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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즉 임페리얼 호텔 대주주라는 소리다. 이곳 서울 임페리얼 호텔 대표도, 막 불러내서 멱살을 잡아도 될 만큼 말이다.
그런 엄청난 분에게, 안 그래도 서울 임페리얼 호텔의 물을 다 흐려 놓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제대로 사고를 친 것이다.
‘김영일 총 지배인. 당신 이제 끝장이야.’
주명석 차장은 직감했다. 이번 일로 김영일 총 지배인 뿐 아니라 그 윗선, 그러니까 서울 임페리얼 호텔 대표 목도 날아갈 거란 걸 말이다.
‘이럴 때보면....그 잘난 인맥이 꼭 좋은 건 아니네.’
고대기 과장에서 김영일 총 지배인으로 이어진 인맥은, 다시 김영일 총 지배인에서 서울 임페리얼 대표에게로 이어져서 연쇄 파이어, 즉 그 세 사람 뿐 아니라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까지 잘려 나가는, 진짜 대규모 해고쇼가 펼쳐질 공산이 컸다.
“자아. 그럼 이제 총지배인 하고 연락 좀 할 수 있을까?”
백준열이 주명석 차장을 보고 말했고 그가 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총지배인님.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주명석 차장은 백준열 대표에게 그렇게 정중히 말한 후, 김영일 총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총지배인이 아무리 출장 중이라도, VVIP고객의 전화는 받아야했다.
고대기 과장은 그걸 몰랐고. 만약 그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이번 사태는 그 혼자 잘리는 걸로 끝났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걸 모른 탓에 일이 커져 버렸고, 이제 그 후폭풍은 그가 감히 감당해 낼 수준을 훌쩍 뛰어 넘어서 버렸다.
“....네. 네....잠시만....백 대표님. 저희 총지배인님이십니다.”
주명석 차장이 호텔 전화로 몇 군데 전화를 돌리고 나자, 곧 호텔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그 전화로 백준열의 눈치를 보면서 통화를 하다가, 결국 그 전화기를 백준열에게 넘긴 것이다.
백준열은 그 전화기를 받아서, 서울 임페리얼 호텔 총지배인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백 대표님. 저 김영일 총지배인입니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여기 CCTV영상을 통해서 시시비비를 가릴 일이 있어서요.”
=시시비비라니요?
“여기 프런트 직원이 제 일행인 여성분을 기분 나쁘게 쳐다보더라고요. 그래 놓고 시치미를 뚝 떼면서 더 큰소리를 치니, 나로서도 어쩔 수 없잖습니까? 호텔 측에서 보시고 판단해 주십시오. 물론 그 자리에 나도 있을 겁니다. 설마 아니겠지만 호텔 측에서, 뻔한 수작질을 부린다면....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대, 대표님. 뻔, 뻔한 수작질이라뇨? 그, 그럴 일은 없습니다. 결단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 말 후 백준열은 더 김영일 총 지배인과 얘기하고 싶지 않은지, 전화기를 주명석에게 도로 넘기며 말했다.
“이제 내 방으로 가도 돼죠?”
“네. 물론입니다.”
VVIP인 백준열이 쓰는 로얄 스위트룸은, 매시간 손님을 받을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 * *
호텔 프런트에서 한 바탕 소란이 일면서, 내 옆에 강지영이 계속 내 눈치를 봤다.
그러다 프런트로부터 방 키를 받아서 엘리베이터로 향할 때, 그녀가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죄, 죄송해요.”
“뭐가요?”
“괜히 저 때문에....”
풀 죽은 그녀를 보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지영씨 때문이 아니라 저 프런트 호텔 직원이 잘못한 일입니다. 그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고요. 그러니 미안해 할 필요 없습니다. 일단 저랑 같이 제 방으로 가서 좀 쉬다가, 호텔 측이 부르면 같이 가셔서, 그들이 어떻게 이번 일을 처리하는지 어디 두고 보자고요.”
그렇게 말하는 사이 우리는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랐고, 마침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우리는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VVIP룸이 있는 28층으로 올라갔다.
디리릭! 철컥!
로얄 스위트룸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내 뒤에서 감탄사가 들려왔다.
“와아....”
그런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천천히 둘러보세요.”
하루 숙박비가 천만 원이 넘는 곳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분명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
물론 금방 눈에 익을 테지만.
나는 강지영이 200평 가까이 되는 방을 둘러보는 동안, 호텔 측에서 제공한 편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젊은 여자가 좋아 할 만한 탄산음료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막 구경 끝내고 내게로 다가오는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저녁은 나가서 먹을까요? 아니면 그냥 여기서 시켜 먹을까요?”
“룸서비스로요?”
“네.”
