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22화 (618/921)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하고 싶으면 해

강일식도 눈치는 있었다. 최근 천주호를 비롯한 그 밑에 조폭들이 그에 대해 여러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일식은 그걸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드렸다. 왜냐하면 그가 사업으로 한 방 터트리면 간단히 해결 될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그의 사업은 그가 확신한 만큼 성공 가도를 달리지 못했다. 아니 대차게 말아먹었다고 해야 하나? 그로 인해 늘어나는 건 빚이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강일식은 조직의 돈을 더 쥐어 짜내야만 했고, 밑에 수하들에게 줘야 할 용돈을 몇 달째 주지 못했다.

“형님. 애들 이번 명절에도 용돈 못 주면....저랑 태식이도 더는 커버 치기 어렵습니다.”

두목인 강일식 밑에 조직의 중간 간부라 볼 수 있는 천주호와 여태식은 강일식의 오른팔, 왼팔로 일식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한데 그들이 조직원들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건 사실 심각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계약금까지 다 지불한 상태의 골프용품점을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 일단 100만원, 아니 50만원씩 돌리고 어떻게 좀 버텨 봐.”

“형님!”

강일식이 골프용품점을 넘겨받기 위해 치러야 할 잔금이 15억 가까이 됐다.

이번에 보험료로 받을 돈은 20억이 좀 안 됐고. 잔금 치르고도 여윳돈이 좀 있었지만 가게를 운영하려면 물품을 구매해야 할 거 아닌가?

그 물품대가 3-4억쯤 필요했기에 사실 강일식은 보험료 받아서 자기가 쓰면 끝이었다.

근데 천주호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생색은 내야했기에, 밑에 조직원들에게 그나마 50만원을 주라고 한 것이다.

한데 그 50만원이 이미 불만이 팽배한 조직원들에게 있어서 언 발에 오줌 누는 것에 불과함을 아는 천주호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또 조직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짜증을 폭발 시켰다. 그러나....

“김 고문 일 말인데....해결하기 싫어?”

강일식이 바로 천주호의 약점을 걸고 넘어졌다. 김 고문이라는 말에 일그러져 있던 천주호의 얼굴이 삽시간에 당혹감에 물들게 만들었다.

“그, 그건....형님....”

“강남경찰서장이 요즘 골프에 미쳐 있다더라고. 이번 주말에 서울CC에서 골프 치기로 예약되어 있고 말이야. 그 자리에 김 고문이 끼어서 사바사바 좀 하면 어떻게 될 거 같기도 한데 말이지.”

불만 많았던 천주호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형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래. 네 부탁인데 내가 들어줘야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네 부탁을 이렇게 들어주는데 너는....”

“50만원으로 어떡하든 애들 진정시키겠습니다.”

강일식은 천주호 설득에 성공하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일은 천주호 하나로 해결 될 일은 아니었다.

“태식이는?”

“태식이도....제가 잘 말해서....”

“크음....”

강일식은 천주호가 자신 없게 말하자 바로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쓰며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천주호가 다급히 말했다.

“태식이도 제가 확실하게 설득시킬 테니 염려 마십시오.”

강일식은 천주호로부터 확실한 대답을 듣자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주면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김 고문에게 주말에 서울CC로 나오라고 해. 그리고 5장은 챙겨 나오라고 하고.”

“5장이요?”

“그 이하는 안 돼. 김 고문도 그 정도 눈치는 있을 테니까 넌 그렇게 김 고문에게 얘기만 하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일식은 천주호와 대화를 끝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일이면 자신의 가게가 될 건너 편 건물 1층에 있는 골프용품점으로 향했다.

* * *

뭘 먹었는지 골프용품 가게 안에서 음식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환기를 시키기는 했는데 제대로 시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뭐 이내 그의 코에 그 냄새가 적응이 된 듯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민 사장은?”

“집에 일이 있으셔서 오늘 좀 늦게 가게 나오실 거라고....”

가게에는 사장은 없었고 종업원 두 명만 있었다. 그 두 명은 강일식이 내일 가게를 넘겨받을 때 고용 승계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둘 다 곧 자신들의 사장이 될 강일식에게 깍듯하게 굴었다.

“손님 왜 이리 없어?”

매장 안에 손님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자 강일식이 짜증 섞인 어투로 얘기하자 종업원이 바로 말했다.

