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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그러니까 이미숙의 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실질 자산 중 많은 부분을 컬렉션 구입에 써 오고 있었다. 즉 김명진 회장의 현 자산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거보다 훨씬 적을 가능성이 컸다.
그 말은 김명진 회장이 나와 싸울 실탄, 즉 돈이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좋은 정보군.’
물론 그가 컬렉션을 구입했을 때는 단지 취미로 모은 건 아닐 터. 아마도 자금이 필요할 때 언제든 컬렉션을 처분해서 현금화 시킬 수 있도록, 모종의 판로를 준비해 놓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컬렉션들이 한꺼번에 싹 다 사라져 버린다면? 가령 청평 별장에 불이 나서 컬렉션들이 전부 재로 변해 버린다든지.”
물론 아까운 그것들을 내가 왜 태우겠는가? 싹 다 챙겨야지. 내 아공간 개톤백 안에다가 말이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김명진 회장은 아마....
“혈압에 당뇨가 있는 양반이니, 잘하면 병원에 실려 갈수도....”
그러다 잘못 돼서 덜컥 죽기라도 한다면....
“서진그룹은 끝장나는 거지.”
나 때문이 아니라 그럴 경우 다른 그룹들이 서진그룹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대한민국에서 재벌가끼리는 필요에 의해서 손도 잡지만, 여차하면 적으로 돌변해서 뒤통수치는 게 예사였다.
그런 그들이 나와 싸우는 과정에서 이미 데미지를 입은 서진그룹에, 그 총수까지 덜컥 죽어버린다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서....’
서진그룹이라는 맛난 고기를 다 뜯어먹고, 종내 뼈만 남겨 놓겠지.
물론 지금 생각한 내 시나리오 같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가령 김명진 회장의 뒤를 이을 아들들 중에 유능한 놈이 있다거나, 정부의 개입 등의 변수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안타깝지만 그런 변수조차 서진그룹이 망하는 데, 별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거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러니까 김명진 회장은 애초에 나와 척을 지지 말았어야 했다.
“그놈에 자존심이 뭐라고....”
그냥 서진의료재단 일로 나한테 먼저 사과하고, 그런 일이 다시는 없게 하겠다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었더라면....
나도 굳이 김명진 회장과 싸우지 않고 그냥 넘어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계의 싸움꾼으로 불리는 김명진 회장은, 내 예상대로 나와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마 내일부터 서진그룹에서 나와 JYB엔터를 옥죄어 올 거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그에 대한 만반의 대비를 다 갖춰 놓고 있었는데, 이거 잘만 하면 그 싸움이 시작도 되기 전에 끝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나는 문대식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래층, 그러니까 2402호실이 깨끗이 비었다는 말을 듣고, 이미숙에게 명령을 내렸다.
“자자. 이제 그만 그쪽 방으로 가서 자도록 해.”
“네. 백 대표님.”
원래는 이미숙이 날 보고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둘만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녀가 날 보고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주위 사람들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다.
해서 나는 이미숙에게 주인님 말고 백 대표님으로 부르라고 했고, 그녀는 내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이미숙으로부터 청평 별장 얘기를 듣고 나자, 다른 말은 아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거긴 지금 털어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앞서 나와 통화한 철수의 말이 생각났다.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겠다?”
나는 새벽 두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간에, 진짜 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백준열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한국항공 본사로 달려간 철수와 세르게이.
무슨 일을 할 때 계획 없이 절대 움직이지 않는 세르게이. 그런 그도 철수를 따라 즉각 여기로 움직였다. 왜? 백준열이라는 그들 VIP고객이 그들이 수고한다고 천만 원을 보내줬기 때문에. 역시 돈 앞에는 게획도 고집도 다 꺾는 게 인간임이 증명 되는 순간이었다.
“여기 경영본부장인 조은아가 왜 자꾸 백 대표에게 전화하는 지 그 이유만 알아내면 돼.”
그래서 둘은 조은아의 차와 그의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 했다. 한데 주차장에 있는 차는 어떻게 설치했는데, 사무실은 벌건 대낮에 쉽지 않았다. 해서 이따 밤에 몰래 설치할 생각이었는데....
“뭐야? 조은아가 백준열 대표를 노리고 있었어?”
근데 일이 풀리려니 너무 쉽게 풀렸다. 조은아가 자기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 중에 자기 입으로 떠들었다. 이번에는 백준열과 꼭 결혼하고 말겠다고 말이다.
철수는 그 부분을 녹음했고 잘 편집한 다음 백준열에게 조은아가 왜 그에게 자꾸 전화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고, 증거로 그 녹음 파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백준열이 또 수고했다고 수고비를 보내 주는 게 아닌가?
