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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네. 회장님. 네. 네...”
처음 김훈은 백 회장의 말을 쭉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백 회장이 본론으로 넘어가, 자신의 막내아들인 백준열을 잘 지켜 달라고 했을 때, 사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그럴게 백준열은 이미 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니까. 백 회장이 부탁하지 않아도 김훈은 백준열 만큼은 확실히 지켜야 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의 처지도 자칫 역전 될지 몰랐으니까.
당장 백준열이 틀어막고 있는 신비 에이전시의 3장로만 해도 그렇다. 백준열이 죽고 나면 다 죽어 가던 그들이 다시 기사회생할게 뻔했다. 그리곤 자신들을 해치려 한 김훈의 처리자 에이전시를 정조준해서, 원래 그들이 가진 힘으로 압박해 올 거고, 그러면 잡아먹으려던 신비 에이전시에, 오히려 자신의 처리자 에이전시가 잡아먹힐지도 몰랐다.
‘그럴 수는 없지.’
김훈이 남 좋은 일 시키려고 무리해서 인수합병을 추진 중인 건 아니니까. 따라서 지금 김훈에게는 자기 안위만큼이나 백준열의 목숨도 중요했다.
“지금 즉시 예비로 남겨 둔 처리자들을, 정부 백준열 대표 쪽으로 보내.”
그리고 자신도 백 대표에게 가려고 준비를 할 때였다. 그가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던 금명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됐어?”
-설득에 진통이 좀 있었지만 잘 됐습니다. 대표를 비롯한 7명의 지도부 중 3명이 해외로 나가길 원했고, 나머지 4명은 저희 쪽으로 넘어오기로 했습니다.
“휴우. 잘 됐다.”
이럴 때 신비 에이전시 쪽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면, 김훈의 머리가 많이 아팠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대로 일이 잘 풀려서 정말 다행이었다.
“수고했어. 본부로 돌아와. 와서....그 일을 네가 맡아서 처리해.”
-제가요?
원래는 대표인 김훈이 직접 해야 할 중요한 뒤처리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지금 막 생겼거든. 해서 금 부장이 먼저 그 일을 진행 해. 급한 불부터 끄고 나서, 나머지는 내가 가서 보고 처리할 테니까.”
금명훈도 이제 어엿한 김훈 에이전시의 지도부에 속한 간부였다. 따라서 그가 신비 에이전시의 대표와 지도부 인사들을 챙기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물론 대표인 김훈의 허락이 있었다는 전제 하에서.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금명훈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도 흔쾌히 김훈의 지시를 수용했다.
“그래. 다시 말하지만....수고 많았어. 그 보답은 성과급으로 증명토록 하지.”
-고맙습니다.
성과급이란 말에 금명훈의 목소리가 확실히 밝아졌다. 김훈은 금명훈과 통화 후, 한결 편안 마음으로 마저 준비를 갖췄고, 그가 현재 있는 에이전시 아지트를 떠나기 전에, 백준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쩐 일로 바쁘신 분이 전화를 다 주시고?
다행히 백준열이 그의 전화를 받았다.
“어딥니까?”
-지금 열심히 종로에 있는 정부청사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이 지금 위험한 건 알고 계시죠?”
김훈은 대 놓고 백준열에게 물었다. 그가 아는 백준열이라면 자신이 처한 위험 정도는 이미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랬더니....
-잘 알죠. 누구 짓인지도 알겠고. 근데 그걸 증명할 길이 없네요.
“해서 위험한 줄 알면서도, 원래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지금 자신을 미끼로, 그 배후를 잡아내겠다 이겁니까?”
-역시 김 대표네요. 맞아요.
“하지만 그쪽에 자칫 미끼와 같이 잡아 먹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내 운이 그것 밖에 안 되는 걸.
“허어....대표님은 진짜....”
김훈은 차마 ‘골 때리는 놈’이란 말을 백준열에게 내 뱉을 수 없었다.
-근데 왜 전화했어요?
“지금 대표님께 간다고요. 10분 전에 저희 쪽 처리자들 먼저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이 경찰보다 빨리 올까요?
“그야 모르죠. 하지만 경찰은 몇 단계 거쳐야 움직이는 정부 조직 아닙니까? 우리는 다이렉트로 지금 가고 있고요.”
돌려 말하고 있지만, 김훈의 에이전시 처리자들이 경찰보다 빨리 백준열이 있는 곳에 먼저 닿는다는 말이었다.
-다행이네요. 서울 복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까 싶기는 한데....
그때였다. 쿵 소리가 연이어 일었다. 그 소리가 김훈이 들고 있는 핸드폰에서 난 소리가 김훈이 기겁하며 외쳤다.
“무슨 일입니까?”
