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74화 (5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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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금 팀장. 팀장 되더니 간도 같이 싱싱해 진 거 같아?”

“네?”

간이 커졌다는 말이면 또 모를까, 간이 싱싱해지다니? 당최 김훈 대표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금명훈.

김훈은 자신이 약속한 대로 전 신비 에이전시 출신 금명훈이 신비 에이전시 인수합병에 세운 공을 인정해서, 내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훈 에이전시의 임원의 자리에 앉혔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새로운 자기 사람이 대표인 자신을 팍팍 밀어 달라는 의미가 컸다.

한데 금명훈은 뭘 잘못 먹기라도 한 듯, 요즘 이렇게 김훈이 하는 일이나 말에 사사건건 삐딱선을 타고 있었다.

“1팀장과 2팀장이 좋아하겠어?”

“그, 그건 또 무슨....”

금 팀장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금명훈은 3팀장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팀의 팀장들이 좋아할 일이라면....

“허억....대, 대표님....”

그제야 김훈의 말뜻을 알아들은 금명훈.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신비 에이전시을 흡수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훈 에이전시의 고질적인 인력 문제가 해결 된 건 아니었다. 즉 1팀과 2팀 모두 밀려드는 일에 비해서 그걸 처리해 나갈 처리자가 부족했다. 근데 3팀장의 간이 싱싱 하다라?

피로에 가장 민감한 신체 장기가 바로 간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1팀장과 2팀장은 다들 간이 좋지 않았다.

즉 김훈 대표로부터 3팀장인 금명훈이 간이 싱싱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1팀장과 2팀장은 득달같이 달려와서, 금명훈에게 자신들이 쳐 내지 못하고 있는 일들을 떠넘길 터였다.

하지만 금명훈이 못하겠다고 거절하면 될 일 아니냐고? 그게 그렇지가 않은 게 1팀장과 2팀장은 김훈 에이전시의 터줏대감들이었고, 그들 눈 밖에 나게 되면 금명훈은 제대로 3팀장 노릇을 할수 없었다.

즉 금명훈은 억지로 1팀장과 2팀장이 넘기는 일을 맡을 수밖에 없었고, 그걸 3팀의 처리자들이 알게 된다면....

“제가 경솔했습니다. 대표님. 제발 제 간에 대한 관심을 꺼주십시오.”

“흥....”

금명훈은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나서야 겨우 삐진 김훈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금명훈이 대표실을 나가고 나서 김훈이 한 손을 턱에 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재향처리자회라....”

김훈은 은퇴한 처리자들이 뭉쳐서 기존 처리자 에이전시의 밥그릇에 흙탕물을 튀게 만드는 게 영 찜찜했다. 하지만 그들이 당장 김훈 에이전시의 행사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있다 보니 딱히 그들을 응징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에이. 몰라....”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사소한 일에 더는 신경을 쓰기 싫었던 김훈. 그는 억지로 찜찜함을 털어내고 그가 벌여 놓은 에이전시 확장 계획에 좀 더 신경을 집중했다.

그로인해서 자신의 진짜 VVIP고객의 화를 돋울 일이, 곧 벌어질 거란 걸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 * *

은퇴 처리자들의 모임인 재향처리자회를 이끌고 있던 배준섭. 그에게로 한 통의 의뢰 전화가 걸려왔다.

“제주도에 있는 늙은이 하나 제거해 달라 이거로군요?”

아무래도 노약자를 제거하는 건 손쉬운 일이다. 그런데 상대가 제시한 의뢰 금이 무려 10억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 죽여야 할 늙은이가 보통 늙은이가 아니란 얘기.

“타깃이 누군지 기본 정보부터 봅시다.”

잠시 후 그쪽에서 보내 온 타깃의 인적사항을 메일로 받아서 살핀 배준섭.

“JG투자운영의 전 회장이라....”

조사해 본 결과 타깃은 투자를 꽤나 잘했던 양반으로 재산이 어마어마했다. 그 재산만큼 주변에 배치 된 경호 인력도 장난 아니었고. 배준섭은 즉시 제주도에 아는 지인에게 부탁해서 타깃이 살고 있는 곳에서 실제 근황을 살펴보게 했다. 그 결과....

“의뢰금 10억이 이해가 되는군.”

타깃이 철저히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저쪽에서 원하는 내일까지 제거하려면, 직접 타깃이 사는 집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했다. 한데 그곳에는 경호원들이 바글바글 했다. 즉 경호원 몇 명을 죽이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란 얘기. 그렇다면 얘기는 또 달라졌다. 배준섭은 의뢰자 쪽에 전화를 걸었다.

-네.

