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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600화 (596/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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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서지연의 이런 적극성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급한 나머지 그녀는 해선 안 될 실수를 저질렀다. 그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서지연이 저지른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삼명호텔에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협상에서 급한 쪽이 손해를 보는 건 당연한 일. 한데 서지연은 임페리얼 호텔 측에 그 급한 티를 먼저 냈다.

빨리 성과를 내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해를 보면서 내가, 아니 삼명호텔이 임페리얼 호텔을 과연 인수 합병해야 할까?

그에 대해 굳이 대답을 원한다면 나는 ‘No’라는 대답을 내 놓겠다. 하지만 서지연이 임페리얼 호텔 인수 합병에 관심을 가지기 전부터 내가 먼저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귀찮지만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만 수틀리면 나는 언제든 서지연과의 약속을 깨고, 임페리얼 호텔 인수 합병 계획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삼명호텔로 간다.”

내가 차에 타고 돌아서 내 옆 자리에 탄 문대식이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나를 태운 차는 삼명호텔로 향했고 역시나 가는 도중에 내 핸드폰은 가만있지 않았다.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고 확인 후 나는 전화를 받았다.

“어. 어. 그래? 잘 됐네.”

블랙 머니 박 비서의 전화였는데 내가 부탁한 일을 잘 처리했다는 연락이었다.

하긴 그렇게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해 주겠다는 데 그걸 거부할 사업가는 없겠지.

“이쪽 조건은 잘 설명했지? 음. 좋아. 나를?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 일단은 만나는 쪽으로 얘기해서 우선 우리 요구 조건부터 확실히 받아드리게 만들고....”

박 비서와 통화를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지만 이미 그녀에게 약속을 했고 또 내 여자로 삼기로 작심한 이상,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귀찮지만 꼭 해내야만 할 일이었다.

“어. 어. 그래. 수고 해.”

나는 박 비서와 통화를 끝내고 짧게 한숨을 내 뱉었다.

“하아....”

내가 벌인 일이지만 역시 일은 만드는 게 아니다. 뭐 하긴 하필 그 골프장에서 중학교 동창이자 백준열의 첫사랑인 장혜원을 만날 게 뭐람 말인가? 그리고 장혜원, 그 여자는 뭘 그렇게 또 예뻐 가지고....

장혜원을 생각하니 김 비서와 그렇게 하고도 가운데 다리에 피가 쏠렸다. 하지만 이 차 안에서 내 자지를 풀 발기, 즉 말자지로 변신 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해서 장혜원 생각을 머릿속에서 싹 지우고 대신 그녀의 시아버지, 그림산업 박정명 회장을 생각했다.

그가 괜히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었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박 비서의 제안에 다 넘어 온 거 같이 굴던 그가 끝에 가서 찜찜한 제안을 했다.

바로 나와 만나고 싶다는 것. 그를 만나고 말고는 박 비서가 정할 게 아니었다.

해서 박 비서는 내게 여쭤보고 박 회장에게 알려주겠다고 했다는 보고에, 나는 내 요구를 들어 주면 만나 주겠다고 했다.

뭐 장혜원만 이혼 시킬 수 있다면 박 회장을 만나 주는 거야 뭐가 힘들겠나?

그러고 보니 나를 만나고 싶어서 난리인 사람이 하나 있었지. 바로 서진그룹 김학수 부회장. 박 비서와 통화 직후 그 인간이 생각났다.

나를 만나면 서진그룹의 문제를 다 해결 할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지? 기가 찰 노릇이다.

내가, 아니 예전의 백준열이 얼마나 우스워 보였으면 그럴까. 뭐 그게 아니란 건 곧 만나서 깨닫게 해 줄 생각이지만....

“그러고 보니 김 회장 문병 한 번 안 갔군?”

내가 그 말을 할 때 마침 차창 너머로 서진병원이 보였다.

* * *

나는 옆에 문대식을 돌아보며 말했다.

“서진병원에 잠깐 들렀다가 가자.”

“네.”

내가 앞서 내 입으로 김 회장 운운했기에 문대식은 내가 왜 서진병원에 가자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딴에는 생각이란 걸해서 내게 물어왔다.

“꽃이나 과일바구니라도 준비할까요?”

“됐어. 코마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꽃이니 과일이 무슨 소용....하아....그냥 됐어.”

내 말에 문대식도 이해가 된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차가 서진병원 입구를 통과했고 잠시 뒤 차가 병동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나는 병동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 VIP실에 거의 시체처럼 누워 있는 김명진 회장을 잠깐 지켜봤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젊은 나와의 싸움도 마다치 않았던 팔팔했던 양반이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한데 병실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보호자, 즉 가족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간병인은 있었지만....

