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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해서 그녀는 큰소리로 백준열을 불렀다. 백준열 이름 석 자가 아닌 백 대표님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백준열과 그 여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더니, 아직 건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서 있던 백준열과 여시가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때 건물 안에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단 걸 뒤늦게 깨달은 민혜주.
‘뭐, 뭐야?’
그녀도 그제야 자신이 너무 크게 소리친 탓에,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 되어 있음을 알고는, 이대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게 거북스러워졌다.
“쳇....”
그랬다간 그녀가 소리친 사람이 건물 밖에 백준열 임을 밝히는 거고, 그 이유가 백준열과 다른 여자가 같이 있는 걸, 민혜주가 보고 화가 나서 그런 줄 주변 사람들도 다 알수 있게 될 터였다.
‘그러면....’
백준열 뿐 아니라 민혜주 자신 역시 얼굴에 똥칠하는 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남자를 놓고 추잡스럽게 싸우는 두 여자 중 한 여자. 누가 그런 그녀를 좋게 보겠나?
그래서 민혜주는 건물 입구 쪽으로 가는 걸음을 살짝 옆으로 틀었다.
그리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쪼르르 걸어가서, 그대로 지하에 있는 식당 쪽으로 내려가 버렸다. 마치 그녀가 소리 친 사람이 지하로 내려 간 거처럼 말이다.
“아니. 골프 치러 오랬지 누가 연애하러 오랬나?‘
그렇게 골프장 건물 지하로 내려간 민혜주가 벌컥 화를 내며,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으로 백준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백준열은 뻔뻔한 건지 민혜주의 전화를 바로 받았다.
“백 대표님. 지금 뭐하자는 거죠?”
단단히 화가 난 민혜주가 버럭 따지듯 말했고, 그 말에 백준열이 무덤덤하니 대꾸했다.
-뭐하긴. 그쪽이 여기 오래서 왔지.
“아니. 난 골프 치러 오랬지. 누가 여자 데리고....하아. 그 여자 누구에요?”
-나나미? 일본 여배운데. 골프 치고 싶다네.
자기가 데려와 놓고 마치 남 얘기하듯 하는 백준열. 그런 백준열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민혜주가 바로 말했다.
“백 대표님이 데려 온 여자 아니에요?”
그러며 민혜주는 속으로 백준열이 이렇게나 책임감 없는 저열한 인간이었나 싶었다.
-어. 자기가 따라왔어.
“네에?”
백준열의 너무나도 무성의하다시피 한 그 대답에, 민혜주가 완전 벙쪄서 통화 중 잠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하필 나나미와 있을 때 민혜주가 나타날 건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민혜주가 재치 있게 내가 있는 곳이 아닌 옆으로 가버리면서, 다행히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일단 나나미를 데리고 피닉스 골프장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나미. 저기 골프 용품점에 먼저 가 있어.”
“네.”
보아하니 나나미는 골프복만 착용하고 달랑 여기 온 모양이었다. 골프채야 골프장에서 대여해서 쓸 요량으로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골프채를 구해 주기 위해서, 나는 골프장 건물 안의 골프 용품점이 보이기에 먼저 그녀를 거기로 보냈다.
그러면서 나는 민혜주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그랬더니 민혜주가 대뜸 내게 따지고 들었다.
‘뭐야?’
민혜주가 내게 왜 이러나 싶다가, 그녀가 내 여자란 사실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나미에 대해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그랬더니 어처구니 없어하며 민혜주가 말했다.
-지금 어딘데요?
“1층 골프 용품점으로 가고 있어. 나나미 골프채가 필요해 보여서.”
-그리로 바로 갈게요.
“어.”
나는 민혜주와 그렇게 통화 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나나미가 있는 골프용품점으로 똑바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나미는 단연 돋보였다.
용품점 매장 남자 직원들이 다 나와서, 그녀를 에워싸고는 아주 친절하게 그녀를 상대해 주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나나미가 적절하게 미소를 지어주며, 우월한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어떤 여자인지 보라며 나를 향해 무언의 시위를 하듯 말이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나나미는 김 비서의 미모에 비해 한 단계 아래였다.
물론 여자마다 그 매력이 다른 법이니, 누구는 김 비서보다 나나미가 더 예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김 비서가 더 나았다. 그러니 나나미의 저런 모습을 보고도 내 가슴은 전혀 쿵쾅거리지 않았고, 내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다른 남자들과 확연히 다른 걸 눈치 차린 나나미의 얼굴이 갑자기 차갑게 식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준열상. 여기에요.”
