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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박대순 경찰청장에게는 천행으로 서초경찰서장은 그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박대순 청장과 같은 밀양박씨 규정공파로, 그가 서초경찰서장보다 항렬이 한 대가 더 위였다. 그래서 농담 삼아 삼촌으로 부르라고 했는데, 서초경찰서장이 그 뒤로 박 청장과 둘만 있을 때면, 정말 삼촌이라고 불렀다.
그게 인연이 되어 가까워진 두 사람. 당연히 서초경찰서장은 박 청장의 사람이 됐고 말이다.
박대순은 백준열의 전화를 받고나서,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우겠다는 간 큰 형사와 통화를 했다.
청장인 그가 굳이 백준열이 누군지 그 형사에게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업무적으로 따져도, 상대 형사는 백준열을 현장 체포하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자네 불법체포감금죄가 뭔 진 알지?”
형법 제124조 1항에 따르면 불법체포, 불법감금죄(不法逮捕, 不法監禁罪)는 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하는 죄로,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에 처해진다고 되어 있었다.
즉 형사가 지금 백준열에게 수갑을 채운다면 불법체포감금죄가 그에게 적용 될 수 있음을 박 청장이 경고한 거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청장이 그런 말을 하는데, 백준열에게 수갑을 채울 진짜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온 형사는 없었다.
그건 상대 형사도 마찬가지였고. 박 청장은 그런 형사를 잘 다독인 뒤, 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경찰 노릇 40년을 넘게 한 박 청장이다. 일선 형사 하나 요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뒤 박 청장은 서초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삼촌.
서초경찰서장 박순철. 그가 박 청장의 전화를 재깍 받았다.
박 청장이 자기 개인폰으로 전화를 하다 보니 박순철도 그를 삼촌이라 부르며 전화를 받았는데, 그런 그에게 박 청장이 바로 자신이 전화건 용건을 밝혔다.
“순철아. 너희 서에서 지금....”
박 청장은 간략한 경위를 박 서장에게 설명했고, 그 말을 바로 알아들은 박 서장이 박 청장에게 말했다.
-삼촌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하십시오. 저는 삼촌 시키시는 대로 다 할 테니.
시험으로 치자면 100점 만점에 99점 자리 답을 내 놓은 박 서장. 박 청장은 흡족해 하며 그에게 말했다.
“서울경찰청으로 갈래? 아니면 내가 있는 본청으로 올래?”
그게 무슨 소리겠는가? 박 서장을 그를 경무관으로 승진 시켜서 서울경찰청 아니면 본청으로 불러올리겠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서초경찰서장 박순철은 역시 똑똑했다.
-올해는 좀 그렇고 내년에 서울경찰청 내사과장으로 보내 주십시오.
“허허허허. 알았어. 내 참고 하도록 하지.”
박순철은 박 청장의 도움을 받아서 승진을 하지만, 그걸 최대한 티내지 않으려 들었다.
그래서 본청이 아닌 서울경찰청으로 가려 했고, 또 인사 철도 아닌 지금 당장 서울경찰청으로 발령 받아 가게 되면, 누가 봐도 그건 낙하산 인사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내년 인사 시즌에, 그것도 영리하게 서울경찰청에서도, 최고 보직 중 하나인 내사과장으로 발령 내 달라고 하고 있었다.
늙은 여우 박 청장이 그런 박순철의 생각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이제 경찰 서열 1위인 그로서는, 그 정도는 이제 애교로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었다.
* * *
구급차에 실려서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추명진. 하지만 그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쌍코피는 이미 멎어 있었다. 그러니까 추명진은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일론 환자가 된 거다.
그래도 쌍코피 터진 걸로 얼마든지 진단서를 끊을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추명진은 득의만만해져서 혼잣말로 떠들었다.
“백준열. 그 개새끼. 내가 합의해 주나 봐라. 가만....그러고 보니 이거 잘하면 사업적으로 이용해 먹을 수도 있겠는 걸?”
JYB엔터의 대표가 폭행을 했다는 게 알려져서 뭐 좋을 게 있겠나?
거기다 그 대표가 폭행죄로 경찰서와 검찰청, 그리고 법원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이 보기 좋을 리 없었고.
따라서 JYB엔터에서는 어떡하던 백준열 대표가 합의를 해서, 이번 사태가 이슈화 되는 걸 막고 싶을 것이다.
즉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가 JYB엔터를 상대로 뭔가 이득을 취하기 딱 좋은 기회를 잡은 거지.
그런 쪽으로 특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을 추명진은 잘 알고 있었다.
“크크크크.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아시면 많이 좋아하시겠어.”
추명진은 이미 맞은 충격으로 머리가 어지럽다고 응급의에게 얘기해 뒀다.
쌍코피 터진 것보다 그게 더 전치 3주의 진단서를 받아내기 수월하다는 걸, 추명진은 자기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
추명진은 바로 입원을 했고, 그 병원 VIP병실에서 야식을 시켜 먹으면서, 부친인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추진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 시간에 전화 하지 말라고 했지?
