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23화 (619/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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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끼리끼리 논다고 박성철에게는 그처럼 소위 말해 잘 나가거나 잘 사는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도 박성철처럼 더러운 그들의 사생활을 정리해 주는 자들이 있었고.

해서 박성철은 강일식이 자신에게 요구한 수고비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금액인지 확인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몇 백?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저번에 나한테 욕한 새끼 살짝 혼만 내 주는 데 들어간 돈이 3천만 원인데.

-그 자들 부르는데만 기본 2천은 줘야 해. 그래서 나도 진짜 급한 일 아니면 못 불러.

술자리에서는 큰소리 떵떵 치면서 조폭들을 무슨 자기 수족 부리듯 다뤄 온 거처럼 굴었던 자들. 한데 박성철이 이렇게 직접 전화해서 조심스럽게 묻자, 말했던 것과 달리 다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진실을 얘기했다. 한데 그들 말이 다들 같았다.

그 자들을 부리는 데 다들 돈이 엄청 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실수로 박성철에게 누구를 묻었다고 얘기했었던 사람에게 박성철이 물었다.

“종철이 형. 그 전에 묻었다는 사람 말인데....얼마 들었어요?”

-무, 무슨 소리야? 묻기는 무슨....

그 사람은 당연히 발뺌을 했다. 하지만 박성철이 집요하게 캐물으면서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니 얼마 들었는지 만 알려 달라고 거듭 말하자....

-하아. 너 진짜....이거 말하면 안 된다. 그때는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알았어. 형. 그러니까 어서 말이나 해.”

-5억 들었다.

그 자의 5억이라는 말에 박성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강일식의 말이 맞았던 거다.

3억에 처리해주겠다는 게 진짜 싸게 부른 것이다.

“알았어.”

볼일 다본 박성철이 바로 전화를 끊으려 하자 그 자가 다급히 말했다.

-너 정말 어디 말하고 다니면 내 손에 죽는다. 아니 그놈들이 널 가만 두지 않겠지. 내 입으로 그 자들에게 네 얘기 하지 않게 해 다오.

“알았다고. 내가 뭐 하러 그걸 떠들고 다녀? 막말로 나한테 덕 될 것도 없는데. 걱정하지 마.”

말을 그렇게 했지만 박성철은 이걸 써 먹을 때가 있으면 바로 써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신 새끼....”

자신의 치부를 이렇게 허술하게 밝히는 멍청이 따위의 협박 따윈 그에게 있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젠장....”

그 보다 이 일로 인해 강일식과 자신의 사이에 금이 간 게 무엇보다 아쉬웠다.

그 동안 신뢰가 이번 일로 다 깨져 버렸다. 그 신뢰를 도로 회복하는 건 불가능한 일임을 누구보다 박성철이 잘 알았다.

해서 박성철은 이번 일까지만 강일식과 함께하고, 그 후로는 그와 인연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 몰래 3억이라는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재벌 2세답게 박성철로 그 동안 부친을 통해 물려받은 재산들이 제법 됐다. 특히 부동산이 많았는데 문제는 박성철의 명의로 된 부동산이 처분 되면, 그 즉시 부친이 알 수밖에 없게끔 그 자산관리 역시 아버지 쪽 사람이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쩐다?”

고민하던 박성철. 그런 그가 팔짱을 꼈고 그때 그의 가슴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

그래서 고개를 밑으로 살짝 숙인 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와이셔츠 왼쪽 포켓에 연두색 종이가 보였다. 그는 곧장 손을 가슴 쪽으로 가져가서 그 포켓 속에 연두색 종이를 꺼냈다.

“아아....”

그걸 직접 보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 아침에 깼을 때 설수연의 집에 그녀는 없었다.

시간을 확인한 그는 기겁하며 출근하러 움직였다. 그래도 갈증은 해소해야 했기에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던 그의 눈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이 보였다. 포스트잍에는 일하러 먼저 간다고 적혀 있었다.

그때는 설수연이 남긴 메모보다는 목에 갈증 해소가 더 급했던 박성철. 그는 대충 접은 그 포스트잍을 자신의 와이셔츠 포켓 속에 쑤셔 넣고 생수를 마셨다. 그 뒤 갈증이 해소되고 나자 설수연과 그녀가 남긴 메모는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게 다 생각이 난 뒤....

“으음....”

그 연두색 포스트잍을 다시 펼쳐 설수연이 쓴 메모를 읽어보던 박성철.

“아아....설수연의 집!”

설수연의 집은 박성철이 사줬다. 그러니까 그녀 집을 팔거나 아니면 담보로 대출을 받아도 3억 쯤 댕겨 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됐다.”

