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아나운서라서 그런지 몰라도, 전화 받는 임연수의 목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나야. 오늘 저녁 먹고 들어갈 거 같아서 전화했어.”
-알았어요. 그럼 나도 여기서 저녁 먹고 들어가죠. 뭐.
“거기가 어딘데?”
-어디겠어요? 방송국이지.
“라디오?”
-네. 아아. 올 때 와인 좀 사가지고 와요. 와인 셀러에 와인이 몇 병 안 남았더라고요.
와인하니 백준열의 기억이 떠올랐다. 임연수는 밥은 안 먹어도 와인은 먹어야 하는 여자였다.
해서 백준열이 와인 셀러에 와인이 안 떨어지게 그 동안 챙겨 왔는데....
‘나는 그걸 모르니 안 구해 준 거고....’
임연수는 그걸 내 앞에서 대 놓고 말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돌려서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 오늘 와인 셀러 꽉 채워 놓을게.”
-고마워요. 그럼 이따 봐요. 나 방송해야 해서.
“어어. 그래.”
임연수와 통화 후 나는 김효석 실장과, 차은석 부문장, 그리고 법무 팀 최태욱 변호사를 차례로 만났다.
제일 먼저 만난 김효석 실장과는, 아무래도 어제 김 실장이 영입에 성공한 블랙아이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다음 주중까지 10만장 찍어 내서 유통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주말에 대대적으로 홍보를 해야겠네요? 음악방송에도 출연하고 말입니다.”
“네. 안 그래도 SVS와 MVC, KVS 지상파 방송 3사 음악프로그램에 출연 요청을 했고, 다들 출연해 달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 냈습니다. 그곳 말고도 공중파 음악방송 두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출연하기로 했고요.”
“혹시 내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네. 대표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든든합니다. 아아. 그리고 블랙아이 멤버들이 언제 대표님 한 번 뵈었으면 하던데....”
“이번 주는 그들이 바빠서 안 될 테고, 다음 주에 앨범 내고 나서 자리 한번 만들어 봅시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그만 가셔서 일 보세요.”
“네. 그럼....”
나는 김효석 실장을 만난다음 바로 차은석 부문장을 만났다. 아무래도 그녀와는 업무적인 얘기보다 딴 얘기를 먼저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예상대로 제주도에 있던 정재욱이가, 음주운전 동영상을 유포한 자가 누군지 혈안이 돼서 찾았더라고요.”
내 그 말에 차은석이 긴장한 얼굴이 역력했다.
“그, 그래서요?”
“내가 유포한 자로 밝혀졌으니 차부문장과 경찰 친구 분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휴우. 다행이네요.”
“내가 제주 쪽에 다 손을 써 놨으니까, 곧 정재욱이 경찰 옷 벗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내 말에 차은석 부문장이 많이 안도해 하는 걸 보고, 그녀가 이 일로 많이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경찰대 친구가 연루 되다보니 그런 거 같았다.
“정재욱은 지금 제 살길 찾기 급급한 터라, 차 부문장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일하세요.”
“고맙습니다. 대표님 아니셨으면....”
“그 고마움을 일로 갚으시면 되겠네.”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농담 삼아 한 말인데, 그걸 또 그렇게 하겠다고 각오까지 다지는 차은석 부문장.
그녀도 워낙 바빠서 오늘도 야근 할 거라며, 대표실을 나가는 그녀를 보며 내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 있을 때였다.
-대표님. 법무팀 최태욱 변호사 오셨습니다.
다음 만나기로 되어 있던 최 변호사가 약속 시간보다 10분 더 빨리 나를 찾아왔다.
* * *
나는 숨 돌릴 새도 없이 최태욱 변호사와 마주했다. 그런데 최 변호사의 얼굴이 딱 봐도 불만이 많아 보였다.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네요?”
“대표님. 대서양의 강 변호사 말입니다.”
그럴거나 예상했지만, 아무래도 법무팀과 손 발 좀 맞춰보라고 보낸 강태욱 변호사가, JYB엔터 법무 팀을 휘저어 놓은 모양이었다. 하긴 전직 중앙지검 형사부장까지 하셨던 양반이 호락호락 할 리 있겠나?
“아니. 자기가 뭔데 우리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지....”
강 변호사에 대한 불만을 10분가량 늘어놓고 나서야 분이 풀리는 지, 최 변호사가 그제야 나를 보고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아닙니다. 그래서 법무 팀에서는 강 변호사와는 어떻게 지내기로 했습니까?”
“그야 당연히 그쪽에 협력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밥값을 해야겠죠.”
그러니까 강 변호사는 싫지만, JYB엔터를 위해서라면 그를 돕겠다는 얘기였다. 내 입장에서야 널린 게 변호사였다.
