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493화 (49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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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신미나는 기함했다. 그럴 게 삼명그룹에서 삼명전자 주식은, 삼명가의 일원인 그녀라 할지라도,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는 자산이 아니었으니까.

삼명전자가 곧 삼명그룹이었다. 그런 삼명전자 주식을 1%나 달라니?

“아빠. 미쳤어요?”

예전에는 절대 할 수 없었던 험악한 말이, 그녀 입에서 바로 튀어 나왔다.

-나는 지극히 정상이다 만.

“정상인 사람이 삼명전자 주식을 원해요? 백 서방도 채 3%도 가지지 못한 그 주식을요?”

-그러니까 달라는 거지. 그 만큼 중요하니까. 왜? 백 서방 삼명그룹 회장 자리 앉히기 싫으냐?

“....”

신동우 부회장은 이번 일의 본질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일이 성사 될 확률을 반반으로 본다.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을 상대로. 물론 50% 확률이면 상당히 높은 편이지. 내부에서 획책하니 그 정도 높은 확률이 나오지 아니면 어림도 없지. 하지만 실패 했을 경우, 우리 살롯그룹이 입게 될 피해를 삼명전자 주식 1%에 비할까?

“....”

다 맞는 말이라 신미나로서는 딱히 뭐라 반박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삼명전자 주식에 대해서만큼은, 신미나도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건 다 그녀 뜻을 따르는 백준경이지만, 삼명전자 주식만큼은 그녀가 얘기 꺼내는 거 자체를 싫어했으니까.

그 얘기만 꺼내면 백준경은 사람이 싹 달라졌다. 의심마귀가 쓰인 달까?

그걸 알기에 신미나도 함부로 부친인 신동우 부회장에게 지금 당장 확답을 주지 못했다.

“백 서방에게 얘기해 보고 전화 드릴게요.”

이게 그녀가 내 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그러지. 대신 곤도는 네게 보내 주마.

선심 쓰듯 말하고 있지만 신 부회장이 곤도를 신미나에게 보내는 건, 다 그럴만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에는 그 적기가 있었다. 만약 지금이 그 일에 적기라면, 곤도를 신미나에게 보내는 걸로 진짜 덜컥 그 일이 성사라도 되어 버린다면....

신동우 부회장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대박 사건인 거고, 아니어도 그에게 아무 지장이 없었다. 단지 그의 곁에 있던 유능한 경호원 하나가 빠진 것일 뿐. 그 경호원 없어도 한국에서 신동우 부회장은 충분히 안전했다.

“고마워요.”

부친의 의도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의 호의를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신미나.

그녀나 신동우나 할 말 다 한 터라, 굳이 더 핸드폰을 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만 끊을게요.”

-그래라.

그렇게 부친인 신동우 부회장과 통화를 끝낸 신미나. 그녀가 앞쪽을 향해 무심히 말했다.

“가요.”

“네.”

신미나의 말에 조수석의 고바야시가 즉시 대답하고는 운전석에 눈치를 줬다. 그러자 좌측 깜빡이를 켜고 움직이기 시작한 신미나를 태운 차는, 곧바로 삼명물산 본사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 * *

삼명물산 대표실에 들어간 신미나. 그녀는 대표실의 수면실에서 태평하게 잘 자고 있는 자신의 남편이자, 삼명그룹 백승렬 회장의 장남인 백준경을 깨웠다.

“일어나 봐요.”

“으음....어?”

잠에서 깬 백준경. 그는 눈앞에 신미나를 보고, 손으로 자신의 눈 주위를 몇 차례 쓸었다.

꿈인지 생신지 확인하려는 듯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신미나가 계속 보이자, 지금 꿈속이 아님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당신이 여긴 어쩐 일이야?”

“지금 태평하게 잘 때에요?”

그런 그에게 신미나가 바로 가시 돋친 말을 내 뱉었다. 그 말에 백준경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바로 풀렸고 그걸 신미나는 당연히 보지 못했다. 그 정도로 세세히 백준경을 살필 만큼, 신미나가 백준경을 살뜰히 챙기진 않았다.

그건 백준경도 마찬가지고. 자기 아내가 눈앞에 있는데도, 그녀를 마치 자기 밑에 직원이나 사용인을 대하듯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백준경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뒤, 자신의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봤다.

“이런 점심시간 지났네. 밥 먹었어?”

백준경은 아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형식적으로 물었고, 신미나는 그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지 바로 대답했다.

“아뇨. 아직....”

