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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라이언의 집에는 내 예상대로 그 혼자 있지는 않았다.
그의 매니저와 세션 멤버가 같이 있었는데, 내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이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 햄버거 드세요.”
“오오! 햄버거다.”
“역시 CEO라서 그런지 센스 있으시네.”
그렇게 나에 적대적인 사람 둘을 간단히 옆으로 보내 버리고, 나는 라이언과 그의 거실 소파에 마주 앉았다.
“드세요.”
나는 라이언에게 그가 좋아하는 XX버거 가게의 베이컨 치즈버그 세트를 건넸다.
그는 군침을 삼키며 ,부드러운 번에 수제 패티와 치즈, 통베이컨, 토마토 등 풍부한 속 재료가 들어간 베이컨 치즈 버그를 받았는데, 그러면서도 내게서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잖아요. 일단 먹고 얘기하죠.”
“그,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10분 정도, 일체 말도 없이 햄버거 시식 타임을 가졌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자 라이언이 말했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
“좋죠.”
라이언은 인성이 좋은 가수였다. 그런 그가 내게 점심을 얻어먹었는데, 그냥 있을 리 없었다. 그가 커피와 함께 과일을 내어왔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예전의 백준열이었다면 라이언과 제대로 된 대화를, 10분도 이어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라이언의 팬이었기에 그에 대해 잘 알았고, 무엇보다 그의 음악세계를 폭넓게 이해했다. 그렇다보니 그와 얘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이야. 우리 라이언이랑 저렇게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은 너 말고 처음이다.”
“그러게. 가만 들어보면 라이언의 1집 앨범부터 시작해서, 모르는 곡이 없는 거 같더라고요.”
졸지에 아웃사이더가 된 라이언의 매니저와 세션이, 라이언의 안방에서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을, 나는 다 듣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나에게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호의는 곧 적의로 바뀌었다. 내가 여기를 찾아 온 진짜 용건을 라이언에게 밝히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백 대표님은 저와 전속 계약 체결하길 원하신다는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요?”
좀 전까지 나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라이언. 하지만 그가 싹 돌변했다.
당연히 라이언이 의리를 중시한다는 걸 나도 안다. 그러니 그가 소속사를 옮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라이언을 JYB엔터로 데려 갈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에 따른 전제 조건들이 덕지덕지 붙을 테지만.
“그럴 리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라이언씨가 저와 계약을 할 거라 확신합니다.”
“하하하하. 정말 우습군요. 으음....그 확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우선 그 이유부터 들어 볼까요?”
라이언이 재미있다는 듯 다리를 꼬고, 거기다가 팔짱까지 끼고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 * *
라이언의 재미있어하는, 혹은 호기심 어린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그걸 어떻게?”
내가 대 놓고 얘기한 것이다. 그가 곧 커밍아웃할 생각이란 걸 말이다.
라이언 뿐 아니라 그 말을 듣고서 안방에 있던 매니저와 세션이, 흥분해서 둘 다 거실로 뛰어 나왔다.
“역시 저들도 알고 있었군요.”
내가 그런 그들을 돌아보고서, 다시 라이언을 쳐다보며 말하자, 라이언이 굳은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아신 건가요?”
“그게 중요합니까? 라이언이 커밍아웃 후, 이 나라를 떠나려 한다는 게 중요하지.”
“....”
내가 자신의 계획을 훤히 꿰뚫고 있자, 라이언은 당황한 얼굴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때 그의 매니저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요?”
그런 매니저의 말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어쩌긴요. 세상에 알려야지. 이런 걸 특종이라고 하지 않나?”
“그, 그런....하아....”
그때였다. 갑자기 라이언의 매니저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주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시키시는 게 뭐든 제가 다 해드리겠습니다.”
내가 알기로 라이언의 매니저는, 라이언과 피를 나눈 가족보다 더 끈끈한 사이라고 했다.
그랬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맞았다. 자기 연예인을 위해서 이렇게 무릎을 꿇는 매니저가, 과연 이 연예계에 얼마나 있을까?
“일어나세요. 제가 대답을 듣고 싶은 사람은, 라이언이지 매니저님은 아니니까요. 자아. 라이언씨. 어떻게 하실래요?”
“하아....원하는 게 정확히 뭡니까?”
라이언의 약점을 쥔 JYB엔터의 대표. 그가 무슨 요구를 할지는 뻔했다.
“앞서 얘기했지만 저는 라이언씨가 저와 전속계약을 체결해 주길 원합니다.”
“하지만 나는....”
“커밍아웃하고 이 나라를 뜰 생각이시죠. 그렇게 하세요.”
“네?”
