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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류지혜는 눈앞의 남자, 그러니까 삼명그룹의 황태자 백준열, 그의 마음을 자신이 지금 당장 사로잡는 게 사실상 불가능함을 알았다. 그녀가 나름 한 미모 한다지만 그게 어디 저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社 대표인 저 사람의 눈에 찰 정도이겠나?
그나마 상류층에서 그녀 정도면 외모적으로는 꿀릴게 없었지만, 그녀에 대해 온갖 퍼져 있는 안 좋은 소문을 삼명그룹에서 모를 리 없었고. 그걸 알면서 백준열이 그녀를 자신의 배필로 선택할 일은 없었다.
해서 류지혜는 겉으로는 거의 티내지 않고 있었지만 사실상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왔다. 그러다보니 백준열 앞에서 적어도 내숭 따위 떨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네. 백준열 대표님이시죠?”
“아네. 일단 앉으시죠?”
백준열이 자리를 권하자 류지혜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 그녀를 따라 자리에 앉으며 백준열이 말했다.
“식사 전이시죠?”
“네.”
“그럼 우리 배부터 채우고 얘기 할까요?”
“그러죠.”
류지혜도 백준열에게 먼저 거절당한 후 저녁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까이고 나서 뭘 먹는 게 맛이 있을 리 없었고 또 소화도 잘 안 될 테니까. 그러니까 까이기 전에 맛있게 먹고 집에 갈 때 소화제 좀 사 먹으면 되지 싶었다.
“스테이크 괜찮으시죠?”
“네. 저는 뭐든 잘 먹어요.”
특히 지금처럼 배가 고플 때는 말이다. 당연히 뒷말은 속으로 했다. 한데 여기는 커피전문점이 아니던가? 왜 여기서 식사와 스테이크 얘기를 하는지 류지혜가 의아해 할 때였다.
촤르르르!
레스토랑의 음식 배달 카트가 이쪽으로 굴러 오고 있었다. 그 카트를 미는 사람은 누가 봐도 레스토랑의 셰프였고. 주방에서 셰프가 착용하는 하얀 위생복에 위생모자를 쓴 그 셰프를 보고 당황한 류지혜가 백준열을 쳐다보자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번거롭게 어디 갈 필요 없이, 여기서 다 해결하면 편하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모든 걸 다 해결하겠다는 소리였다. 그때였다. 류지혜는 주위를 살폈다.
“아아....”
그리고 깨달았다. 이곳에 그들을 빼고 아무도 없다는 걸 말이다. 그때 백준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근처에 스테이크 맛집이 있더라고요. 이태리에서 20년간 셰프 생활을 하고 돌아온....”
백준열은 하던 말을 갑자기 멈췄다. 그 사이 당사자인 셰프가 밀고 온 음식 배달 카트가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 즉 원탁의 테이블 앞에 도착한 것이다.
“나머지는 본인에게 직접 듣도록 하죠. 셰프?”
백준열이 어느 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자신이 직접 밀고 온 음식 배달 카트 앞에 정중히 서 있는 셰프를 쳐다보자 그가 느끼하게 웃으며 말했다.
“buona sera(부오나 세라), 저는 이태리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나와서 Al Porticciolo 85에서 수석 셰프 생활을 5년 오너 셰프 생활을 10년 동안 하고....”
의상디자인학과에 다니는 류지혜. 패션하면 또 이태리 아니겠나? 해서 이탈리어어는 좀 알았다. buona sera(부오나 세라)는 영어의 굿 이브닝과 비슷한 말이다. 뭐 그 인사말 뒤로 자신의 경력 자랑이 있고 셰프는 자신이 자랑하는 피렌체식 티본 스테이크를 내 놓았다.
“으음....”
확실히 맛은 있었다. 아니 배가 고팠다 보니 역대 급으로 맛이 있었다. 특히 주황색 술 스프리츠 (spritz) 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술과 같이 먹는 스테이크는 그냥 입에서 살살 녹았다.
“괜찮았습니까?”
“네. 맛있네요.”
류지혜는 더 먹고 싶었지만 눈앞의 남자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묻는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먹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에 상대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단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때였다.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이제 놀러 가볼까요?”
“네?”
갑작스런 상대의 말에 류지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클럽 말입니다. 저도 간만에 발바닥에 물집 좀 잡혀 볼까 하고요.”
“....”
백준열의 입에서 클럽이란 말이 나오자, 안 그래도 커져 있던 류지혜의 눈에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 * *
류지혜는 설마 선보는 자리, 그러니까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백준열이 클럽 얘기를 꺼낼 줄 몰랐다. 거기다가 지금 그는 그녀와 같이 클럽에 가겠다고 했다.
