠진 놈 살려줬더니 내 보따리 내 놓으라는 것보다도, 이건 더 하잖아요?”
기껏 성추행 당하는 걸 구해줬더니, 가해자 대신 김준오가 감옥 가게 생겼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그래서 말인데....”
차은석은 법무팀 변호사가 무슨 방법이 있는 거 같자, 그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니까 저는 기자들만 모아 놓고, 경찰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란 말이죠?”
“네. 그렇게만 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신 있어 보이는 법무팀 변호사의 말에 차은석은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연예기획사에서 잔뼈가 굵은 차은석이었다.
특히 의리가 있는 그녀에게, 신세 진 기자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그들은 특종이라는 차은석의 말에 개떼처럼 송파경찰서로 모여 들었다.
물론 그 기자들 대부분이 사회부 기자가 아닌, 연예부 기자여서 문제였지.
아무튼 기자들이 경찰서 앞에 떼거리로 몰려들자, 송파경찰서도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 가운데 먼저 송파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던 법무팀 변호사. 그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오면서 차은석을 보고 말했다.
“우와. 무슨 기자들을 이렇게나 많이 부르셨어요?”
“많을수록 좋다면서요.”
“그렇긴 한데....뭐 좋습니다. 자자. 기자 여러분. 여기 여러분들이 원하시는 특종이 있습니다.”
법무팀 변호사가 손에 들린 USB를 기자들에게 보여 주며 외쳤다.
그러자 기자들이 다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법무팀 변호사 주위로 모여 들었고, 법무팀 변호사가 차은석에게 눈짓을 보내자, 차은석이 들고 있던 노트북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그 노트북에 USB를 꽂고 지하철 CCTV영상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뭐, 뭐야?”
“저 대머리 아저씨가 아가씨 허벅지를 만지네?”
“지하철 안 맞지?”
“그러게. 근데 이걸 왜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연예부 기자들은 지하철 CCTV영상을 보고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그때 법무팀 변호사가 말했다.
“거기 성추행범인 대머리 아저씨는 바로 서울동부지법 정모 부장 판삽니다. 그리고 성추행 피해자는 XX법무사 사무실 여직원이고요. 참고로 지금 성 추행 범 잡고 있는 젊은 남자가 여기 경찰서에 갇혀있습니다. 죄목은 무고죄고요.”
거기까지 말하자 연예부 기자들도 바로 눈치를 챘다. 이건 특종이 맞았다.
물론 연예부에서 다룰 기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야! 사회부 기자 빨리 여기로 오라고 해. 특종이야. 특종. 현직 부장 판사가 지하철 성 추행 범으로 경찰서에 잡혀왔는데, 그 부장판사를 잡은 젊은 남자를 경찰이 범죄자로 몰아서....”
연예부 기자들이 자기 사회부 기자들에게 알렸고, USB의 지하철 CCTV영상을 카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 30분도 되지 않아, 그 지하철 CCTV영상이 한 TV뉴스에 나왔다.
비록 종편이지만 그 뉴스 뒤로, 공중파, 지상파 가릴 거 없이 모든 방송사의 뉴스 채널에서, 그 지하철 CCTV영상이 방송됐다.
“끝났네요.”
경찰서 수사과 TV에 그 지하철 CCTV영상이 나오는 걸 보고 법무팀 변호사가 말하자, 그 옆의 차은석이 바로 거들며 말했다.
“여긴 이제 시작인 거 같은데요?”
그녀가 그렇게 말한 건, 송파경찰서로 서울경찰청 감찰부 소속 형사들이, 파란 박스를 들고 우르르 안으로 쳐들어오는 걸 봐서 였다.
* * *
송파경찰서장은 TV에 지하철 CCTV영상이 나오는 걸 보고 기겁하며 외쳤다.
“야 이 씨발. 저게 왜 TV에 나오는 거야? 누구야? 누가 저거 기자에게 넘겼어?”
송파경찰서장은 지금 범인이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 영상이 유출 된 것에 펄펄 뛰며 화를 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죄가 세상에 낱낱이 공개 되어 버리자, 서울동부지법 정대철 부장 판사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때 경찰서의 형사 하나가 경찰서장에게 물었다.
“저 부장판사는 어쩝니까?”
“어쩌긴. 유치장에 처넣어.”
빼박 증거가 나오자, 경찰서장도 더는 현직 부장 판사에 대한 예우 따윌 치워 버렸다.
모든 국민이 보고 있었다.
정 판사가 대통령 아들이라도 이건 빠져 나갈 수 없었다.