“꼭 내일까지 제거해야 합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10억으로는 어림없습니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시오. 그럼 맡겠소.”

-그, 그건....하아....일단 알겠소. 생각, 아니 상의 좀 해 보고 다시 연락하겠소.

그렇게 의뢰자 쪽과 통화를 끝낸 배준섭. 그가 자기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고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이 인간이 의뢰자는 아닌 모양이로군.”

상의 운운하며 결정을 미루는 걸로 봐서, 의뢰자가 대리인을 내세워서 이쪽과 접촉을 시도한 게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결정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20억 주겠소. 내일까지 처리해 주시오.

통화 한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의뢰자 쪽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20억이라....25억 주시오.”

원래 배준섭은 30억을 부르려 했다. 근데 한 번에 10억을 올리는 게 좀 그래서 25억을 불렀다.

-좋소. 25억. 대신 내일까지요.

“으음. 알겠소이다.”

배준섭은 상대가 25억을 이렇게 선뜻 받아드릴 줄 몰랐다. 왜냐하면 대리인이니까 진짜 의뢰자에게 25억 제안을 받아드릴지 물어 보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할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그 제안을 받아드리겠다고 그쪽에서 말 할 때, 그는 다시 30억으로 의뢰비를 올릴 생각이었다.

딱 봐도 그쪽이 급해 보이는 상황이었으니까. 돈 보다는 그 늙은이를 제거하는 게, 그쪽에서는 더 시급하니 30억을 불러도, 그쪽은 어차피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쉽군.”

배준섭은 30억, 아니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의뢰비를 25억에 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 속이 좀 쓰렸다. 하지만....

“출장 준비해. 지금 바로 제주도로 간다.”

이런 쪽의 일은 배준섭 자신이 직접 나서야 했다. 재향처리자회에서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하는 그가 나서야, 타깃이 사는 저택의 높다란 담장을 넘어서,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집 안으로 침투해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 * *

윤현수는 아버지인 윤재구에 비해서 그릇이 작았다. 그렇다보니 자신이 생각한 의뢰비 10억보다 그곳의 상대가 그 배인 20억에다가 5억을 더 붙이자 당황했다. 그래서 평소 버릇처럼 상의를 해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하고 그곳과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그가 상의할 사람이 어디 있나? 여기가 회사라면 구재경 전무에게 상의를 했을 테지만, 구 전무는 이미 죽어서 거기 창고에 있는 소각시설에 들어가, 지금쯤 재만 남았을 텐데 상의는 개뿔.

“이런 덜떨어진 놈....”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아버지 윤재구는 반드시 제거 되어야 했다. 그것도 가급적이면 이번 주 안에 말이다. 문제는 오늘이 토요일이니 일요일인 내일까지 부친을 없애야만, 새로 시작하는 다음 주중에 그가 명실 공히 JG투자운영의 진짜 대표가 되고 또 부친의 그 많은 자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동생들이 허튼수작 벌이기 전에 속전속결로 말이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20억이 아니라 100억을 불러도 윤현수는 그걸 받아들였어야 했었다.

자신의 멍청함을 자책하며 윤현수는 바로 그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20억을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곳에서 소소하게 25억을 불러왔다. 100억이 아니라 말이다. 이번에 윤현수는 바로 그 제안을 받아드렸다. 그렇게 그곳과 무사히 협상을 마친 뒤, 윤현수는 그제야 안도의 긴 한숨을 내 쉬었다.

“후아아아....”

광명 도끼파 두목인 강재경에게는 여전히 제주도의 다른 중국 쪽 조폭들과 접촉하게 해뒀다.

재촉을 하고 있었지만 딱 봐도 거기는 며칠 시간이 더 걸릴 거 같았다. 그러니까 그곳에서 내일까지 아버지를 없애 준다면 땡큐고, 뭐 아니면 강재경을 통해 중국 쪽 조폭들을 움직여서 어떡하든 다음 주중 안에는 부친을 제거할 수 있을 터였다.

“서울 근처에 요양할 때도 많은데 하필 그 먼 제주도로 가서는....”

윤현수는 부친이 제주도에 있는 것에 버럭 짜증을 냈다.

“대신 무덤은 서울에 꼭 묻어주도록 할게요.”

윤재구 회장은 자식들 앞에서 자신이 죽거든 꼭 제주도에 묻어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윤현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자신이 자식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걸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서 매년 형식적으로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그때 마다 제주도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윤현수는 부친의 장례가 끝나면 그가 지금 사는 곳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근처 납골당에 윤재구의 유해를 모실 생각이었다.

“유언? 웃기고 자빠졌네.”