‘미친....’
이걸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처음에 류지혜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그가 그녀를 엿 먹이는 상황이었다. 클럽 죽순이인 그녀를 비하해서 하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저 놀리시는 건가요?”
상대가 삼명그룹 황태자지만 류지혜의 그 더러운 성질머리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류지혜가 따지듯 묻자 백준열이 바로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절대 놀리는 거 아닙니다. 그렇게 받아드리면 저 좀 섭섭합니다. 정말 클럽에 가고 싶어서 그래요. 거긴 간지 하도 오래됐고,또 지혜씨가 거기 잘 안다니 잘 됐다 싶어 한 말인데. 그게 실례였다면 사과드리죠.”
백준열이 사과까지 하는데 거기에 대해 뭐라 더 화내기 뭐 해진 류지혜. 그녀가 눈썹을 모으며 백준열에게 말했다.
“그 말 진짜죠?”
“네?”
“클럽 가고 싶다는 말말이에요.”
“네!”
류지혜는 자신의 클럽이란 말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하는 백준열을 보고, 그가 적어도 자신을 엿 먹이려고 이러는 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긴....’
백준열이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나? 류지혜가 알기로도 백준열 주위에 널린 게 미녀들인데 말이다.
괜히 류상현에게 보좌진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알아 본 바로 백준열에게는 이미 여러 여자들이 있었다. 단지 백준열의 옆에 법적인 그의 여자만 없을 뿐. 그 법적으로 묶인 유일한 한 여자가 되려고 류지혜가 지금 그를 만나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물론 지금 진행 되는 과정을 보아하니 그의 법적인 여자, 즉 그의 와이프가 되긴 글러 먹었지만.
세상에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 될 여자를 처음 만난 날 클럽에 데리고 가겠나? 류지혜의 기준에 그녀와 같이 클럽 간 남자는 백퍼 뜨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러니 지금 백준열과 클럽가면 그녀는 백준열과도 그 짓을 할 생각이었다.
‘그게 뭐....’
남녀가 마음에 들면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거지. 안 그런가?
다행이라면 백준열도 미국 유학시절 문란한 성생활을 한 걸로 알았다. 그래서 류지혜는 백준열이 클럽에 가자고 했을 때 이미 그 짓까지 가는 걸 당연시하게 여겼다.
“좋아요. 가요.”
비록 백준열의 법적 그녀가 되는 건 어렵겠지만 오늘 밤 그와 뜨거운 시간을 갖고, 그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잘 만하면....’
그녀의 복수 얘기를 그에게 꺼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괜히 베갯머리송사란 말이 있겠나? 그 짓 후 남자들은 웬만하면 여자의 말을 잘 들어 준다. 백준열도 마찬가지. 혹시 아는가? 류상현이 어떤 인간인지 그녀가 잘 말한다면, 백준열이 그녀 대신 복수를 해 줄지 말이다.
“....아니면 말고.”
“네?”
“아뇨. 빨리 가요. 자리 없을라.”
클럽에 자리가 없을 리가? 죽순이인 그녀가 방문해 주는 것만으로도 클럽 관계자들은 다들 꺼뻑 죽는다. 없는 자리도 만들어 주는 마당에 무슨....
하지만 상대는 그걸 모르니 충분히 그 말이 먹혀 들었다.
“그래요? 그럼 어서 갑시다.”
백준열과 같이 홍대의 ‘라미아스’라는 핫 플레이스 커피 전문점을 나온 류지혜. 그녀는 차타고 움직일 필요 없이 그 근처에 있던 클럽 ‘줄리아나’로 백준열과 나란히 걸어서 갔다.
* * *
“여긴가?”
백준열은 ‘라미아스’라는 간판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주위에 경호원들을 주렁주렁 달고서. 그런데 홍대의 핫 플레이스 치고 그 안은 썰렁했다. 가게 안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오셨습니까?”
그때 백준열 앞에 이곳 커피전문점의 주인이 나타나서 인사를 했다. 그 인사를 가벼운 목례로 받은 백준열. 그가 주인에게 물었다.
“오다가 보니까 이태리 식당이 있던데. 거기 어때요?”
“아아. 오라(ora) 말이시군요. 거기는 파스타보다 스테이크가 끝내주죠. 거기 오너셰프가 이태리에서....”
백준열은 자신이 말한 이태리 식당의 음식이 어떤지 궁금해서, 그 식당에 대해 상세하게 듣고 싶지는 않았다. 해서 주인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거기 연락해서 혹시 배달 가능한지 물어 봐 주실래요?”