내가 골프용품점에 들어오는 걸 이미 봤으면서, 이제 본 것처럼 연기하는 나나미. 그런 그녀의 가식적인 눈길과 손짓에, 그녀 주위에 모여 있던 수컷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고, 다들 부러운 눈빛과 질투 섞인 눈빛을 띠어보였다.
그런 부담스런 주위 눈길을 나는 철저히 무시하고, 가볍게 웃으며 나나미를 향해 한 손을 들여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대표님!”
내 뒤에서 민혜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뒤를 돌자 과연 민혜주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민혜주는 현역 프로골프선수 답게 멋진 옷맵시를 자랑했다.
짧은 치마 밑으로 기다란 두 다리가 단연코 시선을 끌었다. 그렇게 딱 봐도 필드에 나갈 준비를 다 갖춘 그녀가 내게 와서 대뜸 말했다.
“여자 채에 대해 잘 모르시잖아요? 내가 봐 줄게요.”
그 말 후 내 옆을 스쳐 지나간 민혜주가 곧바로 골프 용품점 안쪽으로 쭉 들어갔고, 그때 골프 용품점 안에 남자들이 이번에는 나나미 때와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너 따위가 어떻게 골프 여신 민혜주를 아냐는 뭐 그런 눈빛을 띠며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질적인 눈길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질투에 활활 불타는 나나미의 눈총이었다.
그녀는 내가 민혜주와 아는 척을 하자, 그때부터 사랑스럽게 나를 보는 눈빛이 싹 돌변했다.
‘에휴....’
민혜주도 그렇고 나나미도 성격이 보통 아닌 거 같아서, 나는 속으로 오늘 하루 피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숨을 나오고 있었다.
* * *
어릴 때 외교관인 아버지 따라서 일본에서 3년 넘게 살았었다는 민혜주.
그녀는 나나미와 일본말로 거침없이 대화를 나눴다.
“나나미에게는 이 골프채가 어울려요.”
“하지만 이 채는 너무 무거운데요?”
“무거워야 비거리도 늘어나죠.”
“그렇기는 한데 자칫 그 무게감을 못이겨서 어깨 빠지거나, 갈비뼈 나가는 불상사가 생길 확률이 높죠.”
“에이. 설마 내가 나나미 다치게 만들려고 이럴까요?”
“그건 아니겠죠. 근데 다치고 나서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어요? 안 그래요? 미녀 골프 언니?”
“아이 참. 그 미녀란 말 좀 쓰지 말라니까. 예쁜 걸로 치자면 나나미가 나보다 10배는 더 예뻐요.”
“아니에요. 언니도 예뻐요.”
“그런가? 호호호호.”
“그래요. 호호호호.”
두 여자는 다들 웃고 있었지만 그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는 걸, 나는 견신시스템의 개 특성을 통해 다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를 두고 지금 저 두 여자들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 잠깐 화장실 좀....”
이럴 때 여기 있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두 여자 사이에 끼어서 무슨 봉변당할 줄 알고.
해서 나는 화장실을 핑계로 슬그머니 골프 용품점을 나왔다. 그리곤 건물 1층의 한쪽 끝에 위치해 있는 화장실로 실제로 걸어갔다. 화장실 간다고 했으니 가긴 해야 할 거 같아서 말이다.
“백준열!”
그때 누가 나를 불렀다. 백 대표님이나 백준열 대표님이 아닌 내 이름을 이렇게 대 놓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오른쪽을 돌아봤다. 그랬더니....
“이게 얼마만이야? 진짜 반갑다.”
예쁜 얼굴에다가 육감적인 몸매의 젊은 여자가 내게 다가와서 대뜸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녀는 내 잡은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그런 그녀를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어라? 너 설마 나 몰라?”
“누구신지?”
일단 내게 반말을 하기에 나는 그녀가 혹시나 나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금의 대화에 존대를 유지했다.
“나 혜원이. 기억 안 나? 우리 배원중학교 동창이잖아?”
중학교 동창? 아니. 내가 백준열의 중학교 동창을 어떻게 아냐고. 그때였다.
백준열이 꽁꽁 숨기고 있는 기억의 장막 너머에서 장혜원에 대한 정보가 생각났다.
“....고 너는 특목고에 가면서 헤어졌지만....”
“댄스 동아리?”
“어. 맞아. 우리 같은 댄스 동아리에 들었었어. 뭐 넌 춤 못 춘다고 두 번인가 나오고 안 나왔지만....”