“쯧쯧....”

혀를 차던 나는 김명진 회장에게 마지막 인사를 미리 전했다.

“잘 가십시오. 서진그룹은 내가 잘 추슬러서 앞으로 요긴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 후 나는 미련없이 뒤돌아서 서진병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대기 중인 차를 타고 삼명호텔로 향했다. 서진병원에서 삼명호텔은 가까웠기에 곧 삼명호텔에 도착한 나를, 서지연 대표가 직접 로비에서 맞았다.

“어서 와.”

그녀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는데, 나는 그런 그녀를 냉랭하게 대했다.

“임페리얼 측에서 누가 나온다고?”

“그, 그쪽 대표와 총지배인이 오기로 했어.”

나의 차가운 반응에 서지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그녀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나는 전혀 화 낸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곧 임페리얼 호텔 측 관계자와 첫 미팅을 할 건데 그녀도 이제 알 필요가 있었다.

“준, 준열아. 왜 그러는데? 내가 혹시 무슨 실수라도 한 거야?”

그래도 내 굳은 얼굴을 보고 서지연이 눈치라도 챈 게 어딘가? 뭐 하긴 그녀가 호텔 관련 최고의 인재라니까 이 정도는 눈치 채는 건 당연한 거겠지.

“하아....누나, 아니 지연씨.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 몰라요?”

“뭐?”

“임페리얼 측에 먼저 연락을 했다면서요? 그것도 직접?”

“그, 그랬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명호텔 대표가 말입니다. 그럼 그쪽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 그거야....아아....미안....정말 미안해.”

내 말을 바로 알아들은 서지연. 그녀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임페리얼 호텔 인수합병을 빨리 진행할 생각에 그녀는 조직에서 가장 강조하는 체계라는 걸 무시해 버렸다. 그럴 경우 상대 쪽에 의해 협상 테이블은 빨리 차려진다. 대신 협상 내내 상대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급한 건 이쪽이란 걸 상대가 알아차린 상태니 말이다.

“오늘 미팅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연씨는 가만있어요.”

내 그 말에 금새 불안해진 얼굴의 서지연. 그녀가 미팅 장소에 들어가기 전 내 팔을 붙잡았다.

“왜요?”

그래서 내가 그녀를 돌아보자, 그녀가 간절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준열아. 그렇다고 이 판 엎어 버릴 거 아니지?”

서지연은 내가 임페리얼 호텔 인수합병을 백지화 시킬까 그게 두려운 모양이었다.

“엎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건 저 안에 들어가 봐야 알 거 같아.”

“아아....”

내 말은 엎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기에 서지연은 세상 무너지기라도 한 듯, 절망어린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위로랍시고 말했다.

“어디 인수할 호텔이 임페리얼 뿐인가? 쉐링턴도 있고.”

“쉐링턴?”

순간 죽어 있던 서지연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걸 본 순간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그럴 것이 예전 나는 임페리얼 호텔에 이어서 쉐링턴 호텔까지 인수합병해서 국내 최대 호텔 체인망을 구축할 생각을 했으니까. 아마도 서지연도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아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그 말이 효과를 발휘 한 듯 서지연이 움직였고, 우리는 임페리얼 호텔 관계자들이 있는 호텔 라운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 * *

커피숍 안에서 나는 눈에 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주 차장!’

바로 주명석 차장. 임페리얼 호텔 사태에서 나를 도와서 호텔 대표와 총지배인을 날려 버리는 데 크게 공헌을 한 인물이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총지배인 자리를 약속했었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렇다면....’

오늘 협상 테이블에 총지배인인 주명석이 참석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주명석 옆에 깐깐해 보이는 중년인은 아마도 임페리얼 호텔 대표일 가능성이 컸다.

“안녕하세요? 저는 삼명호텔 CEO 서지연입니다.”

서지연이 먼저 밝게 인사를 하며 그들에게 명함을 건네자 그쪽에서도 명함을 주었다. 나도 거기에 끼어서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4명이 서로 명함을 주고받은 다음 자리에 앉자마자 주명석 옆의 그 깐깐한 중년인이 나를 보고 물었다.

“누구신지?”

나는 깐깐한 중년인에게 받은 명함을 보고 그가 누군지 파악을 했다.

‘임페리얼 호텔 CEO, 엄석태. 역시....’

