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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복도에서 더 이상 자신을 따라 오는 자가 없자, 최철기는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양태석이 있는 회의장에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하필 그가 탈 엘리베이터들이 지금 그가 있는 층보다 다들 더 높은 층에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엘리베이터가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걸 타야하니 몇 분의 시간이 더 걸릴지 몰랐다.
그때 안병호가 그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바로 위층에 양태석이 있다는 말말이다.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마침 계단실이 보였다.
“뭐 걸어서 올라가자고.”
그게 더 빨랐다. 해서 최철기는 털레털레 걸어서 계단실 쪽으로 움직였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한 층을 더 위로 올라갔더니 과연 거기가 태석파 조직 간부회의가 열리고 있는 컨벤션 홀이 있었다.
최철기는 그 홀 안으로 들어갔고, 마침 그를 여기로 데리고 온 물류센터 센터장이 그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최철기 없이 회의장에 들어갈 면목이 없어 회의장 밖에서 초조하게 대기 중이었던 센터장이 그를 보고 얼굴에 희색을 띠며 다가 온 것이다.
“오오....최철기씨! 괜찮습니까?”
“네. 뭐....보시다시피....”
“저는 진짜....하아....이쪽으로....”
그 사이 센터장의 얼굴이 10년은 더 늙어져 있었다. 그 만큼 그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최철기는 알거 같았다. 아마 놈들 눈치를 보느라 있는 그대로 양태석에게 보고도 못했겠지.
센터장의 안내를 받아서 일단 최철기는 컨벤션 홀 안에서도 태석파 조직 간부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회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총 보스. 백 대표님께서 보내신 최철기씨 데리고 왔습니다.”
회의장 안에는 이미 회의가 시작 되었지만 센터장은 상관없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회의장 안의 모든 이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꽂혔다. 그때 ‘ㄷ’의 회의석상 제일 상석에 양태석의 말이 회의장 안에 울려 퍼졌다.
“어서 오시오. 최 선생. 뭣들 하나? 다들 인사드리지 않고.”
“....”
양태석의 그 말에 회의장이 순간 혼란에 휩싸였다.
인사라니? 그 무슨....
여기 있는 자들은 전부 한가닥하는 태석파의 간부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일제히 인사를 할 수 있는 존재는 딱 한 명뿐이었다. 바로 조직의 총 보스인 양태석 말이다.
한데 양태석이 지금 이상한 소릴 내 뱉었다. 마치 저 이방인에게 조직의 총 보스와 같은 예우를 갖추라고 말이다.
그때 눈치가 빠르달 까? 아니면 미리 양태석의 언질이 있어서였는지 모르지만, 몇몇 조직 간부들이 최철기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시오.”
“반갑소이다.”
하지만 그 인사도 다들 중구난방으로, 최철기를 보고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인사를 한 조직 간부들의 얼굴은 다들 떨떠름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현 태석파의 2인자인 정준호가 눈치 채지 못 할 리 없었다.
당연히 정준호는 최철기를 보고 인사를 하지 않았다. 뭐 이미 밑에서 그를 만나고 왔으니 더 인사를 할 것도 없었고. 그때였다. 양태석이 버럭 소리쳤다.
“똑바로 인사 못해!”
“....”
그 소리에 회의장 안의 조직 간부들의 시선이 일제히 양태석을 향했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이 상황이 과연 총 보스가 화까지 낼 상황일까? 조직 간부들은 다들 혼란스러워 하며 이번에는 일제히 조직의 2인자인 정준호를 쳐다봤다.
근데 그 모습, 그러니까 조직 간부들이 정준호의 눈치를 보는 걸, 최철기가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조직의 군사, 그러니까 머리 역할을 맡아 주실 분이시다. 그러니까 다들 나를 대하듯 최 선생을 모셔야 할 것이다.”
양태석의 입에서 폭탄선언이 있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조직 간부들 중에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정준호였다.
누가 뭐래도 지금껏 조직의 브레인 역할은 정준호가 해왔다. 한데 총 보스 양태석이 그 역할을 따로 맡아서 해 줄 인사를 외부에서 초빙해 왔다지 않은가?
그 말은 더 이상 정준호가 조직의 브레인이 아니란 얘기고, 그걸 다른 조직 간부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드렸다. 즉 앞으로는 그들이 정준호에게 설설 길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걸 대변하듯 조직 간부들 중 절반 이상이 더는 정준호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대신 새로 나타난 조직의 브레인, 최철기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 * *
“미, 미친....”