특히 내게는 소시오패스지만 능력은 출중한 고문 변호사도 있었고. 그러니 그들이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별 상관없었다. 단지 믿을 만 한 쪽은 최 변호사 쪽이니까, 아무래도 그쪽에 좀 더 내 신뢰의 무게가 실릴 수밖에. 그래서 박지수와 관련 된 소송을 최 변호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박지수씨 알죠?”
“배우 박지수 말입니까?”
“네.”
“신문에서 봤습니다. 어젯밤에 그 분 남편 되시는 표준수 감독님이 돌아가셨다고....”
“박지수씨. 저희와 계약할 겁니다. 저와 구두계약은 된 상태니까 그녀와 관련 된 소송 준비 시작해 주세요.”
“소송이요? 상대가 누군데요?”
“표준수 감독의 딸 표지수.”
“네?”
표준수 감독과 박지수는 결혼 했었다. 비록 지금은 이혼했지만. 따라서 표 감독의 딸인 표지수는 한 때 박지수의 딸이기도 했다. 그런데 백준열은 지금 그 딸을 상대로 소송 전을 치를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늘 장례식장에서....”
백준열은 표지수가 빈소에서 조문하는 자신과 박지수에게 무슨 행패를 부렸는지 얘기했다.
그러자 최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씀 하신대로라면 허위사실 유포죄, 모욕죄, 명예훼손죄로 고소가 가능합니다. 거기다 대표님 가슴을 손톱으로 긁히셨다고요?”
“네. 뭐....”
지금은 깨끗이 다 나아서 흉터 하나 없지만. 나는 혹시나 해서 내 핸드폰으로 내 얼굴 나오게 해서 사진을 찍어 놓았다. 내가 그 얘기를 하자 최 변호사가 잘했다며 말했다.
“그 사진도 같이 첨부해서 고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다치시기까지 했단 점이, 재판부의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칠 거 같거든요.”
증인이야 넘쳐났다. 그 시간에 문상 간 사람들 중 몇 명 골라 진술서 받아내면 끝이었다.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한 보상을 JYB엔터에서 해 줄 것이기 때문에, 증인 진술을 하는 걸 거부할 사람은 없을 거고.
그렇게 최 변호사와도 할 얘기를 다 하고 나자 퇴근 시간이 다 됐다. 나는 김 비서에게 퇴근하겠다고 말하고 회사를 나왔다.
그래야 김 비서도 내 눈치 보지 않고 바로 퇴근 할 테니까.
* * *
유혜라의 집에서 고기 회식이 끝나고, 매니저 차 팀장과 김 코디, 그리고 박군은 다들 자기들 집으로 갔다. 하지만 정민지는 남았다.
유혜라의 근접 경호 수칙 상, 그녀가 잘 때도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서 말이다. 그 말에 누구보다 환영한 건 유혜라의 매니저인 차 팀장이었다.
“드디어 집에 가 보겠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집에 안 들어왔다고, 집 사람이 어찌나 닦달을 하던지....”
그 말을 하면서 슬그머니 유혜라의 눈치를 살피는 차 팀장. 그런 그에게 유혜라가 말했다.
“들어가.”
“고, 고맙다. 혜라야.”
그렇게 일행들이 다들 떠나고 단 둘만 남게 된 유혜라의 집. 그녀들은 회식 후 수북이 쌓인 설거지를 같이 했다.
달그락! 달그락!
“....”
근데 설거지 하는 동안 둘 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설거지가 끝나자 유혜라가 안방으로 들어가고, 정민지는 거실 쪽 욕실에서 씻었다. 다 씻고 난 정민지가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 꺼내서 마시며, 거실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달칵!
안방 문이 열리면서 유혜라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나올 때 베개와 이불을 들고 나왔다.
“받아.”
“고마워요. 언니.”
“언니?”
“아아. 죄송....김 코디도 언니라고 하기에. 싫으시면....”
“아냐. 언니라고 불러. 네가 나를 보고 유혜라씨라고 말할 때가 더 소름 돋으니까.”
그 말 후 휑하니 안방으로 도로 들어가 버린 유혜라. 그런 그녀를 보고 정민지가 피식 웃었다.
그녀와 하루를 같이 보내면서 정민지는 유혜라에 대해 거의 다 파악을 했다. 뛰어난 경호원은 의뢰인의 심리까지 다 파악을 한다. 그래야 유사시 의뢰인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지체 없이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정민지가 파악한 지금의 유혜라의 심리는....
“뭘 이런 걸로 부끄러워하고....”
왕년의 탑 스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유혜라는 순박하고 정이 많았다. 단지 그걸 숨기려고 연기를 해서 그렇지. 그 연기력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사람들은 그녀의 진짜 면모를 알지 못하는 것이고.
정민지는 내일을 위해서 TV를 끄고 소파에 잠자리를 마련 한 뒤 거기에 누우며 말했다.