“근처에 해장국 잘하는데 있는데, 같이....아니다. 넌 해장국 별로 안 좋아하지?”

그말을 하면서 수면실을 나가는 백준경. 그런 그를 따라 신미나도 수면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옷걸이에 걸어 둔 자신의 정장 상의를 챙겨 입는 백준경을, 팔짱을 낀 채 빤히 쳐다보자 백준경이 그녀에게 물었다.

“준호한테 연락을 했어?”

“네.”

아까 백준경에게 전화 받고 그녀는 바로 백준호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리고 고바야시를 시켜서 지금 백준경의 경호를 맡고 있는 일본인 경호원들을 백준호에게 보냈다.

“그게 언젠데?”

“한 시간 전 쯤?”

“근데 이 새끼는 왜 아무 연락이 없어. 잘 받았으면 받았다고 연락을 해줘야 할 거 아냐?”

백준경은 괜히 성질을 내면서 핸드폰을 꺼내서 백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걸 보고 신미나를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뭐 중요한가? 검은 개든 흰 개든 사냥만 잘하면 되지 말이다.

신미나는 장남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꼭 격식이나 예의를 따지는 백준경이 그렇게 보기 싫었다. 아니. 백준경이란 인간 자체가 꼴 보기 싫다는 게 진실이지만.

그걸 당사자 앞에서 티내거나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째든 자신은 그런 백준경의 아들을 둘씩이나 낳았다. 여기서 백준경을 부정하면 자신의 소중한 두 아들마저 부정 당하는 꼴이니, 그건 그녀도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이면에도 모성애는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 * *

백준호는 한 시간 안에 형이든, 형수든 그에게 무조건 전화가 걸려 올 거라고 봤다.

“왔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둘 중 한 사람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원래는 형인 백준경이 전화해야 맞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왠지 형수가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올 거 같았는데 역시 나였다.

“네. 형수님.”

-도련님. 형님께 재미있는 제안을 하셨다고요?

“글쎄요. 사람 죽이는 게 재미있는 제안은 아니지 않나?”

-....

“하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그래도 형 보다는 형수가 나하고 얘기가 더 잘 통하지 않습니까? 뭐 속정도 듬뿍 들었고.”

-그쪽이야 속정이 들었는지 몰라도 난 아닌데. 5분을 못 넘긴 섹스를 섹스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그건 그때 내가 오줌이 마려워서....”

구차한 백준호의 변명. 그도 뱉고 나서 바로 후회를 했다. 백준호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형수와 총 다섯 번의 섹스를 했다. 한데 그 중에 형수 말대로 5분을 넘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형수와 하는 터부시 되는 짓이 그를 극도로 흥분 시켰고, 그로인해 제대로 된 섹스가 이뤄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걸 만회하려고 모든 준비를 다 갖췄을 때, 정작 형수인 신미나가 그를 거부했다.

-다 옛일이에요. 저는 이미 다 잊었는데? 도련님은 아닌가요?

어떻게 잊겠나? 그 날의 그 화끈하고 끈적끈적했던 추억들을 말이다. 하지만 신미나가 다 잊었다는데 여기서 더 구질구질하게 굴 수 없었던 백준경. 그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요.”

-그럼 이제 진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군요.

신미나의 그 말에 백준호의 얼굴도 싹 돌변했다. 백씨 집안 피가 어디 가겠나? 냉철한 사업가로 돌변한 백준호가 말했다.

“그러시죠.”

-제 경호원들이 필요하시다고요?

신미나는 백준경의 일본 경호원들을 자신의 경호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백준경의 경호원들을 신미나가 직접 통제하고 있단 소리였다.

“그들이 그렇게 사람을 잘 잡는다고, 아니 유능하다면서요?”

-저의 외조부가 전직 야쿠자 보스였거든요. 그 분이 야쿠자들 중에서 특별히 골라 뽑아서 경호원으로 키워낸 자들이라 피를 두려워하지 않고 겁도 없죠.

“잘 됐네요. 항상 경호원들에게 둘러 싸여 다니는, 겁쟁이 녀석 처리하기에 딱 이겠어요.”

-준열 도련님 말이로군요.

“왜요? 녀석에게 무슨 미련이라도....”

-그렇게 하세요.

“....”

-칼이 아무리 잘 벼려있고 날카로워도, 그것 쓰는 사람이 서투르면 피만 튀어 주위만 엉망으로 만들 뿐이죠.