그렇게 서장실에서 죽치고 있던 성 추행 범은, 결국 그가 가야할 유치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대신 일약 국민들의 우상이 되어버린 젊은 남자. 김준오가 있는 쪽으로 달려간 송파경찰서장.
“저희 쪽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김준오씨. 당신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수여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송파경찰서장은 실수는 인정하면서,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김준오에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대신 상으로 김준오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다. 하지만....
“저를 가장 먼저 범죄자 취급 하신 분이 서장님이시잖아요? 정작 범인은 서장실로 모시고 가시고.”
“네?”
“저 경찰서에서 당한 거 언론에 다 까발릴 겁니다. 그리고 기껏 도와줬더니, 저를 배신한 그 여자 분도 가만 안 둘 거고요.”
그때 서울경찰청 감찰부 형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채무수 서장님?”
“그, 그런데?”
“말까지 마시고. 나 서울본청 감찰과장입니다.”
“네?”
경무관인 감찰과장은 송파경찰서장보다 어째든 직위가 높았다.
“당신을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 긴급 체포합니다. 수갑 채워.”
“네?”
현직 경찰서장에게 바로 수갑을 채운다? 이건 같은 경찰끼리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감찰부 형사는 바로 수갑을 꺼내서 송파경찰서장의 두 손에 단단히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송파경찰서에 대대적인 감찰이 시작됐다.
그로 인해 갑자기 어수선해진 송파경찰서. 그때 법무팀 변호사가 옆에 차은석에게 물었다.
“이건 경찰 최고위층에 손을 쓰지 않고서 불가능한 일인데. 혹시 법조계의 금수저였습니까?”
그 물음에 차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아뇨. 전 그냥 흙 수저인데. 금 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인 분은 알고 있죠. 그분에게 연락을 드리긴 했는데....”
그 말에 법무팀 변호사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해가 되네요. 대표님께 연락 한 거죠?”
“네. 뭐....”
JYB엔터의 백준열 대표라면, 이 정도 힘을 쓰는 건 당연하다는 듯 법무팀 변호사가 차은석보고 말했다.
“이제 김준오씨 데리고 갑시다.”
“변호사님 먼저 가세요.”
“네?”
“물들어 왔을 때 노 저어야죠.”
그렇게 말하며 아까부터 김준오를 기다리고 있는 굶주린 사회부 기자들을 보고, 차은석이 야심차게 웃었다.
차은석은 곧장 기자들 앞으로 나서서 10분 뒤, 송파경찰서 회의장에서 김준오씨 기자 회견이 있을 거라고 밝혔다.
* * *
사회부 기자들에게 있어 김준오는 권력자들의 희생양이었다. 그것도 정의를 실현하다가 말이다.
한 권력자는 가해자로 김준오를 무고죄로 몰았고, 또 다른 권력자는 그 가해자를 위해서 김준오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서 그를 범인으로 만들려고 들었다.
거기다가 피해자마저도 김준오를 버렸다.
그런 그의 사연이 방송을 타자, 전 국민이 분노했다. 그러면서 김준오 같은 의인이 죄인 취급 받아야 하는, 권력 앞에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 대해 개탄했다.
“김준오씨. 어떻게 보면 그 여자 분에게 배신을 당하신 건데, 만약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도 성추행 당하고 있는 여자를 구하실 겁니까?”
사회부 기자의 심도 깊은 질문에 김준오가 길게 한숨을 내 쉰 후 대답했다.
“휴우우. 글쎄요. 그 여자 분이 저를 외면했을 때는 정말 내가 미쳤지 싶었습니다. 뭐 하러 나서서 이 모양 이 꼴을 당하나....그런데 아마 다음에 그런 일이 내 눈앞에 또 벌어지면....저는 오늘처럼 또 여자를 구할 겁니다. 왜냐하면....저한테 그 나이 또래의 여동생이 있거든요. 제 여동생이 그런 꼴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도는 거 같으니....구할 수밖에요.”
그 말 후 천진하게 웃는 김준오. 그런 그의 해맑은 얼굴을 사회부 기자들이 찍었다.
아마 내일 아침 신문 일면에 그 얼굴이 대문짝 하게 나올 거란 건, 그 자리에 있은 사람이라면 다 알 수 있었다.
“됐어. 이걸로 김준오씨 인지도는 빙점을 찍었고, 이제 남은 건 방송 출연인데....”
차은석은 기자들을 부를 때 JYB엔터에 특수 1부문의 직원들을 송파경찰서로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송파경찰서의 회의실에서, 김준오의 기자 회견을 통제 하고 있었는데, 눈치 빠른 기자들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김준오씨와 JYB엔터가 무슨 사이입니까?”