“배달이요?”
“네. 귀찮은데 여기서 다 해결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
백준열은 그 말 후 주인 옆을 스쳐 지나서 가게의 한 가운데 창가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곤 넋 놓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사이 주인은 가게를 나갔다. 백준열이 부탁한대로 이태리 식당 오라(ora)로 가서 거기 오너셰프를 만났다.
“허얼. 그러니까 오늘 가게 통째 빌리는 대신....3천을 받았다고요?”
‘라미아스’ 커피전문점 주인의 말에 이태리 식당 오라(ora)의 오너셰프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처음엔 자신의 요리를 배달해 줄 수 있냐는 ‘라미아스’ 커피전문점 주인의 말에 장난하나 싶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장사를 하다보면 작은 지갑 수십 개 열리는 것보다, 큰 지갑 한 번 열리는 게 더 낫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걸 알기에 이태리 식당 오라(ora)의 오너셰프는 번거롭기는 하지만 자신의 요리를 기꺼이 커피전문점에 배달해 주기로 했다.
“잘 생각했어. 내가 사람 좀 보잖아? 딱 봐도 돈 잘 쓰게 생겼어.”
이태리 식당 오라(ora)의 오너셰프는 그 말에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쪽에서 연락이 왔다. 스테이크 2인분 배달해 달라고 말이다. 오너셰프는 최선을 다해 요리를 했고 그 요리를 ‘라미아스’ 커피전문점으로 직접 배달했다. 그리고....
“역시....”
그의 수중에 수표가 여러 장 쥐어져 있었다. 그 손님의 큰 지갑이 열렸고 무려 백만 원 수표 5장을 팁으로 받았다. 근데 더 놀라운 건 그건 팁일 뿐이었다. 음식 값은 따로 그의 계좌로 들어왔는데....
“대에바악!”
20만원도, 200만원도 아니었다. 무려 2천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한 번 음식 배달로 그의 한달 매출을 훌쩍 뛰어 넘는 돈을 번 이태리 식당 오라(ora)의 오너셰프.
그는 내일부터 출장, 배달이 가능하다는 문구를 가게 앞에 붙이기로 했다.
* * *
사람은 역시 만나 봐야 안다고 내가 직접 만나 본 류지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외모도 예쁘장하고 몸매도 괜찮은 편이었고. 나름 잔뜩 꾸미고 오긴 했는데, 그래도 내 여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당연히 그런 그녀에게 나는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냥 편한 동네 친구 여동생과 만난 거 같달 까?
견신 시스템이 개잡년이라고 해서 좀 걱정은 했다. 한데 아예 상식 없는 골 때리는 년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숭하나 없이 자신의 생각을 내 뱉는 게 내 입장에서는 좀 참신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류지혜를 만나고 있는 건 견신 시스템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걸 잊지 않았고 류지혜와 저녁 식사 후 그녀에게 얘기를 꺼냈다. 클럽에 가자고 말이다. 그랬더니 바로 정색하며 따져드는 류지혜. 나는 차분하게 류지혜에게 오해 없게 설명을 했고 류지혜는 의구심이 남은 상태에서 나를 데리고 클럽으로 데리고 가 주었다.
“여기는....”
전생의 나는 들어가 보지 못한 곳이었다. 온 적은 있었는데 클럽 관계자에게 까였다. 멤버십으로 운영 되는 곳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나를 보고는 인상을 쓰던 클럽 입구 앞의 관계자. 하지만 내 옆에 있는 류지혜를 보고서는 반색을 했다. 그리곤 뒤돌아 무전기에 대고 씨불였다.
“퀸이 떴다. 퀸.”
그 모습을 류지혜는 즐기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클럽 관계자가 생글거리며 그녀를 향해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보내자 그녀가 물었다.
“특실 있죠?”
“특실이요?”
류지혜의 특실이라는 말에 클럽 관계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제야 그녀 옆에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내 옷차림이며 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 그리고 내가 신고 있는 구두까지 꼼꼼하게.
“아아....”
뭘 발견한 건지 클럽 관계자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특실 준비 해!”
그 말에 류지혜가 피식 웃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따라 와요.”
그리곤 앞장서서 클럽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런 그녀 뒤를 따라 움직였다.
‘이게 재미있을 거 같네.’
그런 내 주위에는 있어야 할 거추장스런 존재들이 없었다. 클럽에 다와 갈 무렵 내가 그들을 치워버렸으니까.
류지혜의 눈치도 있었고, 나도 오늘은 작정하고 클럽에서 제대로 젊음을 불살라 볼 생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