자다가 깬 듯 추진호가 짜증 가득 섞인 목소리로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저 한 건 했어요.”
-뭐? 너 이 새끼 또 무슨 사고를 쳤어?
발끈하는 부친에 추명진이 바로 말했다.
“사고 친 거 아니라 제가 되레 맞았다고요.”
-뭐?
“JYB엔터 백준열이 아시죠?”
-그 개새끼?
“네. 그 개새끼가 글쎄 저를....”
추명진은 자신이 백준열에게 어떻게 맞았는지 쭉 추진호에게 얘기했다. 그러자 아들 말을 전부 다 듣고 난 추진호가 호쾌하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잘 했다. 안 그래도 이번 SVS 드라마 편성 때, JYB엔터와 배역 때문에 부딪치는 게 많아 걱정했는데, 우리 쪽에 유리한 패를 쥐게 됐어.
역시 부친이었다. 자신과 달리 이번 사태를 어떻게 이용해 먹을지, 벌써 그 윤곽을 잡고 있는 추진호에, 그러면 그렇지 하고 감탄하고 있던 추명진.
하지만 자신의 부친의 최대 장점은 상대의 약점을 쥐면, 그걸 이용해서 뽑아 먹을 거 끝까지 다 뽑아 먹는다는 점이었다.
-음. 이번에 데뷔하는 보이그룹 신곡도, 그쪽 걸로 두 세곡 빼낼 수 있을 거 같고....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고 했던가?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이먼트 추진호 대표와 그 아들 추명진이, 백준열에게서 뭘 더 뜯어낼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그때, 정작 피해자인 추명진에게 서초경찰서에 고발장이 접수 됐다.
그 고발장에는 폭행죄와 업무방해, 그리고 모욕죄가 적시 되었고, 그 밑에 추명진이 경찰에 거짓 진술을 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일명 괘씸죄 말이다.
경찰 조사에서 행한 거짓 진술은, 추후 처벌 형량 결정에 있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기에, 직접 적시 된 죄목 보다 이게 더 추명진에게는 타격이 클 수 있었다.
* * *
남성열도 눈치는 있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그가 개무시하고 손가락 욕까지 했던 그놈이 알고 보니 JYB엔터 대표란다.
솔직히 남성열을 연예계에 대해 잘 몰랐다. 오로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 온 남성열. 그런 그에게 연예인에 대한 동경은 사치이자,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연예계라는 곳이 꽤 큰 파이를 자랑하는 시장임을 알게 됐다.
특히 그가 경영하게 될 호텔사업 쪽으로는, 연예계와 때려야 땔 수 없는 모종의 관계로 엮여 있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아이고. 백 대표님!”
집에 잠깐 갔다 온다가 나갔던 쉐링턴 호텔의 총지배인이, 호텔로 돌아와서 백준열을 보고는 기겁해서 뛰어왔다.
그리곤 부지배인 남성열에게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생경한 모습을 백준열 앞에서 선보였다.
바로 두 손으로 비벼대며 아부하는 것 말이다. 남성열이 알기로 총지배인은 호텔 대표 앞에서도 절대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한데 지금 그가 백준열 앞에서 계속 굽실거렸다.
“총지배인님이 왜 저러시는 겁니까?”
해서 남성열이 근처 운영부장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강부장이 한 말이 남성열의 뒤통수를 여지없이 후려쳤다.
“그야 저분이 저희 호텔 VVIP고객이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니요? 총지배인님을 저렇게 저자세로 만들 수 있는 존재는 VVIP고객뿐이니까요.”
강 부장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뭘 그런 걸 자기에게 물어 보냐는 식으로 남성열을 쳐다보고 시큰둥하니 대답했다.
“저, 저 새끼가 우리 호텔 VVIP고객이었다고?”
이렇게 되면 좆 된 건 남성열이었다. 그리고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질 일도 바로 생겨났다. 바로 그의 상관인 총지배인에 의해서 말이다.
“부지배인! 이리 와 보세요.”
백준열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총지배인이 싸늘한 얼굴로 자신을 불렀다.
“C발....”
나직이 욕설을 내 뱉은 남성열. 하지만 얼굴은 웃으면서 남성열은 자신을 향해 빨리 오라고, 손짓까지 하는 총지배인 배문식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 배문식 옆에 백준열이 팔짱을 낀 체 남성열을 보고 비릿하게 웃고 있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팔짱 하나를 풀더니 남성열을 향해 손가락 욕을 선사했다.
‘저 새끼가....’
하지만 남성열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둘 수 없었다. 총지배인이 그를 계속 쏘아보고 있어서 말이다.
“네. 총지배인님. 부르셨습니까?”
남성열은 모른 척 시치미를 뚝 떼며, 총지배인 배문식 앞에 다가섰다. 그러자 배문식이 그에게 물었다.
“부지배인. 당신이 여기 백 대표님께 초면에 반말했다던데 사실입니까?”
