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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민정수석으로부터 백준열이라는 이름을 전해 듣는 순간부터, 김순철은 골머리가 아파왔다.
‘하필....’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그 이름이 민정수석 입에서 거론 된단 말인가?
‘이걸 어쩌나?’
김순철은 빠르게 생각을 했다. 영부인이 왜 그 아크로텔이라는 빌딩주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백준열이 그녀와 척을 지게 된 이유는 사실 좀 궁금했다.
‘내가 아는 백준열은 권력자와 대척점에 설 자가 아닌데....’
김순철의 머릿속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 김순철은 자기 앞에서 자기처럼 열심히 통빡을 굴리고 있는 민정수석을 보고 생각했다.
‘저 새끼는 왜....’
원래 맛있는 먹이는 나눠 먹는 게 아니다. 백준열의 경우 권력자들에게 있어서, 그 맛있는 먹잇감을 수시로 제공해 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을 아는 건 적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청와대에서도 백준열과 연결 된 사람은, 자신과 정무수석인 최재훈 둘 뿐이었다. 다른 비서관들에게 백준열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한데 눈앞의 민정수석이 거기에 한 다리를 걸치려 들고 있었다.
‘그건 곤란하지.’
왜냐하면 민정수석은 정무수석과 달리 자신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자가 백준열과 연결이 된다면, 청와대 내에 자칫 반비서실장파가 생겨 날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정책실장인 이석기 때문에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한 산에 두 마리 호랑이가 있을 수 없듯이, 청와대 안에서도 비서실장과 정책실장간의 권력 쟁투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물론 직책상 비서실장이 더 위이긴 하지만, 실권은 누가 대통령과 더 가까우냐가 좌지우지했다. 그리고 현재 대통령은 딱히 비서실장의 편도, 정책실장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추진 중인 경제 정책이 성공한다면, 대통령은 정책실장인 이석기의 손을 들어 줄 공산이 더 컸다. 그래서 청와대 비서관들도 눈치들을 보고 있었다.
곧 뜰 정책실장인 이석기 실장의 줄에 설지, 아니면 현 청와대 실세 비서실장인 자신의 편에 설지 말이다.
그런 상황에 빵빵한 자금력을 지닌 백준열과 손을 잡은 민정수석이 설친다면....
‘절대로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민정수석을 백준열에게서 손 떼게 만들어 버린다면 말이다.
“하, 하지만 중앙지검에 이미 손을 쓰라는 지시를....”
“괜찮아. 거기 자네 지시를 따를 검사는 없을 테니까.”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빤히 자신을 쳐다보는 민정수석에게 김순철이 말했다.
“그런 게 있어. 그러니 자넨 그 일에 더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냥 여기서부터 손절해. 그리고 원래하던 대로 자네 일을 하면 돼.”
“....”
민정수석 박재범은 당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김순철 비서실장을 쳐다봤지만, 정작 김순철은 식은 국화차를 쭉 다 마신 뒤, 무표정하니 박재범에게 축객 령을 내렸다.
“안 가나?”
“네?”
“민정수석이, 할 일이 그렇게 없는 자리가 아닐 텐데?”
당연히 민정수석은 바쁘다. 어제도 두 시간 늦게 퇴근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 일거 같았고. 그런데 비서실장이 그에게 맡겼던 일에서 갑자기 신경 끄라니 오기가 치밀었다.
“네. 그럼 저는 이만....”
박재범은 일단 비서실장실을 나왔다. 하지만 바로 민정수석실로 가지 않고 한쪽으로 물러나서 중앙지검에 전화를 걸었다.
비서실장의 말이 무슨 소린지 궁금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 * *
무슨 일이든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나았다. 하지만 한쪽은 그걸 제대로 물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김순철은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그의 전화를 백준열이 바로 받았다.
“백 대표. 그간 잘 지냈나?”
-네. 덕분에요. 한데 무슨 일로....
뭐 사실 김순철이나 백준열이, 서로 친하게 알고 지내온 사이도 아니고, 서로 필요할 시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아 온 터라, 백준열이 먼저 용건을 꺼내도 그게 영 어색하지 않는 김순철이었다.
“딴 게 아니고. 자네 혹시 영부인께 무슨 실례되는 일을 한 적 있나?”
-영부인이요? 제가 영부인 뵐 일이....아아! 어제 누가 제 소유의 빌딩을 찾아와서....
