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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쉿! 조용히 해요.”
정민지가 최대한 목소리 톤을 낮춰서, 차 팀장에게 말하고는 고개 짓을 했다.
차 팀장보고 계단참 아래로 내려오라고 말이다.
차 팀장은 그런 정민지를 보고 계단을 내려갔고, 정민지는 계단참에서 차 팀장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상자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보여주었다.
“헉!”
남자인 차 팀장도 막상 죽은 고양이 새끼 사체를 보고는 놀랐다. 이어서 그의 눈에 들어 온 협박 편지를 보고는 얼굴이 완전히 굳었고.
“그렇다면 어제 그 녀석들이....스토커가 아니란 거군.”
“그렇죠. 정황상으로는 요.”
어제 CF촬영장에서 유혜라를 노렸던 자들은, 진정한 스토커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이런 건 그들이 사전에 준비해 둬서, 그들이 잡힌 상태에서도 배달은 충분히 되어 올 수 있었다. 아니면 그들의 조력자가 더 있을 수도 있었고.
그것도 아닌 최악의 경우는, 그들 말고 또 다른 스토커가 있을 경우인데....
“아무래도 경찰서 좀 다녀와야겠어요.”
그 모든 걸 확인해 보기 위해서, 정민지는 경찰서를 찾아가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지금?”
“네. 어차피 오전 스케줄 없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혜라가 또 필 꽂혀서 어디 가겠다고 설치면....”
“그때는 이거 보여줄 수밖에요. 경찰서 가서 그 놈들이 이거 보낸 범인인지만 확인하고 돌아올게요. 그 동안 차 팀장님은 유혜라씨와 같이, 이 집에 계시면 됩니다.”
“알았어.”
정민지는 차 팀장과 같이 계단을 올라갔고, 차 팀장이 디지털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러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차 팀장 온 걸 또 유혜라가 귀신 같이 알고는 안방에서 나왔다.
물론 그 사이 정민지가 들고 들어 온 상자를, 현관 옆에 유혜라의 옷 방에 잽싸게 숨겼다.
“일찍 왔네?”
“어? 어. 치울 거 있나 해서. 그런데 깨끗하네. 킁킁. 이거 무슨 냄새야? 밥 해 먹었어?”
차 팀장이 집 안에 냄새를 귀신 같이 맡고 그렇게 묻자, 유혜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턱짓으로 정민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민지가 밥 해줘서 먹었지.”
“오오. 민지씨 음식 잘해?”
“혼자 살다보니 해 먹던 버릇이 들어서요. 그렇게 잘하진 않아요.”
“무슨 소리야. 그 정도면 가사도우미로 나서도 되겠더구먼. 전에 우리 집에 있었던 도우미 아줌마들 보다 훨 낫더라.”
그때 정민지가 차 팀장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걸 본 차 팀장이 유혜라에게 말했다.
“아참. 정민지 경호원 잠깐 집에 좀 다녀오겠다는 데 그래도 되지?”
차 팀장의 말에 유혜라가 정민지를 쳐다봤다. 그러자 정민지가 말했다.
“옷 좀 갈아입고 집 정리도 좀 하고 오려고요. 두 시간이면 됩니다.”
정민지의 말에 유혜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갔다가 와.”
그 말 후 유혜라가 차 팀장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이어서 말했다.
“오늘 스케줄 어떻게 돼?”
“그게....”
차 팀장이 유혜라의 물음에 대답하려다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힐끗 정민지를 쳐다보고는 유혜라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그리곤 두 사람은 같이 안방으로 들어갔고, 그걸 본 정민지는 챙길 거 챙긴 뒤, 곧장 현관으로 나섰다. 그리곤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연 뒤, 밖으로 나갔다.
* * *
정민지는 유혜라의 집을 나오자마자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중랑경찰서로 가 주세요.”
그리곤 어제 경찰들이 유혜라에게 위해를 가하려 한 자들을 잡아 간 관할서로 향했다.
그곳까지 가는데 3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되기에, 그 사이 정민지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협박 편지 내용이 똑같은 걸로 봐서, 그 놈들이 사전에 벌여 놓은 일일수도 있어. 하지만....”
어제 그렇게 직접적으로 유혜라를 노려 놓고, 굳이 다음 날에도 동물의 사체와 협박 편지를 보낼 필요가 있었을까? 그 생각을 하니 또 어제 그 놈들과는, 다른 놈의 소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일단 경찰서 가서 따져 보자.”
그렇게 빠르게 결론을 내린 정민지. 그녀는 이걸 윗선, 그러니까 JYB엔터의 경호팀장인 문대식에게 보고를 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결국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서 지금 중랑경찰서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네. 네. 위험할 거 같으면 바로 지원 요청하겠습니다. 네. 걱정 마십시오. 네.”