그뿐 아니라 박재숙이라는 이미 죽은 여자에 대한 뒷조사와 그 처리 결과를 두고도 백준열은 5백만 원이나 되는 수고비를 지급했다.
그래서 너무 좋은 나머지 쓸데없는 소리까지 해 버렸다. 언제든 필요하면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고 말이다.
벨레레레레~
그랬더니 그 말한 그 다음 새벽 2시에 설마 이렇게 전화를 해 올 줄이야.
다른 전화면 몰라도 그들의 VVIP고객인 백준열의 전화를 철수는 차마 씹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다가 몸을 일으킨 철수. 그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자고 있는데 깨웠네요.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다. 근데 무슨 일로....”
-지금 처리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요.
“지, 지금 말입니까?
친절한 철수마저도 백준열의 그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안 그래도 자다 깨서 예민해진 그의 신경이, 짜증 게이지를 극대화 시키고 있을 때였다.
-물론 의뢰비도 5배로 인상해서 지급하겠습니다. 또한 수고비도 5억을 책정해 드리고요.
하지만 백준열의 의뢰비 5배와 함께 수고비로 무려 5억을 주겠다는 백준열의 말에, 그 짜증은 거짓말처럼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원래 친절한 철수 모드가 그의 머릿속에 장착이 됐다.
“당연히 해야죠. 그래서 백 대표님....무슨 의뢰이신가요?”
-지금 즉시 청평에 있는....
백준열의 의뢰 내용을 집중해서 듣고 필요한 건 메모까지 다 한 후 철수가 말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네. 4시까지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네. 그럼 청평에서 뵙도록 하지요.”
그렇게 백준열과 통화를 끝낸 철수. 그가 그의 옆방에서 쿨쿨 잘 자고 있는 세르게이에게로 움직였다.
* * *
똑똑!
형식적인 노크 후 옆방 문을 연 철수.
척!
그런 그의 머리, 정확히는 왼쪽 관자노리에 차가운 총구가 와 닿았다.
언제 깼는지 세르게이가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철수. 죽고 싶어?”
그 말을 듣고 나자 철수도 생각이 났다. 세르게이가 그가 잘 때 이 방에 들어오려면, 그가 알려 준 신호를 보내고 나서 들어오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노크 소리를 처음엔 세 번, 그 다음 두 번, 마지막에 한 번하고 헛기침까지 한 후,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말이다.
하지만 철수도 워낙 경황중이었다. 자다가 일어나서 백준열에게 의뢰를 받고 곧바로 여기로 달려왔으니 말이다.
“미안. 의뢰가 들어와서 그랬어.”
“의뢰? 철수. 너 미쳤어? 지금이 몇 신데 의뢰 타령이야?”
철수와 달리 덜 이성적인 세르게이. 그는 벌컥 화부터 냈다. 하지만 이어진 철수의 5배와 5억 얘기가 나오자, 일그러져 있던 세르게이의 얼굴이 금세 펴졌다.
“당연히 해야지. 나 바로 옷 갈아입고 장비 챙길 테니까, 넌 밑에 가서 차 빼 놔.”
“알았어.”
역시 세르게이는 프로였다. 지금 그가 뭘해야 할지 금방 파악해서 움직인다. 그래서 철수도 일단 의뢰를 맡고 나면, 이렇게 세르게이가 내리는 지시를 무조건 따랐다.
철수는 외출 준비를 하고 서둘러 그들이 사는 오피스텔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저기 있네.”
그리곤 그들의 이동 수단이 김훈의 에이전시에서 받은 국산 SUV차에 타서 시동을 건 다음 그 차를 빼서 지상으로 올라갔다.
그 사이 준비를 끝내고 커다란 가방 두 개를 챙겨 든 세르게이가, 오피스텔 입구에서 나오는 게 철수의 눈에 보였다.
잠시 후 장비를 전부 차에 실은 세르게이가 운전석 옆 조수석에 타자, 철수는 곧장 차를 출발 시켰다.
“의뢰 내용을 자세히 말해 봐.”
그리고 세르게이에게 그들이 해야 할 의뢰가 뭔지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재벌가의 한 별장으로 거기 경비원들을 제거, 아니 제압해 달란 말이지?”
“어. 새벽 4시까지 그 별장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제압해서 따로 한곳에 모아 두라던데. 가능하지?”
“그 별장에 있는 사람의 수가 정보대로 5명에서 7명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세르게이가 의뢰 내용을 듣고 나서 얼굴에 서린 긴장감을 푸는 걸 보고, 운전 중인 철수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세르게이의 입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 나온 이상, 이번 의뢰도 성공한 거나 진배없었으니까.
“좀 자. 청평까지 가려면 여기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니까.”