-이 미친 새끼들이 진짜 서울 한복판에서 습격을 가해 오네요. 그럼 난 바로 경찰에 전화해야 해서 이만....
뚜뚜뚜뚜뚜뚜....
백준열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젠장....빨리 출발 해.”
김훈도 덩달아 급해졌다. 김훈을 태운 차가 현재 백준열이 이동 중에 있는 곳으로 빠르게 질주를 했다. 신호와 제한 속도를 무시한 채....
* * *
나는 이제 나를 전담하는 처리자 철수와 5여 분간 통화를 했다. 그가 뭘 해줘야 할지 명확하게 지시를 내렸고, 명철한 철수는 한 번 한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기에, 나는 더 긴말 없이 그와 통화를 끝낼 수 있었다.
“자아. 이걸로 김명진 회장 쪽 문제는 해결 됐고....”
남은 건 3시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나러 정부청사로 갈 때 있을 예정인, 습격, 아니 테러에 대한 대응책을 세워야 했다.
물론 앞서 문대식에게 경호 인력을 두 배로 늘리라고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왜냐하면....
“내 목숨이 2개는 아니니까.”
만약의 사태에도 충분히 대비를 해야 했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그때 인터폰이 울리며 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
-대표님. XX영화관에서 대표님께서 살리신 분 말인데요.
“내가 말했을 텐데. 그쪽 연락은 받지 않겠다고?”
-그런데 그게....대표님께서 살리신 그분께서, 직접 전화가 오셔서 감사의 인사라도 전했으면 하신다고....
“하아....”
내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러니까 견신이 애견 칠복이의 아빠를 구하면 개지수를 준다고 해서 구한 사람이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과연 그 응급 상황에서 그 사람을 구했을까? 나는 XX영화관에서 연락이 왔다는 보고를, 김 비서에게 들을 때 마다 그 생각을 했고 대답은 같았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을 구한데 대한 공치사는 일절 받지 않는 게 맞았다. 한데 그 심장마비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사람이, 직접 나에게 감사의 말만 전하겠다는데 그것까지 받지 않는다는 건 또 예의가 아닌 거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그 영화관 직원에게 명함을 주는 게 아니었어.’
나는 당시 나와 우희를 붙잡고 늘어지는 영화관 직원이 귀찮아서, 그를 떼어 놓으려고 건넨 내 명함이 이런 귀찮은 일을 만들 줄 몰랐다.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전화 바꿔.”
-네.
나는 결국 애견 칠복이의 아빠인 도종국씨와 통화를 해야만 했다.
-....데 살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요. 영화관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백준열 대표님께서만 하셨고, 그 덕분에 제가 살았습니다.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도종국씨가 말뿐인 생색만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반인인 그가 나를 도울 일이 과연 뭐가 있겠나? 근데 아니었다.
-제가 알아보니 저희 방송국 이번 주말 드라마에, 백 대표님 배우들이 많이 지원했더군요.
“네?”
-이런 말 드리기 부끄럽지만, 제가 이번에 KVS방송국 드라마 국장을 맡게 됐습니다.
“....”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번에 새로 발령 난, KVS방송국 드라마 국장의 목숨을 구한 거란 말인가?
‘우씨....완전 대박!’
이럼 얘기가 달라지지. 나는 도종국 KVS방송국 드라마 국장과 이번에 들어가게 될 예정인 KVS 주말 드라마에 대해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네. 네....하하하하. 고맙습니다. 국장님께서 그렇게 신경 써 주신다니....”
도종국과 주말 드라마 캐스팅에 대해 끝에 가서 얘기했고, JYB엔터 배우들 중 두 명의 주연 자리와 10명 정도 안팎으로, 조연 배우들 섭외를 사실상 확답 받아냈다.
“휴우....좋았어.”
이렇게 대표로서 내 회사 배우들의 배역을 직접 따 내니, 뭐라 표현 할 길 없는 묘한 희열감이 들었다. 그때 인터폰이 울리고 김 비서의 말이, 나의 그런 희열감에 산통을 다 깼다.
-대표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 만나러 정부청사 가실 시간입니다.
“벌써?”
놀라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2시였다. 정부청사까지 그리 먼 길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준비해서 움직였을 때, 거기까지 가는 데 족히 40-50분의 시간은 걸렸다.
당연히 높으신 장관님 만나는데 10분 정도는 먼저 가서 그분을 기다려 줘야 하고. 그러니 김 비서 말대로 지금 챙겨서 나가야 했다.
“쳇....”
근데 전화 받느라 내 안전에 대한 대비를 더 챙기지 못했다. 나는 일단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움직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 * *
문대식은 투덜거렸지만 내가 시킨 대로 경호 인력을 평소보다 2배 넘게 늘렸다. 그리고 방검복을 그 경호팀원들에게 전부 착용시켰고, 3단봉과 테이저건도 다 갖추게 해 놓고 있었다.