정준호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올 뻔한 욕설을 가까스로 도로 입안으로 삼켰다.
제대로 양태석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바득 이를 갈면서 정준호가 양태석을 쏘아 볼 때였다. 양태석이 너무도 환하게 웃으며 그를 보고 말했다.
“준호야.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제 너도 좀 편하게 살아라. 앞으로는 최 선생이 조직을 잘 이끌어 나가 줄 테니까.”
그 말 후 양태석이 바로 시선을 최철기 쪽으로 돌리고는 그를 향해 손짓을 하며 말했다.
“최 선생. 이리로 오시오.”
양태석의 부름에 최철기는 회의석상의 상석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런 그를 다른 조직 간부들과 같이 쳐다보며 정준호의 얼굴은 대 놓고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데 이동 중 최철기가 그 얼굴을 곁눈질로 계속 쳐다보고 있는 줄 정준호는 알지 못했다.
이내 최철기가 양태석 옆에 다가섰고, 그런 그에게 양태석이 대표로 먼저 손을 내밀었다.
“환영하오. 최 선생.”
“고맙습니다.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최철기는 양태석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그가 내 민 손을 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는데, 그때 최철기는 의식적으로 시선을 정준호 쪽을 돌아봤다. 당연히 이때도 정준호는 최철기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최철기의 입 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가는 걸 정준호가 봤다.
‘저놈이....’
안 그래도 일그러져 있던 정준호의 얼굴이 최철기가 자신을 보고 비웃자 더 팍 찌푸려졌다. 하지만 최철기는 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의 비웃음을 본 사람은 아무래도 정준호 자신뿐임을 주위를 둘러보고 깨달았다.
‘지금 나를 도발한 거 맞지?’
정준호가 곧 죽일 듯 최철기를 쏘아 볼 때였다. 양태석의 목소리가 정준호의 귀에 들려왔다.
“준호야. 눈에 힘 좀 빼지?”
“네?”
화들짝 놀란 정준호가 양태석을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최철기 옆에 양태석이 그를 빤히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최 선생이 와 네 일을 덜어 줄 수 있어서 내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가 보구나?”
“아, 아닙니다. 좋습니다. 일이 줄었는데 당연히 좋지요.”
정준호는 두 손으로 손사래까지 치며 양태석을 보고 억지로 웃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조직 간부들 중 그 누구도 지금 정준호가 좋아서 웃고 있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만큼 티가 났는데 본인만 아니라는 상황이었다.
“그래?”
양태석은 바보가 아니었다. 정준호는 양태석이 그를 보는 눈빛에 변화를 바로 눈치 차렸다.
‘젠장....’
좀 전까지 그를 동생, 그러니까 최측근 수하로 여기고 무한히 신뢰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양태석의 눈빛에, 딱 봐도 의심의 눈초리가 섞여 있었다. 그러니까 이는 곧 양태석이 더는 정준호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 * *
최철기는 양태석을 만나기 전에 자신이 왜 정준호를 먼저 봐야하는 지 잘 이해가 안 됐다.
그가 알기로 태석파의 총 보스는 양태석인데 말이다. 하지만 회의장에서 조직 간부들이 양태석에게 쩔쩔매다가 바로 정준호를 눈치를 살피는 걸 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거 재미있네.’
최철기는 태석파의 권력이 상당부분, 총 보스인 양태석에게서 정준호에게로 넘어가 있는 걸 발견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정준호가 총 보스 자리를 대 놓고 노리고 있단 얘기였다. 한데 멍청한 총 보스 양태석은 그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라?’
거기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양태석이 정준호를 보는 눈빛이었다. 그는 정준호를 완전 믿고 신뢰하는 눈치였다.
‘허얼....’
최철기는 기가 찼다. 세상에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이었다.
도대체 양태석은 정준호를 왜 저리 믿는 단 말인가? 그 의문과 함께 최철기는 비로소 알거 같았다. 왜 백준열 대표가 자신을 여기로 보냈는지를 말이다.
‘저런 유형이라면 확실히....’
최철기도 양태석이 서울 최대 조폭 조직의 총 보스 자리에 어울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임은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조직을 잘 이끌어 나갈 자질까지는 없다는 걸 알아봤다.
양태석은 현실과는 동 떨어진 낭만 조폭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폭들의 최후는 정해져 있었다.
‘언제고 믿고 있던 동생에게 뒤통수 제대로 얻어맞고....은퇴하거나 제거 되거나....’