내 중학교 동창 장혜원은 딱 봐도 투머치 토커였다. 내가 한 마디 하면 혼자서 열 마디는 떠들었다. 다행인 건....
“혜원아!”
그녀에게도 다른 일행이 있다는 거였다.
“어어. 알았어. 너 골프 치러 온 거지?”
“그래. 뭐....”
“그럼 필드에서 보자. 나 지금 나가 봐야 해서.”
그녀는 내게 또 보자며 손을 들어 보이고는, 곧장 그녀를 부른 일행 쪽으로 뛰어갔다. 그때 비율 좋은 그녀 몸매가 내 시선을 끌었다.
“백준열이 중학교 다닐 때 좋아했던 여자라....”
대개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추억 역시 훗날 산산이 박살나 버리고. 그런데 백준열이 중학교 때 좋아했던 저 장혜원이라는 여자는, 여전히 예뻤다. 그리고 시원시원한 큰 키에 가슴 볼륨도 상당했고, 특히 양 갈래로 땋은 머리에 나는 묘한 성적 매력을 느꼈다.
백준열의 기억에 따르면 중학교 다닐 때 장혜원은 그에게 있어서 여신이었다.
그래서 감히 말도 걸기 어려웠다. 그러니 그녀에게 무슨 고백 같은 걸 해 봤을 리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장혜원이 백준열을 여태 기억하고 있단 거였다.
그때 잘나갔던 장혜원이 평범했던 백준열을, 어떻게 지금까지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글쎄....”
내 상식선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가 당시 백준열을 좋아했었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백준열의 기억 속에 장혜원이 그를 좋아할 이유나 근거는 1도 없었다.
그 말은....
“이거 뭐가 있는 거 같은데?”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만남? 그건 그냥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를 게 없었다.
만약 장혜원이 나를 노리고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면....
“....재미있겠어.”
나는 기꺼이 그녀가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해 줄 용의가 있었다.
물론 그 결과가 해피엔딩이 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 * *
화장실에 느긋하니 다녀오자, 골프용품점 앞에서 두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째든 둘이 잘 얘기를 해서 나나미가 자기가 쓸 골프채를 구입한 모양이었다.
자기 앞에 떡하니 새로 구입한 골프채와 골프 가방을 세워 두고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걸 보고 내가 나나미에게 말했다.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괜찮아요. 나나미도 돈 많아요.”
“흥. 둘 다 돈 많아서 좋겠네.”
나와 나나미 사이의 대화에 민혜주가 끼며 툴툴거렸다. 그러더니 턱짓으로 건물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라운딩 잡혀 있으니까 지금 나가요.”
내가 쓸 골프 장비 일체는 이미 민혜주가 준비해 뒀다. 그래서 나와 민혜주는 그냥 맨 몸으로 건물 밖으로 나가면 됐다. 하지만 나나미의 골프채 가방은 남자인 내가 들어 줘야만 했다.
“줘 봐.”
“헤에. 고마워요.”
나나미가 그런 나를 보고 생글거리며 말했고, 반대로 민혜주는 그런 나를 보고 자꾸만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나가자 카트 두 대가 대기 중이었다. 캐디도 1인 1캐디로 3명의 캐디들이 대기 중이었고.
내가 골프채 가방을 든 걸 보고, 그 중 한 캐디가 뛰어와서 말했다.
“이리 주세요.”
“네.”
나는 나나미의 골프채 가방을 그 캐디에게 넘겼다. 그때 또 두 여자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누가 나와 같은 카트를 탈지를 두고 말이다. 해서 내가 바로 중재에 나섰다.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의 카트에 먼저 타지. 대신 9홀까지만 이긴 사람과 같이 타고, 10홀부터는 진사람 카트에 타도록 할 게.”
일본어로 말하는 내 그 말을 두 여자가 알아듣고 바로 가위 바위 보를 했다. 그 결과 나나미가 이겼다.
“야호! 이겼다!”
좋다고 방방 뛰는 나나미를 보고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 민혜주가 콧방귀를 날리며, 휑하니 두 대의 카트 중 뒤쪽 카트로 가서 혼자 팔짱을 낀 체 앉았다.
그 사이 앞쪽 카트에 나나미 골프채를 실은 캐디가 운전석에 탔고, 나를 맡은 캐디가 그 운전석 옆 조수석에 타면서 나와 나나미에게 말했다.
“두 분 어서 타세요.”
나는 나나미와 나란히 앞쪽 카트에 탔고, 카트가 바로 출발하면서 앞장서서 나갔다.
그런 우리 뒤로 민혜주를 태운 카트가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