그때 기자 중 하나가 물었고, 그 질문에 차은석이 나서서 대답했다.
“김준오씨는 저희 JYB엔터 소속 연예인입니다.”
“네? 김준오씨가 그럼 배우란 말입니까?”
“배우가 아니라 예능인입니다. 기자님들도 인터뷰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김준오씨가 재치가 넘치고 은근 재미가 있으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에 대해 순간 대응력이 뛰어나다는 건 느끼셨을 겁니다. 저희 JYB엔터에서 키우고 있던 비밀 병기였는데, 이번 일로 인해 노출이 되고 말았네요.”
차은석은 아쉽다는 듯 말했지만, 연예부 기자들에게 그 말은 새로운 예능 스타의 출현을 알리는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을 이번에는 사회부 기자들이 연예부 기자들에게 알렸고, 차은석은 연예부 기자들의 요청에 의해 한 차례 더 기자 회견을 가져야 만했다.
그리고 그 기자 회견이 끝난 뒤 연예부 기자들의 입소문 때문인지, 각종 매체와 방송국에서 김준오에 대한 출연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스케줄 몰리지 않게 잘 잡아요.”
차은석은 자기가 한 말 대로, 물들어 왔을 때 노를 젓기 위해, 걸려 온 출연 요청을 거의 80%이상 수용하면서, 세 달여에 걸친 김준오의 출연 계획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까 김준오는 내일부터 세 달 동안 쉴 틈 없이 일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차은석은 그 세 달 동안, 김준오를 예능인 탑 스타로 키워 낼 자신이 있었다.
* * *
김훈은 백준열 대표와 남해에서 요트 위 선상 파티를 하면서, 백준열의 말에 좀 많이 놀랐다.
자신의 복수에 대한 브리핑을 언제든 하라는 백준열의 그 말은, 곧 김훈의 복수를 위해 자신은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니겠나?
하지만 김훈도 알았다. 정작 자신에게 아직 복수 할 의지가 약하고, 제대로 된 힘도 갖추지 못했단 걸 말이다. 더불어 구체적인 계획도 수립 되지 못했고.
무엇보다 복수해야 할 자에 대한 분석도 다 이뤄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복수에 대한 브리핑는 무슨....
그때 서울에서 김훈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져 왔다.
바로 삼명그룹에서 김훈의 에이전시를 이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 온 것.
다른 대기업도 아니고 삼명그룹과 연결 될 수 있다면, 그건 처리자 에이전시로서 단숨에 최고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김훈이 알기로 현재 최현일의 처리자 에이전시만이, 삼명그룹과 유일하게 연결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비집고, 이제 김훈의 처리자 에이전시 역시 삼명그룹의 관심을 받게 된 것.
“반드시 삼명그룹을 잡고 만다.”
그래서 선상 파티가 끝나는 즉시 서울로 올라 갈 생각이었던 김훈.
근데 백준열이 글쎄 헬기를 타고 서울에 간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김훈이 부탁을 좀 했다. 같이 서울 가자고 말이다.
그랬더니 백준열이 그에게 헬기 자리 하나를 내 주었고, 편하게 헬기를 타고 서울로 간 김훈은 곧장 김훈 처리자 에이전시의 아지트로 갔다,
그때부터 김훈이 직접 서울에 남은 처리자들을 직접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게 바로 신의 한수가 되었다.
왜냐하면 다음 날 오전부터, 삼명그룹 측의 의뢰가 들어 왔던 것.
만약 김훈이 전날 밤에 서울에 오면서 만반의 준비를 해 놓지 않았다면, 그 의뢰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그럼 그 의뢰가 어디로 갔겠나?
당연히 최현일의 처리자 에이전시로 넘어 갔을 테고, 삼명그룹에서는 더 이상 김훈의 처리자 에이전시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됐을 공산이 컸다.
그 오전의 의뢰를 김훈의 처리자 에이전시에서 가뿐히 처리해 버리자, 삼명그룹에서 바로 그 다음 의뢰를 맡겨 왔다.
바로 삼명가 본가 저택에서 첩자 한 명을 처리하는 일. 처리자들 입장에서야 별일 아니지만, 삼명그룹에서는 그 일마저 가볍게 처리 하는, 김훈의 처리자 에이전시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김훈은 자신을 차기 비서실장이라고 소개하는 삼명그룹 쪽 사람에게서 직접 전화를 다 받았다.
=이동훈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언제든 불러만 주십시오. 그 즉시 달려가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네요.
향후 백준열 최측근 인사가 될 두 사람이, 서로 처음 접촉하는 순간이었는데, 김훈이나 이동훈이 그걸 알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