하지만 그 깐깐해 보이는 중년인, 엄석태는 내 명함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하긴 삼명호텔 측과 인수합병 문제를 두고 갖는 첫 협상 자리에서 뜬금없이 JYB엔터 대표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때 그 옆에 주명석이 뭐라 말을 하려 했고, 그런 그를 보고 내가 슬쩍 고개를 내저었다. 다행히 그걸 본 주명석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하려던 말을 도로 입안으로 삼켰다.

“반갑습니다. 엄 대표님. 저는 보셨다시피 JYB엔터 대표이면서, 삼명그룹 부회장인 백준열입니다.”

내가 엄석태의 손에 아직 쥐어져 있는 내 명함을 보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는데, 정작 그 말을 들은 상대는 화들짝 놀랐다.

“네? 어, 어디....누, 누구시라고요?”

“허어....”

엄석태는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그 옆에 주명석 역시 마찬가지였고.

왜냐하면 국내 서열 1위의 대기업 삼명그룹의 부회장이라는 직위는 여태 없었던 자리였다.

그런데 내가 그 부회장이라니 두 사람이 놀라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 부회장이 의미하는 게 뭔지 그들은 물론 알았다. 바로 내가 삼명그룹의 차기 회장이란 얘기다.

이 자리에서 놀란 건 그 두 사람 뿐만 아니었다. 서지연도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사실 내가 삼명그룹 부회장이 될 거란 건 삼명그룹의 후계구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다 아는 얘기다.

왜냐하면 백승렬 회장이 세 아들 중 두 아들을 정리해 버렸으니, 남은 건 이제 나 뿐이었으니까. 한마디로 내가 백 회장의 후계자란 얘기고, 그런 내가 삼명그룹의 본사에 들어가면 차지할 자리라곤 딱 한 자리, 회장 밑에 부회장 밖에 없었다. 어리바리한 엄석태와 주명석. 그 두 사람에게 서지연이 말했다.

“저희 그룹 부회장님 맞으십니다.”

삼명호텔 CEO인 그녀가 내 신분을 확인해 주자, 그제야 엄석태와 주명석도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정중히 내게 사과의 말을 해왔다.

“죄송합니다. 예상치 못하신 분께서 오셔서....”

“아닙니다. 서 대표님의 말을 듣고 내가 끼겠다고 우겨서 온 자리니까요.”

차기 삼명그룹 회장이 될 사람의 등장에 엄석태는 더 고무된 얼굴이었다. 딱 봐도 엄석태는 이런 협상 자리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노련한 기업인수합병의 전문가 같달 까? 하지만 그 옆에 주명석은 계속 내 눈치를 봤다. 그럴 것이 주명석 입장에서 나는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사람이니까.

“일단 주문할까요?”

우리는 마실 것을 각자 주문을 했다. 그리고 임페리얼 호텔 인수합병에 관한 기본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자 눈치껏 주명석이 따라 일어섰다.

“저도 좀....”

주명석이 자기 옆에 엄석태를 쳐다보며 말하자, 엄석태가 짜증어린 얼굴로 그러라며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나는 주명석과 같이 커피숍의 화장실로 향했다. 남은 두 사람, 서지연과 엄석태가 가볍게 얘기를 나누는 것을 뒤로 하고 화장실로 가던 중 내가 주명석에게 먼저 말했다.

“여기서 또 보네요?”

“그러게요.”

“데이비드가 잘해 줘요?”

“하아....”

다국적 호텔 그룹인 임페리얼 호텔의 실질적인 오너인 데이비드 부회장. 그는 내 부탁을 받아드려서 주명석을 서울 임페리얼 호텔의 총지배인에 앉혔다. 물론 그 뒤에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최근 임페리얼 호텔은 대량 해고로 인해 한국에서의 인식이 급 추락해서, 본사 차원에서 사업 철수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는 박 비서를 통해 전해 들었다. 물론 박 비서는 그 얘기를 미국의 정보통을 통해서 알아 낸 거고 말이다.

블랙머니는 한 달에 거의 백만 불이 넘는 돈을 썼다. 미국의 그 정보통에게 말이다.

그 정보통이 전해 주는 정보가 그만큼 신뢰성이 높다는 얘기다. 고로 나는 임페리얼 호텔 측이 곧 한국에서 철수 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명석 총지배인은 그걸 모르고 여기 협상자리에 온 거 같았다.

“....라서 내리는 지시는 많은데 정작 해 준다는 말만 하고 본사 차원에서 지원은 전혀 없어서....”

화장실 안에서 데이비드에 대해 계속 성토를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긴 내가 주명석 총지배인이라도 임페리얼 호텔이 한국에서 모든 사업을 접고 철수 할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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