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57화 (553/921)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원래 9시 30분에 서지연을 이곳 삼명호텔 라운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도련님!”

“어?”

삼명그룹 경호실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 경호원들도 어마하게 많이 데리고 말이다. 삼명그룹에 경호원들이 수백 명이나 된다고 하던데, 이렇게 대단위로 경호원들이 한 번에 움직이는 건 나로서도 처음 본다.

나는 경호실장과 경호원들이 왜 여기 나타났는지 바로 눈치 챘다.

“이 실장이 보냈어요?”

“네. 그 보다 여기 계시지마시고 딴 곳으로 옮기시죠.”

“네?”

그게 무슨 말이냐며 내가 경호실장을 쳐다보다 그가 말했다.

“이 실장이 여기 바로 아래층 디럭스 룸에 방을 잡아 놨답니다. 그 좌우 방도 경호원 이름으로 잡아 놨으니 조용 할 겁니다. 아아. 지금 거기로 바로 방을 옮기시면 됩니다.”

이동훈 실장이 그렇게 하라면 그러는 게 맞았다. 경호실장의 재촉하는 눈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경호실장이 데려 온 경호원들은 죄 내가 묵고 있는 로얄 스위트룸 앞 복도에 죽치고 있었다.

당연히 내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여야 할 경호원들이 말이다. 대신 경호실장의 지시를 받은 경호원 한 명이 경호원 무리에서 따로 떨어져 나와서, 나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디로릭! 철컥!

그 경호원이 방 카드로 문을 열어 주고, 내게 그 방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실장님께서 가급적 방 밖으로 나오지 말아 주십사,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 말 후 꾸벅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경호원. 나는 좀 어리둥절했지만 이런 조치를 취한 게 다름 아닌 이동훈 실장이었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가 이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바뀐 방 냉장고에서 캔 맥주 하나를 꺼내서 창가로 갔다. 한층 낮기는 했지만 여기 전망도 죽여줬다.

“어?”

그런데 그런 내 눈에 사이렌과 경광등을 사용해서, 안 그래도 막힌 호텔 앞 도로를 뚫고 이쪽으로 오고 있는 차량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차량은 경찰차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것들 뭐야?”

나는 그 말 후 줄곧 그 차량들을 주시했고, 그들이 삼명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려서, 호텔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까지 쭉 다 확인했다.

“청와대?”

나는 견신시스템의 개 특성 중 *멀리 봅니다.*를 사용해서 그 차량의 앞 유리에 떡하니 붙어 있는, 주차 마크에 청와대 그림을 보고서 검은 정장 차림 남자들의 정체를 대강 파악했다.

“대통령이 제대로 빡 터졌나 보네.”

딱 봐도 내가 내 보낸 뉴스를 보고 화난 대통령이, 자기 직속 청와대 경호원들을 여기로 보낸 모양이었다. 아마도 나를 잡아서 갈아 마셔 버리고 싶었겠지. 하지만 청와대 보다 먼저 움직인 자들이 있었다.

“호오?”

그들은 청와대와 달리 은밀하게 먼저 움직였고, 지금 위층에서 삼명그룹 경호원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소리를 내가 들었고, 좀 더 확실하게 그쪽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나는 「개 짖는 소리」 스킬을 삼명그룹 경호실장에게 사용했다.

그러자 위쪽에서 오고가는 대화 속에서, 나는 청와대보다 먼저 나를 잡으러 온 자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국정원 요원들이라....”

청와대에 이어서 국정원까지 나를 못 잡아서 난리가 난 거 같았다.

“허얼....”

그때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 검찰 차량들이 저 멀리 도로에서 보였다.

저들이 여기 도착하려면 적어도 20분은 걸릴 거 같았다. 그 생각과 동시에 나는 지금 시간을 확인했다.

“아아....”

그랬더니 서지연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서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핸드폰이 아닌 여기 방 전화로. 왜냐하면 내 전화는 도청이나 위치 추적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핸드폰은 이미 위층에서 삼명그룹 경호실장에게 건네주고 없었다. 대신 다른 폰을 하나 받았는데, 나는 그 핸드폰 보다 여기 호텔 방의 내선 전화를 사용했다.

-여보세요?

“나야.”

-어. 다와 가.

서지연이 운전 중 내 전화를 받은 거 같았다. 내 예상대로 삼명호텔 대표인 서지연은, 여기 호텔 방의 내선 번호를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 전화를 받은 거고.

“차 좀 막히지 않아?”

-어. 좀 막히긴 한데....약속 시간까지는 갈 수 있을 거야.

아직 시간이 20분 정도 남았으니, 서지연은 그 안에 여기 올 수 있을 거로 보는 듯 했다.