새벽이라 길이 막히지 않아도 여기서 서울 외곽으로 가려면 시간은 걸렸다.
“아아아아함....그럴까?”
세르게이는 철수가 자란다고 진짜 옆에서 쿨쿨 잤다. 그 사이 열심히 운전한 철수. 그는 내비게이션에 찍힌 목적지에 다와가자 세르게이를 깨웠다.
“으아아함. 잘 잤다.”
“세르게이. 저 집인 거 같은데 어디다 차를 댈까?”
철수의 말에 세르게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휘이 살피더니 대답했다.
“라이터 끄고 천천히 저 집 가까이로 가.”
이미 시간은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상황. 거기다 저 안에 있는 사람들 다 제압해야 하는 새벽 4시까지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해선지 바로 그런 상황 파악을 끝낸 세르게이가 그렇게 지시를 내렸고, 철수는 그의 지시대로 헤드라이터를 끄고 천천히 차를 별장 대문 앞으로 몰아갔다.
그 사이 앞쪽 조수석에서 뒷좌석으로 넘어간 세르게이. 그가 자신의 챙겨 온 큰 가방 두 개에서 필요한 장비를 챙겼다. 신기하게도 차 밖만큼이나 차 안도 어두웠는데, 세르게이는 그 어둠 속에서도 그가 원하는 장비를 잘도 찾아내서 챙겼다.
* * *
나는 철수가 내 의뢰를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을 했다. 하긴 새벽 두 시에 전화해서 그 정도 미끼를 던지지 않고서, 그들을 움직이려는 게 도둑놈 심보지.
내가 생각 했던 것 보다 좀 더 높게 의뢰비와 수고비를 부르자 철수가, 바로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해서 그에게 서진그룹 김명진 회장의 청평 별장에 가서, 내가 거기 가기 전까지 거기 있는 사람들 좀 정리해 달라는 의뢰를 했다.
예전 같았으면 거기 있는 자들 다 처리하라고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미친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들도 사람인데 함부로 죽여서야 되겠나. 또 그들에게도 가족이나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들이 어느 날 실종 되어 버리면....
해서 나는 철수에게 그 청평 별장에 있는 사람들을 다 제압해서, 그 별장 밖에 안전한 곳에 모아두라고 했다.
원래라면 별장 안에 다들 잡아두면 되겠지만, 그 별장은 곧 활활 불타 사라질 예정이라서 말이다.
“이제 가야겠군.”
새벽 4시까지 김명진 회장 소유의 청평 별장으로 가기만 하면 됐다. 나는 조용히 혼자 거기로 갈 생각이라 먼저 문대식부터 퇴근 시켰다. 그리고 경호팀원들도 마찬가지.
지금 그들은 나를 지키는 가드들이 아니라 내 움직임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내 지시로 호텔 안에 내 경호팀원들을 전부 퇴근 시킨 나는, VVIP룸 한쪽 방에 잘 자고 있는 우희를 확인하고 조용히 그곳을 나왔다. 그리곤 만약을 위해서 남겨 두게 한 내가 탈 차를 몰고 청평으로 향했다.
“이러다 꼴딱 밤새우게 생겼네.”
하지만 서진그룹 김명진 회장과의 싸움을 초전부터 개 박살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잘하면 그 싸움을 끝내버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날려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운전 중 몰려오기 시작한 피로를, 「개불알」아이템을 사용해서 풀었다. 사실상 빠구리 할 때 말고 평소에 이렇게 「개불알」아이템을 쓰는 건 처음이었는데 효과는 확실했다.
밤길 운전하는 데 눈이 확 밝아진 달까? 체력적으로도 완충 된 느낌이 들었고. 해서 나는 청평까지 가는 동안 음악을 틀어 놓고 흥에 취해 운전을 했다. 그랬더니 시간도 금방가고 그 새 청평에도 다다랐다. 그때부터 내비게이션을 통해 정확한 주소지로 차를 몰아갔더니 김명진 회장의 청평 별장에 근처에 도착했다.
“저기로군.”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 5분 전이었다. 차에서 내린 다음 개 특성인 *냄새를 잘 맡습니다.*와 *소리가 잘 들립니다.*, *멀리 봅니다.*를 사용해서 주위를 쭉 살폈더니 인기척과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있다면 김명진 회장의 청평 별장 뒤쪽의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컨테이너. 그 안에 5명의 사람들이 갇혀 있는 게 감지되었을 뿐. 그들이 누군지가 뻔했다.
철수라는 처리자가 이번 일도 깔끔하게 해결한 것이다. 청평 별장 안에서 사람의 기운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해서 나는 한결 여유 있게 청평 별장으로 대문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