“어느 점포나 오전에는 이렇게 한산한 편이에요. 저희 가게는 주로 오후와 저녁 때 바쁜 편이고요.”

아무래도 아침 댓바람부터 골프 용품 사러 오는 일은 드물었다. 아침 라운딩의 경우 사전에 골프용품을 구입하고 골프장에 가니, 아무래도 오후나 저녁 때 골프 용품점에 손님이 많은 건 강일식도 골프 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익히 아는 바였다. 그래서 종업원의 말에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는데, 그때 그의 호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야?”

강일식은 호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살폈고 바로 눈에 이채를 띠며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전무님. 네? 하지만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네. 아아. 그러시면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네. 그럼 기다리죠.”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에 박성철 전무에게 전화를 받았었다. 이따가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고 말이다.

한데 박 전무가 화가 좀 많이 난 듯 했다. 뭔 일인지 모르지만 바로 여기로 오겠다는 걸 보니 박 전무가 제대로 빡친 모양이었다.

“후후후후. 그렇다면....”

박성철 전무의 지갑을 제대로 털어 먹을 수 있을지 몰랐다. 평소 강일식은 박 전무의 일을 처리해 주면서 푼돈을 받았다. 그의 더러운 사생활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신 그를 통해 여러 인맥을 뚫어 왔으니까. 하지만 박성철 전무에게서 더 소개 받을 인맥도 없는 지금에 와서, 강일식은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수고비를 그에게서 받아 낼 생각이었다.

“이거 잘하면 애들 100만원, 아니 200만원까지 챙겨 줄 수 있을지도....”

박성철 전무는 준 재벌급 집안의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1-2억 정도는 쉽게 뜯어낼 수 있을 거라는 게 강일식의 생각이었다. 그 동안이야 그와 그의 배경을 이용해 먹기 위해서 거의 서비스로 그의 치부를 해결해 줬지만 이제는 아니다.

박 전무에게 빼 먹을 거 다 빼 먹었으니 말이다. 아마 이따가 그를 만나면 그가 꽤나 놀랄 거다. 강일식이 예전처럼 그를 대하지 않을 테니까.

“민 사장 오면 나한테 전화 해줘.”

“네. 사장님.”

강일식은 박 전무를 맞기 위해서 골프용품점을 나섰다. 어차피 도로 맞은 편 건물에 그의 아지트가 있었지만 혹시 박 전무가 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 강일식은 딴 곳으로 새지 않고 곧장 횡단보도 쪽으로 움직였다. 마침 초록불이 켜졌고 강일식은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맞은 편 자신의 아지트가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 * *

곧바로 자신의 아지트로 올라 간 강일식이 그의 방, 대표실에서 차 한 잔 마시며 기다리길 10여분쯤 됐을까?

벌컥!

그의 방문을 노크도 없이 열고 박성철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근데 여기 오는 동안 끓어 오른 화를 여전히 식히지 못한 듯, 박성철이 씩씩거리며 강일식이 앉아 있는 응접 소파 옆에 털썩 앉더니 말했다.

“물 좀 줘. 시원한 걸로.”

“네.”

강일식은 다른 조폭 조직과 달리 일식파의 아지트를 일반 사무실처럼 꾸며 놓았다.

실제 책상마다 컴퓨터와 전화기가 놓여 있었고, 복사기와 팩스 같은 각종 사무기기들 역시 비록 장식에 불과하지만 배치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한 회사의 사무실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 사무실 안쪽에 위치한 대표실 표지판이 붙어 있는 방이 바로 지금 강일식이 있는 곳이었다.

강일식은 자신이 편안하게 앉은 응접소파 바로 옆, 협탁 위에 있는 인터폰을 누르고 말했다.

“여기 시원한 물 좀 가져 와.”

그리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박성철을 보고 말했다.

“전무님. 무슨 일 있습니까? 안색이 영....”

“하아. C발. 요즘 왜 이러나 몰라. 어떻게 되는 일도 하나 없고....”

짜증 가득한 얼굴의 박성철. 그는 자신에게 묻는 강일식의 말에 그는 쳐다도 보지 않고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알아서 재깍 자신이 문 담배에 불을 붙여 줬어야 할 강일식이 꿈쩍도 않고 그대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게 불만인지 박성철이 와락 인상을 쓰며 그제야 깅일식을 꼬나보며 말했다.

“불 안 붙여줘?”

그러자 강일식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 담배 끊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금연구역이고요.”