역시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게 제일 확실했다. 백준열로부터 대통령의 사위, 그러니까 최지훈 변호사가 백준열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부 전해들은 김순철.
“최지훈이 그런 놈이란 건 대통령님도 아시네. 하지만 그래도 그 자가 대통령님의 사위란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영부인이야 두말 할 거도 없고.”
-그래서요?
“그 빌딩 최지훈에게 넘기게. 그럼 해결 될 일 아닌가?”
뭐 그래봐야 백준열에게 그 돈은 푼돈일 뿐이었다. 한데....
-실장님. 지금 저보고 10억 받고 500억 빌딩을 넘기라는 겁니까?
백준열이 사업적으로 나왔다. 이러면 일이 복잡해졌다. 왜냐하면 백준열이 손해 볼 490억 이상의 뭔가를 이쪽에서 해줘야만 했으니까.
상대가 백준열만 아니었어도 김순철은 자신의 권력으로 짓눌러버렸을 거다.
하지만 백준열은 권력으로 누른다고 눌러질 존재가 아니었다. 녀석의 뒤에 삼명그룹이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날 보고 그래 줄 순 없겠나?”
일단 김순철은 자신을 팔았다. 자기 면을 봐서 백준열보고 양보해 달라고 한 거다. 하지만....
-그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절 봐서 영부인께 실장님이 좀 잘 말씀해 주십시오. 그 동안 제가 실장님께 해드린 게 얼만데....
백준열의 그 말에 김순철은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처럼 백준열은 그 동안 그에게 퍼주기만 했지 정작 그가 백준열을 위해서 해 준 게....
‘C발....하나도 없네.’
뭐라도 해 줬어야 이럴 때 생색이라도 낼 텐데. 김순철은 자신이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후, 여태 백준열에게 도움만 받았지, 자기가 백준열을 위해서 뭐하나 제대로 해 준 게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근데 거기다 또 백준열보고, 자기 빌딩을 대통령 사위에게 그냥 넘기라고 하고 있으니....
“하아....알겠네. 내가 영부인께 말씀은 드려보지. 하지만 그쪽에서 풀리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네.”
-그때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실장님이 신경 쓰실 일은 없을 겁니다.
“뭐 그래 준다면 나야 고맙겠네만....”
사람 사이 문제에 정확한 정답은 없었다. 이번 일이 어디로 불통이 튀어서, 그로 인해 일어난 불길이 자신과 백준열에게로 번질 수도 있었고. 반대로 없었던 일이 되어 조용히 묻힐 지도 몰랐다.
“그래. 이번 주는 어렵고. 다음 주에 필드 한 번 나가세.”
일단 백준열과 웃으며 통화를 끝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통화가 끝남과 동시에 웃고 있던 김순철의 얼굴이 삭 돌변했다.
“이 딴 일로 대통령께 얘기하긴 좀 그렇고, 점심시간에 영부인을 잠깐 뵈어야겠군.”
김순철은 자기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영부인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자신이 잠깐 영부인을 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랬더니 영부인이 점심 먹고 오후 1시에는 외출 할 예정이니까, 그 전인 12시 50분쯤에 잠깐 시간을 내겠다는 대답을 보내왔다.
김순철은 그때 뵙겠다는 말을 전하고 비서실장으로서 자기 오전 일을 시작했다.
그리곤 오전 업무를 끝내고 점심 식사를 하자마자, 곧장 영부인이 있는 대통령 관저로 움직였다.
약속 시간 보다 5분 정도 일찍 대통령 관저에 도착한 김순철 비서실장.
“들어오세요.”
그런 그를 영부인인 김영옥 바로 만나 주었다. 외출 나갈 준비를 끝낸, 화장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의 김영옥. 그녀가 바로 김순철에게 물었다.
“저를 왜 보자고 하셨나요?”
“저 그게....”
김순철은 자신이 백준열에게 들은 바를 영부인에게 그대로 얘기했다. 그랬더니 수시로 얼굴을 굳혔다가 펴기를 반복하던 영부인이 김순철에게 말했다.
“그래서 지금 김 실장님은 제 사위가 얼마나 미욱한 녀석인지, 제게 알려주시려고 여기 오신 거네요?”
딱 들어봐도 영부인의 말에 뼈가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 불쾌한 빛이 역력했고.
‘틀렸군.’
그걸 본 순간 김순철은 여기서 괜히 영부인의 심기를 더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준열도 그러지 않았나? 영부인께 말만 좀 잘해 달라고. 그 뒤 무슨 일이 생겨도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말이다.