“언니. 잘 자세요.”
그러자 한 1분 쯤 지나서 유혜라의 목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왔다.
“그래. 너도 잘 자.”
그 소리에 이미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었던 정민지의 입술이, 슬그머니 위로 올라갔다가 도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숨소리가 깊어지면서 규칙적으로 변했다.
* * *
다음날 아침. 정민지는 7시 정각에 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알아서 일어났다.
그리곤 유혜라의 집을 나가서 동네 몇 바퀴를 뛰고 돌아와서, 샤워 후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원래 먹던 조식 양을 딱 2배로 늘렸을 뿐이었다.
아침에 꼭 밥을 먹는 정민지는 아침밥상을 다 차리자 안방에 노크를 했다.
그러자 유혜라의 잠옷 바람으로 나와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주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아침에부터 하드하게 누가 밥을 먹는다고....”
“싫으시면 커피 한잔 타 드릴까요?”
“아냐. 그럴 수는 없지. 만들어 준 사람의 성의가 있는데....”
유혜라는 휑하니 식탁에 앉더니, 숟가락으로 정민지가 끓여 놓은 콩나물국을 떠먹었다.
“크으. 시원하게 잘 끓였네.”
그리곤 식사를 시작하더니, 금세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을 비워냈다.
“쩝쩝쩝....”
그리곤 대 놓고 입맛을 다시는 유혜라에게 정민지가 물었다.
“밥 하고 국 더 드려요?”
“어. 조금만 더....”
그래서 식사하다 말고 정민지가 식탁에서 일어나서, 유혜라에게서 받은 밥그릇에 밥을 펄 때였다.
“계란프라이도 하나 더 부탁해도 될까?”
정민지는 유혜라가 자기 보고 아침 하드하게 먹는다고 뭐라고 한, 그 사람이 맞나 싶었다.
일단 퍼고 뜬 밥과 국을 유혜라에게 건네고 나서, 계란프라이를 할 때였다.
“콩나물 무침 더 없어?”
순간 빠직 빡친 정민지가 유혜라를 보고 말했다.
“아침 하드하게 안 드신다면서요?”
“내가?”
“네.”
“그랬나? 뭐 그럼 오늘부터 하드하게 먹지 뭐. 콩나물 무침 빨리 더 줘.”
“허얼....”
정민지는 유혜라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결국 콩나물 무침 더 내어주고 계란프라이도, 노른자위 안 터트리고 유혜라 밥 위에 대령했다.
그러자 그걸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 뒤, 유혜라가 슬그머니 식탁에서 일어나더니, 안방으로 쏘옥 들어갔다.
정민지는 마저 식사를 하고 나서 밥상을 치우고 바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렇게 설거지가 막 끝났을 때였다. 안방 문이 열리더니, 이번에는 유혜라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말했다.
“커피 한잔 줘.”
쿵!
그말 후 바로 안방 문을 닫아버리는 유혜라. 정민지는 그길로 커피를 내렸고, 그 내린 커피를 들고 안방 문을 노크했다.
“줘.”
그러자 안방 문이 열리고 유혜라의 손이 나와서 정민지가 탄 커피만 챙겨서는 방문을 도로 닫아버렸다. 그런 유혜라의 반응에 정민지가 피식 웃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왜 아침부터 쓸데없는 소릴 해서는....”
유혜라는 지금 괜히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쑥스러워서, 차마 정민지의 얼굴을 못 보겠는 모양이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매니저인 차 팀장인 온 모양이었다.
철컥!
정민지는 굳이 인터폰으로 확인할 것도 없이 바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현관문 밖에 있어야 할 차 팀장은 없고, 그 자리에 박스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 *
정민지는 일단 현관에서 안방 쪽을 쳐다보았다. 유혜라가 나올 기색이 없어보이자, 그녀는 최대한 기척을 내지 않고 열린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그 박스를 들고 밑에 계단참으로 내려갔다.
그 후 거기서 박스를 열었다.
“젠장....”
거기에 죽은 고양이 새끼와 함께 또 협박 편지가 들어 있었다. 협박 편지의 내용은 어제와 동일했다.
딩동! 촤르르르!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해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구두소리가 이어서 들려왔고. 정민지는 그 소리만 듣고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챘다.
“차 팀장님!”
막 유혜라의 집 현관문을 열려고 디지털 도어록에 손을 갖다 대던 차 팀장이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바로 밑 계단참에 정민지가 서 있는 걸 보고, 그가 한손으로 가슴을 쓸며 말했다.
“민지씨. 놀랐잖아.”
그러면서 정민지가 있는 계단 쪽으로 걸어오던 차 팀장. 그런 그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그리곤 한 손으로 정민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그 상자....”
차 팀장이 정민지가 들고 있던 박스를 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