마치 그걸 내게 보여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문대식은 정장 재킷의 단추를 전부 열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는 3단봉과 테이저건을, 나 보란 듯 좌우로 몸을 틀어가며 보여주었다.
“잘했어.”
“....”
그래서 나는 문대식을 칭찬해줬다. 그랬더니 문대식이 어처구니 없어하며 날 빤히 쳐다봤다. 마치 아니 그게 다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여전히 내가 자신과 경호팀원들에게 꼬장부리고 있는 줄 아는 듯 했다.
나는 앞으로 30분 쯤 뒤, 문대식을 비롯해서 경호팀원들 모두, 나를 고마워 할 거란 데 내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을 해 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이 날 미친 놈 쳐다 보듯 할 테니 말이다.
“느낌이 안 좋아. 다들 긴장하라고 해.”
대신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전에 문대식에게 경고를 했다. 확실히 평소 내가 하지 않은 짓을 하자, 문대식도 살짝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내가 가는 곳이 종로구에 있는 정부청사였다.
서울 한 복판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데, 안 좋은 일이 있어봐야 고작 접촉 사고 정도?
그 때문에 경호팀원들보고 긴장하라고 하기는, 팀장으로서 좀 그랬던 것 같았다. 해서 문대식은 대신 무전으로 전방 뿐 아니라 후방도 잘 살피라는 말을 했고, 나는 그걸 들으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기껏 알려줘도....’
뭐 어째든 평소 2배에 달하는 경호 인력들이 동원 된 상태에서, 나를 태운 차량과 경호 차량들이 줄줄이 JYB엔터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와서, 정부청사가 있는 종로구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나 때문에 기분 나빴던지, 문대식은 내 차가 아닌 내 바로 앞 경호 차량에 탑승해서, 내가 탄 차량을 에스코트 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나와서 20여분 쯤 차로 이동했을까? 내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김훈 대표였다.
“어? 이 양반이 무슨 일로....”
요즘 철수라는 내 전담 처리자가 생긴 뒤, 김훈 대표와 연락의 뜸해진 상황. 나는 반가워하며 그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김훈 대표가 내가 지금 처한 위험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백승렬 회장님께서 어지간히도 내가 걱정이 되신 모양이었다.
김훈 대표에게 직접 연락해서 나를 다 부탁하고 말이다. 어째든 김훈 대표 밑에 처리자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크게 안심이 됐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즉시 경찰에 연락할 생각이었는데, 김훈 대표의 말에 따르면 그가 보낸 처리자들이 경찰보다 더 빨리 내게 달려 올 거란다. 그들이 합류하면 상황은 단숨에 역전이 될 수 있었다.
그때였다. 김훈 대표와 통화 중인 내 눈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탄 차량 앞 차. 즉 문대식이 탄 에스코트 경호 차량을, 맞은편 반대 차선에서 넘어 온 검은 승합차가 들이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승합차 뒤로 다른 승합차에서, 반은 왜도를 챙겨 든 검은 정장남들이 우르르 내리는 게 내 눈에 보였다.
이어 문대식이 탄 에스코트 경호 차량을 들이 받은 검은 승합차에서도 마찬가지로, 절반은 왜도를 든 검은 정장남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고. 그 쪽수만 해도 벌써 15명이나 됐다.
나는 김훈 대표와 통화를 끊고 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경찰에 전화하는 것과 내가 전화하는 건 차원이 다르니까.
왜냐하면 나는 지금 경찰청장에게 다이렉트로 전화 걸고 있거든.
“C발....무시무시하네.”
벌써 놈들 중 왜도를 든 자들은 그 칼을 빼들고 있었다. 근데 칼이 완전 잘 벼려져 있었다. 당연히 그 모습이 내 눈에 흉흉해 보일 수밖에 없었고.
-어. 백 대표.
다행인지 몰라도 박대순 경찰청장이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내 전화를 바로 받았다.
“청장님.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서 테러라니요.”
-테러? 그게 무슨 소린가?
“여기는....”
나는 박대순 경찰청장에게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재빨리 얘기했다. 그 사이 밖에서는 문대식과 그의 경호팀원들과 왜도 든 검은 정장 남들끼리 충돌이 벌어졌다.
다행스러운 점은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이 꺼내든 3단봉에 이어서, 테이저 건까지 꺼내는 걸 보고 왜도 든 검은 정장남들이, 바로 그 칼을 휘두르며 유혈 사태를 일으키진 못하고 있단 점이었다. 하지만....
“칙쇼! 미인나고르시데(みんな殺して, 다 죽여)!
검은 정장남들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상 더럽게 생긴 작자가 소리치면서, 이내 여기는 전쟁터를 방불 하는 격전장으로 삽시간에 돌변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