그렇게 강일식에게 줄 수고비 3억을 확보한 박성철. 그는 신이 나서 강일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뭐? 5억?”

박성철이 수고비를 3억에서 5억으로 올려 불렀다. 하지만 박성철은 질끈 입술을 씹을 뿐 아까처럼 더 알아보겠다고 전화를 끊지 못했다. 아니 이대로 끊었다가 5억이 10억이 될지 모르니 말이다.

‘설수연의 집이면 5억까지는 충분히 대출 가능해.’

그 동안 서울의 집값이 하도 많이 오르다보니 설수연의 아파트도 예전에 비해 2-3배는 올라 있었다. 그러니 은행에 대출 신청을 해도 5억까지 충분히 받아 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좋아. 5억 주지. 그러니 내 아내를 없애줘.”

-알겠습니다. 그러면 선수금으로 3억 주시고....

“아냐. 5억 한꺼번에 줄게. 대신 며칠 시간이 필요해.”

어차피 설수연의 집을 담보로 5억 대출 받을 건데, 귀찮게 그 돈을 쪼개서 줄 필요는 없었다. 안 그래도 강일식과 관계에도 금이 갔는데 이번 기회에 한꺼번에 돈을 주면서 생색도 좀 내고 말이다.

-뭐 시간이야 얼마든지 드리죠. 대신 돈이 들어와야 저희도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해 주시길.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그가 말을 하면 강일식이 먼저 움직였고, 수고비는 언제나 후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박성철은 많이 바뀐 강일식에 씁쓸하게 웃으며 돈을 구하는 대로 바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그와 통화를 끝냈다.

* * *

강일식은 기다리던 박성철의 전화를 받고 웃었다. 확인해 보고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 동안 그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헐값에 그의 뒤처리를 해 주었는지 말이다. 그건 일종의 서비스였다.

-....알아봤는데 내가 잘 몰랐더라고. 해서 말인데 3억 줄 테니 강 사장이 맡아 줘.

하지만 이대로 박성철의 요청을 받아드리자니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강일식은 2억을 더 올려 불렸고 재벌 2세인 박성철은 그걸 결국 받아드렸다.

“돈 벌기 쉽네.”

강일식은 박성철로부터 쉽사리 5억을 챙겼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더불어 밑에 녀석들에게도 이번에 200만원 씩 챙겨 줄 수 있게 된 것도....

“가만....민 사장이 5억만 더 투자하면....”

그때 그에게 골프용품점을 넘기기로 한 민 사장이 이번에 자신이 하기로 한 골프연습장에 투자를 하면 투자 수익 2배를 장담한 게 생각이 났다. 5억의 2배면 10억이었다.

“꼴깍....”

강일식의 눈이 탐욕에 물들었고 연신 군침을 삼켰다. 그는 투자 위험보다 투자 수익에만 더 관심을 가졌다. 전형적으로 자기 주제를 모르고 탐욕만 가득한 자들이 보이는 반응이었다.

“그, 그래. 애들 용돈은....미안하지만 이번엔 50만원 만 주고....돈 벌면 그때는 200만원이 아니라 한 500만원 씩 주지 뭐.”

욕심에 가득 찬 강일식은 또 다시 자기 합리화를 해버리고 있었다. 그는 박성철이 부탁한 일을 처리해 주는 대신 받기로 한 수고비 5억을 민 사장의 골프연습장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아아. 맞다.”

하지만 그 수고비는 말 그대로 수고를 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걸 아는 강일식은 그 수고를 해 줄 자신의 수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태식아.”

원래라면 이 일은 자신의 오른팔인 천주호에게 맡겼을 거다. 하지만 천주호와는 돈 문제로 이미 얼굴을 붉혔는데 그런 그에게 이 일을 맡긴다? 안 그래도 돈 냄새 하나는 기막히게 맡는 녀석인데, 강일식이 박성철에게 얼마를 뜯어내기로 했는지 곧 알아 낼 거다. 그럼 또 그 돈으로 애들 용돈 200씩 주자고 하겠지.

해서 강일식은 천주호만 못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시킨 일 하나는 잘 처리하는 여태식에게 연락을 했다.

“네가 처리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아니. 당장은 아니고. 애들 스텐 바이 시켜 놓고 있어. 연락 주면 바로 움직일 수 있게. 그래.”

여태식과 통화 후 강일식은 혹시나 이걸 천주호가 알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것이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들어서 여태식과 천주호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조직 2인자가 누군지를 두고 둘 사이에 알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강일식은 그걸 알면서 계속 모른 척 하고 있었다.

2인자 자리를 두고 둘이서 경쟁하는 게 두목인 강일식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는데 그런 경쟁 관계가 지금 강일식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태식이 자신의 경쟁자인 천주호에게 두목이 맡기기로 한 일에 대해 얘기할 리 없었으니까.

