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577화 (57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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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소위말해 잘나가는 룸빵의 경우, 없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CCTV카메라고 또 하나는 기도, 그러니까 조폭들이다.

그 두 가지가 없어야 소위 말해 VIP라 불리는, 돈을 물 쓰듯 쓰는 손님들이 오니까.

룸살롱 아뜰리제도 그런 소위 잘나가는 룸빵 중 하나였고, JG투자운영의 대표인 윤현수는 그곳의 VIP고객이었다. 하지만 예상 밖의 존재들이 그곳에 나타나서 그를 찾는 순간, 룸살롱 아뜰리제의 사장과 마담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단골 윤현수라는 이름을 싹 지웠다.

“태, 태석파에서 여긴 왜....”

“저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그곳은 바로 서울 최대 조폭 조직 태석파로, 그쪽 사람들이 한 둘도 아니고 무려 십 수 명이나 찾아오니 사장과 마담으로서는 그들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윤현수라고 있지? 어디야?”

태석파에서 나온 조폭들은 룸살롱 아뜰리제의 사장과 마담의 말은 싹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윤 대표님은 왜....저, 저기 있는 골드실에....”

그리고 무조건 대답만 강요했으며 룸살롱 아뜰리제의 사장과 마담은 그들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그들이 딱 봐도 자기들에게도 용건이 생길 거 같아서 말이다.

“다들 나가. 손님들은 우리가 알아서 내 보낼 테니까.”

서울에서 태석파가 하는 일에 대해 제동을 걸거나 훼방을 놓을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룸살롱 아뜰리제의 사장과 마담은 그 몇 되지 않는 사람에 해당 되지 않았고.

그들이 보러 온 윤현수도 마찬가지 일터. 애초 그가 그 몇 되지 않는 사람에 속했다면 태석파가 이처럼 그를 찾아 헤매고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춘석아?”

“네. 형님.”

태석파에서 나온 자들 중 제일 높아 보이는 자가, 조직원들 중 누구 한 명을 콕 집어 불러내서는, 턱짓으로 윤현수가 들어가 있는 골드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가라. 가서....”

가서 뭘 어떻게 하란 말까지 그 자가 자기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뒷말이 뭔지 모르는 사람을 없을 거 같았다. 살벌하니 딱 분위기가 그랬으니까.

“알겠습니다.”

꾸벅 고개 숙여 보인 뒤 춘석이란 자가 곧장 윤현수가 있는 골드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하필 윤현수가 들어가 있던 그 골드실의 문이 열렸다.

파파팟!

그걸 본 춘석이란 자가 즉각적으로 몸을 날렸고, 안에서 나오던 윤현수와 부딪치며 그대로 윤현수를 골드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그도 그 안으로 따라 들어가며 열린 문을 닫았다. 그리곤 잠시 뒤, 골드실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달칵!

닫혔던 골드실의 문이 열리고 그 안에 들어갔던 춘석이란 자가 나왔다. 그는 골드실의 문은 그대로 열어 둔 채, 그에게 지시를 내린 태석파 높은 조직원, 즉 간부로 보이는 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처리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빨리 치우고 가자.”

태석파 간부로 보이는 그 자는 그런 춘석이란 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뒤 주변 조직원들에게 뒷정리를 지시했다.

* * *

이제는 태석파의 실질적인 2인자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조직에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잡은 정준호. 그런 그가 일요일에 수하들과 함께 강남의 한 룸빵을 찾았다. 한데 정준호의 안색이 그다지 밝지가 않았다. 그런 그를 따르고 있는 그의 수하들도 마찬가지였고.

왜냐하면 지금 그가 여기를 찾은 이유가, 한 잔 하고 즐기러 여기 온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C발. 아직도 내가 자기 똥구멍 닦아 주던 그 정준호로 밖에 안 보이나?”

정준호는 상당히 저기압 상태였다. 그럴 것이 태석파 총 보스인 양태석이 급하게 처리하라며 대뜸 그에게 전화를 건 거다. 당연히 양태석의 지시를 정준호는 최우선 적으로 따라야만 했다. 왜? 쭉 그렇게 살아 왔으니까. 하지만 지금 정준호는 예전의 그 양태석의 똘마니 정준호가 아니었다.

“여기 확실해?”

“네. 맞습니다.”

“들어가자.”

정준호는 지금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신대 조직원들을 이끌고, 윤현수가 있다는 이곳 룸빵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양태석이 십여 분 전 쯤 걸려 온 전화에서 바꾼 지시에 따라 여기 룸빵 안에 있던 윤현수라는 자를 제거했다.

그를 죽이는데 정준호는 사신대의 3조장인 임춘석을 썼다. 임춘석은 정준호가 사신대를 거두기 전에 거기 조직을 이끌었던 엄기풍의 오른팔이었는데, 이제는 정준호의 오른팔 노릇을 하고 있는 자였다.