그래도 자기 부하라고 문대식이 정민지를 챙겼다. 비록 자기가 선발한 경호팀원은 아니지만 말이다.
문대식은 어제 잡힌 놈들이 협박 편지를 보낸 자들이 맞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겠지만 아닐 경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며, 정민지에게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지시했다.
정민지도 순간의 방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실제 특수 임무 수행 중 동료를 잃고, 그 충격에 일 년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으니까.
“그래. 조심하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렇게 혼잣말로 자신을 다독거린 정민지. 그 사이 택시는 중랑경찰서에 다다랐고 잠시 후, 요금을 내고 택시에서 내린 정민지는, 곧장 경찰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정민지씨?”
경찰서 1층 로비에서 딱 봐도 형사로 보이는, 체구 좋은 사람이 정민지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네. 그런데....누구신지?”
“아네. 저는 여기 형사과 정민호 형삽니다. 대식이 형님께 연락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식이란 이름에 정민지는 그제야 문대식 팀장과 통화 중에, 그가 중랑경찰서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형님께 대강 얘기는 들었습니다. 유혜라씨 스토커가 오늘 아침에 또 협박 편지를 보내왔다고요?”
“네. 그래서 어제 혜라 언니 테러한자들이, 그 협박 편지와 연관이 있는지 좀 알고 싶어서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어제 조사에서 그자들이 유혜라씨에게 사전에 스토킹한 정황은 발견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 조사에는 그 점을 집중적으로 파 볼 생각입니다. 마침 그 조사가 시작 될 거 같은데, 저랑 같이 거기 가시겠습니까?”
“네.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죠.”
“그럼 이쪽으로....”
정민지는 중랑경찰서 정형사와 같이 조사실로 향했고, 거기서 막 조사 받고 있던 두 명의 남자들을 살폈다.
둘 다 30대 초 중반으로 그들이 유혜라를 노린 이유는, 어제 김 코디가 정민지에게 말한 대로였다.
그러니까 유혜라가 여배우로 데뷔 전에 소속 되어 있었던 걸그룹 ‘스윙걸스’의 강성 덕후들이 그녀를 배신자로 규정짓고 꾸민 테러였던 것. 문제는 어제 김 코디의 말처럼, 경찰에서 그들을 정신병자로 몰아가려는 거였다.
“....라 오후에는 정신감정을 받을 예정입니다.”
정민지는 정 형사의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정 형사에게 물었다.
“저자들이 정신병자로 인정받게 되면 그 다음은요?”
“그야 정신병원으로 보내야겠죠.”
“그 정신병원에서 저치들이 나와서 또 혜라 언니를 노리면요?”
“그, 그건 그때 가서....”
“그때 가서 혜라 언니 잘못 되면 누가 책임지는데요?”
“크음. 저희 경찰이 모든 국민들을 다 지켜 줄 수는 없습니다.”
정민지는 들으나 마나한 정 형사의 변명에 아예 시선을 돌려버렸다.
정 형사도 그렇게 말해 놓고 무안했던지, 정민지에게서 고개를 돌려서 조사 받고 있는 두 범인들을 쳐다봤고.
그래도 정 형사 덕분인지 두 범인들에게 조사하는 형사가, 동물 사체와 협박 편지 얘기를 슬쩍 우회적으로 돌려서 물었다.
“....데 혹시 유치하게 죽은 쥐나 협박 편지 같은 거 보내고 그러진 않았지?”
그러자 두 범인 중 하나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흥! 우리가 앱니까? 그런 유치한 짓이나 하게.”
그 말에 다른 범인이 옆에서 사자성어까지 들먹이며, 섬뜩한 소릴 내뱉었다.
“타초경사(打草驚蛇), 우리가 뭐 하러 그년 노리는 걸 알려 줍니까? 이런 일은 은밀하게 해야 성공할 확률도 높아지는 데.”
정민지가 봐도 저들은 정신병자들이 맞았다. 문제는 저런 자들이 정신병원에 들어간다고, 정상으로 나아서 나올 거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역시나 세상이 저런 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저들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했다.
말이야 쉽지 세상이 바뀌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조사실에서 두 범인에 대해 취조하는 걸 지켜보면서 정민지는 가슴만 더 답답해졌다.
* * *
그렇게 30여분에 걸친 두 범인에 대한 조사실에서 취조가 끝났다.
“어떠세요?”
경찰서 휴게실에서 정 형사가, 정민지에게 자판기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물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정민지는 대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정 형사가 건넨 커피를 받아서, 일단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정 형사에게 말했다.
“일단 그들이 혜라 언니한테 협박 편지를 보낸 거 같지는 않아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조사 중 그들의 진술이 일관적이었고....”
정 형사가 자기 견해를 쭉 얘기 했지만, 정민지의 귀에 그 말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정 형사님. 부탁 좀 해도 될까요?”