“네?”
총지배인의 물음에 남성열을 기가 찬다는 듯 얼굴과 함께, 정말 억울하다며 총지배인에게 말했다.
“저도 호텔리어입니다. 어떻게 처음 뵙는 손님께 반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남성열의 그 말에 총지배인 배문식이 이번엔 백준열을 보며 말했다.
“백 대표님. 보시다시피 저희 부지배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누구 말이 맞는지는 가려야겠죠.”
그러면서 백준열이 핸드폰을 꺼내더니, 액정 화면에 몇 번 손가락 터치를 하고 나자, 그 핸드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이. 니가 저기 추 전무님을 때렸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총지배인 배문석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고, 자기 목소리가 갑자기 백준열의 핸드폰에서 튀어나오자, 남성열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죄송합니다. 백 대표님!”
쉐링턴 호텔 총지배인 배문석이 백준열 앞에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그걸 보고 쉐링턴 호텔 측 사람들은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VVIP고객 앞에서 굽실거리긴 했지만, 자존심 강한 총지배인 배문석이 저렇게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는 건, 그들도 처음 봤으니까.
* * *
서초경찰서 형사 김대석. 그는 신임 경찰청장과 통화하는 영광을 누린 후, 박 청장이 시킨 대로 이번 사건을 처리해 나갔다.
서초경찰서장인 박순철 총경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서.
“호텔 로비 쪽 CCTV영상은 확보했고, 그 자에게 뺨을 맞은 여자의 진술과 백준열 대표가 녹음한 증거까지. 완전 빼박이네. 빼박이야.”
김대석은 자신이 피해자랍시고, 구급차 타고 먼저 병원으로 간 추명진이 살짝 불쌍해졌다.
하필 건드려도 경찰청장과 잘 아는 사람을 건드려서 말이다.
거기다가 추명진은 자기에게 거짓말 까지 했다. 당연히 경찰 조서에 김대석은 그가 자신에게 거짓 진술을 한 걸 적을 생각이었다.
“초동수사는 이걸로 끝입니다. 내일 저희 서로 한 번 찾아오셔서, 그쪽과 합의 하실 거면 하시고 아니면 쌍방 고소에 이은 소송전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석의 말에 백준열 대표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대석은 마지막으로 백준열 대표 옆에 있던 진짜 피해자, 추명진에게 뺨을 맞고 머리끄덩이 잡혀서 내동댕이쳐진 여자에게 연락처를 받은 다음, 동행한 형사들을 데리고 호텔에서 철수를 했다.
그렇게 호텔 출입구 앞에 주차 되어 있던 형사차가 떠나 버리고 나서, 뒤 늦게 쉐링턴 호텔의 총지배인이 나타났다.
당연히 VVIP담당이었던 그는 한 눈에 백준열을 알아봤고, 호텔에서 일어난 불미한 일에 대해 일단 백준열에게 사과를 했다.
그때 백준열이 부지배인 남성열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고, 그 얘기를 들은 총지배인 배문석이 곧장 부지배인 남성열을 불렀다.
그랬는데 남성열이 자기는 절대 그런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고, 그 오리발을 백준열이 녹음한 증거를 제시하며 댕강 잘라버렸다.
“총지배인님. 저는 그저 저희 단골 고객인 추명진씨가 맞았다고 해서....”
“됐습니다. 부지배인은 내 방에 가 있어요.”
“하지만....”
“어허!”
남성열은 배문석에게 거짓말을 했다.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에,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남성열을 보고, 더 실망한 배문석이 두 눈을 부라렸다.
그가 진짜 화가 났을 때 보이는 반응이었고, 그걸 보고 남성열도, 주위 호텔 측 사람들도 다들 입을 닫았다.
잠시 후 어깨를 축 늘어트린 남성열이 총지배인 방으로 향할 때, 백준열이 배문석 총지배인에게 말했다.
“이게 다 추명진 때문인데, 쉐링턴 호텔 측에서 가만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의 말에 배문석이 눈빛을 빛내며 백준열에게 되물었다.
“백 대표님. 원하시는 게 있으시군요. 그게 뭡니까?”
“좀 전에 말했잖습니까? 추명진이 여기 로비에서 온갖 추태를 다 부려 놨는데, 쉐링턴 호텔은 그걸 그냥 수수방관만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 아닙니다. 직원 폭행과 영업방해, 재물 손괴로 추명진씨를 고발조치 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좋군요. 좋아.”
이미 서초경찰서 김대석 형사에 의해서 한혜영에 대한 폭행과 백준열에게 한 욕설로 인한 모욕죄로 고발 될 예정인 추명진.
그런 그에게 쉐링턴 호텔 측에서 폭행과 영업방해, 재물 손괴로 추가 고발을 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폭행죄 하나뿐인 백준열에 비해서, 그 죄목이 여러 개인 추명진.
누가 더 유리하고 불리한 상황인지는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근데 정작 이런 상황을 당사자인 추명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