“저와 계약하고 나서 언제든 그러셔도 됩니다. 그에 대한 내용을 계약서에 따로 명시해 해드리겠습니다.”
전속 계약을 체결하는 데, 그 계약에 커밍아웃하고 이 나라를 떠나는 걸 허락하겠다는 내용을 명시 하겠다? 한 마디로 미친 소리였다. 그럴 바에야 계약은 왜 한단 말인가?
내 말에 라이언과 그의 매니저, 그리고 세션이 기가 차 했는데, 그런 그들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내가 미친 놈 같죠? 하지만 저는 사업가고,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습니다. 일단 그런 계약에 앞서서 전제 되어야 할 것들이 있겠죠?”
내 그 말에 그러면 그렇지 하고 다들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하던 말을 마저 이어나갔다.
“우선 라이언씨가 가지고 계신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은 전부 다, 제게 넘기셔야 합니다.”
그 말에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물욕이 없는 그였다. 주식뿐 아니라 이 집을 넘기라고 해도 내게 넘겼겠지.
“그 이외 저작권이며 라이언씨 명의의 모든 재산은....라이언씨가 해외에 나가기 전에 알아서 처분하십시오.”
“네?”
내 그 말에 의외라는 듯, 라이언을 비롯한 매니저와 세션의 눈이 동그래져서 날 빤히 쳐다봤다.
내가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의 주식을 챙기려는 걸 보고, 라이언에게 있어 돈 되는 다른 것들도, 내가 다 챙겨 갈 거라 여겼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때 나의 우상이었던 라이언을 등쳐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라이언은 한국을 떠날 때, 그의 저작권과 전 재산을 좋은 데 기부한다.
나는 라이언이 한국을 떠나도 좋은 이미지로 계속 남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가 자신의 저작권과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게 꼭 필요했다.
나의 그 말 이후, 라이언과 나의 대화가 흐르는 물처럼 잘 이어졌고, 잠시 후 우리는 계약서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고맙습니다.”
계약서를 쭉 읽어보고 나서 라이언이 내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말이 전속 계약이지, 이건 라이언이 커밍아웃해서 해외로 떠나는 걸, JYB엔터에서 물심양면으로 돕겠다는 계약서나 마찬가지였다.
“아닙니다. 팬의 한 명으로....라이언씨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이왕이면 한국에서 쭉 살면 좋았겠지만, 유명인이 커밍아웃해서 한국에서 잘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 후 라이언이 계약서에 사인하고, 그 밑에 내 사인이 들어가면서, 이제부터 가수 라이언은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이 아니라, JYB엔터 소속 연예인이 됐다.
* * *
내가 햄버거 사들고 라이언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나오자, 문대식이 그런 나를 무슨 괴물 쳐다보듯 쳐다봤다.
하긴 다른 연예기획사의 간판스타를 내가 빼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문대식도 백준열이 유능한 인물이란 건, 여태 그를 쭉 경호해 오면 알고 있는 거 같았다.
하지만 오늘 내가 보인 적극적이면서도 대담한 협상능력은, 그로서도 처음 보는 거라 많이 놀란 거 같았다.
“좋은 거 있으면 같이 좀 먹죠?”
“뭐?”
“그렇잖습니까? 사람이 이렇게 바뀌는 게 말이 됩니까? 뭔가 좋은 거 먹고 변한거지.”
문대식의 그 말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웅녀냐? 먹고 변하게. 그보다 빨리 홍대로 가자.”
나는 차에 타자마자 핸드폰을 꺼내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또 한 명의 간판스타이자, 아직 연장 계약이나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한지민의 개인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앞서 언급 했었지만, 한지민은 원래 배우 전문 소속사인 고릴라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다.
그 고릴라 엔터테인먼트가 투자 실패로 인한 재정 악화로, 빚 청산 과정에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와 인수합병이 되어 버렸다.
그때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의 추진호 대표는, 고릴라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의 고용승계를 받지 않았다.
그 말인즉 고릴라 엔터에서 한지민과 동고동락해 온, 직원들이 죄다 잘려 나가 버린 것이다. 그때 한지민과 고릴라 엔터와 계약 기간은 채 1년도 남지 않은 상태였고.
고릴라 엔터를 인수합병 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에서 그 사실을 알고, 한지민과 재 계약을 추진했지만 그녀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어느 새 그 계약 기간의 종료가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에서는 한지민의 매니저로 하여금 계속, 계약 문제로 그녀에게 압박을 가하게 했다.
“아C. 스트레스 만땅이네. 계약금 올려 줄 생각은 안하고, 자꾸 계약만 하자고 조르면, 나보고 어쩌자는 거야?”