“뭐?”

박성철은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강일식이 예전에 그 만보면 꼬리를 흔들던 그 조폭 새끼가 아니란 걸 말이다.

“허어....”

기가 차 하며 박성철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빼내 손에 들자, 그때 노크 소리 후 방 문이 열리며 조직원 하나가 차가운 생수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이리 줘.”

강일식은 그 생수를 받아서 차가운지 자기 볼에 갖다 댄 본 뒤에, 손수 뚜껑을 따서는 그걸 박성철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기 시원한 물....”

박성철은 그런 강일식을 째려보면서 그 생수를 받아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벌컥벌컥 시원하게 그 물을 마신 다음 생수를 눈앞 응접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강일식에게 냉랭하게 말했다.

“강 부장. 변했군.”

그러자 강일식이 피식거리며 꼬고 있던 다리를 반대로 다시 꼬며 말했다.

“시간이 흐르는데 그러면 변해야죠. 박 상무님이 박 전무님이 되신 거처럼 말입니다. 저도 이제는 사장인데....”

그러니까 강일식은 지금 자신을 여전히 강 부장으로 부르는 박성철에게 어필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을 강 사장으로 부르라고 말이다. 다행히 박성철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이런....내가 그 동안 실수를 했군. 미안해. 강 부, 아니 강 사장.”

“아닙니다. 우리 사이에 강 부장이 됐든, 강 사장이 됐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래. 우리 사이에....그래서 말인데 강 사장이 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내 마누라가 요즘....”

박성철은 자신과 이혼하려는 아내 장혜원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종내....

“그러니까 부인 되시는 분을....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처리 시켜 달라는 거군요?”

“그렇지.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 섭섭지 않게 수고비를 주도록 하지.”

“얼마나요?”

“뭐?”

강일식의 말에 박성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것이 여태 강일식은 박성철의 일을 처리해 주면서 그가 던져 주는 대로 수고비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사람 죽이는 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거기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꺼림칙하게 박 전무님 와이프 되시는 분을 그렇게 해 달라는 건데....”

“크음. 얼마면 되겠나?”

박성철은 영 못마땅한 얼굴로 강일식에게 물었다. 그러자 강일식이 바로 대답했다.

“3억!”

“뭐?”

여태 박성철은 강일식에게 일을 시키며 수고비로 수백만 원을 쥐어주었다. 조폭 나부랭이들에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던 것이다. 자신의 3억이라는 말에 입을 쩍 벌리는 박성철. 그런 그를 보고 강일식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 동안 박 전무님 편의를 많이 봐 드렸는데 앞으로는 그게 어렵게 됐습니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져서 그런지 이쪽 수입도 영 예전 같지가 않아서....”

“그, 그래도 3억은 좀....”

아무리 박성철이라도 억 단위 돈을 쓰는 건 문제가 좀 있었다. 몇 천까지가 그러려니 하겠는데 억 단위의 돈을 쓰게 되면 부친인 박정명 회장에게 보고가 들어갈 테니 말이다.

말이 재벌 2세지. 박성철 주위에는 온통 박정명 회장이 심어 놓은 자들뿐이었다.

뭐 그가 어느 정도만 유능했어도 부친이 그렇게까지 해 놓지 않았을 터였다. 도저히 못 믿으니 박성철을 비롯한 그의 다른 자식들에게도 박정명 회장은 자기 사람들을 붙여 놓았던 것이다.

여기 올 때도 박성철이 직접 차를 끌고 온 것도, 그 차 운전기사가 박 회장이 심어 놓은 자였기 때문이었다.

박 회장에게 자신이 조폭 두목 따위나 만나고 다닌 다는 걸 들통 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박 전무님. 그게 많다고 생각하시면 다른 데 얼마든지 알아보십시오.”

강일식은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박성철에게 그가 그 동안 얼마나 손쉽게 누리고 살아왔는지 알아 볼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박성철은 그걸 강일식이 뻥카 치는 걸로 받아드렸다. 그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 알아보지.”

그 말 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박성철. 그는 바로 뒤돌아서 강일식의 방을 나섰다. 그러며 생각했다.

‘새끼가 어디서 구라치고 있어.’

박성철은 자신이 이 방을 나가기 전에 반드시 강일식이 그를 붙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아니었다. 결국 박성철은 뻘쭘하게 강일식의 방을 나왔고 어쩔 수 없이 일식파의 아지트를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