하지만 의심 많은 정준호는 항상 임춘석을 시험했다. 그가 자신의 사람이 맞나, 아니면 그의 뒤통수를 치고 언제든 사신대를 자신이 차지하려는 야심만만한 자인지를 두고서 말이다.

하지만 능구렁이 같은 임춘석은 자기 맡은 일은 확실히 처리해 내면서 동시에 그 어떤 분란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정준호도 임춘석을 믿고 자기 곁에 두는 것도, 또 못 믿어 그를 내치는 것도 못하고 어정쩡한 스텐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임춘석은 특히 칼을 잘 썼는데 엄기풍 밑에 있을 때 칼로 사람깨나 죽여 본 듯했다. 그래서 정준호는 임춘석을 자신의 칼로 썼고, 그는 오늘도 정준호를 실망 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룸빵 안에서 제거 된 윤현수의 시신을 밑에 수하들이 수습하는 동안 정준호는 그곳 빈 룸빵 안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 그의 맞은 편 자리에 임춘석이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은 채 있었다.

“받아.”

“네.”

정준호는 물 컵에 양주를 한잔 가득 따라서 임춘석에게 건넸다. 그걸 받은 임춘석은 망설임도 없이 벌컥벌컥 한 번에 물 컵 안의 양주를 다 마셨다. 그걸 보고 정준호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역시 일처리만큼이나 시원시원 하군. 좋아. 한 잔 더 해.”

“네. 주십시오.”

정준호는 양주 한 잔을 더 물 컵에 따라 주었고 임춘석은 이번에도 그 잔을 단숨에 비워냈다.

“자아. 먹어.”

그 사이 과일 안주를 포크에 찍은 정준호가 그걸 임춘석에게 건네자, 임춘석이 황송해 하며 두 손으로 정준호가 건넨 포크를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 포크에 찍혀 있던 과일을 먹었다.

그 사이 정준호도 적당히 자기 잔에 양주를 따라서 벌컥 그 술을 들이 킨 뒤 임춘석을 향해 불쑥 말했다.

“너 사신대 가지고 싶지?”

“네?”

“사신대. 너한테 넘겨줄게. 대신....”

“....”

사신대를 주겠다는 정준호의 말에 임춘석의 눈은 이미 탐욕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라면 그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정준호는 강하게 받았다.

“양태석이 따자.”

“....”

정준호가 그의 입에 태석파 총 보스 양태석을 거론하자, 임춘석이 많이 당황한 듯 동그랗게 뜬 눈에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 말을 해 놓고 정준호가 확고부동한 모습을 보이자, 그제야 그를 바라보는 임춘석의 눈빛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물었다.

“언제요?”

“언제? 크하하하. 그래. 이거지. 남자 이래야지. 푸하하하하!”

한 조직을 차지하는 일이다. 그걸 혼자 힘으로 할 수는 없었다. 양태석에게는 정준호를 비롯해서 그를 따랐던 충성스런 간부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태천파의 조직을 그대로 흡수해서 지금의 태석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고.

정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양태석을 재낀다고 해도 그를 따라주는 간부들이 없다면, 그는 총 보스를 죽인 살인자에 불과할 뿐이었다. 한데 지금 태석파의 간부들이 그를 지지해 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나를 없애고 지들이 총 보스 자리에 앉으려 하겠지.’

기껏 양태석을 없앴는데 자신이 총 보스가 되지 못하고, 간부들 중 한 놈이 총 보스 자리에 앉는다면 그거야 말로 죽 쒀서 개주는 꼴이 아니고 뭐겠나? 정준호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해서 그는 양태석을 없애고 자신이 총 보스 자리에 앉기로 결심한 순간, 지금의 태석파 주요 간부들도 양태석과 같이 없애거나 은퇴시키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조직이 유지 되려면 그들의 빈자리는 가급적 빨리 메워야 하는 법.

그를 위해서 정준호는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추종하는 젊은 피의 간부들을 키워 나갈 생각이었다. 그 중 정준호가 가장 눈여겨 본 게 바로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임춘석이었고. 그 임춘석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드리자, 정준호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좀 더 오붓한 곳으로 갈까?”

정준호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그를 보고 임춘석도 몸을 일으켰다. 둘은 곧장 룸빵 아뜰리제를 빠져 나와서 근처의 또 다른 유명 룸빵으로 들어갔다.

* * *

불과 하루 사이였다. 청와대의 대통령은 그 동안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 어제까지 대통령은 남은 자신의 임기 동안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삼명그룹이라는 그의 목에 차고 있던 목줄이 풀리면서, 이제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국정 운영을 해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데 그 부푼 희망은 하루 사이 소멸하고, 오늘 오전에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겠다는 긴급 기자 회견을 열어야만 했다.

“대통령님....”

“대체 이게 무슨....”

기자회견 후 청와대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오후에 청와대에 나타난 정책실장이 수습에 나섰고....