“아마 어려울 걸. 그리고 여기 지금 난리야.”

-뭐?

“대통령이 나 못 잡아서 난리다.”

-대통령? 그게 무슨....가, 가만....너 혹시....

“자세한 건 이따 만나서 얘기하고. 약속 시간을 한 시간만 늦추자.”

나는 9시 30분에 만나기로 한 서지연과의 만남을, 한 시간 미뤄 10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 사이 검경까지 와서, 청와대와 국정원 사이에 끼어들면 혼란이 가중 될 것이고, 그 사이 나는 라운지로 가서 서지연과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까.”

* * *

운전 중 백준열의 전화를 받은 서지연. 그녀는 백준열이 왜 약속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미뤘는지 곧 알 수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그로인해 도로의 차들이 그들에게 길을 내어주면서, 교통 혼잡이 더 가중 되었다. 그래서 10분이면 올 수 있는 삼명 호텔까지 30분이나 걸린 서지연.

그런데 호텔 입구 앞에 난리도 아니었다. 수십 대의 차들이 호텔 입구 앞에 늘어서 있었다. 그렇다보니 서지연은 그쪽으로 가지 못하고 돌아서 호텔 외곽에, 호텔 직원들만 아는 주차장에다가 차를 주차 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빙 둘러서 호텔 입구로 걸어갔더니....

“관계자 외 출입할 수 없습니다.”

중무장한 경찰특공대가 그녀 앞을 막아서며, 그딴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놨다.

“나 여기 대푠데....영장 보여줘요.”

“네?”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자기가 삼명호텔 대표라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자기 보고 영장을 내 놓으라니....경찰특공대원은 그냥 서지연의 말을 묵살했다. 하지만....

“대표님!”

호텔 측 관계자가 서지연을 알아봤고, 서지연이 정말 여기 삼명호텔 대표란 게 밝혀지면서, 호텔 입구를 막고 있던 경찰들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결국 현장 책임자라 볼 수 있는 경찰특공대장과 서울경찰청의 고위급 간부인 경무관이, 서지연에게 쩔쩔 매며 해명이랍시고 떠들었는데, 중요한 건 경찰이 삼명호텔 영업을 방해해도 될 어떤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영장도 없이, 우리 호텔 영업을 이런 식으로 방해하고 있단 거네요?”

“그, 그것이....”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청와대에서 지시가 떨어진 터라....”

“청와대요? 하아....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청와대면 단 줄 아나? 총지배인님. 당장 기자들 불러요.”

기자라는 말에 경찰특공대장과 서울경찰청 경무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삼명호텔 측에서 청와대도 무시하고 이렇게 기자 회견을 연다면, 안 그래도 추락한 대통령의 권위가 더 바닥을 길지 몰랐다.

그때였다. 경찰청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그 전화를 받은 경찰특공대장이 먼저 특공대를 철수 시켰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에서 나온 경무관은 경찰청장의 전화를 받고도 무엇 때문인지 계속 버텼다. 그러다가 결국 30분 뒤, 그는 경찰청장이 보낸 경찰청 감사관들에게, 현장에서 명령불복종으로 체포 되었고, 그를 대신해서 현장 관리를 맡은 경찰청 소속 경무관은, 그 즉시 호텔에 있던 모든 경찰을 철수 시켰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앞서서 검찰 쪽 사람들도 철수를 했다. 그쪽 역시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르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백준열이 있는 방에 먼저 가서 포진한 국정원과 청와대 쪽은 꿈쩍도 않고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그런 정황을 쭉 지켜보던 서지연은 약속 시간인 10시 30분이 다 되어가자, 부랴부랴 엘리베이터를 타고 라운지로 올라갔고 거기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여기....”

거기 커피숍에서 지금 삼명호텔에 묵고 있으며, 청와대와 국정원, 검경이 못 잡아서 안달이 나 있는 백준열이, 떡하니 그녀를 향해 너무도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앉아있었다.

“허어....”

그걸 보고 기가 차 하던 서지연은 일단 보는 눈도 있고 해서, 백준열이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 * *

삼명호텔에 와서 대통령의 비리를 뉴스에 터트린 배후가 백준열 임을 알게 된 서지연.

“완전 미친 새끼네.”

과연 자신이었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서지연은 그 생각과 동시에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감히 대한민국의 절대 권력자인 대통령에게 이를 드러내지 못했을 터였다. 이가 뭔가? 짖지도 못했겠지. 한데 백준열은 대통령을 물었다. 그것도 팔 다리 정도도 아니고, 덥석 대통령의 목을 말이다. 그리고 그런 백준열이 계속 대통령의 목을 물고 늘어질 수 있게, 외부로부터 삼명그룹이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

“끝났네.”

