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고 싶으면 해-636화 (63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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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으면 해

모든 건 김희수가 말한 대로였다. 화장실에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은 건지 모르지만, 그녀들은 우리 회사로 이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린 언니만 믿을 게.”

“맞아. 언니 안 믿으면 누굴 믿겠어.”

한마디로 그에 관한한 모든 걸 김희수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자신들의 직장을 바꾸는 일이었고, 그 결정은 순전히 그들 몫이었다. 한데 그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긴다? 그냥 연봉 때문에 회사 옮긴다는 속물 취급이 받기 싫어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그녀들은 연봉 두 배의 새로운 직장으로 옮겨서 좋고, 나는 그녀들을 따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좋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아무래도 견신 시스템의 능력은 나와 상대 간의 신뢰가 높을수록 잘 먹혔다.

특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들에 한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고로 화장실 가기 전에 두 여자들의 나에 대한 신뢰와 지금의 신뢰는 그 차이가 컸다.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 드려요. 호호호호.”

“저도요. 제 잔 받으세요.”

두 여자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직장 대표에게 잘 보이려고 벌써부터 아양을 떨었다. 그걸 보고 김희수가 가소롭다는 듯 웃다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마치 자기 말이 맞지? 라고 묻는 듯 말이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옆 자리 박수영이 따라 주는 맥주를 한 잔 받았다.

“짠!”

그리고 그녀와 잔을 부딪치고 그 맥주를 마셨다. 그런데 맥주 맛이 영 이상했다. 이건 맥주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내 입이 특실의 술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여기 맥주가 맹탕 같이 느껴진 것. 이런 술을 내가 마실 이유가 있을까? 아니 내가 왜 이런 맥주를 마시고 있지? 그 생각과 함께 내 입이 열렸다.

“우리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떨까요?”

“자리요?”

“네. 여기 특실 잡아놨는데....”

나의 특실이라는 말에 세 여자들의 눈이 다들 휘둥그레졌다. 특히 강혜정이 반기며 말했다.

“나 거기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난데잉.”

“잘 됐네요. 말 나온 김에 갑시다.”

아무래도 여기 보다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떡치기도 좋았다. 김희수처럼 또 식자재창고에 들어가긴 좀 그랬으니까. 하여튼 두루두루 두 여자들을 내가 내 능력을 써 먹기 좋은 데로 데려갈 필요가 있었다. 해서 강혜정의 말을 듣자마자 내가 특실로 가자고 제안을 했고 강혜정이 즉각 거기에 동의해줬다.

“네. 저는 갈래요. 언니. 수영아. 가자. 응?”

그리고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녀가 알아서 일행들을 설득했다.

“그래. 가자. 줄리아나 특실이 삐까번쩍하다던데 이번 기회에 한번 들어가 보지 뭐.”

“나도 갈래.”

그렇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내가 앞장서서 그녀들을 특실로 이끌었다.

“이쪽으로....”

특실로 가면서 당연히 나는 특실 안에 누가 있는지 살폈다. 개 특성 중에 *냄새를 잘 맡습니다.*를 사용하면 특실 안에 누가 있는지 냄새를 통해 손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내심 그 안에 아무도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류지혜가 있네.’

냄새에 류지혜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해서 나는 특실 앞에 다다르자 가볍게 노크 후 문을 열었다.

그리곤 곧장 특실 안에 들어서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우아하게 양주 한잔을 언더락스로 마시며 통화 중이었던 류지혜가 나를 쏘아봤다. 그때 내 뒤를 따라 세 여자가 줄줄이 특실 안으로 들어오자 류지혜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끊어.”

이어 차가운 목소리로 하고 있던 통화를 류지혜는 끝내버렸다.

* * *

특실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류지혜가 친구와 통화 중인 내용을 들었다.

이 놈의 밝은 귀가 좀 집중을 하니 류지혜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상대 목소리까지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VIP를 물어? 가만 그러고 보니 아까 전 대통령의 아들 얘기를 했었지?’

술값으로 32억을 썼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게 혹시....

류지혜는 내가 알기로 수차례 선을 봐 왔다. 아마 그 중에 전 대통령의 아들도 있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 전 대통령의 아들 역시 류지혜가 클럽 죽순이 인 건 알고 있었을 테고.

‘나처럼 여기 왔을 수도 있겠네.’

단지 나와 달리 류지혜는 전 대통령의 아들이 바가지를 쓰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 테고 말이다.

‘그나저나 그 전 대통령의 아들이 누군지 궁금하네.’