“내일 몇 시에 청와대에서 나가실 예정이신지요?”

“....”

정책실장의 그 물음에 대통령은 대답대신 도끼눈으로 그런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잠시 움찔하던 정책실장이 자신도 좀 무안했던지 대통령의 시선을 슬쩍 회피하며 말했다.

“그걸 알아야 그에 맞는 의전을 할 거 아닙니까.”

“의전이라....”

대통령이 피식거렸다. 대통령 때려 치고 청와대 나오는 데 의전은 무슨 의전이란 말인가? 하지만 전대 대통령에 대해 청와대에서 따로 신경 써서 의전을 해주고 있는 실정이라, 정책실장이 지금처럼 의전을 챙기는 게 틀렸다거나 잘못 된 건 아니었다. 단지 말없이 알아서 조용히 처리해도 될 것을 이렇게 찾아와 대통령 면전에서 이런 얘기 한다는 게 대통령으로서는 불쾌할 따름인 것이지.

막말로 자신은 물러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빨과 발톱까지 다 빠진 건 아닌데 말이다.

“그보다 삼명 측에 연락이나 달라고 해. 내 퇴직금은 그쪽에서 챙겨 줘야 할 거 아닌가?”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정책실장. 그런 그를 보고 쯧쯧 혀를 차며 대통령이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말하기만 하면 돼. 그럼 삼명 측에서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딱 봐도 대통령은 눈앞의 정책실장을 자신과 삼명그룹 사이의 중간 통로로 쓸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정책실장의 입장에서는 어떡하는 대통령과 삼명그룹 사이에 끼어야만, 자신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지니 대통령의 지금 반응에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님. 그러지 마시고 퇴직금이 무슨 소린지 제게만 말씀을....”

“어허! 어디서 종놈이 주인의 밥상에 눈독을 들여? 종놈은 종놈답게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네. 그런 줄 알고 자네는 삼명에 연락해서 내 말을 그대로 전하기만 하게나.”

“이이....”

자신을 종놈 취급하는 대통령에 격분한 정책실장. 그가 분노해 부들부들 몸을 떨었지만 대통령은 그런 그를 보고 오히려 더 이죽거리며 말했다.

“왜 아직도 거기 있나? 빨리 삼명 쪽에 내 말을 전하지 않고. 뭐야? 싫은가? 그럼 당신 말고 여기 있는 다른 삼명 쪽 쥐새끼를 통해서....”

“갑니다. 가.”

지금 청와대 안에는 삼명그룹 쪽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대통령 말대로 정책실장이 아니더라도 삼명그룹 쪽에 연락을 자들은 넘쳐났다. 하지만 정책실장의 입장에서는 청와대 안에서 자신의 권위로 봐서도 그런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어째든 자신만이 삼명그룹과 청와대의 유일한 연결 고리여야만 했다. 해서 부들거리며 뒤돌아서 대통령 집무실을 나가는 정책실장. 그런 그를 보고 대통령이 한심하다는 듯 또 다시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쯧. 저렇게 자기 주제도 모르니....”

대통령은 그렇게 정책실장을 자신의 집무실 밖으로 내 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그리고 잠시 창밖을 넋 놓고 바라봤다. 내일이면 여기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도통 믿기지 않으면서 또 그게 현실이라는 사실에 통탄하며 계속 한숨을 내 쉬는 대통령.

벨레레레레~

그때 대통령 집무실 위에 유선 전화 벨이 울렸다. 누구 전화인지 알고 있었던 대통령. 그는 천천히 책상 쪽으로 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이동훈 실장입니다.

현 삼명그룹의 2인자라고 볼 수 있는 이동훈 비서실장의 전화에 대통령이 나름 흡족해 하며 말했다.

“이 실장이라면 괜찮지. 얘기는 들었을 테고?”

실제 대통령은 삼명그룹에서 백 회장이나 이 실장이 아닌 자가 전화해 왔으면 호통을 치고 전화를 끊을 생각이었다. 깜냥도 안 되는 새끼와는 할 말 없다면서 말이다.

-퇴직금 말씀하셨다고요?

“누구 때문에 왕의 자리를 내 놨는데....노후 자금 정도는 그쪽에서 넉넉하게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니겠소?”

-물론입니다. 그 동안 저희 회사를 위해서 해 주신 게 있으신 데....섭섭잖게 챙겨 드려야지요.

“좋군. 그래서 얼마나 줄 생각이요?”

-얼마를 원하십니까?

“내가 얼마 달라면 그대로 다 줄 거요?”

-가급적이면 맞춰 드리는 쪽으로 하려 합니다만....

“그럼 천억 주시오.”

-....

대통령은 적어도 자신의 퇴직금으로 천억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정치 생명이 끝난 걸 고려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삼명그룹에서 챙겨 줄 수 있는 노릇이었다. 그 동안 그가 삼명그룹에 해 준 특혜가 얼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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