그걸 직간접적으로 확인한 서지연은 대통령이 얼마 못 버티고 청와대를 나올 걸 확신했다.

“삼명그룹....”

서지연은 삼명그룹이라는 이 거대 공룡 그룹의 힘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동시에 이제 자신이 거기 최고 경영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주 많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호텔 쪽이라면....”

대신 한국 호텔 계에서 만큼 그녀는 최고 경영자가 될 자신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삼명그룹의 지원이 필요했고, 특히 그곳 후계자가 확실해진 백준열의 마음을 반드시 얻어야 했다. 서지연도 알게 됐다. 백 회장이 백준열 위에 두 형제들에게서 후계자 자리를 박탈한 걸 말이다.

그래서 백준열의 마음을 얻기 위한 일환으로, 지금 그녀가 추진할 임페리얼 호텔의 인수합병은 꼭 성사 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자기 눈앞에 거만한 얼굴로 앉아 있는 저 젊은 남자를, 어떻게 잘 설득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 사이 백준열이 알아서 마실 것을 주문했고.

백준열은 주문한 망고 쥬스가 나오자 그걸 한 모금 빨아먹고 나서 서지연을 보고 말했다.

“하도 보자고 하니 자리를 마련하긴 했지만....그래서 할 말이 뭔데?”

그 말에 서지연이 바로 말했다. 하지만 그건 백준열이 한 질문에 대한 대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삼명호텔 말인데. 거기 내가 계속 일할 수 있게 해 주면 안 될까?”

“뭐?”

백준열이 서지연의 말을 듣고 정말 어처구니없어 할 때였다. 서지연은 자신이 준비 해 온 기획서를 꺼내서 백준열에게 건넸다. 백준열은 서지연이 주기에 일단 그 기획서를 받았고, 그녀의 설명이 시작 되자, 자기도 모르게 그 기획서를 살폈다. 누가 한 회사의 CEO아니랄까 말이다.

“으음....”

백준열도 전에 임페리얼 호텔을 삼명 호텔이 인수 합병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서지연의 기획서에 더 관심이 갔다. 하지만....

“서지연씨. 회장님 아시면 당장 미국으로 쫓겨날 겁니다.”

“그러니까 너한테 이렇게 부탁하는 거잖아. 나 진짜 열심히 할게.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 남아서 계속 삼명호텔 맡아 일할 수 있게 해줘.”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쭉 대화 중에 서지연에게 존대를 하던 백준열. 그가 갑자기 말을 놨다. 그러며 동시에 냉철한 얼굴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그, 그건....”

백지연으로 살 때 그녀는 단 한 번도 살갑게 백준열을 대한 적이 없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자기 아쉽다고, 백준열에게 치대는 건 정말 낯짝 두꺼운 짓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서지연은 한국에 남아, 삼명호텔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다. 당연히 CEO로 말이다.

* * *

나는 서지연은 뻔뻔함에 감탄했다.

“와아....”

하지만 서지연이 속빈 강정이었다면, 나는 그녀와 이렇게 마주보고 더 앉아 있지도 않았을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니 더 들을 것도 없이, 곧바로 이동훈 실장에게 얘기해서, 더 이상 그녀를 내 눈앞에 다시는 볼 일 없게 만들라고 했겠지. 그러나 서지연은 여자 CEO로서 성공할 재목이었다. 그런 성공의 냄새가 이렇게 내 앞에서 풀풀 풍기니, 차마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그녀가 내게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되었고, 나는 서지연에게 차갑게 말했다.

내가 왜 그녀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니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 그러니 제발....”

서지연은 정말 간절해 보였다. 하지만 나도 섣불리 그녀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없는 것이, 백승렬 회장이 과연 그녀를 한국에 계속 두는 걸, 두고 볼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 회장은 이혼하며 분명히 말했다. 전처와 서지연에게 미국에 가서 쥐죽은 듯 조용히 살라고 말이다.

그런 백 회장의 말을 어긴 서지연을, 내가 커버 쳐 계속 한국에서 살게 두면서 백 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호텔 쪽 CEO로 성공할 사람이 서지연 뿐인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음....”

얼마나 간절했던지 내 맞은편에 앉은 서지연이 애절한 얼굴과 함께, 내 쪽으로 상체를 옮겨오며 두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입고 있던 검은 셔츠 앞섶이 풀어지면서, 드러난 브래지어와 그 속을 꽉 채우고 살짝 밖으로 튀어나오기까지 한 젖무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훅 하니 풍겨 오는 비누인지, 아니면 바디 워시의 향인지 모를 향긋한 냄새에, 그만 내 말자지가 꿈틀거리며 그 머리를 치켜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