나는 대답과 함께 룸서비스가 되는 호텔 측 메뉴 리스트를, 탄산음료 다음으로 그녀에게 건넸다.
강지영은 별로 목이 마르지 않는 듯, 탄산음료는 두고 룸서비스 메뉴 리스트부터 살폈다. 그러더니 흡족해 하며 말했다.
“여기 레스토랑에서 하는 음식들 대부분이, 룸서비스로 시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네요.”
해서 우리는 굳이 나가지 않고 안에서 먹기로 하고, 서로 먹을 음식을 골랐다. 그리곤 그걸 룸서비스로 시켰다.
그 뒤 바로 프런트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우리는 이곳 호텔 CCTV 통제센터가 있는 10층으로 내려갔다.
“이쪽으로....”
10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주명석 차장이 우리를 통제센터로 안내했고, 거기서 우리는 아까 프런트 호텔 직원이, 강지영을 음흉한 눈으로 쳐다보는 걸, CCTV카메라의 다각도에서, 느린 화면으로 몇 차례 확인했다.
누가 봐도 저건 호텔 직원이 고객을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하지만 호텔 측에서 누구도 그렇다는 말을 대 놓고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짓을 저지른 직원이 그들 동료 직원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일이 알려지면 호텔의 이미지가 실추 될 건 뻔한 일.
“자아.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내가 대 놓고 호텔 측에 묻자, 현재 호텔 측 대표인 호텔 부지배인이 곤란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 호텔 측에서는....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서....상벌위원회를 통해....”
나는 호텔 측에서 하나마나한 소리를 늘어놓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곤 호텔 측을 향해 말했다. 혼잣말이지만 그들 다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말했다.
“그냥 데이비드에게 전화 하는 게 나을 뻔 했군.”
데이비드 B 게일. 임페리얼 호텔 부 회장이다. 브룩스 회장의 하나 뿐인 아들이며 후계자.
내가 호텔 부회장을 거론하자, 호텔측 사람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럴 것이 임페리얼 호텔 본사의 경우 모든 걸 FM대로 처리했다.
인정사정 따윈 봐 주지 않았고. 고로 이번 일로 본사 감사팀이 한국에 온다면....
아마 여기 있는 호텔 측 사람들 중, 계속 호텔에 남아 일하는 사람보다, 잘리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잠, 잠깐만....총지배인님과 좀 더 얘기를 해 보고....”
호텔 측에서 바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그 책임을 총지배인에게 넘기려 드는 게, 당연히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시간은 많았고, 저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할 동안, 나는 주문 해 둔 룸서비스 음식을, 강지영과 같이 맛있게 먹으면 될 테니까.
* * *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부인 서지현.
그녀는 사모님으로 많이 불렸지만, 서재국 전 대통령의 영애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재국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그 영애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잃었다.
근데 서지현은 사모님 소리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백승렬 회장이 아직 상복도 벗지 않은 그녀에게 이혼 변호사를 보낸 것이다.
“싫어. 내가 왜 이혼을 해.”
“이걸 좀 보시죠.”
하지만 이혼 변호사는 만만찮았다. 그녀가 이혼하지 않고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가 그 동안 놀아난 남자들부터 시작해서, 결정적으로 그녀의 딸인 백지연의 친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들,
“하아....”
이미 딸인 백지연을 통해 듣긴 했었다. 백 회장이 모녀를 같이 외국으로 보내려 한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이혼까지 하고 가라는 얘기인줄은 몰랐다.
“위자료로 100억이 지급 될 겁니다. 또 사시게 될 곳의 집도, 회장님께서 구해 주실 거고요.”
“아이고. 고마워라. 그게 끝이야? 더는 못해주겠데?”
자신의 말을 비꼬는 서지현을 보고, 이혼 변호사는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가씨 앞으로 사업자금 100억이 주어 질 겁니다.”
“흥! 100억으로 뭘 하라고....”
하지만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백지연에게, 백 회장이 그 정도 해 주는 것만 해도 과분하다고 봐야했다.
“아시겠지만 모든 귀책사유는 사모님께 있습니다. 재판으로 갈 경우....”
“됐어. 한다고 해. 나 참 더러워서....”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딱 그 짝이었다. 서지현은 성질을 내면서, 이혼 변호사가 내민 이혼 서류에 서명했다. 물론 법적, 행정적 처리가 남았지만 이것으로 백승렬 회장과 서지현의 40년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근데 그 장면을 숨어서 지켜보는 한 쌍의 눈이 있었다. 그 주인은 바로 서지현 사모의 비서인 안지은.
“뭐야?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안지은의 소속은 삼명그룹 비서실이었다. 하지만 여태 그녀를 쭉 챙겨 준, 오규동 비서실장이 덜컥 죽어 버린데다가, 이제 그녀가 모시던 서지현 사모님까지 이혼해 버리면....