이때 한지민은 이미 새로운 전속 계약을 체결 할 때, 계약금을 가급적 많이 받아내고 또 새로 들어갈 드라마 출연료도 미리 당겨서 받은 다음, 한국을 훌쩍 떠나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 그녀가 속해 있는 소속사인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는, 그다지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다.
일은 더럽게 많이 시켜 먹으면서, 돈을 작게 주는 곳이니까.
그래서 그녀는 가급적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해서 몇 곳 대형 소속사와 접촉도 시도 해 봤는데, 그쪽에서는 한지민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완전히 만료 된 뒤에야, 협상에 임할 생각이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니까 그 전에 한지민이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 해 버리면서, 자기들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한지민은 그러면 그러자고 했다. 그랬는데....
“여보세요? 네. 누, 누구시라고요?”
맙소사. 국내 탑 티어 연예기획사의 대표가 그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네. 네. 거긴 저도 잘 알아요. 네. 그럼 거기서 봬요.”
원래는 뷰티샵에서 한 시간 정도 피부 관리와 함께 안마를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몰래 그 뷰티샵을 빠져 나왔다. 뷰티샵이 있는 건물의 후문 쪽 편의점을 통해서 밖으로 나온 그녀는, 마침 그쪽에 도착한 택시에서 손님이 내리자, 바로 그 택시를 잡아다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서교동 사거리 별 다방으로 가주세요.”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 대개의 사람은 그 거리를 걸어가겠지만, 한지민 같은 탑 스타는 그 거리를 걸어서 가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난리가 나겠지.
“아아. 한지민씨?”
“네.”
“팬입니다. 사인 좀....”
“네. 내릴 때 해 드릴게요.”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고, 그 반응에 한지민은 늘 그래오듯 상냥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뿐 한지민이 시선을 차창으로 돌려 버리면서, 택시기사도 더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리고 이동 거리가 하도 짧아서, 신호등 두 군데만 통과하면 나오는 별 다방인지라, 택시는 한지민을 태우자마자 바로 내려줘야 했다.
“여기....”
한지민은 계산을 하고 내리기 전, 약속 한 대로 택시 기사에게 사인을 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소중하게 간직할게요.”
“네. 수고하세요.”
택시에서 내린 한지민은 최대한 고개를 숙여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면서 잽싸게 별 다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한지민은 JYB엔터 백준열 대표의 섬세한 배려에 감동 먹었다.
“이쪽으로....”
그럴 것이 그녀가 백준열과 만나기로 한 별 다방 안에 들어가자, 거기 대기하고 있던 JYB엔터 직원이, 그녀를 가게 안쪽 칸막이가 쳐져 있는 곳으로 데려 간 것이다.
그러니까 JYB엔터 측에서 그녀를 위해서, 사전에 별 다방 측에 얘기해서 가게 안에 칸막이를 설치 한 것.
“잠시만 기다리시면 대표님께서 곧 오실 겁니다. 마실 건 제게 말씀해 주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한지민이 디카페인 카라멜 마키아또를 느긋이 한 잔 다 마셔 갈 무렵, 그녀 앞에 잘 생기고 비율 좋은 멋진 남자가 한 명 나타났다.
“한지민씨. 반갑습니다. 저는 JYB엔터 대표 백준열입니다.”
“아아....”
어지간한 남자 미남 배우 뺨칠 정도의 외모를 자랑하는 백준열의 등장에, 한지민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그녀가, 자기 입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네. 반가워요. 배우 한지민입니다.”
한지민은 백준열을 보자마자 그가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명품 좋아하는 그녀의 눈에 백준열은 명품으로 휘감고 있었지만, 그 명품 하나하나가 다 잘 어울렸다.
마치 한지민 자신같이, 전담 코디네이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대표가 나온 만큼....’
그녀가 요구하는 계약금도 충분히 충족 시켜 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 이게 뭐죠?”
하지만 백준열이 그녀에게 내민 계약서는, 전혀 탑 스타급 배우에 해당하는 대우의 계약서가 아니었다. 황당한 얼굴로 한지민이 백준열을 쳐다 볼 때 백준열이 말했다.
“빨리 계약서에 사인하고 일해야지요. 한지민씨?”
더블 더블유(WW)엔터테인먼트에서도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데, 보아하니 JYB엔터에서는 한술 더 뜨고 있었다. 당연히 한지민은 이런 거지같은 계약서에 사인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뭐, 뭐야?’
그녀의 손이 백준열이 웃으면서 내밀고 있는 펜을 잡더니, 계약서에 떡하니 사인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의 생각도 싹 바뀌었다.
‘그래. JYB엔터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하자.’
계약서 사인 후, 백준열 대표를 바라보는 한지민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