죽은 사람 말을 들어주긴 뭘 들어 주나? 윤현수는 이렇게 부친을 없앨 결심을 하고, 그걸 실행하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짜릿하고 행복했다.

“늙은이 죽는 모습을 이 두 눈으로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부친의 최후를 직접 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쉬웠다.

“자아. 그럼 내일 기쁜 소식이 전해 오기 전까지 나는 좀 마시고 놀아 볼까?”

윤현수는 아까부터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걸 다 해치운 지금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신이 자주 가는 단골 룸빵으로 차를 몰아갔다. 거기 며칠 전에 들어왔다는 혜미라고 했던가? 한 번 맛 봤는데 아주 죽여줬다.

“특히 허리 놀림이 예술이었지. 흐흐흐흐.”

음흉하게 웃는 윤현수의 머릿속에 더는 부친 윤재구에 대한 생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술 마시고 새로운 룸빵 에이스와 떡칠 할 생각만이 가득했다.

* * *

YH엔터에 잠입해 들어간 나는 R드래곤이 말한 그의 작업실로 곧장 향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두 시간여 남짓. 시간적으로는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이대로 곧장 R드래곤의 작업실로 가서 그가 숨겨 놓은 외장 하드를 챙겨서 나오면 끝이었으니까.

시간적으로 15-20분 정도면 해결 될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입구 앞에 경비원이지.”

YH엔터로 들어가는 출입문 바로 옆에 경비초소 부스 안 경비원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한, 나는 밖으로 나가다가 걸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의 투명체를 이대로 유지한 상태로 내가 밖으로 나가면 될 일이긴 했다.

그러면 출입문이 열린다 해도, 경비원의 눈에는 건물 안에 누구도 나가지 않았으니, 그걸 자동 출입문이 고장 나서 그런 줄 여길 테니 말이다.

한데 여기서 내게 새로 생긴 투명체의 능력에 맹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실내에서는 투명체가 유지 되는 데, 실외로 나가면 투명체가 풀린다는 점이다. 즉 내가 자동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내 모습이 드러난다는 거다. 즉 경비원의 눈에 내가 딱 들킨다는 소리다.

해서 나는 나름 대책을 강구해 놓고 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게 뭐냐 하면 바로 YH엔터 사옥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화장실 가며 열려 있던 경비초소 부스 안에 슬쩍 포도주스 하나를 넣어 놓은 것이다. 내가 그런 이유는 바로 경비원이 그걸 마시고 또 오줌 누러 화장실에 가라고 말이다. 물론 경비가 바로 볼 수 있게 모니터 앞 쪽에 둔 게 아니라 책상 끄트머리에 뒀다. 혹시 경비원이 의심할지 모르니 말이다.

“저기다.”

YH엔터 사옥 F층에 위치한 R드래곤의 작업실에 도착한 나는 거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그곳 역시 최첨단 보안 잠금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나의 「만능 오프너」 스킬 앞에서는 바로 문을 열어줬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서 먼저 쭉 내부를 살핀 다음 한쪽 벽으로 향했다. 그 벽에는 괴상한 그림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나는 그 그림 아래를 내려다 봤다. 그러자 거기 철제 쓰레기통이 있었다. 그 쓰레기통을 옆으로 살짝 치우자 그 바닥에 빌트인 콘센트 박스가 보였다.

그 박스를 손으로 건드려 봤더니 박스 커버가 벽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뚜껑처럼 열렸다. 그리고 그 박스 내부에 외장 하드가 들어 있었다.

“찾았다.”

나는 내가 찾던 R드래곤이 남긴 외장하드를 챙겨 품속에 넣었다. 다행히 R드래곤의 작업실 안에는 CCTV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하긴 자신이 작업하는 공간을 다른 사람이 감시한다는 걸 R드래곤이 용납했을 리 없었다.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외장하드를 내 인벤토리의 개톤백에 넣고 R드래곤의 작업실을 나왔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서는 출입문 근처에서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렸다. 그러니까 내가 이곳 YH엔터 사옥 안에 몰래 들어 온지 1시간 30분이 좀 지났을 때였다.

“그렇지!”

경비초소 부스 안의 문이 열리며 경비원이 후다닥 나와서 화장실로 향했다.

그걸 보고 나는 쾌재를 외치며 곧장 자동출입문으로 다가갔고, 문이 열리자 최대한 허리를 숙인 채 후다닥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경비초소 안에서 출입문을 찍고 있는 CCTV카메라는 출입하는 사람들의 상체만 찍고 있었기에, 내가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면 그 CCTV카메라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유유히 YH엔터 사옥 건물을 빠져 나온 나는 문대식과 경호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근처 유료 주차장으로 털레털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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