“네?”
“강남 경찰서에 아시는 형사님 계시죠?”
“네. 뭐....”
“그분 연락처 좀 알려 주세요. 그리고 지인 찬스 좀 쓸 수 있게, 그분께 전화 한통 부탁드릴게요.”
그 말을 하면서 생긋 웃는 정민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웃으며 하는 부탁을 거절할 남자는 거의 없다는 걸 말이다.
원래는 ‘거의’란 말이 빠졌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웃으며 하는 부탁을 모든 남자들이 다 들어주었다는 말이다.
한데 ‘거의’가 붙은 건, 올해 그런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백준열 대표!’
그는 정민지가 웃으며 하는 부탁을 대 놓고 깠다. 그래서 정민지는 더 끌렸다.
김훈 대표의 지시도 있었지만, 그녀가 형부인 양태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준열 대표의 근접 경호팀원이 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 그래요. 전화 할게요.”
정 형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정 형사가 더듬거리며, 강남 경찰서에 아는 자신의 경찰대 동기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를 정민지에게 알려 주었다.
“고마워요. 이번 일 잘 해결 되면, 형사님께 술 한 잔 쏠게요.”
“뭐, 그러시던지....”
정민지는 곧장 중랑경찰서를 나섰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정 형사가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정신 차려라. 정민호. 여자 때문에 이러는 거....쪽팔리지도 않냐?”
하지만 한번 가슴으로 훅 들어 온 순정이, 그리 쉽게 나갈 거 같으면 청춘이 아닌 거지.
정 형사는 나름 마음을 다잡으면서 자신의 경찰대 동기이자, 경쟁자로 여기고 있는 강남 경찰서 유도훈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 브라더. 네가 나한테 먼저 전화를 다 하고.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시답잖은 소리 그만하고, 거기로 내 지인이 갈 거야. 네 번호 알려줬으니, 전화 오면 잘 좀 챙겨 줘.”
-뭐야? 너 지금 나한테 청탁하는 거야?
“청탁은 개뿔. 싫으면 딴 형사에게 부탁하고.”
-그건 또 아니지. 너한테 빚 하나를 지울 수 있는 이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야 있나. 알았어. 내가 특별히 잘 챙겨 드리도록 하지.
“고맙다.”
그때 휴게실에 나타난 동료 형사가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보아하니 관내 사건이 터진 모양이었다.
“도훈아. 나 출동해야 할 거 같다.”
-쯧쯧. 고생해라.
그렇게 동기와 통화 후, 정민호 형사가 휴게실을 나설 때였다.
“아아....”
그때 생각이 났다. 그의 동기 유도훈이 특히 미인에게 약하다는 걸 말이다.
순간 정민호는 후회가 됐다. 유도훈 말고 딴 형사를 그녀에게 소개 시켜 줬어야 했는데 말이다.
좀 전 정민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정민지의 그 웃음을 보고, 과연 유도훈이 버틸 수 있을까?
“정 형사. 뭐해?”
그때 팀장의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갑니다. 가.”
정민호는 별 수 없이 팀장과 팀원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가면서, 유도훈이 제발 정민지에게 푹 빠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 * *
강남 경찰서 형사 유도훈. 그는 어제 잠복 나갔다가, 오늘 새벽에 범인을 체포해서 기분이 좋았다.
경찰서 앞에서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하고, 또 경위서 작성하고 나니 벌써 10시가 훌쩍 넘었다. 그 경위서를 팀장에게 제출 하고 나자, 그 사이 사건 현장에 나갔다고 돌아 온 동료 형사가, 그를 보고 말했다.
“아직 퇴근 안했어?”
“네. 이제 하려고요.”
일찌감치 범인을 잡아 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오늘 하루가 비번이 된 유도훈은, 집에 가서 내일 아침까지 퍼질러 잘 생각이었다.
그 범인 잡겠다고 잠복한 게 사흘이었다. 그 동안 자지 못한 잠을 보충하려 했는데, 그 시간이 좀 줄게 생겼다.
왜냐하면 경찰대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동기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그 녀석이 부탁이란 걸 처음으로 해 왔다.
딴 녀석이면 몰라도 그 녀석의 부탁은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녀석이 보낸 지인을 만나보고서, 그 부탁을 들어준 후에 퇴근할 생각이었던 유도훈.
지이이잉! 지이이잉!
동기 녀석과 통화 후 10분 정도 지나서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모르는 번호.
유도훈은 동기 녀석의 지인이 그에게 건 전화일거라 유추하며 그 전화를 받았다.
“네. 강남 경찰서 유도훈 형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민지라고 해요. 중랑경찰서 정민호 형사님 소개로 전화 드렸어요.
“네에? 아....네....”
젊은 여자 목소리. 유도훈은 정민호가 말한 지인이, 젊은 여자 일거란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