전 대통령이라니 엊그제 하야한 대통령 이전 대통령일 수도 있고, 또 성씨가 전 씨인 대통령일 수도 있었다.

경우의 수가 많지 않으니 그 전 대통령의 아들이 누군지는 조사 시키면 알 수 있을 테지만, 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류지혜에게 직접 물어 보는 게 훨씬 더 빨랐다.

그래서 나는 특실에 들어가면 류지혜에게 그걸 좀 물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특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오세요.”

당연히 나를 따라 오고 있는 세 여자들도 챙기면서. 단지 특실 안에 있는 선객, 류지혜가 그런 우리를 탐탁찮게 쳐다봤지만 나는 일부러 그녀를 신경쓰지 않고 내가 데리고 온 세 여자를 챙겼다.

“저쪽으로 가서 앉아요.”

특실은 넓었고 류지혜가 앉은 곳 말고도 세 여자들이 앉을 곳은 많았다. 특히 양주 한 병이 따로 세팅이 되어 있는 자리로 내가 세 여자들을 앉히자, 류지혜가 기가 찬다는 듯 대 놓고 팔짱을 낀 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자. 한 잔 씩들 받아요.”

그러던 말든 나는 새 양주를 따서 세 여자들에게 한 잔씩 술을 따라 준 뒤 그녀들과 건배를 했다.

“브라보!”

“마시고 죽자!”

나와 세 여자들은 류지혜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하며 양주잔에 따른 술을 원샷했다.

“캬아....죽인다.”

“역시 비싼 술이 잘 들어간다니까.”

그때 내가 다 비운 양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세 여자들에게 말했다

“내 일행에게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요.”

그 말 후 나는 굳이 세 여자들의 반응은 보지 않고 바로 몸을 일으켜서 같은 공간 안에, 내 쪽에 있는 세 여자들과는 완전히 딴판인 얼굴로 앉아 있는 류지혜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다가 오는 걸 보고 피식 거리더니 얼음이 들어 있는 잔에 양주를 가득 따랐다. 그리고 내가 그녀 옆에 걸터앉자 가득 따른 그 양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탁!

그리곤 그 양주잔을 테이블 위에 일부러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백준열씨. 당신 매너가 꽝, 아니 똥이네.”

그래도 반말과 대 놓고 내 욕을 하지 않는 게 어딘가? 그 말인즉 아직 류지혜가 나에 대해 완전히 꼭지가 돌 정도로 화가 난 건 아니란 얘기. 그렇다면 잘 얘기하면 될 일이었다.

“매너라....우리가 그걸 신경 쓸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나는 그 말 후 류지혜가 마시다 만 양주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는 내가 보란 듯 그 잔에 양주를 가득 따랐지만 실제로는 사분의 일도 마시지 않고 잔을 테이블에 올려뒀다.

나는 그 남은 양주를 벌컥벌컥 다 들이켠 후, 그녀의 그 잔에 그녀가 마시기 적당하게 양주를 따라 놓았다. 그 사이 류지혜는 내가 좀 전 한 말을 곱씹고 있다가 나를 향해 말했다.

“저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는 거 같네요. 하긴 그걸 알면서 매너 운운한 건 내 실수 맞네요. 미안해요.”

“미안해하라고 한 말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여기 왜 왔을까요?”

나는 류지혜의 질문에 질문으로 응수했다. 그러자 류지혜가 힐끗 나를 건너 내가 데리고 들어 온 세 여자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제대로 즐기실 생각이신 거 같네요. 하지만 세 명은 좀 많지 않나?”

그 말을 하면서 괜히 내 몸을 훑어보는 류지혜. 한 마디로 네 주제에 여자 셋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비아냥거림이었다.

류지혜가 명백히 나를 자극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에 흔들릴 내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셋이 아니라 30명의 여자가 여기 있어도 나는 그녀들을 다 만족시켜 줄 자신이 있었으니까.

도발도 사람 봐 가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나에 대해 뭘 모르는 류지혜의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 아니 대꾸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돈도....여자도....”

능청스런 내 대답에 류지혜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짧게 한숨을 내 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하아....그럼 잘 즐기다 가세요.”

그 말 후 류지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특실 문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지혜씨.”

“....”

그러자 그녀가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기 전 잠깐 말없이 서 있었다. 나는 그녀가 뭔 말을 하려나 보다 싶었는데, 결국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 * *

“아아. 맞다.”

류지혜가 나가고 나서 나는 그녀에게 전 대통령 아들이 누군지 묻는 다는 걸 깜빡한 게 생각났다.