* * *

강일식과 박성철의 만남. 그 두 사람의 만남 자체로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직후 두 사람은 전화상으로 좋게 얘기가 끝났고, 둘 다 만족한 가운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때 그 두 사람을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그걸 그 두 사람은 몰랐고 그건 그 두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이지 불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그 불운의 기운이 자신들에게 드리운 사실을 그때까지도 그 두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단 점이었다.

“네. 네. 형님. 지금이요? 뭐 그렇기는 한데....알겠습니다.”

어디서 걸려 온 전화인지 그 전화를 받고 서는, 딱 봐도 험상궂은 얼굴로 나 조폭이요하고 티가 나는 자가, 자신과 같이 승합차에 타고 있던 뒤쪽 조폭들에게 말했다.

“다들 내려.”

그 말 후 자신도 승합차 조수석에서 내린 그 조폭이 먼저 내린 조폭들을 데리고 향한 곳은....

“어이. 내려.”

바로 자신의 차에 타고 있던 박성철이었다. 그는 강일식과 통화 후 점심을 먹으러 여기 왔다가 막 가게 앞에 주차할 자리가 비자 거기 차를 주차시켰다. 그리고 지갑과 차키를 챙겨서 내리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조폭들이, 자신의 차를 에워싸자 덜컥 겁을 집어 먹었다. 순간 자신의 차문이 잠겨 있지 않다는 게 생각난 그가 황급히 차문을 잠그려 할 때....

딸깍!

조폭 중 한 놈이 먼저 밖에서 차문을 열어 버렸다.

“아아....”

순간 절망한 얼굴의 박성철. 하지만 그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서....

“어허....”

그때 운전석 문을 연 조폭이 손을 뻗어 박성철의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을 뺏어갔다.

그걸로 끝이었다. 박성철은 차에게 끌어 내려져서 조폭들이 타고 온 승합차로 옮겨졌고, 그의 차는 조폭 중 하나가 끌고 승합차를 따라 오다가 중간에 폐차장이 있는 쪽으로 사라졌다.

당연히 그 사실을 박성철은 알지 못했다. 하긴 승합차에 강제로 탑승하자 바로 그의 손발이 묶였고 머리에 검은 보자기가 씌워졌으니까.

그때 강일식의 사정은 더 좋지가 않았다. 그럴 게 박성철은 순순히 잡힌 탓에 린치를 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일식의 경우....

우당탕탕....쿠쾅쾅쾅....

“크아아악!”

“꿇려!”

갑자기 쳐들어 온 조폭들. 그런데 놈들은 보통 조폭들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무력에 강일식의 일식파 녀석들은 제대로 손 한 번 못 써보고 얻어 터져서 무릎 꿇렸다. 그 사이 강일식은 노련한 조폭두목답게 잘 내뺐다. 하지만....

“어디 가나?”

이번만큼은 강일식도 피할 수가 없었다. 놈들이 강일식이 어디로 튈 지까지 다 염두에 두고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C발....”

강일식과 같이 있던 그의 수하들이 나름 발악을 했지만....

퍽! 퍼퍽!

“크으으윽....”

놈들은 일개 조직원들이 강일식과 그의 수하들을 간단히 제압했다. 그걸 보고 강일식도 대충 눈치를 챘다.

“혹시 태석파에서 나왔소?”

이정도 싸움 실력을 갖춘 조폭들이라면, 서울 최대 조폭조직 태석파의 기동타격대로 불리는 사신대 소속의 조폭들뿐이었다.

“....”

하지만 놈들은 아무 말이 없었고 강일식은 바로 인식했다.

저들은 태석파에서 보낸 자들이 확실했다. 한데 왜 저들이 자신을 찾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추측조차 힘들었다.

“끄응....”

놈들에게 잡혀서 차에 태워질 때 강일식의 입에서 절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진작 이 자들이 태석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면, 하나마나한 무의미한 저항은 하지 않았을 거고 그랬다면 강일식도 이렇게 쳐 맞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다.

싸울 때 맞은 곳이 욱신거렸는데 그 중에서 특히 가슴 왼쪽에 통증이 심했다. 아무래도 왼쪽 갈비뼈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병원에 좀 들르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놈들이 내 보이는 흉흉한 기세에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근데....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야?’

강일식은 그래도 박성철과는 달리 팔다리가 묶이고 머리에 검은 보자기를 씌우지는 않았다. 그래서 차로 이동 하면서 강일식은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도는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며 속으로 생각했다.

‘서쪽으로 가는군. 그럼 광명? 아니면 부천?....에이 설마 인천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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