“저야 알아낸 전후사정을 영부인께 있는 그대로 전해드렸을 뿐, 최 변호사를 성토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김순철이 그렇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나자, 영부인이 강하게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 전후사정이 너무 구체적인데....혹시 그 빌딩주와 김 실장님이 아는 사인가요?”
역시 눈치가 귀신같은 영부인. 김순철은 어차피 영부인이 나서서 캐면, 자신과 백준열의 관계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굳이 숨길 필요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네. 압니다.”
“그렇군요. 그 사람은 누군가요?”
영부인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김순철을 쳐다보며 물었고, 김순철은 그 빌딩주가 누군지 그가 아는 걸 전부 영부인에게 얘기했다.
“어머나!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막내아들이 그 빌딩주였다니....”
빌딩주의 정체를 알고 난 영부인.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얼굴에 서린 불쾌감은 여전히 지우지 않았다. 그걸 모를 김순철이 아니었다.
“하여튼 재벌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늘려서 부실화 시키고, 분식 회계로 그걸 숨기는 것도 모자라서, 그 자식들에게 그룹을 물려주려고 서울 시내 빌딩이란 빌딩은 다 그 자식들 이름으로 사서, 향후 있을 상속세를 내게 하려는 그 속셈을 누가 모를까. 그래서 그 양반도 재벌 계혁을 하려는 거잖아요. 그 첫 타깃으로....삼명그룹은 어떤가요?”
“네?”
김순철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것이 한국에서 재벌 개혁이라니? 막말로 현 대통령도 재벌의 도움을 받았기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재벌을 개혁하겠다는 건, 대통령 노릇을 때려 치겠다는 소리나 다를 게 없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뭘 농담 좀 한 거가지고 그렇게 놀라고....우리 실장님 나이를 먹더니 확실히 전보다 더 유해지신 거 같으셔. 호호호호호.”
말로 자신을 쥐락펴락하는 영부인을 보면서 김순철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데....삼명그룹이 우리를 너무 우습게 여기는 거 같네요.”
“네?”
이건 또 무슨 신선한 개소리란 말인가?
“그렇잖아요? 그깟 빌딩하나 얼마나 한다고. 우리 딸내미 가슴에 못 박고, 사위 기죽이고 말이에요.”
대체 언제 백준열이 영부인 딸의 가슴에 못 박고 사위 기 죽였는지, 김순철은 그걸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영부인이고 자신의 비서실장이니까. 영부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지금은....
* * *
영부인의 뜻은 단호하면서 명확했다.
“삼명그룹 회장은 백승렬이지, 백준열은 아니잖아요? 그 아들 좀 혼낸다고 백 회장이 뭘 어쩌겠어요? 안 그래요?”
삼명그룹 백 회장은 못 건드리니까, 그 아들인 백준열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란 소리였다. 하지만 이건 영부인 말대로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영부인이 자기 사위 때문에 기분 나빠하듯이, 삼명그룹 백 회장 역시 자기 막내아들을, 이쪽에서 건드리면 아주 기분 나타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네. 뭐....”
일단 영부인의 비위를 맞추는 거처럼 굴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난 김순철은 곧장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어차피 점심 먹고 그가 해야 할 일이, 바로 대통령을 곁에서 보좌하는 일이었으니까.
“주영 대사가 바뀌었다고?”
“네. 이번에 취임한 멧 딜런 주영 대사는....”
먼저 곁에서 대통령을 챙기고 있던 정무수석 최재훈이 비서실장인 김순철이 나타나자 눈치를 주었다. 왜 이리 늦었냐고 말이다. 김순철은 최재훈에게 미안해하며 대통령 옆에 다가갔다. 그러자 대통령이 김순철을 보고 말했다.
“김 실장.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꼭 챙기세요.”
“물론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밥은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근데 집 사람하고 뭔 얘기를 그리 오래하시오?”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 영부인을 만나고 오느라 늦었다는 걸 말이다. 옛날 궁전에도 눈과 귀가 많았다던데, 청와대도 그에 못지않은 거 같았다. 뭐 대통령이 알고 있다니 김순철로서는 얘기 꺼내기 더 수월해졌다.
“실은....”
영부인과 달리 김순철은 백준열과 대통령의 사위 최지훈 사이의 일을, 잘 요약해서 대통령께 말씀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