“쩝....”

하지만 이미 나간 류지혜의 뒤를 따라 나가서 그걸 묻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류지혜가 그렇게 나가고 나서, 세 여자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서 그쪽부터 갈 필요가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류지혜가 아니라 저 여자들이었다. 정확히는 이미 따 먹은 김희수 빼고 나머지 두 여자들.

“술 모자라지 않아요?”

나는 사람 좋은 얼굴로 생글거리고 웃으며 세 여자들이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가면서 물었다.

내가 류지혜와 얘기 하는 사이 세 여자들이 양주 한 병을 다 비워 놓아서 그렇게 물었는데 강지혜가 바로 대답했다.

“네. 양주 더 시켜 주세요. 오늘 따라 양주가 착 입에 달라붙네요.”

그 말에 나는 마침 테이블 위에 보이는 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세 여자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가서 그녀들 사이에 자연스레 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는 지인 분 딸인데....좀 챙겨줬더니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안 모양이네요.”

내 그 말에 세 여자들은 알아서들 생각하고 판단해서 떠들었다.

“요새 보면 좀 예쁘다 싶은 여자들 너무 뻔뻔한 거 같아요.”

“맞아. 순 자기 밖에 모르고 말이야.”

“예쁜 게 무슨 벼슬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는 세 여자들도 사실은 미인들이었다. 하긴 대기업에서 임원 비서라면 분명 외모도 따지지 않았을 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선지 김희수를 비롯해서 강혜정, 박수영 모두 외모만 봐서 결코 류지혜보다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들이 류지혜를 외모만 두고 까는 건....아마도 그녀들 나름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일 거다.

류지혜가 받은 수백만 원은 넘는 헤어 메이크업과 그녀의 몸을 두른 수천만 원은 족히 할 만한 명품 옷과 구두. 그리고 시계를 비롯한 각종 명품 액세서리들이 그녀들을 초라하게 만들었겠지.

뭐 재벌 3세인 내가 아는 지인의 딸이면 당연히 최상류층 사람일 테니, 류지혜에 대해서 외모 말고 다른 걸로 깔 게 있을 리 없을 테고 말이다.

뭐 어째든 여기서 최후의 승자는 세 여자들이었다. 내가 류지혜를 깐 걸 그녀들도 다 봤으니까. 그걸 알기에 그녀들이 다들 득의만만한 얼굴로 이렇게 내 주위에 앉아 있는 것일 테고.

똑똑똑!

그때 특실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내가 말하자 특실 문이 열리며 생글거리는 얼굴의 웨이터가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호출 하셨습니까?”

“네. 여기 양주 두 병 더 하고....”

나는 웨이터에게 술을 더 시키면서 세 여자 쪽을 쳐다봤다. 뭐 더 필요한 거 있는지 눈짓으로 물어 본 건데....이번 역시 강혜정이 다른 두 여자보다 먼저 설레발을 치며 말했다.

“여기 밴드도 부를 수 있다던데 사실이에요?”

강혜정의 밴드라는 말에 웨이터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아네. 밴드 있습니다. 한데 밴드 부르시려거든 스페셜 코스로 주문을 하셔야 하는데....”

“스페셜 코스요?”

웨이터의 스페셜 코스란 말에 세 여자들이 일제히 관심을 보였고 웨이터는 기다렸다는 듯 스페셜 코스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놨다. 하지만 정작 그 스페셜 코스의 술값이 얼마인지는 교묘히 말하지 않고서 말이다.

하긴 지금 나와 같이 있는 세 여자들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술값 같은 게 신경 쓰일 리 없었다.

‘뭐 나도 딱히 상관없고.’

술값으로 수십억을 쓰는 것보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내일 새벽 2시까지 강혜정과 박수영을 따 먹고 개지수 100포인트를 획득하는 거니 말이다.

“대표님. 노래 잘 부르세요?”

그때 불쑥 강혜정이 내게 물어왔다.

“노래요? 뭐 조금....”

이전 삶의 나는 노래와 춤 쪽으로는 젬병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빙의해서 살고 있는 백준열은 달랐다. 그는 춤 뿐 아니라 노래도 그럭저럭 잘 하는 편이었다. 거기다가 견신 시스템의 능력 덕분에 이제는 웬만한 가수 뺨칠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고.

‘뭐 저 여자는 노래로 사로잡으면 되겠네.’

내가 강혜정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 때 그녀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녀 몸에서 자신감을 상징하는 연보라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걸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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