그녀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었으니....
“백준열!”
그녀의 몸과 마음을 한 순간 쏘옥 빼가 버린 나쁜 남자. 하지만 그 날 이후 안지은은 하루도 백준열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때부터 안지은은 서지현은 뒷전이고 백준열에 대해 캐기 시작했다.
* * *
서재욱 전 대통령의 서거 후, 청와대에서는 깊은 애도와 함께, 서 대통령의 장례 기간을 5일 간 국가 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때문에 발인까지는 아직 이틀의 시간이 남았고, 그 동안 상주들은 장례식장에 발이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지현의 비서인 안지은은 처음 이틀은 서지현의 곁에서 그녀 잔심부름을 했다가, 지금은 아예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다.
당연히 안지은의 부재가 아쉬웠던지 서지현이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안지은은 일부러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서지현도 더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않게 되었고.
누구보다 서지현 본인이 제일 잘 알 거다. 이제 그녀가 더 이상 삼명그룹 사모님이 아니란 걸 말이다.
“최 집사가 어떻게 됐다고요?”
그런 가운데 안지은은 삼명家 본가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최 집사가 미국으로 여행간 가족들에게 문제가 생겨서 급하게 미국으로 갔는데, 그 미국에서 그만 총기 사고로 덜컥 죽었다는 것이다.
근데 알고 보니, 최 집사의 가족들은 정작 미국으로 가지도 못했다는 것.
출입국관리소에서 수상한 물건이 적발 돼서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도로 내렸고, 그 뒤 하루 구금 되어 있었던 것.
그 사이 소식을 잘못 들은 최 집사가 미국으로 날아 간 거고. 그러니까 한 마디로 최 집사만 헛짓거리 하다가 죽었단 소리였다.
“하아. 그분이 그렇게 허망이 가실 줄이야.”
본가에서 친하게 지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기 같은 막내 동생이 있다며, 가끔씩 이런저런 것들을 챙겨 주긴 했었다.
안타까운 건 오규동 비서실장처럼 장례식장에 조문조차 갈 수 없단 거다.
미국에서 시신을 수거 해오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나?
하지만 이상한 건 삼명그룹에서 나서면 그깟 시체 한 구, 미국에서 받아 오는 건 일도 아닐 텐데.
왜 삼명그룹에서는 최 집사의 죽음을 수수방관하는지, 안지은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 집사가 누구던가? 백승렬 회장이 가장 총애하던 집사였다.
그런데 그가 죽자, 백승렬 회장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뭐가 있어.”
하지만 그게 뭔지 안지은은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걸 알아내려다, 막말로 자기가 훅 가버릴 수도 있는 문제고.
지금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한 사람. 백준열 뿐이었다.
그래서 서지현 사모님이 즐겨 쓰시던, 흥신소를 통해 백준열의 뒤를 캐게 했다. 그랬더니....
“그러니까 지금 백준열 대표님이, 임페리얼 호텔에 계신단 말이네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알아 본 바에 따르면 ,그분께서는 VVIP룸에 계신데, 그곳은 저희가 접근 할 수 없는 곳입니다.
“알아요. 제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사람들 철수시키세요.”
=알겠습니다.
백준열 대표에게는 꽤나 유능한 경호팀장이 있고, 그 경호팀장 밑으로 뛰어난 경호팀원들이 많이 있었다. 그
걸 아는 안지은은 백준열의 뒤를 캘 때도 그 점을 유의하게 했었다.
그래선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백준열의 뒤를 추적한 흥신소 사람들.
안지은은 그들이 들키기 전에 먼저 물러나게 했다. 그리곤 자신이 직접 임페리얼 호텔 안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
호텔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간 안지은.
그녀는 1층 프런트에서 이 호텔 VVIP룸이 28층에 있다는 걸 알아내서는, 거기로 바로 올라가려 했다.
한데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 데, 호텔 직원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엘리베이터 안에 타자마자 10층을 눌렀다.
그들 말에 따르면 지금 백준열 대표는 10층 CCTV 통제 센터에 있었으니까.
보아하니 이곳 호텔 측에서 백준열 대표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러니 백준열 대표가 CCTV영상을 직관하겠다고, 몸소 CCTV 통제 센터까지 간 거겠지.
“역시 보통 분은 아니셔.”
그렇게 10층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녀가, 쭈욱 걸어서 CCTV 통제 센터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
백준열 대표가 막 그 안에서 나왔는데, 그런 그의 뒤를 웬 여자하나가 껌딱지처럼 붙어서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저년은 뭐야?’
그 여자를 본 순간 안지은의 눈에서 튀기 시작한 불꽃이, 어느 새 그녀의 두 눈에서 활활 불길이 되어 불 타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