그러니까 자신이 보내 주는 일본 경호원들을 잘 써서 백준열을 잘 죽이라는 얘기였다. 자신이 무능하다 비하는 거 같아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백준호는 딱히 뭐라 불만을 신미나에게 토로하지는 않았다.

그런 말로 서로 감정 상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백준호가 하려는 걸 반드시 성사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백준호는 신미나와 몇 마디 더 주고받은 뒤 조용히 통화를 끝냈다.

* * *

삼명그룹의 최전성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그곳 최고 리더 백승렬 회장.

“으음....”

그는 올해 자신의 뒤를 이어 삼명그룹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후계자를 정하는데 집중했다.

그의 몸 상태로 봐서 앞으로 3-4년은 더 회장 자리를 유지해 나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그의 몸에 이상이 생겨서 급작스럽게 회장자리를 내려오게 된다면....삼명그룹이 얼마나 혼란에 빠질지 그의 눈에 선했다. 그걸 알면서 그런 사태가 벌어지게 둘 수는 없는 노릇.

백승렬 회장은 지금이라도 후계자를 내세우고, 그 후계자로 하여금 삼명그룹을 이끌어 나가게 하면서, 자신은 뒤에서 그 후계자를 서포터 해 주고, 그룹 승계 작업을 착착 진행 시켜 나갈 생각이었다. 한데....

“준경이 그놈....그 동안 제 아내 치마폭에서 놀아나고 있었단 말이지?”

사돈인 살롯그룹 신경호 회장이 지병과 함께 제대로 그룹 경영을 해 나가지 못하면서, 은퇴 수속을 밟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짠한 마음과 함께 신 회장의 손녀이자, 자신의 큰 며느리인, 신미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백승렬.

자신에게 손자 두 명을 안겨 준 신미나에게, 이미 백화점 주식과 계열사 주식 일부를 양도해 놓았지만, 그걸로 부족하다 싶어서 남편이 대표로 있는 삼명물산 주식을 그녀에게 전부 넘길 생각이었던 백승렬.

그 주식을 넘기기 전 미래전략실을 통해서 간단하게 신미나 주위를 살피게 했다. 그랬더니 올라온 정보의 신미나가, 정말 그가 아는 큰 며느리 신미나가 맞나 싶었다.

“뭐 이런....”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큰 며느리가, 성적性的으로 개방적인 건 백승렬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두 아들은 확실하게 백씨의 핏줄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바로 친자확인 과정을 거쳤으니까.

그러니 그 뒤로 그녀가 몸을 어떻게 굴리고 다니던 그게 문제만 안 되면 상관없었다.

문제가 되도 삼명그룹에서 알아서 다 틀어막았겠지만.

어차피 그 아들 녀석도 문란한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주식을 양도하기 전에 대충 알아 본 건 만으로도, 그 동안 그녀와 관계를 가진 남자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마 더 파면 더 많이 나오겠지.

근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 동안 백준경이 해 온 주요 사업들 중에서 몇 가지 빛나는 성과들이, 다 신미나의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이란 거다. 그리고 백준경이 결정하지 못한 사안들을 요즘도 여전히 신미나가 대신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백준경이 신미나의 꼭두각시였던 것. 당연히 그런 결정 장애가 있는 백준경에게 삼명그룹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준경이까지 이러면....”

차남인 백준호에 대해서는 이미 관심을 끊은 백승렬 회장. 그런 그에게 남은 아들은 이제 백준열 뿐이었고, 안 그래도 백준열을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백승렬 회장이었다.

“준열에게 그룹을 넘겨야겠군.”

막내아들인 백준열을 삼명그룹 후계자로 최종 낙점 했고, 백준열의 승계 작업을 위해서 재야, 즉 계열사에 짱 박혀 있던 이동훈을 불러내서, 그에게 비서실장 자리와 함께 백준열을 보필하게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막내아들인 백준열에게 무사히 승계 작업을 마치는 것. 지금 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봤을 때,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짧으면 1년, 길어도 3년 안에 자신의 모든 주식을 백준열에게 양도하고, 백 회장은 모든 걸 훌훌 털고 한국을 떠날 생각이었다.

“여생을 전 세계를 돌며, 보고 싶은 거 보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즐기다 가는 거지.”

백승렬 회장에게 있어서 이제 남은 딱 하나의 염원. 그는 그 염원만큼은 꼭 이루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당장 다른 두 아들 녀석들 처리부터 난항이 예고 된 가운데, 백 회장은 오늘 있을 예정인 삼명 바이오로직스 제 3공장의 기공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울산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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