최철기도 조폭 세계에 몸담았기에 그 정도 생리는 알고 있었다. 조폭 두목은 비정할수록, 또 의심이 많을수록 오래 그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그건 태석파 총 보스 양태석과는 거리가 멀었다. 즉, 양태석은 얼마 못가 그 자리에서 내려 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태석파의 뒷배인 백준열은 양태석이 총 보스 자리에 더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걸 위해 여기 온 거고....’
최철기는 자기가 뭘 해야 할지 곧바로 깨달았고, 자기 일을 시작했다.
그건 바로 양태석이 대체 뭣 때문에 자신의 뒤통수를 치려고 대 놓고 움직이고 있는 정준호를 이토록 믿고 있는지, 그 믿음에 대해 스스로 의문이 들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건 쉬웠다.
양태석이 불러서 상석으로 가서 그와 악수를 할 때, 최철기는 살짝 고개를 돌려서 정준호를 도발했다. 그러자 그 도발에 넘어간 정준호가 당연히 최철기를 노려봤고.
양태석이 아무리 무디다고 해도 자신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사람을, 정준호가 저렇게 대 놓고 째려보는 데 기분이 나쁠 수밖에. 그래도 이때까지 양태석은 정준호를 여전히 믿었다. 해서 양태석은 정준호에게 좋게 얘기를 했다.
자신은 그가 여태 고생한 게 고마워서 일부러 외부 인사까지 영입했는데 정준호는 그것도 몰라주고 말이다. 한데 정준호는 말은 아니라면서 계속 싫은 티를 냈다. 순간 양태석은 의문이 들었다.
‘저 녀석이 대체 왜 저러지?’
그 동안 정준호가 조직을 총괄적으로 관리해 오면서, 그가 버겁고 힘들어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며 너무 미안했었다. 하지만 그게 정준호니까 양태석은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자기 동생이니까 말이다.
한데 이제 보니 정준호가 그게 싫지만 해 온 일이 아닌 거 같았다. 양태석에게는 일부러 그런 티를 냈을 뿐.
그 말은 곧 정준호가 조직을 관리하는데 관심이 있었다는 거다. 한데 그걸 왜 자신에게 숨기려 한 걸까? 순간 양태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됐다.’
그걸 보고 양태석 옆의 최철기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너무도 간단히 양태석에게 정준호에 대한 불신의 씨앗을 심는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건 양태석이 너무 티를 냈다. 자신이 이제는 정준호를 믿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최철기는 그걸 상대인 정준호를 보고 알아차렸다.
‘쯧쯧쯧....이거 손발이 이리 안 맞아서야....’
이렇게 되면 정준호를 처리하는 게 더 귀찮아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회의장 안에 절반 넘는 조직 간부들이 딱 봐도 정준호에게 손절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대신 그들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에 정준호를 대 놓고 불신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양태석이 최철기에게 대 놓고 자리를 깔아주었다.
“크음....최 선생. 이 자리에서 할 말 있으면 하시오.”
“네. 그럼....”
그걸 마다 할 최철기가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최철기라고 합니다. 먼저 밝히고 싶은 건....제가 JYB엔터에서 파견 나온 건 맞습니다. 거기 직원이란 얘기지요. 하지만 저도 한 때 이쪽 세계에 몸을 담은 적이 있어서 조직에 대해 잘 압니다.”
최철기가 자신도 조폭 출신임을 밝히자 회의장 내 조직 간부들이 그를 보는 눈빛이 싹 변했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최철기는 외부 인사가 아닌 것이다.
“총 보스께서 말씀 하셨지만 제가 할 일은 여기....”
최철기가 자신의 머리에 검지를 가져다 대고 톡톡 건드리며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서 말했다.
“머리 쓰는 겁니다. 정확히는 조직 관리와 경영 체제를 구축해서 미래지향적인 조직 체계를 갖추는 거죠. 한데 지금 보니까 이 조직은 아직 기본적인 정리조차 되지 않은 거 같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최철기가 대 놓고 정준호를 쳐다봤고, 정준호는 그런 최철기를 보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진 채, 회의장 원목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던 두 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정준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조직 간부들은 눈치 챘다. 지금 정준호가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럴 것이 좀 전 최철기가 한 기본적인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말은, 그 동안 태석파의 조직을 정리하고 관리해 온 정준호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크음....”
당장 최철기 옆의 양태석부터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의심의 싹은 심었지만 어째든 양태석에게 있어 아직 정준호는 자신의 오른팔이었으니까.
당연히 이미 정준호에게 넘어간 조직 간부들은 살벌한 눈으로 최철기를 쏘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